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저널 제 121권 (미간행 저널)
러시아의 우주 패권
[‘아는 자[One Who Knows]’라는 필명을 쓰는 익명의 인물의 책, ‘하늘에서 추락하는 화염[Fire From The Sky]’으로부터 인용된 내용--phoenix]
제 5장, 기록 #2 하톤
1995년 1월 7일 토요일, 2:08 P.M. 8년 144일
하늘에서 추락하는 화염[Fire From the Sky]
by “아는 자[One Who Knows]”
[Part 8의 인용]
미국-일본간의 불화
점증하는 또 다른 위기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일본간의 불화[FEUD]였다. 미국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 이상 어떤 일도 제대로 처리해 낼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1981년 4월 10일 아침, 케이프 커네버럴[Cape Canaveral]에서는 첫 번째 우주왕복선 발사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 상의 문제로 불발로 끝났으며, 이건 그날 미국 내 톱뉴스가 되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또 다른 톱뉴스로 인해 이 소식은 거의 묻히고 말았다.
바로 전날 미국 잠수함이 작은 일본 화물선 한 대를 가라앉게 만들었는데, 양자간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미국 잠수함은 생존자들을 구조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버렸던 것이다. 더 나빴던 건, 미국은 이 사건이 있은 지, 36시간이 지날 때까지 일본 정부에 대해 이러한 일이 발생했던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인들은 미국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의구심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하톤: 독자들이여, 이것이 당신들이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모습인 것입니까???]
미 해군, 다른 설명을 내놓다.--늘 그렇듯
미 해군은 13명의 일본인 생존자들의 증언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 해군 보고서에 따르자면, 심지어 충돌이 발생한 장소마저도 실제로 발생한 곳에서 3과 1/2마일 더 떨어진 곳이었다. 일본인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일본인들은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고, 그 밖에도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답변을 요구했다. “우연한 사고”로 추정되는 일본 화물선의 침몰은 미국, 일본간의 불화의 시작에 불과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전해 오는 한 가지 충격에 뒤이어 또 다른 충격이 일본을 뒤흔들었다. 미국 해군 함정들은 지금껏 일본 어업 해역을 가로질러 항해하며 고기잡이 그물망들을 끊어놓기 다반사였던 것이다. 갑자기, 핵무기를 탑재한 미국 군함들이 비밀리에 정기적으로 일본 항구들을 이용해 왔다는 사실도 폭로되었다. 헤이그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 Haig]은 일본 방문을 취소했다. 그러기 얼마 전에 일본 스즈키[Suzuki]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문제를 보다 더 악화시켰다. 헤이그는 스즈키 총리와 이미 공동 코뮤니케[joint communique]에 구두 합의했다고 했는데,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스즈키 총리가 미국과 비밀 군사 동맹 관계를 맺고 온 것이라는 의혹이 생겨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즈키가 처한 곤란은 그가 평소에 미국과 그런 류의 군사 동맹을 맺는 데는 반대해 온 인물이었기에, 더 난감한 것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물론,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시도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당시 미국은 남미와 남극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대량의 위조지폐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했다. 또한 미국 내 볼셰비키들은 일본이 재무장해서 태평양 서부 지역에서 경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랬다. 스즈키의 전임자였던 오히라[Ohira] 총리는 러시아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볼셰비키들과 함께 움직여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때,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오히라가 갑자기 사망하고, 스즈키가 그 자리를 대신했던 것이다. 스즈키는 일본의 재무장을 원치 않았고, 이로 인해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은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길 원했다. 일본인들은 이 특별했던 몇 달 동안 온갖 종류의 충격을 다 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가졌던 한가지 공통분모가 있다면, 바로 일본 전체가 체면을 잃었으며, 특히 스즈키 총리가 체면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동양인들에게 있어서 체면을 잃는다는 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시아권에서 체면을 잃는다는 것은 아주,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은 바로 이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여, 스즈키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누가 스즈키의 뒤를 잇는다 하더라도, 국내적으로는 “평화”를 강조해야 하겠지만, 워싱턴과 보조를 맞추려고 하는 한, 전쟁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장소들
아시아의 다른 곳인 공산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그 때로부터 얼마 전에 대단히 심각한 국경 분쟁이 있었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그러는 동안, 소위 말하는 레이건 정부는, 미국이 최첨단 무기를 공산 중국에 판매할 것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신은 암 덩어리가 미국을 집어 삼킨 정도가 아니라, 미국이란 나라를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까지 몰고 갔다는 사실에 대해 동의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그 이후로 뭔가가 개선되어 왔다고 생각하는가? 자, 분명코 모든 것이 훨씬 더 악화되어 왔을 뿐이다. 당신은 안타깝게도 1980년대가 실제로 어떠한 시기였는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유럽 역시 볼셰비키 앞잡이들로 인한 소용돌이가 있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국가 내 다수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포함된 대규모 음모와 관련한 엄청난 스캔들로 파국 직전까지 몰렸다. 서독에서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총리는 그간 유지되어 오던 동서독간의 균형 관계를 깨트렸으나 이를 되돌리려는 세력들에 의해 집중 포화를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볼셰비키들이 선거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둬 들였다. 그 때까지 프랑스는 러시아와 특별한 관계를 형성해 왔었고, 동시에 서방 국가들과도 관계가 좋았다. 프랑스와 러시아간의 관계는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양국간 신뢰 형성을 위한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새롭게 대통령이 된 미테랑[Mitterrand]은 이러한 관계를 최대한 빨리 바꾸려고 노력했다. 미테랑은 프랑스를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이 이끄는 ‘반-러시아 세력[anti-Russian camp]’에 합류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공개된 회의, 그리고 공개되지 않은 회의에서 그가 보이는 현재의 모습들에 주목해 보라. 그리고 당신이 갖고 있는 퍼즐 조각을 맞춰 보도록 하라.
그 때 당시, 우리 주위에는 크고 작은 위기들이 무성했었고, 또 뒤섞여 있었다. 대체로 이러한 위기들은 우연한 일들이 아니었다. 이러한 위기들은 미국 내 볼셰비키들의 전쟁 준비 전략의 일부분들이었던 것이다. 세계를 위기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으면서, 그들은 제 1차 세계 핵전쟁[NUCLEAR WAR NO. onE]을 위한 셋팅을 마련하고 있었다. 마치 제 1차 세계대전 직전, 발칸 반도의 불안정과 꼭 마찬가지로 전 세계는 소요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는 혼란스러움이 조금이라도 가시는가?
제 1차 세계 대전은, 겉보기에 우연한 사건, 즉 테러리스트에 의한 오스트리아 페르디난드 대공[Archduke Ferdinand]의 암살로 시작되었다.
4월 12일,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가 불운한 첫 번째 비행을 위해 발사되었을 때, 공중에서는 특별 비행 편대가 우주왕복선을 지원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진보한 기술의 레인지-인스트루먼테이션[Range-instrumentation](레이더, GPS, 원격측정, 간섭계 등을 통해 제공되는 권역별 데이터에 기반한 운항 시스템--역주) 비행 편대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 특별한 비행기들은 군사용 보잉 707기를 개조한 것으로, EC-135N기로 불렸다. 우주 공간상에서의 무기 발사와 같은 임무에 투입되지 않더라도, EC-135N기들은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었으며, 예를 들어, 러시아의 위성을 추적하는 임무에도 투입될 수 있었다. 소수의 EC-135N기만이 존재했기에, 이들 모두는 대단히 중요했다. 4월 콜롬비아호가 발사되었을 때, EC-135N기는 단 8대만 있었다.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은 볼셰비키들이 진행 중이던 전쟁 계획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핵심 요소였으며, 또한 EC-135N기들은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있어 결정적인 부분이었다. 1981년 5월 6일, 닉네임이 “보스 호그[Boss Hog]”였던 한 대의 EC-135기가 오하이오주 라이트-패터슨 공군 기지[Wright-Patterson Air Force Base, Ohio]로부터 이륙했다. 비행기는 훈련용 비행 루트였던 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개조된 707기였던 이 EC-135N기에게는 전혀 예기치 못한 만남이 도사리고 있었다.
