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 날린 ‘다단계 압력’ 윗선엔 ‘MB 형님’
한겨레신문 | 기사전송 2012/05/18
[한겨레] ‘포스텍 500억 날린 투자’ 전말
이상득 부탁받은 정준양, 이구택에 압력…“안돼도 되게 하라”
‘부산저축 증자’ 권고하던 이구택. 재차 압박 받고선 밀어붙이기. 실무자 ‘부적격’ 의견서도 무시
이사회에 사후보고조차 안해 학교법인 포스텍의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투자는 상식과 법규에 크게 어긋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왜 투자를 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윗선’이 있다는 말만 돌았다. 포스텍 이사회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밀어붙인 데에는 이사회를 덮어 누를 만한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론이었다. 결국 증언이 나왔다. “그 힘은 바로 정준양 회장이었고, 정 회장을 움직인 더 큰 힘은 이상득 의원”이라는 것이다.
시작은 2010년 4월이었다. 4월 이구택 포스텍 이사장은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가 있어 검토를 바란다”며 부산저축은행 투자 의향을 밝혔다. 곧바로 투자 검토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4월15일에 ‘기금운용자문위원회’가 신설됐으며 이곳에서 부산저축은행 논의는 구체적으로 이뤄졌다. 펀드를 기획한 건 당시 기금운용자문위원 가운데 한 사람인 장인환 케이티비(KTB)자산운용 대표다. 하지만 장 대표는 그저 전문가에 불과했다. 이구택 이사장의 투자 의향도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었다. 당시 투자 과정을 지켜본 한 포스코 관계자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포스텍의 이사이기도 했는데, 정 회장이 이상득 의원의 청을 받아 이구택 포스텍 이사장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구속된 브로커 박태규씨다. 포스코 관계자는 “박씨가 여러 경로로 포스코 쪽에 물밑 접촉을 하고 있었다”며 “때로는 이상득 의원의 지시로, 때로는 독자적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윗선’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정작 포스텍 등 포스코 관계기관에 있는 투자 실무자들은 한달여의 분석 뒤 투자 부적격 의견을 내놓았다. <한겨레>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5월 말 포스텍은 이미 투자 적정성 검토 의견서를 통해 “최근 저축은행에서 전반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부동산 경기침체 지속에 따른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중심의 여신운용으로 인한 부실위험 상존을 경고하고 있어, 상품의 안정성 내지는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다”, “발행회사 신용등급 또한 무보증후순위채는 BB, 기업어음은 A3로 투기등급에 해당하는 등 재무적 안정성이 매우 취약함”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포스텍에서는 BB등급에 투자를 한 전례가 없어 실무자들은 투자가 무산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6월이 되자 재차 투자 지시가 내려왔다. 투자 권고는 지시로 성격이 변했다는 게 포스코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우려를 거듭 전하는 실무진에게 정준양 회장은 이구택 이사장을 통해 “안 돼도 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증자 참여는 투기나 마찬가지였지만 윗선의 지시는 완강했다”고 말했다. 한 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이상득 의원과 박태규씨가 정 회장을 통해 이 이사장에게 ‘늦어도 6월에는 투자를 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거액의 투자가 쉽게 이뤄질 수는 없었다. 실무자들은 투자 여부에 대한 결정이 7월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사회 결정도 필요한 사안이었다. 학교 재산의 취득과 관리에 관해서는 사립학교법 제16조 및 포스텍 법인정관 제26조에 의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했다. 투자 2개월 전에 설치된 기금운용자문위원회의 자문만으로 이사회 의결 없이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위법사항이었다.
하지만 무조건 6월29일을 넘기면 안 된다는 지시가 거듭 내려왔다. 한 포스텍 관계자는 “결국 급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500억원이 먼저 지급되고 사후에야 이를 결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겼다”며 “보수적인 기업 풍토로 유명한 포스코에서 수백억원이 사후에야 결재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6월29일이 감사원 감사가 끝나는 날이고, 회계연도가 7월1일부터 시작되니 그렇게 무리를 한 것”이라며 “오로지 부산저축은행을 위해 포스코가 이용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사회에 사후보고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0년 9월, 10월, 12월 세차례에 걸쳐 이사회가 열렸으나, 거액의 투자에 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투자 사실이 이사회에 보고된 시점은 2011년 1월 중순을 넘겨서였다. 이때는 이미 저축은행 사태가 예고되고 있었다. 당시 열린 이사회에서도 ‘P저축은행 투자’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보고됐다고 한다. 결국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자 1주일 뒤인 2011년 2월23일 서울의 ㄹ호텔에서 이구택 이사장은 정식 이사회가 아닌 조찬모임을 열어 직접 양해를 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시 “고의는 없었으며 투자는 케이티비(KTB)펀드가 했고, 삼성도 500억원을 투자했다”, “기금 손실을 최소화하겠다”, “시간이 필요하다” 등의 해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 이사장은 “잠이 오지 않는다. 이해를 구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이사장은 또 이사회를 전후해 임원들을 별도로 만나 “이상득 의원의 부탁이 있어 거절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500억원은 2011년 4월 전부 손실처리됐다.
이구택 이사장 “기금운용자문위 자체적 결정일뿐…압력 없었다” 이구택 포스텍 이사장은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이상득 의원과 정준양 회장의 요청으로 투자를 결정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고, 정 회장으로부터 포스텍 투자와 관련해 “어떤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포스텍 이사장에 취임했을 때 대학 기금의 수익률이 3%에 불과했다. 대학에 자금이 많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제대로 된 투자를 하려고 기금운용자문위원회를 만들었으며,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투자도 여기서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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