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호 천 사 "
단전호흡
기독교나 불교에서 단전호흡을 금기시하는 것은 이들로 인하여 발생되는 폐해가 매우 크고 또한 막중한 부작용을 우려한 탓이다. 특히 영적(靈的)인 장애로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단전호흡법은 의외로 간단하여 그대로 실천하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목표를 세우지 않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집중의 단전호흡만이 그 존재 가치를 알린다. 그러면 숨의 길이가 궁금해진다. 중국기공에서는 숨의 길이가 수행의 척도를 대변한다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울러 숨을 길게 들이쉬거나 멈추는 행위는 오히려 금물이다. 오직 방법이 있다면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가늘게 길게 천천히’ 쉬면 된다.
또 다른 금기사항이 있다. 의식을 동원한 의념수련이나 최면요법의 호흡법이 바로 그것이다. 깨달음을 얻는 진솔한 길이 있다며 혹은 진리를 찾아가는 지름길이 있다고 호언(豪言)하는 기교법은 모든 것이 자기최면법으로서 그 결과는 참담하다. 수십 년을 단전호흡으로 정진한 수행자들 대부분이 접신(接神)이 되어 깨달음은커녕 건강을 크게 해쳐 그 행색이 말이 아니다.
단전호흡의 지름길이 있다면 딱 하나, 하복근의 근육을 발달시키면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이 되고 집중이 가능해진다. 결국 열쇠는 하복근의 발달로 청년들은 보름, 일반인들은 1개월정도 의자에 기대서나 잠자리에 누운 와공(臥功)자세로 하복근을 발달시킬 수 있다. 물론 하루 1시간이상의 투자를 요구한다. 단전의 위치를 설명할 때 배꼽아래 2치(寸)라 하는데 대략 성인의 경우 배꼽아래 6-7㎝전후에 위치한다. 초기에는 배꼽과 치골의 중간지점이지만 수행이 높아지면 배꼽아래 전체가 하단전으로 자리잡는다.
집중과 단전호흡으로 기(氣)를 모을 수 있는 까닭은 생각을 단순화하면 기(氣)가 모이고 반대로 생각을 일으키면 기(氣)가 소모되는 평범한 원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마음을 집중한다는 것이 일상 생활 속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다. 허나 생활 속에 집중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으니 곧 숫자를 세는 행위이다. 발걸음을 뗄 때도 숫자를 헤아리고, 식사 때마다 밥을 입에 넣고 씹을 때도 수를 세면서 집중할 수 있다. 이러한 집중이 관법(觀法)의 이름으로 불교의 ‘안반수의경’에 수록된 수식관 호흡과 맥을 같이 한다.
수식관(數息觀)호흡은 숨을 쉬면서 숫자와 호흡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호흡법이다. 수식관으로 단전호흡을 해야 만이 집중을 높일 수 있고 또한 기(氣)를 모을 수가 있다. 기도와 함께 단전호흡을 하며 참선(參禪)시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으나 초기단계에서는 의식적으로 시간을 만들어 수행의 이름으로 호흡에 매진해야 한다. 수행이 자리 잡혀 단전에 축기가 되면 호흡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고신도(古神道)
오래 전, 카톨릭 신부님과 함께 단전호흡을 같이 수행한 적이 있었다. 독일유학시절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쳤다는데 한 쪽 발을 절고 있었다. 사고(事故)이후 지속적으로 정형외과의 물리치료와 추나요법 등으로 수년동안 치료하였지만 별 차도가 없어 담당의사가 수술을 권하고 있던 중이었다. 단전호흡으로도 치료가 가능한지 전화로 물어와 한마디로 말씀드릴 수 없음을 이해시키고 찾아뵙고 선도수련의 과정을 설명하였다.
신선도(神仙道)란 기공치료와는 무관한 심신수련법이다. 그러나 수행의 과정에서 건강을 되찾게되는 경혈의 개혈(開穴)과정이 한의학의 침구시술과 동일 선상에 있음을 신부님께 말씀드렸다. 또 선도수련은 기도와 믿음을 중시하는 카톨릭과는 달리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하는 건강한 육신을 이루는 몸 공부를 완성해야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쳐 건강제일주의로 변하여 무술을 연마하고 격파술을 연구하는 차력(借力)으로 탈바꿈하고, 늙고 죽지 않는 불로불사(不老不死)가 선도의 핵심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함을 부연 설명했다.
몸 공부의 과정이 한의학의 경락이론과 동일하다. 질병이 생기면 인체내의 경혈을 침이나 한약으로 개혈하듯이, 선도수련은 에너지인 기(氣)로써 대신하는 것으로 기공치료라 불리고 있다. 자연의 기운이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힘으로써 비뚤어진 자세가 저절로 교정되거나 혹은 수술이 필요한 척추디스크 환자도 아프기 전, 원래의 모습으로 자연 치유되는 현상이 수행(修行)중에 나타남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수행의 시작이며 전부인 단전호흡을 재삼 설명했다. 흉식호흡이 아닌 집중의 복식호흡을 뜻하며 신선도의 핵심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심신수련법으로 일명 고신도(古神道) 혹은 선도(仙道)라 이름한다. 선(仙)은 산에서 수도하는 사람으로써 사람인(人)변에 뫼산(山)자가 들어있다. 수행이란 거창한 표현보다는 집중을 생활화하는 것을 근간으로 성서(聖書)의 ‘항시 깨어있어라’ 와 맥을 같이한다. 일상에서 행하는 몸짓을 언제나 지켜보는 단순한 방법이 축기(畜氣)를 도운다. 행(行)하면 행(行)을 바라보고, 주(住)하면 주(住)를 바라보고, 좌(坐)하면 좌(坐)를 바라보고, 와(臥)하면 와(臥)를 바라본다. 또 어묵동정(語黙動靜)할 때 어묵동정을 바라본다.
