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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死後) 의 삶 * 사자 (死者) 와 이승과의 관계

 

 

 

 

사후 (死後) 의 삶 * 사자 (死者) 와 이승과의 관계

 

 

 

 

 

신지학 대의 53 - 신지학도의 사후(死後) * 사자(死者)와 이승과의 관계

 

제 6 장 사후의 삶

 

신지학도의 사후

 

신지학회의 멤버가 사후에 육체와 영원히 이별하고 아스트랄계에 가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시장조사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현재 위치는 어디이며 앞에 놓인 삶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해야 그것을 가장 잘 이용할 것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그는 자기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실 우리 학회의 멤버들은 사후에 대부분 이렇게 항상 하고 있다.

 

사후에 아스트랄계에 들어간 멤버는 우선 자신이 거기에 처음 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개 그는 이미 생전 육체의 수면 중 아스트랄계에서 많은 일을 해 왔다. 따라서 그 세계는 이미 그에게 익숙한 곳이다. 대개의 경우 멤버들은 사후에 본능적으로 바로 베산트 회장에게 간다. 아마도 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진정 올바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보다 나은 자질을 갖춘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역주)

 

아스트랄계의 삶은 너무도 다양해서 어떤 일반적 룰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확실한 것은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잘못될 리는 없다는 점이다. 아스트랄계에서는 수많은 배움의 기회와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므로 그곳에 갓 들어온 사람은 그런 기회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최선의 시간 안배가 가능할 지 숙고해야만 할 것이다.

 

아스트랄계는 신지학도들의 편의에 따라 변경되는 곳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과 마주쳐야만 한다. 물질계에서 우리는 길을 걷다가 언제든 술 취한 사람과 마주칠 수 있다. 신지학도라고 해서 그런 일을 피할 수는 없다.

 

이점에서 아스트랄계는 물질계와 다르지 않다. 아스트랄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법칙들에 대해 배운 바 있는 우리 멤버들은 우연히 마주치게 될 그런 불쾌한 존재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일반인 보다 훨씬 더 잘 알 것이다.

 

사실상 일반인과 영능자 사이의 사후 상태에는 별 차이가 없다. 아스트랄계에 좀 더 익숙한 영능자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좀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영능을 가졌다는 것은 물질계상의 의식을 보다 높은 존재계로 투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능자와 일반인 사이의 차이는 바로 물질 매체(육체)의 상태에 있다. 그러나 육체와 분리된 이상 그러한 차이는 더 이상 존재치 않게 되는 것이다.

 

사자(死者)와 이승과의 관계

 

사자는 그가 두고 온 가족의 감정을 알 수 있다. 아스트랄체의 기능을 안다면 당신은 사자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자가 이승의 모든 사건들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해 그의 친구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등을 꼭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기쁜 상태인지 슬픈 상태인지 알고 있으며 그 밖의 사랑, 증오, 질투, 시기와 같은 감정들을 즉시 알아챈다.

 

아스트랄체에는 육체의 눈, 코, 입에 대한 정확한 대응부가 있다. 그러나 아스트랄 인간이 그의 눈, 코, 입을 통해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스트랄체의 모든 질료는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빠르게 항상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육체에 특정한 말초신경들이 분화되어 있듯이 그렇게 아스트랄 입자들이 분화되기란 전혀 불가능하다. 아스트랄체의 감각은 어떤 분화된 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체(體)의 모든 입자들을 통해 작용한다. 그러므로 아스트랄 시각을 통해 사자는 앞면만이 아니라 주위 전체를 모두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의 팔(아스트랄 대응부)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두 아스트랄 손이 서로 겹칠 때 어떤 촉감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손을 물질화 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이렇게 물현된 손은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통의 손과 같은 감촉이 느껴진다. 이런 일은 교령회에서 종종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아스트랄계에는 사자가 물질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거나 쫓아가는 것이 가능한 세 개의 부분계(하부계)가 있다. 몰론 그런 행위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스트랄계의 최하위 부분계에서 사자는 물질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본서에서 언급하듯, 불유쾌한 장소에 그런 존재가 출몰하는 경우가 예외적이지만 있다.

 

다음 부분계에서 사자는 물질계와 매우 밀접한 접촉을 가지며 이승과 관련된 매우 많은 것들을 의식한다. 물론 그가 보는 것은 물질 자체가 아니라 아스트랄 대응 부분이다.

 

다음의 두 상위 부분계를 통과해 올라가면서도 그는 물질계에 대한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정도에 있어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감소한다. 그 이상의 부분계에서 물질계와 접촉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영매를 통해 통신하는 특별한 노력을 해야만 가능하며 최고급 부분계에서는 그나마 그것조차 매우 어렵게 된다.

