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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편지 !

+ 천국편지 / 너의 정원은 지금 새로운 과실을 키운다 & 음악! 음악! 음악!

 

 

 

천국편지 / 너의 정원은 지금 새로운 과실을 키운다


너의 정원은 지금 새로운 과실을 키운다

Your Garden Grows New Fruit Now


Heavenletter #6322  - God

Published on: May 18, 2018

http://heavenletters.org/your-garden-grows-new-fruit-now.html



신이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너는 무엇으로 너의 시간과 에너지를 헌신하느냐? 가끔, 어쩌면 너무나 자주, 말하기에 미안하지만, 고역과 문제로 헌신한다. 네가 진실로 너의 마음과 가슴을 헌신하고 싶은 방향에서 가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여, 그리고 나는 의미하는데, 사랑하는 이여, 너의 관심을 네가 애초에 원하지 않는 곳으로 돌리는 것이 의미를 만드느냐? 나는 네가 살게 된 너의 삶과 세계에서 무엇이 닥칠 수 있는지에 대해 무섭다는 생각을 나르지 말라고 요청한다. 이것 안에 너를 위한 어떤 가능한 이점이 있을 수 있느냐?


그래, 조만간, 소위 죽음이란 것이 너를 기다리고, 너의 사랑하는 이들을 기다린다. 너의 흠뻑 젖은 가슴으로, 이것은 측정을 넘어가는 슬픔에 가득 찬 뉴스이다. 그것이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 나는 이것이 네가 그것을 보는 방식임을 이해하는데, 그러나 나는 너에게 묻고 있는데, 네가 시간에 앞서 슬퍼하는데 어떤 가능한 덕성이 있을 수 있느냐고? 단순히 너는 어떻게 단념하는지를 모른다. 너는 그 생각으로 포로가 된 듯이 보인다.


비가 아직 내리지 않았을 때, 어떤 목적으로 너는 실제 경우가 있기 전에 큰 검은 우산을 가져가려느냐?


사랑하는 이여, 천국에서 너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의자를 끌어올린다는 생각이 하나의 어두운 사건으로 너에게 그 입장을 제시해야만 하느냐? 지구를 떠나는 것은 종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 사랑하는 이여, 너의 연필 상자로부터 선택할 한 가지 색깔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사실 총 망라한 색깔들이 있다. 마음대로 골라라.


모든 것이 잘 있다고 내가 너에게 말하게 허락해라. 진실로, 네가 감히 꿈꾸는 것보다 더 큰 영광스러운 가능성들이 있다. 그 물이 좋다. 모든 것이 잘 있다. 너의 두려움들을 버려라. 너는 행복하게 되고, 매우 행복해질 것이다. 너를 위한 금빛 기다림이 있는데, 그래 너와 너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말이다.


심지어 세상에는, 네가 한 아파트를 나올 때, 곧 너는 너의 새로운 주택에서 너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것은 익숙해지는데 약간의 시간을 요할 수 있다. 아니면 시간이 전혀 들지 않을 수 있다. 너는 지금 너의 새로운 집에서 살고 있다. 너는 확실히 너의 낡은 장소를 데려갈 수 없다. 더 이상 너는 낡은 곳의 수리나 재-장식을 걱정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색칠할 새로운 장소와 화초를 심을 새로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너의 새로운 정원을 생각하는 것이 너에게 행복을 쏟아준다.


천국의 관점에서는, 슬픔을 위한 원인이 없다. 너는 이제 행운의 새로운 땅에 살고 있고, 너의 정원이 지금 새로운 과실을 키운다. 태양이 너를 비추기 위해 여전히 너를 잡는다.


네가 지금 거주하게 된 세상의 어디서든, 네가 가진 모든 생각과 네가 듣는 모든 소리가 너에게 영향을 준다. 모든 새들이 너의 가슴을 울린다. 모든 말이 너에게 영향을 주는 그 파동을 가지고 있다. 너의 노래 사전에, ‘오늘밤tonight’이란 단어와 ‘철자spell’라는 단어가 ‘그러나but’란 말보다 더 길다. ‘그러나’는 그 자신을 짧게 끊는다. 각각의 단어가 그 소리와 음절과 그 영향력을 갖는다.


네가 사는 곳에 너에게 무의미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태양과 눈snow은 그들 자신의 파동들을 가진다. 대도시나 작은 타운이든, 건조하거나 습기가 차든, 모든 단어들이 그들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환영적인 ‘언제when’와 ‘어디서where,’ 그리고 ‘어떻게how’가 오는 것처럼 말이다.


삶의 하나의 견해는 어떤 것도 그것이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오, 그래, 모든 것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단지 그것이 보이는 대로라는 것이며, 그러나 습관적으로 너는 거듭 다시 물을 수 있다. 너의 가슴의 모든 충만함으로, 너는 확실히 알기 위한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 사랑하는 이여, 이 모든 사전 지식을 버리고, 다가올 수 있는 것을 미연에 막을 수 있는 그 생각을 치워라.