메릴랜드[Maryland]주 서부 구릉지대 높은 곳에서, 한 대의 코스모스페어(‘미 우주왕복선과 러시안 코스모스페어’ 참조--역주)가 보스 호그[Boss Hog]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 동부시간으로 오전 10시 51분, EC-135N기의 조종사는 “비행 레벨 29”라고 지상 통제소에 알렸다. 비행기는 29,000 피트 상공에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코스모스페어가 몇 마일 아래쪽으로 지나가는 이 제트 비행기를 향해 충전 입자 빔 무기[Charged Particl Beam]를 발사했다. 빔은 동체 상단에 구멍을 냈으며, 또 다른 구멍은 동체 하단에 생겼다. 폭발적인 감압[explosive decompression]이 비행기의 선실을 텅 비게 만들었다. 이어서 2차 폭발이 일어났으며, 이내 제트기는 화염 덩어리로 변했다. 동시에 비행기 꼬리 쪽으로 뻗어있는 통제 케이블이 파괴되었으며, 비행기 앞 부분은 격렬하게 아래쪽으로 꺾였다. 충돌이 있기 전까지 수 마일에 걸쳐 활강하는 대신에, 이 파괴된 비행기는 마치 돌멩이처럼, 완전히 직선으로 아래쪽으로 추락했다. 레이더 통제소에서는 갑자기 비행기가 사라져서 깜짝 놀랐지만, 모든 기록들이 다 남겨졌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태까지 알아 왔던 어떤 현상과도 매치가 되지 않는 특이한 일이었다. 지상에서의 목격자들은 쾅-쾅-쾅하는 소리를 들었으며, 잠시 뒤에 거대한 불덩어리가 구름 사이로부터 아래로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떨어졌다. 최소 약 10분 동안 비행기 잔해들로 된 작은 조각들이 주변 수 마일에 걸쳐 떨어졌다.
이처럼 격렬한 항공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대개 조사에만 수 개월이 걸리곤 한다.--하지만, 이 경우에는 달랐다. 5월 29일 금요일, 추락한 지 3주가 겨우 지났을 때에, 공군은 조사가 이미 끝났다고 발표했으며, “일종의 조종사 과실”이 있었다고 했다. 시계(視界)와 관련된 어떤 것을 다루는 데 있어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설명을 제공했다! 공군은 무엇이 자신들의 비행기를 공중에서 날려버렸는지를 알았지만,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던 것이다. : “당분간 결과는 공개될 수 없다.”
미 공군이 자신들의 소중한 EC-135N기 추락 사건으로 인해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는 동안, 이번에는 미 해군의 차례가 돌아 왔다. 앞선 사건이 해군에게 “어쩌면” 일어났을 지도 모를 일을 추정하는 데에 있어, 당신에게 단서를 제공해 주는가? 예를 들어 군함에 장착된 회전식 포탑[gun turret] 파괴는 어떤가? 입자 빔 무기는 너무나도 정교한 것이어서, 비행 중에 있는 비행기의 제트 터빈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 러시아의 공격 대상은 이번에도, 고도 기술에 기반한 전투기였다. 이 비행기는 미 해군 원자력 항공모함 니미츠[Nimitz]호에 실리는 EA-6B 프라울러[EA-6B Prowler]였다.
5월 26일 화요일 밤, 니미츠호는 동부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야간 착륙 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비행기들이 항공모함 위로 내리는 것은 항상 위험한 일이었으며, 특히 야간에는 더욱 그러했다. ; 그러나 EA-6B는 특별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이 비행기는 가시거리가 0인 상태에서도 안전한 착륙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자동 착륙 시스템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프라울러들[Prowlers]은 모든 항모 탑재 비행기들 가운데 가장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 그렇지만, 5월 26일 밤, 러시아의 새로운 점보 코스모스페어는 니미츠호의 아주 높은 상공에 떠 있었다. 이 코스모스페어는 중성자 입자 빔[Neutron Particle Beam] 무기를 장착한 두 대의 코스모스페어들 가운데 한 대였다.
EA-6B호가 니미츠호에 접근할 무렵, 코스모스페어는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항공모함에 마지막으로 접근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코스모스페어는 빔 무기를 발사했다. 보이지 않는 중성자 빔이 세 명의 승무원들을 순간적으로 죽였으며, 일시적으로 비행기의 전자 시스템들은 오작동을 일으켰다. [하톤: 아직도 북한에 불시착한 헬리콥터와 관련해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습니까?(1994년 12월 17일, 주한 미군 소속 헬리콥터 1대가 휴전선을 넘어 북한 지역에 불시착하는 사고 발생--역주) 헬리콥터에 탑승한 승무원들은 그들이 왜 항로를 벗어나게 되었던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 멋진 비행기들이 항로 밖에 가서 추락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결빙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는데, 그 때 한국에 결빙은 없었습니다! 깨어나십시오! 조종 장치들(당신들의 기술로 만든 장치들로, 당신 자신들의 것입니다.)은 주변 지역의 무엇이든 다 간파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간파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적절한 전자기 펄스를 내보내면 어떤 비행기의 전자 시스템이든 완전히 다 망가뜨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빛 레이저의 포커스를 조금만 조정해도 조종사의 눈은 영구적으로 실명될 수 있습니다.--헬리콥터에 탑승했던 조종사처럼!(사건 당시 1명은 사망하고 1명은 송환--역주) 요점을 이야기하자면, 장난을 치고 있는 자들이 “적들”인지 “외계인들”인지를 한 번 잘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기생충과도 같은 짐승[the parasitic beast]은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입니다!] 갑자기 무 조종 상태가 되어버린 제트기는 오른쪽으로 꺾였고, 갑판 위 다른 비행기들이 가득 늘어서 있는 곳으로 가서 충돌했다. 14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당했으며, 20대의 비행기가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다. 이 사고는 미 해군이 1950년대 초반 이후로 겪은 최악의 비행-갑판 참사였다.
미국, 러시아를 탓하다.
이 시기에는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에 관한 수많은 야단법석이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던가? ‘국가 안보’라는 것이 ‘국가의 생존[National Survival]’ 없이 성립할 수 있는가? 웃기는 건, 우리의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우리 안보의 위협은 러시아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가 보지 않을 때는, 그들은 뒤돌아 서서 러시아인들을 탓했다. 여기 그 예가 있다.
EC-6B기의 격렬한 충돌이 있는 바로 직후, 항공모함 니미츠호는 아주 잠깐 동안만 항구에 정박했다. 항공모함은 5월 28일 항구로 들어왔다가 바로 이틀 후인 5월 30일 떠났다. 공식적인 명분은 카리브해에서 계속되는 훈련에 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니미츠호는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가도록 명령받았다. 보통 때보다 훨씬 과감한 출발이었으며, 항공모함은 러시아의 문 앞이라고 할 수 있는 노르웨이와 바렌트[Barents] 해역까지 갔다. 이러한 전개는 잠깐 동안 펼쳐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실로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허세에 찬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의 제 정신이 아닌 행동이었다. 이건 마치 건달 앞으로 유유히 걸어 접근하거나 혹은 남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나 비슷한 일이었다.
러시아인들은 때를 만났으며, 자신들이 갖게 된 유리한 국면을 일부러 포기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의심할 나위도 없이, 그러한 국면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 멀리 나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왔다.
거짓말들 : 그 때의 엄청난 거짓말과 오늘날의 엄청난 거짓말
국가 안보라는 거짓말은 그 때도 엄청난 거짓말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엄청난 거짓말에 해당한다. 우리가 국가 안보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척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적은 국가 안보를 확보하게 된다. 비밀리에 미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은 진실 앞에 버틸 수가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오직 진실만이 우리를 묶고 있는 족쇄를 느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란, 중앙 아메리카, 이스라엘, 여타 세계 곳곳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이 진행 중이라서, 나로서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언급할 겨를 조차 없다. 1982년 1월, 러시아는 날씨 조작 및 인공 지진 등을 만들어 내는 지오피지컬 무기[geophysical warfare]를 업데이트했다.--물론 오늘날 사용 중인 것들은 그 때보다도 더 발전한 무기들이다. 캐나다의 일부 지역에서는 극심한 눈보라로 인해,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그 때 당시, 이미 4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코스모스페어[Cosmospheres]라 불리는 러시아의 전기중력 무기 플랫폼들[Russian electrogravitic weapons platforms]은 미국 상공 높은 곳에 계속 떠 있었다. 코스모스페어들은 미국 해안을 따라 엄청난 에어 붐들[giant air booms]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고, 이들은 미국의 모든 형태의 전략적 목표 지점들을 지속적으로 순찰해 왔다.