 

아스트랄계에서 물질계의 사건을 주시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는 그 사람의 영능의 발전 단계뿐만 아니라 성격, 기질 등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대개 자신의 본성적 목적관에 따라 삶을 살며 아스트랄 의식에 깨어나기 전에 이 모든 저급한 단계들을 일소해 버린다. 그러므로 그들은 물질적인 것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뒤에 남기고 온 특정인에 대한 큰 염려 때문에 다시 이 지상과 접촉을 갖기도 한다.

 

진화가 덜 된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저급 부분계의 질료를 많이 갖고 있고 그로 인해 훨씬 더 물질계에서 진행되는 일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 특히 영적 열망이나 고급한 지성이 없이 오로지 물질계에 대한 상념으로만 꽉 찬 사람들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 저급한 성향은 사용하면 할수록 커진다.

 

처음에는 지상의 일을 의식하지 않고 잘 지내던 사자도 차츰 그곳에 관심을 갖는 불행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대개 남겨진 사람들의 이기적인 슬픔의 표현 때문에 일어난다. 남겨진 자들이 지나치게 애곡함으로써 그는 이승과 접촉코자 하는 마음을 갖기에 이른다. 이러한 경우 지상을 내다보는 그의 능력은 한동안 증가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힘이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는 심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그 고통은 순전히 본인 스스로 변칙적 행위를 한 데 기인한 것이다. 사후의 정상적인 진화 체계 속에서 그런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만일 그런 식으로 죽은 사람이 물질계를 시원히 보지 못 하는 것이 불만이라면, 지상의 우리 역시 물질계의 실상을 보지 못 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은 물질계의 고체, 액체 부분만 볼 수 있으며 훨씬 더 광대한 기체와 에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 한편, 사자는 물질을 보지 못하며 물질의 아스트랄 부분계에 속한 아스트랄 대응 부분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육체를 갖고 살아 있는 동안 에텔 시력, 아스트랄 시력을 계발한 자뿐이다.

 

죽음의 문을 넘어선 이가 겪어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은 언제나 분명하게 물질체의 아스트랄 대응부를 인식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가 대상물을 분명히 식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대개 상당한 경험이 요구된다. 따라서 그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행하려는 시도는 매우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이기 쉽다. 이는 유령이 나오는 집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고 물건이 약간 움직이는 등의 현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사물에 대한 인식력은 대개 경험과 지식의 문제이다. 따라서 사자가 생전에 해당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인식력은 완전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이 내게 편지로 질문을 해 왔다. 그 내용은 사자도 극장에서 연극의 아스트랄 부분을 즐길 수 있는지, 그리고 만일 극장이 만원이라도 그가 그곳에 있을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분명 만원 상태의 극장 또한 아스트랄 대응 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자도 거기서 연극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극은 사자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처럼 배우의 복장이나 연기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이 아닌, 단지 흉내뿐인 배우의 감정은 아스트랄계에 어떤 인상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아스트랄체는 얼마든지 서로 영향을 주지 않고 중첩이 가능하다. 당신이 열차나 전차 속에서 어떤 사람의 곁에 앉을 때 당신의 아스트랄체와 그 사람의 아스트랄체는 상당 부분 겹치게 된다. 그런 투과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아스트랄 입자들은 물질 입자보다 매우 큰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스트랄 입자들은 그 진동율에 관한 한 상호간에 매우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시기와 화로 가득 찬 불순한 상념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아주 가까이 앉아 있으면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

 

만원이 된 극장 안으로 사자는 매우 쉽게 들어올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바닥이나 계단까지 모두 앉아 있을 때에는 아마도 공중을 여기 저기 떠다닐 것이다.

 

사자 중에서 자살을 한 사람은 배움을 다 마치기도 전에 학교를 도망쳐 나온 것과 같다. 그는 제멋대로 우주 법칙의 작용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결심을 한 죄를 범했다. 자연에 대한 그런 큰 불복종의 결과는 언제나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 행위는 분명히 다음 생 또는 그 이상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자살자가 처하게 되는 상태는 우발적인 사건으로 죽은 자의 그것과 유사하다. 왜냐하면 양자 모두 갑작스럽게 아스트랄계에 오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미처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은 무의식의 상태로 던져지며, 대개는 여러 가지 기분 나쁜 영향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아스트랄계의 최저급 부분계를 통과하게 된다. 하지만 자살자는 의도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많은 불쾌하고 끔찍한 상태를 고통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그는 자기 스스로 초래한 모습과 감정으로부터 구제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자살자도 어떤 특별한 사람(신비가)으로부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 받음으로써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인내와 희망의 활력을 얻게 되기도 한다. 자살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실수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실수이다.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실수를 저지른 형제를 단죄할 수 없을 것이다.

