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속 얘기들 !

+ 재앙 / 수퍼박테리아 전염 공포… 14개국에 번졌다

(NDM-1)

수퍼박테리아 전염 공포… 14개국에 번졌다

조선일보 기사입력 2010-09-16

초강력 항생제도 안 들어… 한국도 법정전염병 지정, 동물항생제 과용도 심각

수퍼박테리아 'NDM-1(뉴델리 메탈로-베타-락타마아제)' 감염환자는 14일 현재 최초 발생지인 인도·파키스탄을 비롯해 영국·미국·캐나다·벨기에·홍콩·일본 등 최소 14개국에서 발견됐다. 영국 카디프대의 리처드 월시 교수가 의학전문지 랜싯(Lancet)에 그 정체를 처음 밝힌 게 불과 한달 전이다. 월시는 "인간이 개발한 가장 강력한 항생제인 '카르바페넴계(系) 항생제'가 듣지 않는 초강력 박테리아"라고 말했다.

인도·파키스탄의 NDM-1 환자는 170명, 영국 환자는 70명을 넘어섰다. 일본에서는 또 다른 수퍼박테리아인 아시네토박터나 바우마니균에 감염돼 이미 9명이 사망했고, 지난 7일 NDM-1 환자가 발생했다. 상황은 긴박하다. AP통신은 14일 "캘리포니아·매사추세츠·일리노이 등 미국 3개 주에서 감염환자가 추가로 발견돼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수퍼박테리아 전염이라는 악몽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도 법정전염병으로 긴급 지정

한국에선 아직 감염환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적 확산 속도가 워낙 빠르자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14일 "NDM-1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이 박테리아 유전자를 함유한 CRE(카르바페넴 내성 장내균)를 법정전염병으로 긴급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인간을 박테리아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오던 항생제를 무력하게 하는, 이른바 수퍼박테리아(의학명 다제내성균·多劑耐性菌)에 대한 경고는 계속돼왔다. 결과가 워낙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미 국립보건원의 수퍼박테리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캔자스대 생물학과 린 핸콕 교수는 미국과학진흥회(AAAS)에 발표한 자료에서 "인류의 항생제 남용으로, 웬만한 항생제에는 듣지 않는 강력한 박테리아가 나날이 늘고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때마다 박테리아에 감염될까 봐 걱정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항생제를 남용한다면 인류는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인도·파키스탄에서 NDM-1에 감염된 환자들은 상당수가 값싼 '성형수술 여행'을 갔던 사람들이다. NDM-1은 대장균과 폐렴간균(肺炎桿菌) 등 다른 균 안에 침입해 항생제 약효를 무력화시킨다. 전염성도 매우 강하다. BBC는 "대장균이나 폐렴간균이 치료되지 않고 몸 안에 퍼지면 요로감염, 패혈증 등 치명적인 질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 항생제가 동물세계로 확산

더 큰 문제는 인간이 사용한 항생제가 동물 세계로 확산되는 것. 미 일리노이대 마크 미첼 교수는 지난 6월 '동물원 및 야생동물 의학저널'을 통해 "플로리다·루이지애나·매사추세츠 주 연해에서 상어와 연어 7종을 조사한 결과, 모든 종에서 대다수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강력한 박테리아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또 동물 사료에 넣어 먹이는 항생제 때문에 동물에서 수퍼박테리아가 생성되고, 이어 이 박테리아가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뉴욕타임스는 15일 "식품의약국(FDA)이 한달 안에 지금까지 나왔던 항생제 관련 지침 중 가장 강력한 지침을 내놓을 예정"이라며 "무분별한 항생제 투여를 금지하고, 동물에게 항생제를 먹일 때 수의사의 지도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보건국의 데이비드 리버모어 박사는 가디언에 "항생제가 듣지 않는 박테리아의 등장은 다윈의 진화론을 증명하는 가장 뚜렷한 증거"라며 "인간과 박테리아의 싸움에서 인간이 승리하리라고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퍼균 어떻게 생겨나나…

항생제로 한 종류의 박테리아가 죽으면 더 강한 박테리아가 번식, 그 자리 채운다

수퍼박테리아의 창궐 원인으론 과다한 항생제 사용이 꼽힌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박테리아가 살고 있으며, 특정 항생제는 이들 중 특정한 종류의 박테리아만 죽인다. 한 종류의 박테리아가 사라진 자리는 다른 종의 박테리아가 번식해 채운다. 항생제를 쓰면 쓸수록,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힘센 박테리아가 약한 박테리아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미 컬럼비아대 게놈센터의 조셉 터윌리거(Terwilleger) 박사는 "많은 사람이 자신만 항생제를 먹지 않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퍼박테리아는 개인이 아니라 한 사회가 얼마나 많은 종류의 항생제를 사용하는가와 연관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항생제가 큰돈이 되지 않는 까닭에 개발이 더디다는 점도 '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인간이 밀리고 있는 원인이다. 항생제는 평생 복용해야 하는 고혈압·당뇨 치료제 등과 달리 한시적으로 복용하는 약이라서 개발을 하더라도 수익이 많이 남지 않는다. 1962~2000년 사이 새로 개발된 항생제는 한 종류도 없으며, 2000년 이후 개발된 항생제는 3종에 불과하다.

NDM-1 출현 이전 가장 강력한 수퍼박테리아로 꼽힌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 포도상구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지금도 미국에서만 한해 1만9000여명에 달한다. 에이즈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은 수이며, 감염된 사람의 20% 정도가 목숨을 잃는다.

조선일보 [김신영 기자 sk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