우리의 아메리칸 볼셰비키 전쟁 입안자들은 전쟁이 임박할 때면 항상, 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해 가능한 한 많은 코스모스페어들을 격추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1981년 말까지는, 우리 머리 위에 떠 다니는 코스모스페어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간파하는 일조차 거의 불가능했다. 코스모스페어들은 아주 가까운 범위가 아닌 이상, 보통의 레이더에는 잡히지도 않았다. 그러나 1981년 말, 파괴 무기 개발 프로그램 중 하나가 이들의 시스템을 따라 잡았으며, 때때로 코스모스페어들을 간파할 수 있었고, 레이저 무기로 조준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신기술은 “컴퓨터-강화 적외선[Computer-Enhanced Infrared]” (탐지) 기술이라고 불렸다. 코스모스페어들로부터 나오는 열 방사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민감한 방식을 사용해야 했다. 머리 글자만 따서, 씨어[CEIR](씨어[seer]라고 발음된다.)라고도 불렸다.
1982년 1월 12일 저녁, 뉴저지주 중심부 높은 상공에서 순찰 중이던 코스모스페어 한 대를 대상으로 완전한 작동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씨어[CEIR]는 지상에서 발사되는 고-출력 레이저 무기에 장착되었다. : 그런 다음 레이저는 발사되었다. 코스모스페어의 한 쪽 부분에서 청녹색의 화염이 분출되었다. 화염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자, 코스모스페어 조종사들은 해안을 향해 동체를 가속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모든 코스모스페어 조종사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코스모스페어가 러시아인이 아닌 자들의 손에 결코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 방향으로 서둘러 나아갔던 것이다. 공격받은 코스모스페어는 청녹색의 화염으로 된 꼬리를 남겼고, 이 자취는 동부 펜실베니아와 뉴저지 중심부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펼쳐졌다. 이 코스모스페어는 40마일 이상의 고도에 떠 있었지만,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반쯤 딱딱한 상태의 동체 표면은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했다. 보다 고도가 낮아진 채로 아틀랜틱 시티[Atlantic City]를 가로지른 다음, 해안으로부터 겨우 몇 마일 더 나아가 바다에 빠졌다. 다수의 목격자들은, 수면 위에서 약 10여분간 떠 있는 채로, 불타는 코스모스페어의 잔해를 보았다. 이 사건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공식적 정부 대변인은 이 모두를 늘 그렇듯 대수롭잖은 일로 다뤘다!
코스모스페어의 첫 번째 격추 사건은 크레믈린에도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러시아인들은, 같은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대로 갚아 주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아주 신속히 미 국방부[the Pentagon]에 보냈다. 러시아인들은 코스모스페어가 레이저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바로 다음날(1월 13일), 레이저 무기 전문가들이 탑승해 있던, 보잉 737, 에어 플로리다 90 제트여객기는 워싱턴 D.C.에서 추락했다. 이 비행기는 눈보라 속에서 국립 공항을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파가 많은 다리에 충돌했고, 산산조각이 난 채, 강 아래로 가라 앉았다. 이 사고로 승객 79명 중 74명이 사망하고, 다리 위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에도 4명이 죽었다. 어쩌면 당신은 그 무렵 구조 시도를 하던 장면들을 기억할 것이다.
전쟁은 장난이 아닌 것 같아 보이지 않는가?
이어지는 추락들
그 이후 추락 사고 또는 거의 추락에 준하는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이러한 사고 모두는 설명할 수 없는 원인에 따른 것처럼 보였다. 곡예 비행을 펼치는 미 공군 선드버드[Thunderbird] 소속의 제트기 4대가 추락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보잉 737기가 원래 비행 경로보다는 훨씬 낮은 고도를 날다가 추락했다. 겉보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몇몇 송전선들을 겨우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더 큰 재앙은 막을 수 있었다. 가장 이상한 사고 가운데 하나는 2월 9일, 일본 항공의 DC-8 비행기가 착륙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 도쿄 만에 추락한 것이었다. 맑고 화창한 날씨여서 비행하기에도 완벽한 날이었다. DC-8기는 부드럽게 하강하며, 착륙을 불과 1,000 야드 정도 남겨 놓고 있을 뿐이었다. 기술적인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조종사가 정신을 잃은 듯이 행동했다. 보고에 따르면 그는 착륙할 지점 위로 접어들자, 갑자기 4개의 엔진 중에 2개를 역-추진시켰다. 거대한 제트기는 머리 부분이 아래로 향했다. 비행기는 접근 통로를 표시해 둔 조명 기둥에 쳐 박았고, 바닷가 얕은 곳에 추락했다. ; 24명이 사망하고, 약 15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나중에 병원에서 그는 갑자기 정신을 잃었었다고 말했다. 보고에 따르면 부조종사 역시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지만,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무렵, 갑자기 UFO에 관한 소식들, 외계인 방문객들에 대한 은폐, 기타 등등의 뉴스들도 급증했다.
중성자 빔[Neutron Beams]
중성자 빔은 전자 기기에 교란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람의 정신과 신경 시스템에도 교란을 일으킨다. 러시아인들은 국방부의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 “만약 코스모스페어를 또 다시 격추시킨다면, 도망갈 곳이 없도록 만들어 주겠소.”
1982년 2월, 세계를 지배하려고 다투는 세가지 주요 권력 파벌들이 존재했다. 하나는 록펠러 카르텔[the Rockefeller cartel]이었다.--이들은 거대 석유회사, 거대 은행, 그리고 재계 거물들로 구성된 다국적 기업체 연합이었다.(‘시오니스트, 볼셰비키, 그리고 록펠러 카르텔’ 참조--역주)
또 다른 파벌은 볼셰비키-시오니스트 축[the Bolshevik-Zionist Axis]으로 이들은 뉴욕과 예루살렘간에 공유되는 본부를 갖고 있었다.(볼셰비키들와 시오니스트들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볼셰비즘 & 시오니즘’ 참조--역주)
세 번째 파벌은 새로운 러시아의 지도자들[the NEW rulers of Russia]로 이들은 그 이전에 권력을 쥐고 있던 대부분의 볼셰비키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자들이었다.
록펠러-러시아 카르텔[Rockefeller-Russian Cartel]
러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들과 록펠러 카르텔 간에는 새로운 작전상의 관계가 형성되어 구동 중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합은 그 이전의 밀접했던 관계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다. 새로운 조합은 기본적으로 ‘서로 서로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정책에 대한 동의를 기반으로 했다. 주요 목적은 이제 그들 공동의 적이 된 아메리칸 볼셰비키들로부터 양쪽(러시아인들과 록펠러 카르텔) 모두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은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을 담당하는 주요 직위에 침투해 있었다. 록펠러 카르텔이 러시아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영역은 역시 경제 부문이었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이 미국의 외교 정책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 미국은 러시아와 그 위성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굶겨 죽이는 정책을 썼다. 반면, 록펠러 카르텔이 미국 외교 정책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때, 미국은 이러한 정책을 약화시키고, 동서 교역을 통해 러시아와 협력하는 정책을 썼다.(‘헨리 키신저, 소련 간첩’ 참조--역주)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이 소련 연방에 대해 사용한 경제적 무기의 가장 뚜렷한 예는 당시 폴란드가 겪던 고통으로 대변될 수 있었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은 폴란드 자유노조[the Solidarity Labor Union]를 이용하여 마침내 폴란드 정부가 계엄령을 내리도록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계엄령은 미국의 손길 앞에 폴란드 국민들이 더 큰 고통을 겪게 만드는 변명거리로 활용될 수 있었다. 미국은 겨우 체면 치레에 불과한 소량의 식량만을 폴란드에 지원해 주었다. 닭고기 공급은 보류되었는데, 폴란드 양계 사업에 재앙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었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은, 자신들이 미국 외교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폴란드 국민들이 절박한 상황을 맞아 대대적인 폭동을 일으킬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폴란드의 붕괴는 러시아에 있어서 군사적인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출혈도 수반하는 일이었다. 러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러시아에서 쫓겨난 볼셰비키들이 남기고 간 유산이기도 한 중앙 집권화된 경제 체제 아래에서, 통치 체제를 유지하는 데 힘들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하루 아침에 바꿔질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러시아인들은 경제적인 무기 앞에서는 상당히 취약했던 것이다. 경제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인들은 서방의 통화 가치를 올리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을 밀어 부치고 있었다. 그런 움직임 가운데 하나는 미국 재무부 발행 채권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러시아인들은 서방과 보다 안정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경제적 유대 관계를 형성하기를 원했다.