 

자살은 사례마다 각각 큰 차이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개별적인 경우마다 적용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영원한 정의의 법칙 안에서 정당하게 판단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후 아스트랄계의 삶의 상태를 고찰하는 데는 고려해야만 할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특정 아스트랄 부분계의 체류 시간과 그곳에서의 의식의 명료도가 그것이다. 사후 특정한 부분계에 머무는 시간은 그가 지상에서의 삶 동안 스스로 쌓아 놓은 해당 부분계의 질료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의식의 명료도는 언제나 그와 같은 법칙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보자.

 

전생으로부터 가장 저급한 부분계의 성향을 갖고 있던 어떤 사람이 다행히 현생에서 그런 성향을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가정하자. 물론 그의 노력이 단번에 완전한 성공을 거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급한 입자들이 고급한 입자들로 대체되는 현상이 점진적이기는 하지만 꾸준히 진전되어 나갈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아주 서서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과정의 절반도 이루지 못 한 채 죽음을 맞게 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 경우 분명 그의 아스트랄체 내에는 최저급 부분계의 질료가 상당히 잔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는 아스트랄계의 해당계(최저급계)에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머물러 있어야만 할 것이다. 즉, 자신이 갖고 있는 아스트랄 질료의 차원에 상응하는 부분계에서 그 질료가 분해될 때까지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의식적 노력의 결과 저급한 습이 많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분해 작용이 일어나는 동안 그는 무의식 상태에 놓이게 된다. 다시 말해 거기에 머물고 있는 동안 그는 사실상 잠을 자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되며 결국 많은 불쾌한 것들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서 어떤 부분계에 가고 그곳에서의 의식의 정도가 어떠한가 하는 사후 존재 상태는, 그가 어떠한 죽음을 맞이했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어떤 갑작스러운 사건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후 상태를 결정짓는 요인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횡사를 원치 않는 사람들의 바램 - 서양의 오래 된 기도문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 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스트랄계에서의 그의 위치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는 못 하지만 적어도 그 상태를 더 진전시키지는 못 하기 때문이다.

 

한편 노령이나 어떤 만성병으로 인한 점진적인 죽음은 대체로 언제나 상당한 양의 아스트랄 입자의 와해 또는 분해를 수반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후 그가 아스트랄계에서 의식을 회복하였을 때는 이미 그곳에서 이루어져야 할 주요 과정의 일부가 지상에서 대신 행해진 후이다.

 

엄청난 정신적 공포나 혼란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자들은 아스트랄계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데 매우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 드물기는 해도 실제로 사후에까지 그러한 공포와 혼란이 지속되는 사례들도 알려지고 있다. 결국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일반적 욕망은 단순히 미신만은 아니며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실한 신비학도에게 있어서는 물질계에서 아스트랄계로의 이동이 빠르든 느리든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최선을 다해 가능한 많은 진보를 이루려고 노력해 왔고 어떠한 상태에 처하든 그의 진화를 향한 목적 의식은 항상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고로 인한 죽음은 아스트랄계의 저급계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비록 관점에 따라 그 체류 기간을 연장시킨다고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만성적인 질병의 고통을 통해 저급계의 입자들을 태워 버릴 기회가 그에겐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경우 그들의 비교적 짧고 순수한 이승의 삶 동안 아스트랄계의 저급한 성향을 키울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경험상으로도 그들이 아스트랄계의 최저급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사고로 죽었건, 질병으로 죽었건 그들의 아스트랄계에서의 삶은 상대적으로 짧다. 그들의 천계에서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천계에서의 삶이 아스트랄계에서의 삶보다 훨씬 길기는 하지만. 이렇게 비교적 짧은 아스트랄계와 천계에서의 삶을 마친 뒤 우주법칙의 힘이 작용하는 순간 그들은 빠르게 재화신하게 된다.

보통 물질계에서 시신에 대해 행해지는 행위는 이미 아스트랄계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보편적인 경우일 뿐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 일상적인 삶을 넘어서면 어떤 끔찍한 흑마술 의식(儀式)이 존재하고 그 의식은 저승에 있는 사람에게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시체에 가해지는 어떤 행위가 실제로는 그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무지나 어리석음에 기인하여 영향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후, 인간의 아스트랄계에서의 삶의 기간은 주로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 물질계에서의 삶의 질과 사후의 마음 자세가 그것이다. 인간은 지상에서의 삶 동안 질료를 통해 끊임없이 아스트랄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자신을 지배하도록 허락한 욕망, 감정 등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간접적인 영향으로는 그의 상념과 삶의 세부적 양태 - 절제 또는 방탕, 청결 또는 불결, 음식과 음료 등 - 가 있다.

