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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메시지 !

+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와 9,200년 역사 [동이(東夷)족]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와 9,200년 역사 [동이족]

 

 

 

 

 

동이(東夷)족 제갈공명과 만두 탄생

 

■ 원한 맺힌 신명들을 달래려고 만두를 만들었다.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촉(蜀)나라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남만(南蠻)의 왕(王) 맹획(孟獲)을 일곱 번을 사로잡고 다시 일곱 번을 풀어줘 마음으로 복종시켜서 남만(南蠻) 정벌에 성공했다. 남만(南蠻) 정벌에 성공한 후, 촉(蜀)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베트남(Vietnam) 북부에 있는 노수(瀘水)라는 강의 험한 물살로 어려움을 겪었다.

 

갑자기 일진광풍(一陣狂風)이 일더니 군사와 말 그리고 수레까지 날아갔다. 노수(瀘水)에 갑자기 홍수가 나면서 물이 불어나 수많은 군마(軍馬)가 떠 내려갔다. 전쟁터에서 죽은 수많은 군사(軍士)들의 원귀(寃鬼)들이 풍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도저히 군사를 이끌고 노수(瀘水)를 건너 회군(回軍)할 수 없었다. 법사(法師)를 불러 방법을 알아보니, 원한(怨恨) 맺힌 신명(神明)들이 적군(敵軍)의 머리를 잘라 노수(瀘水)에 바쳐 제사(祭祀)를 지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갈공명은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 사람 머리를 제물로 바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밀가루 반죽 속에 소, 양, 돼지 고기 등을 다져 넣어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든 후 제사(祭祀)를 지냈다. 제사(祭祀)를 지내고 나니 노수(瀘水) 강물이 잠잠해졌고, 제갈공명의 군대는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 만두(饅頭)의 탄생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지혜

 

만두(饅頭)의 탄생은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지혜에서 비롯됐다. 사람의 머리 대신에 밀가루와 고기 반죽으로 만두(饅頭)를 만들어서 제사(祭祀)를 지냄으로써 만두(饅頭)가 탄생했다. 밀가루 반죽에 고기를 넣은 가짜 사람 머리로써 원귀(寃鬼)들의 마음을 달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만두(饅頭)가 고려 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삼국(三國) 시대부터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고려사(高麗史)를 찾아보면, 충혜왕(1343년) 때 주방에 들어가 만두를 훔쳐 먹은 자를 처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高麗) 시대 밀가루 빵을 "상화"라고 하고, 고려 가요에도 그것을 파는 ‘쌍화점’ 노래가 등장한다. 충렬왕 5년에 승지였던 오잠이 지은 고려 가요 ‘상화점’은 "내가 상화점에 상화를 사러 갔더니"로 시작하는데, ‘상화’란 밀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린 반죽 안에 채소와 팥을 넣고 찐 음식으로 만두(饅頭)에 해당한다.

 

조선(朝鮮) 시대 궁에서도 배추 김치가 들어간 만두(饅頭)를 빚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궁중 문헌을 보면, 만두(饅頭)류 중 메밀 가루가 들어간 만두가 밀로 빚은 만두 보다 많다. 소고기 대신 꿩고기도 많이 사용했다. ‘정조지(鼎俎志)’라는 책을 보면, 만두(饅頭)는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고 밀가루로 만든 음식 중 으뜸이라는 기록이 있다.

 

만두(饅頭)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공통적인 음식으로 우리나라에선 특히 북한에서 많이 먹어 오늘날에도 함경도와 황해도 지방에서는 설날 떡국 대신 크게 빚은 만두를 먹는다. 만두는 세계 곳곳에 퍼져 있어 국가별로 다양한 요리가 등장한다. 딤섬(중국), 사모사(인도), 차죠(베트남), 라비올리(이탈리아), 뽀삐아 사보이(태국) 등이 대표적인 만두(饅頭) 요리이다.

 

 

■ 제갈공명은 동이족(東夷族) 즉 한(韓)민족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蜀)나라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원래 산동성(山東省) 사람으로 동이족(東夷族)이다. 즉 한(韓)민족이다. 제갈(諸葛)은 우리 민족이 중국의 하남, 산동, 중국 북부지방, 요서 지역, 하북, 양자강 이남 등에 살던 동이족(東夷族)의 성(性)씨이다. 공명(孔明)은 공자(孔子)의 사상을 존경한 뜻이다.

 

제갈(諸葛)씨의 유래는 제(諸)씨와 갈(葛)씨가 합쳐져서 됐다하는데. 갈(葛)씨의 조상은 갈천씨(葛天氏)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동이족(東夷族) 추장의 후손이며, 동이족의 성씨인 풍(風)씨의 한 갈래이다. (보삼황본기補三皇本記 참조). 풍(風)씨의 조상은 태호(太昊) 복희(伏羲)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 태어난 곳은 산동성(山東省) 낭야군 양도현으로 동이족(東夷族)들이 사는 땅이며, 옛 고조선(古朝鮮. B.C2,333-238) 시대에는 단군 왕검의 아들인 부루 태자가 이 곳에 와서 동이족들의 추장들을 만나서 중원(中原)의 일에 관해서 의논하기도 했던 곳이다. 제갈공명은 기문둔갑(奇門遁甲)이란 점법(占法)에 능하고 천문(天文)을 보는데 능했으며, 목우류마(木牛流馬)나 연노(連弩) 등 기계를 발명하는데도 능하여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다.