시베리아 가스 파이프라인
러시아 경제 추진력의 핵심 부분은 서부 유럽으로 향하는 시베리아 가스 파이프라인이었다. 250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로 소련과 서방간에 있어 온 모든 사업들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이 사업은 1984년에 완료될 예정이었다. 볼셰비키들은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완전히 멈추게 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지만, 록펠러 석유 및 기업 카르텔은 이 프로젝트가 지속되도록 부지런히 노력했다. 오랫동안 록펠러 카르텔의 공공 관계(대민 홍보)[public relations] 기관 역할을 해 온 미 상무부[the U.S. Chamber of Commerce]는 2월 중순 이 사업을 대중에게 알렸다. 이러한 상황은 레이건 정부가 만약 파이프라인 사업 관련 장비들에 대해 수출 금지 명령을 내릴 경우, 이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미 의회의 “양원 합동 경제 위원회”는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승인했으며, 유럽에서는 미국이 포함된 다국적 석유 회사들이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그들 가운데 단 하나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모빌 석유사[Mobil Oil]였다. 다른 록펠러 소속의 거대 석유 카르텔 멤버들과 달리 서독의 모빌사는 공개적으로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 반대했는데, 이는 물론 그것 자체로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은 경제 회생이 달린 문제였으며, 전면전을 치르고서라도 얻어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크레믈린은, 말은 이렇게 하고 행동은 저렇게 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인내심도 가질 수 없었다. 러시아인들은 파이프라인 사업에 반대하는 모빌사의 입장은 일종의 이중 속임수로서 사실상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을 편드는 일로 간주했다.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모빌사에게 그들의 입장을 재고해 볼만한 강력한 원인을 만들어 주기로 결정했고, 신속히 움직였다.
2월 11일 목요일, 러시아 화물선 메하니크 타라소프[Mekhanik Tarasov]호는 캐나다 퀘벡의 항구를 출발해서 레닌그라드로 향했다. 배는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북동쪽으로 나아갔으며, 이후 세인트로렌스 만을 지나 대서양으로 향했다. 뉴펀들랜드 남쪽 해안을 스쳐 지난 다음 타라소프호는 동북동쪽(북동쪽과 동쪽 사이)[east by north-east]으로 항로를 설정했다. 그 방향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반-잠수형 석유 굴착 장비들이 설치된 지역을 바로 남쪽에 두고 지나가는 항로였다. 무엇인지 추정할 수 있겠는가?--오션 레인저[Ocean Ranger]라 불리는 굴착기(시추선)는 다름 아닌 모빌 석유사에 의해 운용되는 장비였다. 이것은 마치 타이타닉호처럼 가라앉을 수 없는 배로 간주되던 것이었다.
타라소프호는 다른 많은 러시아 상선들과 마찬가지로, 국제법상 인정되지는 않지만 군사용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타라소프호는 폭풍우 속에서 거대한 굴착 장비 옆에 접근했을 때, 저강도[low-yield] 핵탄두를 탑재한 자동 유도 어뢰를 발사했다. 2월 15일 월요일 아침, 오전 1시 직전에 어뢰는 거대한 수중 철주(鐵舟)들 가운데 하나에 도달했다. 수중에서의 핵폭발은 공기 중에서 보다 그 여파가 훨씬 한정적이었다. 허리케인급 바람과 엄청난 파도를 일으키긴 했지만, 잘 감춰질 수 있었다. 폭발과 함께 철주에는 구멍이 뚫렸으며, 오션 레인저호는 그 쪽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은 라디오로 조난 신호를 보냈으며, 30분 뒤에 그들은 구명 보트에 옮겨 탔다고 보고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제작한 오션 레인저호는 세계에서 가장 가라앉을 수 없는 시추선으로 설계된 것이었다! 상부 플랫폼의 한쪽 코너가 바다에 잠겼지만, 이내 멈췄다. 시추선은 특이한 각도로 기울어진 채, 바다에 여전히 떠 있었다. 승무원들은 구명 보트가 어쩌면 필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구명 보트로 옮겨 타기를 멈췄다. 그 때 시추선 상공에 떠 있던 코스모스페어는 시추선의 바다에 잠겨있는 코너를 조준했다. 충전 입자 빔 무기를 발사했으며,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부분적으로 가라앉아 있던 코너에 또 다른 구멍이 났다. 그 즉시, 오션 레인저호는 뒤집어져 가라앉았다. 너무나 빨리 가라앉았기에 구명 보트를 띄울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으며, 승무원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화물선 메하니크 타라소프호는 시추선이 가라앉은 다음 원래의 항로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러시아인들은 누군가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알아차렸을 때, 화물선은 이미 자리를 멀리 떠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은 잘못 계산했었다! 2월 15일 월요일, 같은 날 오후 2시경, 미 공격용 잠수함이 타라소프호에 접근하고 있었다. 잠수함은 타라소프호를 향해 한 발의 어뢰를 발사했고, 배의 가장 넓은 옆면을 맞췄다. 수면 아래 거대한 구멍으로부터 물이 차 올랐고, 화물선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뉴저지주 상공에서 격추된 코스모스페어의 조종사들처럼 타라소프호의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선박에 관한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명령을 준수했다. ; 그러한 이유로 러시아인 선장은 근처에 덴마크 화물선이 지나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청하기를 거부했으며,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선박과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제 모빌 석유사는 분명한 메시지를 받았으며, 불과 이틀 후에, 모빌사는 다른 두 개의 시추선도 폐쇄하고, 인근 해안으로 인양했다.
나는 독자들이 지금껏 있어 온 모든 해양 “석유 유출” 사고들을 면밀히 재검토해 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하톤: 나 역시 이에 분명히 동의합니다!]
[Part 8 인용의 끝]
하톤 : 그럼, 잠시 쉬도록 합시다.
pp.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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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기록 #2 하톤
1995년 1월 9일 월요일, 12:27 P.M. 8년 14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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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추락하는 화염[Fire From the Sky]
by “아는 자[One Who Knows]”
[Part 9의 인용]
러시아 우주 사령부[Russian Command of Space]와 달[The Moon]
1982년 2월 5일, 부시 부통령은 주위의 이목을 끌며,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네버럴[Cape Canaveral, Florida]을 방문했다. 그는 “스페이스 랩[Space Lab]”이라 불리는 유럽의 궤도용 과학 실험실 안에서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스페이스 랩은 1983년 말에 우주왕복선을 통해 궤도 위로 올려 보내질 예정이었다. 부시는 또한 우주왕복선의 제 3차 비행은 1982년 3월 22일로 계획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일주일 동안 우주에 머물게 될 예정이었다.