 

만일 잘못된 길로 빠져 그러한 삶이 지속된다면 그는 어리석게도 스스로 저급계의 진동에 감응하는 거칠고 조악한 아스트랄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후, 아스트랄체가 서서히 오랜 시간에 걸쳐 분해되는 과정에서 그만큼 저급계에 묶여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고상하고 조심스런 삶을 영위함으로써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섬세한 질료로 만들어간 사람은 사후 불편과 고통을 훨씬 덜 경험하게 될 것이며 그만큼 매우 빠른 진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아스트랄계의 삶을 지배하는 첫 번째 요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 번째 큰 요인인 ‘사후의 마음 자세’에 대해서는 종종 망각하는 것같다.

 

사후에 취해야 할 바람직한 마음 자세는 진화의 노정에서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사자는 진정한 자아의 세계를 향해 내면으로 끊임없이 철수해야 한다. 따라서 그는 가능한, 상념을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철수시키고 천계에서의 삶을 지배하는 영적인 문제들에 좀 더 주의를 집중시키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 아스트랄체의 분해는 더욱 촉진되고 저급계에서 불필요하게 오래 지체하는 일반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상념을 위로 돌리려고 하지 않고 반대로 두고 온 물질계와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시간을 허비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행위는 그들을 돕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조차 큰 어려움을 가져다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지상적인 문제들에만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그들은 죽어서까지도 필사적으로 그것들에 매달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 사자는 이승의 것들을 붙들고 있기가 점차 어려워짐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점진적 정화 또는 영화(靈化)의 과정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사적으로 그것에 저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의 힘은 그의 저항력에 비해 너무도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 흐름에 쓸려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자들은 상향의 길의 매 단계마다 그것에 저항하며 싸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불필요한 고통과 슬픔들을 많이 겪어야 할뿐만 아니라 진화 또한 매우 지체되게 된다.

 

우주적 의지에 반하는 이 무지하고 비참한 저항의 과정에서 사자는 이승에 대한 유일한 연결 통로인 자신의 시체에 매달리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행위 속에서 시체는 그 자신을 진흙 속에 확고히 붙박아 두는 닻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이 완전히 부패할 때까지 말이다.

 

화장은 이런 문제로부터 사자를 구해 준다. 화장을 통해 육체가 소각되어 버리면 문자 그대로 그의 배가 불타 버린 것이 되고, 따라서 지상에 머무르려는 마음 또한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시체를 매장하거나 미라로 만드는 행위는 사자로 하여금 이승에 머물고자 하는 본능적 유혹을 초래하며 만일 그에게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부추기는 불행한 결과를 만들게 된다.

 

진보된 자아는 자신의 시체가 화장되든, 매장되든 미라로 보존되든 상관없이 결코 아스트랄계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의 아스트랄체는 그런 것들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빠른 분해 과정을 거친다. 화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많은 이점 가운데 중요한 것은 첫째 시신과의 부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일시적 재결합에 대한 시도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고 둘째는 흑마술의 목적으로 그 시체가 이용되는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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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애니 베산트

 

이 책이 출판될 당시에 신지학회 회장 애니 베산트는 살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지학회 멤버들이 죽으면 애니 베산트에게 가서 도움을 구한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항상 아스트랄계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물질계에서의 활동과 더불어 아스트랄계를 포함한 영계에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들의 사후까지도 책임을 진다. 갓 죽은 자는 사후의 세계에 익숙치 않다. 환생 전까지 그 앞에는 여러 상황들이 전개되는데 그중에는 위험하거나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진정한 스승은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면서 제자가 무사히 환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후의 상태

 

나는 종종, 보통 사람들이 아스트랄계에서 무의식 상태에 있는 것과 활동적인 상태에 있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가 하는 질문을 학인들로부터 받는다. 그것은 사자의 활동적인 상태가 과연 어떠한 성질의 것인가 하는 점과 사자의 자아의 진화 수준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진되지 않은 일정한 양의 욕망을 기질 속에 지닌 채 죽는다. 그리고 그 힘은 무의식 상태로 침잠하기 전에 소진되어야 한다. 만일 그의 활동이라는 것이 오로지 저급한 욕망에 속한 것뿐이라면 가능한 빨리 무의식 상태로 빠지게 내버려두는 것이 분명 그에게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유형의 카르마를 새로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반면 만일 그가 아스트랄계에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전된 사람이라면, 특히 이승에서 수면 중 아스트랄계에서 활동해 왔던 사람이라면, 그가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 경우도 아스트랄계에서의 체류 기간을 일부러 늘리면서까지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마스터의 제자들의 인도하에 활동하고 있는 자들은 당연히 그들의 조언을 따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그 방면에 경험이 풍부하고 폭 넓은 지식으로 타인을 안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트랄계에서의 삶은 의지에 의해 조절된다. 그러나 물질계에서의 삶이 그렇듯, 이 경우에도 항상 카르마 - 우리 자신의 과거의 행위 - 에 의해 제한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 의지력, 창의력이 미약하다. 따라서 물질계에서처럼 아스트랄계에서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환경의 노예로 전락해버린다.