 

제갈공명(181-234년)이 죽은 후 촉(蜀)나라가 망하자 제갈(諸葛) 부족(部族)하고 제갈공명의 제자인 강유(姜維. 202-264년)의 후손들은 만주(滿洲). 한반도로 피신하였다. 강유의 후손인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高句麗)에서 수(隋) 나라 대군을 무찌르며 이름을 떨쳤다.

 

 

■ 인류 최초 성(性)씨 시조(始祖)인 태호(太昊) 복희(伏羲)

 

원래, 인류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생겨난 성(性)씨는 풍(風)씨이다. 풍(風)씨의 처음 시작은 5,500년 전, “주역”의 팔괘(八卦)를 처음으로 그려서 주역(周易)의 역철학을 체계화한 태호(太昊) 복희(伏羲)씨이다. 복희(伏羲. ~B.C3,413)는 풍산(風山)에서 출생하여 풍(風)씨라고 하였다. 복희(伏羲)는 배달국(倍達, B.C3,897-2,333) 사람으로 동이(東夷)족 사람이다.

 

복희(伏羲)는 배달(倍達, B.C3,897-2,333)의 5대 태우의(太虞儀. B.C3,512년 즉위) 환웅의 12번째 아들이며, 우사(雨師) 직책을 수행했다. 음양오행(陰陽五行)과 태극기의 팔괘(八卦)를 처음 그려내어 주역(周易)을 창시했으며, 혼인(婚姻) 제도를 처음 만들었고, 배달국의 녹도(鹿圖) 문자(文字)를 개량하여 새로운 문자(文字)인 용서(龍書)를 제정했으며, 침구를 처음 시작해 침을 만들었고, 양잠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태호(太昊) 복희(伏羲)는 결혼을 할 때 부채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부채 역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 무당들이 굿을 할 때에도 부채를 사용한다. 풍(風)씨의 후손들은 15대 만에 자손이 끊어지는 바람에 결국 풍(風)씨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를 안타까워한 후세의 사람들은 "풍채 좋다. 풍신 좋다. 풍골 좋다"라는 표현을 남김으로써, 풍(風)씨를 기리고자 했다.

 

 

■ 공자. 맹자. 묵자. 강태공도 동이족(東夷族)이었다.

 

공자. 맹자. 묵자. 강태공 등이 우리의 조상인 동이(東夷)족이라면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분명한 역사적 진실이다. 중국에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

 

공자(孔子)는 스스로 동이족(東夷族) 계열의 은(殷) 나라 후손이라 말하곤 했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을 보면, "나(공자)는 은(殷)나라 사람이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은(殷)나라는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나라이다. 공자가 태어난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역에서 살던 흰옷을 입고 백색을 숭상했던 은족(殷族)은 전형적인 동방 조선족 계열의 동이족(東夷族)이라는 사실은 대만 대학의 서량지(徐亮之)나 홍콩 대학의 임혜상 교수가 인정하고 있다.

 

사고전서(四庫全書) 경부 ‘사서석지(四書釋地)3’ 속(續) 하(下)권에는 “맹자(孟子)는 추(鄒)나라 사람인데 추(鄒)나라는 춘추(春秋)시대에 주(周)나라였고, 주(周)나라는 본래 동이족(東夷族) 국가였으니, 그렇다면 맹자 또한 동이족(東夷族) 사람이 아니겠는가?” 라는 내용도 나온다.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부 ‘명현씨족언행유편(名賢氏族言行類編)’ 52권에는 “전국(戰國)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묵자(墨子)’의 저자인 묵적(墨翟)이 본래 고죽군(孤竹君)의 후예”라는 내용이 나온다. 고죽국(孤竹國)은 원래 동이족(東夷族) 국가였다. 묵자(墨子) 또한 동이족(東夷族)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부 ‘여씨춘추(呂氏春秋)’ 14권에는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동이지사(東夷之士)’라는 내용이 나온다. 강태공(姜太公)이 동이족(東夷族)이라는 근거이다. 지금까지 중국인으로만 알았던 공자, 맹자, 묵자. 강태공 등이 동이족(東夷族)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대주의(事大主義)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중국 청(淸)나라 때 편찬된 책으로 진(秦. BC771-206년)에서 청(淸. 1636-1912년)에 이르는 중국의 역대 주요 서적과 문헌을 집대성해 7만 9,000여권으로 만든 총서이다. 현재, 중국에서 그들의 역사 연구와 기초 자료로 통하는 역사 총서이다. 1772년 전국에 각종 도서를 수집한다는 조서를 내리고 사고 전서관을 짓는 것을 시작으로 1787년 편찬 작업이 마무리 되기까지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기록에 참가한 문신. 학자. 기록관이 무려 4,000여 명에 달했다.

 

★ 배달국(倍達 BCE 3,898-2,333)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우(禹) 임금 (하夏나라의 시조). 탕(湯) 임금 (은殷나라의 시조). 문왕 (주周나라의 시조). 무왕 (주周왕조 개창). 강태공 (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中國)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은 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堯)임금. 순(舜)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청구 배달(靑丘,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 문화 (紅山文化)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神話)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

 

★ 배달(倍達 BCE 3,898-2,333)의 홍산(紅山)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E 3,500-2,600년). 황하 문명(BCE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E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E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 BCE 3,898-2,333) 문명이 중국의 황하(黃河) 문명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黃河)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겨 난 것이다.

 

 

출 처: http://cafe.daum.net/do92/4QYi/90

 

 

 

한국의 찬란한 미래와 9,200년 역사

 

본문보기:   http://cafe.daum.net/do92/4QYi/91

 

글: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최병문 (010-4607-3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