대중 홍보용으로, NASA 대변인은 우주왕복선이 여유롭게 시험 비행들을 수행 중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발표들을 하곤 했다. 우리는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평화로운 민간 연구 목적이라는 소식을 들어 왔지만, 사실 우주왕복선에 탑승하는 비행사들은 모두 군사적 목적을 부여받았다. 우주왕복선의 평화로운 이미지는 완전한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진행중인 우주왕복선 비행들은 사실상 (러시아와의) 충돌의 산물이었다. 말하자면, 미국이 우주 상에 ‘군사적 발판[military toe-hold]’을 되찾기 위한 프로그램들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사실상 1977년 말 이후로 러시아인들에 의해 군사 목적의 우주 공간의 이용에 있어서 배제되고 말았다. 앞선 4년간 그리고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러시아의 우주 지배는 무수한 유인 우주 비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여기에는 러시아 말고도 다른 9개국의 우주비행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반면, 미국은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하는 데만 5년이 넘게 걸렸다. 러시아인들은 장기간에 걸쳐 지구 주위의 궤도 비행에 있어서 놀라운 소식들을 전해 주었으며 이것만으로도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우주 공간에서의 러시아의 권위는 충분히 높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소비에트 우주 프로그램은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이상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1977년 10월 중순 이래로, 달은 러시아의 전진 기지가 되었다. 총 7개의 장-범위 입자 빔[long-range particle beam] 무기가 장착된 유인 기지가 서로서로 인접해 있었으며, 그 중 최소 한군데 기지는 먼 곳에 떨어져 있었다. 과거에는 기지에 보급품을 전달하고 근무 인원들의 로테이션을 목적으로 하는, 지구와 달 사이의 규칙적인 왕복 임무들이 있었다. 그런데, 크레믈린은 천천히, 그렇지만 조금씩 자신들이 달을 통제하고 있다는 이 엄청난 소식을 세상에 알리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들은 이미 힌트를 조금씩 주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미국에도 배포되는 ‘소비에트 라이프[Soviet Life]’라는 잡지가 그러했다. 소비에트 라이프지 1982년 2월호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 “오늘날 우주비행선들은, 처음 신세계로 여행을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더 자주 지구와 달 사이를 오가고 있다.”
기사가 나와 있는 페이지 상단에는 러시아 코스모드롬(우주선 발사 기지)[Cosmodrome]에서 발사를 앞둔 달 탐사선의, 밤에 찍은 사진이 나와 있었다. 하단에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사진이 나와 있는데, 두 사진 사이의 볼드체로 된 문구에는 달로 가는 비행에 대한 또 다른 힌트가 들어 있었다. : “지구에서 7만 킬로미터 상공에서 보았을 때, 지구는 평화롭고 심지어 무방비 상태의 행성처럼 보인다. 우리 모두의 공통된 목적은 우리의 청녹색 고향을 보호하는 것이다.”
친구들이여, “인공위성들”은 7만 킬로미터나 되는 고도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지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위성들이 도는 가장 높은 궤도는 적도[equator] 위 정지 위성들[stationary satellites]이 돌고 있는 정지 궤도[geosynchronous orbit]이다. 7만 킬로미터라는 고도는 그러한 궤도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먼 거리인 것이다. 우주선들이 지구로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르는 유일한 경우는 달 또는 다른 행성으로 향하거나 혹은 돌아올 때뿐이다.
우주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은 군사적 목적 훨씬 그 이상으로 나아가 있다. 러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들의 목적은 태양계의 식민지화였다. 이러한 계획은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 사실 그 무렵, 두 대의 러시아 우주선들이 금성에 도달했으며, 탑승한 우주비행사들은 관련 보고들을 꾸준히 보내 왔었다.
러시아인들은 화성이 아니라 금성에 먼저 정착했다. 달 이외의 실험적 식민지화의 첫 번째 목표는 금성이었던 것이다. 이제 당신은 우리 정부가 “허블 망원경”을 우주 공간에 내 보내지 못하는 이유를 더 잘 알게 되지 않았는가? 러시아인들이 무인 탐사선을 금성에 처음 착륙시킨 것은 1975년이었다!(1970년 러시아의 베네라 7호가 먼저 착륙에 성공했지만, 1975년 베네라 9호는 착륙 후 사진 등 중요 자료를 전송--역주) 이를 통해 그들은 1982년,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매달리기 전까지, 미국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몇 가지 핵심 사항들을 알게 되었다.
1978년 러시아인들은 일련의 시도들을 통해 유인 우주 비행선의 비행 시간을 계속 늘리는 작업에 들어갔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점진적으로 비행 시간은 6개월을 넘어 그 이상으로 확장되었으며, 우주비행사들이 어떻게 행성간 우주 비행을 견뎌 낼 수 있는 지에 대한 자료를 축적해 갔다. 러시아인들은 그들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들을 연구해 왔던 것이다.
1981년 10월 30일과 11월 4일(14일의 오기--역주), 두 대의 러시아 우주비행선이 금성을 향해 출발했다. 두 대의 우주선에는 모두 러시아 우주비행사들이 탑승해 있었고, 각각 1982년 2월 초(첫 번째 주)에 금성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간의 우주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면,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들어 있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주로 민간 연구 목적의 프로젝트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상 군사 목적이었다. 우리는 우주왕복선이 세계 최초의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선이라고 들었지만, 사실상 모든 우주왕복선들은 매 비행시마다 소실되었다. 우리는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이 러시아보다 우주 기술에 있어서 수 년을 앞서 가게 되었다고 들었지만, 사실 우리는 수 년 뒤쳐져 있었다. 우리는 우리 지도자들이 오직 평화적 우주 활동만을 원한다고 종종 들었지만, 그들은 거의 모든 민간 과학 연구 목적의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 지원은 차단하고 있었다. 한 두 가지 평화 목적의 프로그램들에 대한 예산 지원이 있었지만, 우주 망원경과 같이 별 소란 없이도 쉽게 취소할 수 있는 것들뿐이었다. 태양계 탐사를 위한 후속 프로젝트들은 중단되거나 폐기되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우리 지도자들의 전쟁 계획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톤: 내가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부디 “외계인들의 침공”과 같은 “준비된” 쇼에 대해서 당신들이 더 이상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쇼는 당신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연대할 필요성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선, 지금 이 시점에 우주에 나가 있는 “외계인들”은 과거에도 러시아인들이었고, 지금도 러시아인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스타 워즈[Star Wars]” 프로그램의 배경이 된 소비에트 볼셰비키들[THE SOVIET BOLSHEVIKS]이 아닌 것입니다. “외계인들의 침공”과 같은 쇼는 당신들의 ‘엘리트 단일 세계 비밀 소사이어티[Elite one Wolrd Secret Society]’에 소속된 자들이 고안해 낸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블루 빔[Blue Beam] 프로젝트를 통해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여타의 영적 스승들의 환상이 적절한 방식으로 모두에게 투영되는 계획도 고안해 왔습니다. 이러한 장치는 당신들이 다양한 “단일” 신들[THE VARIOUS “ONE” GODS]을 통해 표현되고 융합되는 ‘하나의 세계의 신[One World God]’에 대한 영적 기대감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그런 다음, 당신들은 도무지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게 된 상태에서, 이 새로운 신을 향해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외계인들”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등장하게 될 것인데, 이들은 괴물들이자, 악마적인 악의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당신들에게 장담하건대,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당신들은 분명코 공포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계획은 실상, 실제로 우주에 나가 있는 러시아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주 공간과 다양한 행성들에 있어서 패권을 쥐고 있으며, 코스모스페어들과 플랫폼들, 그리고 다른 여타의 장치들을 보유한 러시아인들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구에 기반한, 지구인들이 고안한 속임수들로 최후의 미끼이자 종국적인 유인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거대한 속임수가 되겠지만, 당신들 가운데 몇 명이나 이를 간파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우리는 러시아인들은 온통 전쟁과 정복 밖에는 관심이 없다고 들어 왔다. : 하지만, 금성 착륙을 위해 우주비행사들로 구성된 두 개의 팀을 나눠 탐사에 나섰던 것은 미국인들이 아니라 러시아인들이었다. 그들이 그 곳에 갔던 이유는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러시아인들은 금성에 착륙해서 탐사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그들은 태양계를 탐험하기 위해서 그 곳에 갔으며, 그 이유는 “그것이 저기 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우주로 나아가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라고 믿었다. 탐사에 대한 욕구는 그들의 옛 조상들인 바이킹들(‘러시아 vs. 하자르’ 참조--역주)을 자극했던 것으로, 그 똑같은 욕구는 여전히 전수되어 러시아 우주 프로그램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이 같은 정도의 열망을 갖고 기도했던 것은, 러시아를 자신들 앞에 경제적으로 무릎 꿇게 만들고, 잘 조작된 내전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하톤: 여기서 다시 한 번 멈춰서 아주 중요한 사항들을 짚어 보기로 합시다. 