자신도 모르게, 부모들의 많은 숫자가 그들의 두려움과 미신들로 아이를 오염시킨다
삶은 기회들의 놀이터이다 & 행동하는 사랑의 결합된
힘으로 결집하는 것
삶은 기회들의 놀이터이다
Life is a Playground of Opportunities
By the Beloved One/TA
Received by Lytske. 6/24/2018
http://www.1111angels.net/index.php/messages
다시금, 이것은 영원 속의 한 순간이다. 영원은 이것들과 같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열린 가슴과 마음으로, 모든 것의 창조자가 무엇을 기꺼이 전하려는 가를 듣기 위해 준비된 모든 성실한 탐구자에게는 말이다.
너희는 너희가 고요한 목소리를 – 영원한 신의 하나의 단편의 – 들을 때 너희 속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빛과 순수성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없다.
너희는 너에게 막강한 창조자 신Creator God이 그 자신의 하나의 단편을 너에게 선물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말로 이해할 수 있는가?
그것의 너 안의 내재함은 네가 아직 어린이였을 때 너의 최초의 도덕적 결정을 – 선과 악 사이의 의식적인 선택을 – 만들었을 때 일어났다.
이 중대한 경우가 이 행성에서는 대략 5살과 일곱 살의 사이에 일어난다. 작은 아이는 그 영원한 운명을 향해 올바른 방향에서 그것을 돕고 지도하기 위한 내적 나침판이 필요하다.
자신도 모르게, 부모들의 많은 숫자가 그들의 두려움과 미신들로 아이를 ‘오염시킨다contaminate.’ 우주적 창조자Universal Creator는 그의 모탈의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찾는 마음을 선물을 주었고, 그것은 더욱 어린 아이들이 보살펴주는 어른들의 도움과 지도로 발달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물질적이고 전자적 시대에, 텔레비전, 게임기기들, 더 많은 것들 앞에서의 활동부족은 이 발달을 위협한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책 읽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마음을 발달시키고, 그들의 상상력을 게임들을 발명하기 위해 사용하는가, 건강한 몸과 팀의 정신 발달시키는 것을 돕거나, 다른 이들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우기 위해 경쟁하는 스포츠에 관계하는가?
인간의 영은 그 자신을 자라고 발달시키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것을 그는 건전한 활동들로 적극적으로 참가함으로써 한다. 부모들은 전자 기기와 보내는 그 시간들을 제한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원형 테이블에서의 의논들과 부모 놀이의 게임들을 하는 것은 가족의 유대와 아이들 속의 안정감을 창조한다. 만약 부모들이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로 지쳤다면, 누가 그들의 아이들의 마음을 형성할 것인가? 양육과 일급 보살핌이 필요해지고, 사랑으로 공급된다.
삶은 기회들로 가득 찬 하나의 놀이터이다. 발달을 위한 잠재성들을 조사해보고, 인도를 위해 고요 속에 있는 나에게 오라.
행동하는 사랑의 결합된 힘으로 결집하는 것
Rally with the United Forces of Love in Action
By Thought Adjuster
Received by Anyas. 6/18/2018
“사랑은 종교의 본질이고, 우수한 문명의 원천이다.” [UB 1124.05]
위의 성명은 숙고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실로 말의 통일한다는 의미에서, 사랑이 없다면 진정한 종교가 있을 수 없다. 나는 여기서 너희가 사랑으로 생각하는 것으로의 단순한 정신적 충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닌데, 사랑이 크게 잘못 이해되었고, 그리하여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행동 속에 있는 사랑이고 — 타인들을 관용하는 단순한 현재 상황이 아닌데, 비록 사랑이 진정한 진심어린 관용을 포용한다 해도 말이다. 그러나 때때로, 다른 이들을 관용한다는 것은 그 자신을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으로 제한하며 — 그들을 당신의 살아있는 구역으로 초대하는 것까지 가지는 않는다.
효과적인 종교적 삶은 행동하는 사랑으로 스며들어 있다. 그것들은 많은 이들의 삶을 고양시키는 감정적 표시를 남길 때 문제가 된다. 그들의 봉사는 다른 가슴들에 활기를 주고, 그들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행동들의 아름다운 연쇄 반응으로 참가하기를 고무하는 파급효과를 갖는다.
사랑은 존경스러워야만 한다HAS TO BE respectful. 만약 그것이 이 요소가 부족하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마침표. 다른 한편, 그러한 존중이 스며든 사랑은 가슴을 여는 것으로 작용한다. 확실히 너는 개인적으로 ‘무례함’이 얼마나 순간적으로 하나의 보호 조치로서 너의 가슴의 문을 꽝 닫는 것을 체험했다.
이 무질서한 시간들에서 너의 ‘사랑의 삶love life’을 조사하는 것이 매우 조언할만하다. 종교는 그 촛불로서 행동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 체험의 모든 영역들에서 ‘일어나야만transpire’ 하는데 — 가족 단위로부터 문명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슬프게도, 종교적 체험의 두 가지 가장 본질적 요소가 자주 빠져있다. 너는 너의 친척을 사랑할 수 있다. 너의 적들에 대해선 어떤가? 너는 그들에 대해 관용적인가, 아니면 불관용적인가? 너는 그들을 존중하는가, 아니면 너는 그들을 너의 냉소적인, 폄하하는, 멸시하는 태도들의 진탕 속에서 끌고 다니는가?
기독교가 만약 그것이 그 상표가 되어야 할 사랑과 존중이 없다면, 어떻게 끌어당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친애하는 이들아, 다른 이들의 비타협적인 행위들을 모방하지 마라, 그리하여 그들이 너 자신을 곰팡이 나도록 허용하면서 말이다. 너의 진실성 속에 머물고, 훌륭하게 사랑스러워짐으로써 행동 속의 사랑을 옹호해라. 그것은 그만큼 간단하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너의 진정한 성질이라 할지라고, 이러한 휴면한 특성들을 – 일단 활성화될 때 너희 문명을 개선할 힘을 가진 특성들을 – 일깨우는 데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실로 행동 속의 사랑의 결합된 힘들은 멈출 수 없고, 생명의 빛의 시대에 승리를 주장할 것이다.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2/11557 교정시간 가르침/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