네가 정말로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날고 있는 한 마리 새처럼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사는 것이다. 새는 겨울이 되기 전에 남쪽으로 날아야 하는 날짜에 대해, 혹은 전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시간에 앞서 물어야 할 필요가 없다.



음악! 음악! 음악!


음악! 음악! 음악!

Music! Music! Music!


Heavenletter #6323  - God

Published on: May 19, 2018

http://heavenletters.org/music-music-music.html



신이 말했다.


너와 나는 하나임으로서, 가까움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가깝다. 하나는 하나이다. 그러나 이 현실이 너에게는 계속 멀리 떨어진 듯 보일 수 있다. 아아, 너는 네가 나의 가슴의 박동으로 느끼는 것보다 외로움의 존재를 아마도 더 가까이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의 하나됨은 내가 너를 소유하거나 네가 나를 소유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하나의 기타라면, 그것은 하나됨 속에서 너와 내가 하나이고, 같은 기타임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두 개의 기타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하나의 기타가 있고, 그것이 모든 이들이 듣도록 그 자신을 연주한다. 우리는 이 비유로 실질적 내용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으며, 너는 이해한다. 음악은 자기-명시적이다.


아, 구체들의 음악Music of Spheres이 있다.


그것에 대해 두 개의 길은 없다. 우리는 연주되고 있는 음악을 말하며, 우리는 들리고 있는 음악을 말한다. 누가 듣는 자이고, 누가 연주자인가?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음악의 지상자Music Supreme가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그게 그것이다. 우리는 연주자와 마찬가지로 관찰자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관찰자가 없다. 나는 내가(또는 우리가) 음악이 그 자신을 연주한다고 단순히 말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하나의 노래가 불러지고 있다. 그 노래는 그 자신을 부른다. 인류가 그것으로 조율된다.


하나의 주인이 있고, 하나의 손님이 있다고 말해질 수 있지만, 누가 구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왜인가?


음악은 존재한다. 음악은 들린다. 사랑은 있다. 피아노가 있고, 그 건반들이 올라가고 내려간다. 음악이 그 자신을 창조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듣는 그 음악이다.


어쩌면 우리들 혹은 하나의 하나인 내가 듣는 음악이라고 말해질 수 있다. 나는 음악 그 자체로서 묘사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음악이지, 어떤 묘사가 아니다. 우주가 하나이자 모든 이들을 위해 연주하는 그 음악을 듣는 외에 찾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음악은 비밀이 아니다. 리듬이 존재한다. 드럼들을 쾅 쳐라.


누가 음악을 발견했는가? 항상 존재했던 무언가가 발견된 것으로 확인될 수 있는가? 언제 음악이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는가? 창조 이래로, 바람이 그 자취로 휘파람을 불지 않는가? 길이나 연못으로 그 가락을 두드리는 비에 대해선 어떤가? 위아래로 달리는 작은 발들에 대해, 들이마시는 숨들에 대해, 아기의 까르륵거리는 소리들에 대해선 어떤가? 손바닥으로 치는 타악기에 대해선 어떤가?


그래, 세상이 음악을 만든다. 음악은 멀리, 가까이서 들리게 된다. 잃어버린 박자나 음악의 형상이 없다.


오, 마이, 그래, 심포니 안에 심장박동들의 합창이 있다.


대양들의 파도들이 그들의 노래들을 연주한다. 각 영혼이 같은 곡조를 듣는가? 이것이 어떻게 알려질 수 있고,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 대양들이 노래한다. 네가 해변에 있지 않을 때에도, 대양들의 음악이 너의 귀속에서 연주될 수 있다. 그래 음악이 너 안에 담겨 있다. 음악은 너의 가슴의 연설이다.


너 또한 너의 여가 동안 새가 노래하는 것을 듣도록 허락되었다.


그것이 너의 혈류를 통해 달린다고 듣고 느끼도록, 마치 너 안의 어딘 가로부터인 듯 너의 귀를 이용한다고 느끼도록 준비된 음악이 결코 없었을 때 악단의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너는 네가 듣는 그 음악이다. 매미들이 나타나고, 그들이 너에게 노래한다. 너의 대답은 듣는 것이고, 매미들이 너를 위해 그들의 음악을 의도함을 아는 것이다. 매미들은 너를 위해 노래하거나, 그들은 너를 위해 그들의 발을 비빈다. 음악을! 음악을! 음악을!


음악은 항상 있었다. 막대기들이 비벼졌다. 잎들이 잎들의 합창으로 만장일치로 떨어졌다. 너의 가슴이 음악을 위해 외치며, 음악이 돌고래들이 대양에서 수영하듯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누가 음악을 만드는가? 누가 듣는 귀들을 만드는가?


너는 또한 세상으로의 음악의 등장과 해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흠, 하나의 전주곡으로서 정적이 없다면, 달리 어떻게 음악이 존재하겠는가?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11318 신의 편지/1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