우주 공간에서의 전투 계획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 계획은 여전히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고르바초프와 같은 러시아 지도자들이 미국과 함께 일해 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당신들은 우리가 이미 이야기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해 보거나, 아니면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 전에 잠깐 멈춰서 이 글을 계속 읽어 봐야만 할 것입니다. 소비에트인들이 정말로 몰락하기 시작했을 때, (소비에트) 볼셰비키들은 미국으로 자리를 옮겨갔고, 당신들의 정부를 찬탈했습니다. 즉, 키신저[Kissinger], 스코우크로프트[Scowcroft], 브레진스키[Brzezinski] 등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록펠러 형제들과 그 밖의 주요 지도자들--레이건[Reagan]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에 이르기까지--은 모두 복제인간들로 대체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독자들이여. 나는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러시아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체되었는데, 예를 들면 고르바초프[Gorbachev]와 같은 자들이 그러합니다. 이들 복제인간들은 볼셰비키 적-그리스도[THE BOLSHEVIK ANTI-CHRIST]의 지휘 아래 단일 세계 정부[THE onE WORLD GOVERNMENT]를 지향하는 지도 세력으로서 신 세계 질서[THE NEW WORLD ORDER] 아래 규합되어 왔습니다.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는 지도자들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동일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주에 나가있는 러시아인들, 그리고 러시아의 우주 프로그램 사령부와 코스모스페어 등을 통제하는 러시아인들은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러시아인들[CHRIST-RESPECTING RUSSIANS]입니다. 안도했다구요? 아직은 아닙니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1995년 1월 기준--역주) 통제권을 쥐고 있는 자들은 지구상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이들은 지금 당신들에게 진실이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우주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을 때, 당신들은 이것이 러시아의 지구 사령부로부터 나오는 주장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당신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은 은하간 우주 사령부(은하간 연합)[the Intergalactic Space Command]는 이미 이 곳 우주 바깥[OUT HERE]에 나와 있는 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왜냐하면 그들의 의도는 –-우리의 적인 사탄이 아니라-- 하나의 하나님, 창조주[ONE GOD CREATOR]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지금껏 단 한 순간이라도 당신들의 나라인 미국이 전적으로 악과 악의 제국[EVIL and Evil Empire]을 위해 일한다고 믿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만,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주위를 둘러 보십시오.--그리고 당신들의 노란 리본들을 체크해 보십시오!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잘 살펴 보십시오! 지금!! 한 번 잘 검토해 보십시오. 적의 영토(북한)에서 격추된 비행기에 타고 있던 비행기 조종사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몰랐으며, 혹은 그저 군사 임무에 투입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동료 조종사는 살해되었고, 그는 구조되어 적절한 조치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스파이 활동을 했습니다.--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끝난 이제 와서 그는 영웅처럼 환호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료 조종사를 죽게 만들었는데, 그가 지금 영웅이라는 겁니까? 오, 제발 깨어나십시오. 그가 목숨을 건지고 안전하게 돌아 온 것은 잘 된 일입니다.--그렇지만, 그가 세상을 구해낸 것처럼 대우받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인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이러한 말을 믿기 힘들다거나 혹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지금은 진실이 알려져야 할 때인 것이다. 왜 당신들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인가? 또는 그 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왜 당신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알아 보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당신은 리틀 브라운 & Co. 출판사[Little Brown & Co.]에서 간행된 것으로, 조지 레오나드[George Leonard]가 쓴, ‘달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SOMEBODY ELSE IS on THE MOON]’라는 책을 읽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지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레오나드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전직 NASA 과학자와 그가 제공한 사진들로부터 단서를 얻었다.(그는 이 책의 딥 스로트[Deep Throat](비밀 누설자--역주)인 것이다.) ‘넋을 잃게 만드는 NASA의 사진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일이 될 것이다. : 달에 있는 명백한 광산 작업용의 거대한 장치들 ; 이상한 기하학적 무늬들, 표식들, 상징들 ; 불빛과 변화와 움직임의 증거들.” [하톤: 내가 러시아인들이 이러한 장소에 와 있는 유일한 자들이라고 했습니까? 분명히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곳은 진보한 우주 “외계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은 여기서 환영 받지 못합니다! 당신들의 첫 번째 우주비행사들도 “우주 바깥 여기[out there]”에 대해서 그렇게 언급했습니다. 그 이후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리처드 호그랜드[Richard Hoagland]의 테잎과 책들을 구해 보기 바란다. 호그랜드의 ‘화성 제 3권, 달-화성 커넥션[Mars, Vol.3, The Moon-Mars Connection](“...달에 관한 우리의 최근 발견들”)’과 같은 책이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톤: 또는 보다 저렴하고 훨씬 많은 주제들을 다루는 피닉스 저널들[THE PHOENIX JOURNALS]을 구해 보십시오. ; 이 책들은 한 마디로 무수한 주제들에 관한 ‘금광[GOLD MINE]’이 될 것입니다.--지금 이 저널(피닉스 저널 제 121권--역주)을 포함하여!]
1982년 2월 16일, 우주왕복선은 계획보다 5일 앞서 케이프 커네버럴[Cape Canaveral]에 있는 발사대로 옮겨졌다. 이것은 미국의 세 번째 우주왕복선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물론 첫 번째 것은 진짜 ‘콜롬비아[Columbia]’호로 그 전 해 4월에 파괴되었다. 콜롬비아호는 훈련용 우주왕복선 엔터프라이즈호로 대체되어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착륙했으며, 이후 플로리다로 옮겨졌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엔터프라이즈호의 비행은 단순히 임시변통에 불과했던 반면, 이 세 번째 우주왕복선은 광범위하게 개조된 것이었다.(‘미 우주왕복선과 러시안 코스모스페어’ 참조--역주)
케이프 커네버럴에서 발사를 기다리고 있던 이 새로운 우주왕복선은 화이트 샌즈[White Sands]에서 가져 온 세 대의 비밀 우주왕복선들 가운데 한 대였다. 열 달 전, 첫 번째 우주왕복선 재앙이 있은 이후로, 광범위한 개조작업이 있었다. 이 우주왕복선은, 최소한 멀리서 봤을 때는, 최초의 콜롬비아호와 똑같이 생겼지만, 실제로는 전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발사대에 놓여 있던 우주왕복선은 전투용으로 “빈틈없이[to the teeth]” 무장된 것이었다. 세 번째 우주왕복선의 기본 임무는 거의 1년 전에 있었던 첫 번째 우주왕복선의 임무와 동일한 것이었다. 러시아 상공을 정찰할 목적으로 장착된 관측 기기들은 레이저-발사용 로봇 전투 장비들로 중무장되어 있었다. 러시아의 우주 무기들이 미국의 모든 스파이 위성들을 모조리 다 파괴한 것이 거의 4년 전 일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미국의 전쟁 입안자들은, 만약 그들이 어떻게든지 새로운 정찰 데이터들을 얻지 못하는 한, 설령 전쟁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러시아를 향해 거의 눈을 감고 미사일들을 발사해야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주왕복선은 새로운 강화된 위성을 궤도에 두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우주왕복선 발사 이유의 전부였다.--핵 전쟁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정찰 시도.
매번 우주왕복선이 플로리다에서 발사되고 나면, 비행체는 길게 휘어지는 커브를 그리며 즉시 러시아 상공에 도달할 수 있도록 북쪽으로 향했다. 아메리칸 볼셰비키 군사 입안자들은 만약 그들이 새로운 슈퍼스파이 위성[superspy satellite]을 궤도에 올릴 수만 있다면, 위성은 바로 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정찰 위성이 러시아의 우주 무기들의 공격 속에서도 엄청난 양의 정찰 정보들을 보내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들이 정찰 정보를 손에 넣게 되면, 펜타곤(국방부)[the Pentagon]은 바로 미국의 전쟁 준비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1년 봄, 콜롬비아호는 스파이 위성의 전개 이전에 파괴되었다. 마찬가지로 11월 임시변통의 엔터프라이즈호의 임무도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군사용 우주왕복선 계획 입안자들은, 발사를 앞둔 세 번째 우주왕복선만큼은 다른 양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우주왕복선의 화물칸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로봇 정찰 전투 장비가 들어 있었다. 또한 화물칸의 앞쪽 끝 부분이자, 승무원 탑승 칸 바로 뒷 부분에는 부가적인 레이저 발사 장비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것은 수소 불화 가스 다이나믹 레이저[hydrogen fluoride gas dynamic laser]로서 수직으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위쪽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광범위한 각도로 빔을 발사할 수 있는 거울들이 달린 회전식 헤드[swiveling head]를 구비하고 있었다. 화물칸에 있는 수소 불화 레이저는 주로 우주왕복선이 궤도로 올라갈 동안 동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장착된 것이었다.
