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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남의 대화록 ‘아버지 김정일과 나’ 입수

북한 김정남의 대화록 ‘아버지 김정일과 나’ 입수

“장성택 中방문 때 北개방 검토… 내부 규율붕괴 우려해 포기”

고미 도쿄신문 편집위원과 김정남의 대화록 ‘아버지 김정일과 나’ 입수

지난해 12월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은 도쿄신문 고미 요지 편집위원과 7년 동안 주고받은 이메일 대화록인 ‘아버지 김정일과 나’(문예춘추)에서 “김정은은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며 기존 파워엘리트들이 권력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이 오는 20일 발간에 앞서 입수한 이 책에는 김정남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관계와 연평도 포격사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전망 등이 실려있다. 이 책에는 2004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김정남과 고미 편집위원이 주고받은 150 차례의 이메일 대화와 지난해 1월과 5월 두 차례 인터뷰 내용이 포함돼 있다.

▲ 작년 1월 인터뷰 모습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2011년 1월 일본 도쿄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신문 제공

김정남은 연평도 포격도발과 관련,“북조선 군부가 자신들의 지위와 존재 이유, 핵 보유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저지른 도발”이라며 “북조선 입장에선 서해5도 지역이 교전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핵, 선군정치 모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의 부적절한 대응도 북한의 공격을 초래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책에는 그러나 천안함 관련 대목은 없었다.

김정남은 김정은에 대해 “이복 동생이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성향에 대해 잘 모른다.”며 “김정은 체제는 오래 못 갈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 체제와 관련 “장성택이 2006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개혁·개방을 진지하게 검토했고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개혁·개방을 기대했다.”며 “하지만 북한을 개방하면 외국에서 들어오는 정보때문에 내부 규율 붕괴를 우려해 아직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250쪽에 이르는 책의 주요 내용.

▲ 1981년 8월 평양에서 김 위원장과 김정남이 함께 찍은 사진.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연평도 포격사건 북한이 한국을 포격한 배경은 교전지역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핵 보유나 군사우선정치의 정당성을 가지기 위한 것이다. 권력 중추에 군이 대두한 것을 시사한다(2011년 1월 21일).

한국의 부적절한 대응도 북한의 공격을 초래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공격을 받아도 전쟁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한국이 받을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북한은 한국의 이러한 약점을 알고 언제든지 비슷한 공격을 할 것이다(2010년 11월 25일).

●3대 세습 2009년에 결정된 3대 세습은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에게도 없었던 세습이다. 사회주의와 맞지 않고 아버지도 아들이 권력을 이어받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세습을 반대했다. 중국 정부가 세습을 환영한다기보다 북조선의 내부 안정을 위해 후계 구도를 인정할 뿐이다(2011년 1월 21일).

정상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3대 세습을 추종하는 일은 없다. 37년간 절대권력을 젊은 후계자가 2년 만에 받아 이어가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다(2011년 1월 3일).

●김정일과의 관계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외부에 전해지는 (아버지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나쁠 때도 있고, 좋은 때도 있다. 아버지는 지도자로서 생활하지만 나는 외부에서 자유롭게 산다.

제네바에 갔을 때 운 기억이 있다. 내가 떠난 후에 아버지의 애정이 이복동생인 정은, 정철, 여정에게 간 것 같다. 내가 오랜 유학기간에 걸쳐 자본주의 청년으로 변하자 아버지는 아들이 국제적 시각을 갖는 것을 싫어해 이복동생들에게는 유학기간을 짧게 하고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도록 통제를 엄격하게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과거 핵실험, 미사일 발사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직언했다.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북한에 들어간 뒤 아버지에게 개혁·개방을 주장하면서 멀어졌고 이후 경계 대상이 됐다(2011년 1월 13일).

●개혁·개방 장성택이 2006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개혁·개방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장성택 스스로 개혁·개방을 모색했다고 이해했는 데 개방하면 외국에서 들어오는 정보때문에 내부 규율붕괴를 우려해 아직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고모(김경희)와 고모부(장성택)의 특별한 관심안에 있다(2011년 7월 29일).

북한이 외국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북한은 외국 투자 유치에 필요한 보호 정책과 규정이 없다. 국제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고 신뢰를 쌓아가는 성의를 보여주는 게 경제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이 무너지고, 개혁·개방을 할 때는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다(2011년 4월 11일).

●중국과의 관계 중국 정부와 나는 관계가 없고, 아버지의 중국 방문에 수행한 적도 없다. 중국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루트가 있을 텐데 (내게) 모두 물어볼 필요가 없다. 중국정부는 나를 보호하는지, 감시하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든지 (내 주변에) 사람이 있다 (2011년 1월 13일).

●정보 통제 북한에서는 해외에 나가면 인터넷 접속을 못하게 하지만 모두 보고 있다. 장사꾼들이 중국에 가면 먼저 PC방에 간다. 외국 정보에 아주 민감하다. 정보 통제를 하면 할수록 북한사람들이 세상 밖의 소식을 보고 싶어 한다(2011년 2월 23일).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에서는 사망 이후 백일은 상복을 입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어떤 새로운 뉴스가 나와도 나한테 불리하게 된다. 북한의 정권이 나에게 위험하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2011년 12월 31일).

서울신문 도쿄 이종락특파원@seoul.co.kr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8006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