 

그러나 의지력이 강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며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고 삶을 살아간다. 결국 인간은 시간이 걸릴 뿐,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다시 자신의 의지로 점차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질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스트랄계에서도 사람은 확고한 목적 의식을 갖고 노력하지 않는 한 자신의 악성향을 없애지 못 한다. 이승을 떠났지만 사자 안에 남아 있는 강하고 집요한 욕망들은 그 충족을 위해 육체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육체가 없기 때문에 그 욕망들은 자주 날카롭고 지속적인 고통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을 충족시키기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과 함께 차츰 위축, 박리되다가 결국 소멸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스트랄체의 질료도 서서히 와해, 분해되며 자아의 반무의식적 노력을 통해 사자의 의식은 점차 아스트랄계로부터 철수된다. 이렇게하여 차츰 천계로 가는 발목을 잡아온 요소들이 제거된다. 그러나 최악의 난관은 일반적으로 사자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악을 제거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

 

만일 그가 상황을 인식하고 그 일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는 분명 위에서 언급한 과정들을 매우 빠르게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저급한 욕망들을 죽이고 빨리 자아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본연의 일임을 안다면 그는 열성적으로 그 일에 매달릴 것이고 무지하게 욕망에 끙끙대며 그것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거나 가장 조악한 아스트랄 입자에 결사적으로 매달리는 일 (- 그 감각이 그가 그토록 갈망하는 물질계의 그것과 가장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볼 때 우리는 ‘안 보이는 조력자’들의 활동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사자들에게 사실을 설명해 주는 일이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비학에 대한 단순한 지적인 지식만으로도, 사람들이 비할 수 없는 가치를 누리게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람이 죽어서 처음 아스트랄계에 가게 되면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 한다. 설령 그가 그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는 물질계와 아스트랄계가 어떻게 다른지 즉각 이해할 수가 없다. 물질계에서 사람은 의식주의 노예이다. 우리는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살 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 지상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노예 상태로부터 풀려난 사자도 오래 동안 자신이 진정 자유로운 상태인지 믿지 못 한다. 그 결과 많은 경우 그는 이미 풀려 나온 족쇄를 스스로 계속 차고 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종종 죽음의 문을 통과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가공(架空)의 음식을 장만하고 앉아서 먹고 있거나 자신들이 살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서머랜드(Summerland)에서 어떤 사람이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혼자서 돌을 하나 하나 쌓으며 집을 만들고 있었다. 물론 그 돌들도 일일이 모두 그가 상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돌 하나 만드는 노력으로 집 전체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돌이 무게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이 지상의 상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깊이 탐구해 나가게 되었다.

 

서머랜드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경치에 둘러싸여 지낸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런 수고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지표 위에 있는 아스트랄 제6 부분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산, 나무, 호수 등의 아스트랄 대응 부분에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특별히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스트랄 고급 부분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그들이 바라는 바에 따라 경치를 만들어 놓고 살게 된다.

 

여러 경전에 묘사된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 놓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예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우리는 보석이 열리는 나무, 불과 혼합된 유리 바다, 수많은 눈이 박힌 괴물, 백 개의 머리와 팔이 달린 신 등, 경전에 등장하는 상상의 존재물들을 어색하고 서투르게 재생시켜 놓은 작품들과 계속 마주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시간에 전혀 무가치한 일을 하고 있다. 이는 지상 삶에서의 무지와 편견의 결과이다. 신비학을 공부하여 고급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가장 유쾌한 특징 중 하나는 물질계의 삶에서 인간들을 비참하게 해 온 이 모든 것들 - 의식주, 금전 등등 - 로부터 벗어난 절대적인 자유와 휴식이다. 사자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가 원하는 것, 선택한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따라서 타인을 돕는 데 전력을 다 할 수 있는 자유 또한 있는 것이다.

 

 

[출처] 신지학 대의 53 - 신지학도의 사후(死後) * 사자(死者)와 이승과의 관계 | 작성자: 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