(첫 번째) 콜롬비아호는 궤도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 공격을 받았었다. 미국의 정보 분석가들은 마침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에 관한 정보들을 손에 넣었고, 이에 따라 화물칸에 레이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우주왕복선이 위로 올라갈 때, 공기는 점점 더 희박해지고, 로켓 엔진이 멎어 버리기 전에 공기는 거의 제로에 달할 정도로 줄어드는 것이다.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순간에, 경첩이 달려있지 않은 세 번째 우주왕복선의 개조된 화물칸 문은 특수 폭발 장치에 의해 날아가게 될 예정이었다. 화물칸 문이 우주왕복선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을 때, 화물칸 위쪽의 절반은 이미 완전히 열려 있게 된다. 화물칸의 레이저는 그 순간부터 바로 발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씨어[CEIR]라 불리는 장치와 동일한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다.
지난 1월, 코스모스페어를 성공적으로 격추시켰던 레이저 무기가 구비되어 있었기에, 우주왕복선 계획 입안자들은 이번 우주왕복선은 궤도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일단 궤도에 오르고 나면, 우주왕복선에 대한 다음 주요 위협은, 궤도를 돌고 있는 러시아의 코스모스 인터셉터들[Cosmos Interceptors]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 유인 킬러 위성들[Those manned killer satellites]은 과거 미국 스파이 위성들을 하늘에서 깨끗이 청소했던 것이었다. 그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이 세 번째 우주왕복선은 정말 파격적으로 개선되어 있었다.
우주왕복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항상 강조되던 것 중에 하나는 탑승한 우주비행사들은 우주복을 입지 않고도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우주왕복선에 타는 것은 거의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우주복이 따로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잭 루스마 대령[Col. Jack Lousma]과 C. 고든 풀러튼 대령[Col. C. Gordon Fullerton]이 이번 우주왕복선을 타고 올라 갈 때, 그들은 우주복을 입고 출발할 예정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우주복에 완전히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왜냐하면 승무원용 선실이 전혀 기압조절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우주왕복선의 경우, 조종실 아래 비행체의 앞부분 전체가 무기고로 전환될 예정이었다. 우주왕복선이 궤도에 도달하자 마자, 진공의 우주 공간에서 비행체의 코 부분이 열리게 된다. 마치 어떤 비행기들은 코 부분이 위로 들어 올려져, 비행기 안으로 짐을 싣고 내리기도 하듯이, 이 우주왕복선의 경우에는 코 부분이 아래로 내려져 뒤로 완전히 젖혀지는 것이다. 우주왕복선의 코가 열리자 마자, 복잡한 레이저 시스템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시스템은 튜브 모양으로 생긴, 5가지 파트로 구분되는데, 각각 위쪽, 아래쪽, 양 옆쪽, 그리고 전방을 향하는 것이다. 각각의 레이저 튜브들에는 앞에서 언급한 화물칸 레이저 무기와 마찬가지로 거울이 달린 회전식 헤드[swiveling mirror-head]가 달려 있었다. 한 번 전개되고 나면, 비행체 코 부분의 이 레이저 시스템은, 오직 우주왕복선이 지나온 좁은 통로와도 같은 맨 뒤쪽을 제외하고는, 거의 어느 방향으로든 레이저 무기를 발사할 수 있었다.
비행체 코 부분의 레이저 시스템은 5개의 공진기[resonators]를 가진 핵 펀트 헬륨 플라즈마 레이저[nuclear punt helium plasma] 장치로 불렸다. 이 핵 발전 장치[the nuclear power pack]는 5개의 레이저 튜브를 통해 어느 때든 레이저를 발사할 수 있었다. 화물칸 레이저 무기처럼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비행체 코 부분 레이저 시스템은, 화물칸 레이저 무기와는 달리, 훨씬 오랫동안 구동될 수 있었고 또 틈틈이 사용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우주왕복선 계획 입안자들은 이번 우주왕복선이 러시아의 유인 킬러 위성들을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역량을 가진 것으로 판단했다.
비행체 코 부분 레이저 시스템의 비호 아래, 루스마와 풀러튼은 로봇 스파이 위성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다. 스파이 위성이 펼쳐지자 마자, 이들은 작은 제미니 형태의 캡슐을 타고 지구로 귀환하게 될 예정이었다. 이와 관련된 계획은 앞서 첫 번째 우주왕복선 계획에서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미 우주왕복선과 러시안 코스모스페어’ 참조--역주) 그 동안 우주왕복선은 궤도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비행체 코 부분 레이저 시스템은 일정 범위 이내로 접근해 오는 모든 러시아 우주 인터셉터들을 즉각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었다. 이러한 공격은 우주왕복선이 파괴되거나 혹은 핵 레이저가 소진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었고, 레이저 무기는 아주 오랫동안 구동될 수 있는 상태였다. 이건 우주 공간 상에서 아주 위험한 말썽을 일으킬 수 있었기에, 러시아인들로서는 이 우주왕복선을 파괴시키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은 러시아인들이 우주왕복선을 파괴시키기 전까지, 여러 대의 러시아 비행체들을 잃게 되고, 또 이에 수반하는 인명 손실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 1차 핵 전쟁[Nuclear War No. one]
만약 군사용 우주왕복선 계획 입안자들이 추진하는 것들이 그들의 계획대로 된다면, 이 세 번째 우주왕복선 임무는 우주 공간 상에서 벌어지는 대 격전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더라도, 그들은 다시 새로운 계획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사실 이미 네 번째 우주왕복선 임무는 7월 4일 착수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 그 이후로는, 우주왕복선과 관련하여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들은 원래의 예정대로 제 1차 핵 전쟁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1981년 추수감사절 무렵부터 1982년 추수감사절 무렵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세 가지 주요 위기가 발생했다. 첫째는 리비아 “청부 살인자들”이 미국 정부의 최고 지도층을 대상으로 암살을 계획했던 일과 관련된 것이었다.(미 정보기관들은 1981년 12월 리비아 카다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레이건 대통령을 비롯한 미 정부 고위직 인물들을 암살하기 위해 리비아 청부 살인자들이 미국에 잠입했다고 주장했으나, 리비아 정부는 이를 부인--역주) 둘째는 폴란드에서 발생한 일로, 병력을 동원한 진압 사태였다.(폴란드 정부는 1981년 12월 13일부터 1983년 7월 22일까지 계엄령을 선포--역주) 셋째는 세계의 이목이 모두 폴란드에 쏠리자 마자 발생한 일로,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시리아 골란 고원[Syrian Golan Heights] 병합 사건이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세 가지 위기는 서로 전혀 무관한 일들로 보였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모두 밀접히 연계되어 있었고, 분명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각각의 사건들은 모두 미국과 이스라엘 간의 공동 군사 정부[joint military junta](시오니스트-볼셰비키 연합--역주)의 복잡한 비밀 전쟁 계획의 결과였다! [하톤: 오늘날, 세계의 이들 지역에서 진행중인 일들에 관한 한, 평화적인 시위는 벌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앞서 언급했듯이, 보스니아와 다른 구 소련 연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그 밖에도 “러시아”와 관련된 “사안들”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최근에 각지에서 발생한 지진들은 인공 지진들이었습니다. 일본은 열도의 오른쪽 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진실-전달자에게 죽음을[Death th the Truth-Bringer]
전쟁 도발자들![War-mongers!]
메신저를 죽일 것[Kill the Messenger]
1981년 이른 봄 이래로, 이 전쟁 계획은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졌다. 그러나 거대한 은폐가 우리를 휩쓸었으며,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사장되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또한, 진실 전달자들은 투옥되거나, 조롱거리로 전락되었으며, 혹은 단순히 암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시민들은 아무도 이를 알아 채지 못했다.--더 나빴던 것이 있다면, 우리는 이 “전쟁 도발자들[WAR-MONGERS]”을 제거하는 데 최소한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찰들은 시간이 무르익을 때까지, 서서히 고조되도록 의도적으로 맞춰져 있었다. 그러면, 미국은 러시아를 향해 선제 핵 공격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었다. 핵 전쟁은 마치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발발할 예정이었다. 핵 전력을 보유한 미국 군 부대들은 자신들이 먼저 핵무기를 발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러시아의 공격에 대한 전면적인 보복의 일환으로서 핵 무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짓 정보를 받아 들이게 될 예정이었다!
전면적인 핵 전쟁의 전조 가운데는 중동에서 발생하는 전쟁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과 이스라엘 군부 전쟁 입안자들의 공동 전쟁 계획에 따르면,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다가올 더 큰 전쟁에 있어서, 태풍의 눈이 되게 된다.
위기들은 확대되고 바깥으로 커져서 통제 불능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어야 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최우선 순위는 소위 말하는, 캠프 데이비드 평화 협정[the Camp David peace Accords]을 파괴할 수 있는 한,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진짜 위기 국면이 도래하기 몇 주 전, 이집트 사다트[Sadat] 대통령이 암살된 이유이기도 했다.(1981년 10월 6일)
12월초, 우리는 3명에서 6명으로 된 “청부 암살자들”의 그룹이 미국에 입국해 있다고 듣고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과 그 밖의 정부 최고위직 인사들을 살해하려 한다고 주장되었다. 앞서 미국은 2대의 리비아 제트기를 격추시키고, 카다피[Khadafy]의 자녀 한 명을 살해했는데, 그 목적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카다피가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만드는데 있었다. 이러한 계획들은 핵 전쟁 발발이 보다 용이해 질 수 있는 국제적 상황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하톤: 완전한 대실패로 끝난 이러한 시도들을 전후로--카터의 동생(빌리 카터[Billy Carter]--역주)은 카다피와 접촉하며 아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빌리 카터는 1978년말부터 1979년초까지 리비아를 세 차례 방문하고, 리비아 정부로부터 22만불의 뇌물을 수수--역주) 카터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빌리가 너무 많은 빌리 비어[BILLY BEER](1977년 생긴 맥주 브랜드로 빌리 카터가 후원--역주)를 마시고, “어리석은 행동들”을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지금 그는 이미 사망했습니다!]
러시아에서 넘어와 미국 군사 정책의 통제력을 장악하게 되었던 볼셰비키들은 폴란드에서 혁명을 야기하려는 노력을 전개해 왔다. 그들은 우선 로마 카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를 전복시킴을 통해서 그러한 여건을 조성하려 했는데, 이미 바티칸에서는 소요가 일고 있었다. 강력한 반-러시아 정책을 취해온 카톨릭 교회를 상대로 약 3년 전에 이미 전복 시도가 있었다. 1978년 9월 28일, 새롭게 교황으로 선출된 지 33일 밖에 지나지 않은 요한 바오로 1세는 독살[murdered by poisoning]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가 수면 중에 사망했다고만 알고 있다.
둠스데이 클럽 뉴스 & 인텔리전스 리포트[Doomsday Club News & Intelligence Report]지 1979년 2월호에서 나는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살해되었다는 증거가 있었으며,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새로운 교황은 KGB 요원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말라치 마르틴[Malachi Martin]은 ‘이 피흘림의 열쇠[THE KEYS OF THIS BLOOD]’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교황에 관한 책을 써서 유명해졌는데, 당신들이 몰랐던 것이 있다면, 마르틴은 가명을 사용했던 유태인이었으며, 또한 새로운 교황은 그가 추정했던 것과는 달랐다는 사실이다! 데이비드 얄롭[David Yallop]은 1984년 출간된 ‘하나님의 이름으로[IN GOD’S NAME]’라는 책에서 이전 교황의 살해에 관한 증거를 제시해 보였으며, 로렌스 페터슨[Lawrence Patterson]은 자신의 뉴스레터에서 말라치 마르틴[Malachi Martin]이 가명을 사용했던 유태인 사기꾼이었음을 밝혀냈다.
내가 쓴 뉴스레터를 아직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 언급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1979년 2월호 6페이지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현재의 교황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또한 강조하고자 한다.--현 교황은 아마도 5년에서 7년 미만의 기간 동안만 살아 남을 것이다.” (원래의 강조체대로 기록). 당신들은 아마도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1990년 아메리카 웨스트 출판사가 출판하고 저작권을 보유한 ‘피와 재[BLOOD AND ASHES]’라는 제목의 피닉스 저널(‘피닉스 저널 제 18권’--역주)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인용했으면 한다. [하톤: 여기서 잠깐 멈추었으면 합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에게 다시 이야기하는데 피닉스 저널들 가운데 그 어떤 책에도 저작권이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여기 보다시피 책을 출판하고 배포한 아메리카 웨스트[AMERICA WEST]사는 우리들이 쓴 글에 대해, 자신들이 저작권을 설정해 두었으며, 그 증거가 여기 남아 있습니다.--그렇지만, 우리가 작성한 그 어떠한 피닉스 저널에도 저작권은 설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파푸 오딧세이[SIPAPU ODYSSEY]’라고 불리는 “도루슈카 마에드[Dorushka Maerd]”가 쓴 소설 한 권(‘피닉스 저널 제 1권’--역주)에만 저작권이 있을 따름입니다.(‘피닉스 저널 저작권 관련’ 참조--역주)] 이 책 133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바티칸에 침투해 있으면서 선거를 배후 조종했던 볼셰비키들은 오직 그의 잠재적인 반-러시아적인 이미지만을 원했으며, 그 사람 자체를 교황으로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1978년 11월 21일 그(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역주) 역시 독살되었으며, ‘복제인간’으로 대체되었다. 이 새로운 ‘교황 대리인[ACTOR POPE]’은 그 때부터, 소문으로만 돌던 러시아의 폴란드 억압에 대해 엄중한 태도를 보이는 언급들을 지속해 왔던 것이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은 폴란드에서의 ‘교황의 혁명[Pope’s Revolution]’이라 알려진 일들을 도모하기 위해, 바티칸 내 자신들이 보유한 권력을 활용하기 위한 완전한 계획을 세워 두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보기관은 볼셰비키들의 ‘교황 대리인’을 자기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복제인간’으로 대체해 넣을 수 있었다.”
얄롭[Yallop]은 자신의 책 301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카롤 보이티와[Karol Wojtyla](요한 바오로 2세--역주)의 선출 이후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수백 만 건에 달하는 글들이 쓰여졌다. 그렇지만, 그는 보다시피, 빌로[Villot], 코디[Cody], 마르친쿠스[Marcinkus], 메니니[Mennini], 드 스트로벨[de Strobel], 드 보니[de Bonis], 그리고 폴레티[Poletti]와 같은 자들이 자리에 남아 있도록 허락한 자였다. 이는 ‘몰랐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히 마르친쿠스는 교황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었는데, 마르친쿠스와 관련된 각종 비행에 대해 교황이 몰랐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이여, 마르친쿠스는 일리노이주 시서로[Cicero, Illinois]에 거점을 둔 유태계 마피아의 일원으로, 그는 궁극적으로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바티칸의 자산[the Vatican’s Billions]’(같은 제목으로 된 책을 볼 것)에 대한 통제권을 거머쥐게 되었던 인물로, 그가 바로 직전 교황을 살해했던 것이다. 그저 당신들은 종교와 성직자들을 사랑할 뿐인가?
[Part 9 인용의 끝]
하톤 : 그럼 잠시 쉬어 가도록 합시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나는 당신들이 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처음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 이러한 내용들을 훨씬 더 부인하기가 어려워지지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들에게 나의 임무는 진실을 제시해 보이는 것이라 약속한 바 있습니다.--이제 진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직접 확인해 보고 조사해 보기만 한다면, 스스로의 힘으로도 여기 나와 있는 내용들을 충분히 입증해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Salu.
pp.50-57.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21권 (미간행 저널), 제 5, 7장, pp.37-44, 50-57.
원문출처: http://www.fourwinds10.net/unpublished_phoenix_jour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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