집중은 기(氣)를 모으고 또한 관(觀)을 만든다. 관(觀)이란 육신의 눈이 아닌 의식의 눈이다. 마음의 눈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있지 않는 것도 아닌 ‘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무름이 없이 내는 마음)’의 의식이다. 마치 배부른 사자가 얼룩말 보듯이 무심의 눈으로 상대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나 돌과 같은 무정물(無情物)은 결코 아니다. 성성적적(猩猩寂寂)으로 고요함 속에서 밝은 의식의 준동이다.
남방불교의 관법(위빠사나)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집중 속에서 ‘항시 깨어있는 자세’외는 필요치 않다. 어떤 대상을 긴긴밀밀하게 자의식을 동원하여 초강력으로 뚫어보는 것은 의식을 부추기는 행위다. 불전(佛典)에 이르길 “구하지 말며 의지하지 말며 상(相)을 짓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남방불교는 놓치고 있다. 숫자와 호흡을 단순히 집중하는 수식관호흡은 맑음에서 나타나는 기감을 체험하면서 관(觀)이 완성된다. 무심의 관법은 필요없는 사법(邪法)의 군더더기의 기법들을 모두 소멸시킨다.
선도수행은 단전호흡과 함께 관법을 완성하는 것이 중간 목표점이지만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앞서가는 수행자의 경험과 공력(功力)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초자연계에 대한 관심은 신비와 동경만으로는 절대로 안된다. 자칫 길을 잘못 들면, 작은 것을 얻으려다 전부를 잃게되는 우(愚)를 범하기 쉽다. 기독교나 불교에서 단전호흡을 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자연계는 어떠한 형태의 집중으로도 에너지를 얻어 신통(?)을 부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법이 틀렸다기보다는 낮은 차원의 기법으로서 정법의 무소부재함에 비하여는 언제나 한계를 드러낸다. 시중에 알려진 초능력기법이나 기공기법은 한마디로 무당의 에너지와 동일하다. 천계(天界)나 진화된 영혼이 존재한다는 서구 명상법의 채널링도 마찬가지다. 허나 그들의 능력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들에게 감응을 주고 체계 된 이론을 바탕으로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한계를 가진 영능력자로 혹세무민이 목표이다.
단전호흡이 수행의 전부인 선도(仙道)는 설령 깨달음을 얻지 못할지언정 건강은 확실히 지킬 수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무심(無心)속의 관법(觀法)을 지켜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목적을 가지면 집착에 빠지게 되고,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의 군단이 영(靈)의 이름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접신(接神)이 되는 과정이다.
초자연계의 에너지는 신통(神通)과 영통(靈通)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신통이 하느님의 능력이라면 영통은 마왕의 에너지다. 마왕은 언제나 탐욕과 정욕을 무기로 삼아 정복과 성취감을 유발시키며 기세를 떨치지만 언제나 그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상대를 구분하지 않고 나와 남이 하나가 되는 영원한 생명을 선사한다. 이것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선한 이나 악한 이를 구분하지 않고 따뜻하게 보살피는 경우와 동일하다. 그리고 그 능력은 무소부재하고 무시부재하고 무소불위하다.
신부님 뒤에 나타난 수호천사
외부의 인식과는 달리 카톨릭 사제의 업무가 누적되어 항시 시간에 쫓기는 가운데도 불구하고 단전호흡과 요가의 기본체조를 열심히 연마하셨다. 집중이 높아지면서 기(氣)의 운행이 활발하여 임,독맥의 회로인 소주천이 6개월만에 완성되었다. 소주천이 되면서 온몸의 구석구석에 운기가 이루어져 드디어 대주천의 관문인 백회혈을 개혈(開穴)할 타이밍이다.
“다음 주중에 백회혈인 천문(天門)을 개혈(開穴)하겠습니다.”라며 수행의 일정을 설명했다. 천문은 수행자의 힘으로 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천문이 열리게 된다. 줄탁지기다. 이것 또한 맑음의 힘으로 ‘이미 알고 계시는 하느님’ 힘이다. 불경(佛經)속의 염화시중의 미소로써 법력의 전등(傳燈)을 암시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법을 전수 받기 위해서는 가섭존자와 같이 청정해야하며 그 수준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천문(天門)의 개혈도 청정해야하며 축기가 되어 있어 기운이 왕성해야한다. 다시 말해 수행을 열심히 해야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다음주일 약속과는 달리 선정에 몰입하니 백회혈 주위의 정수리에 쓰레기 더미가 지저분하게 수북히 쌓여 있음이 영안(靈眼)으로 보였다. 이태 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사고 현장의 사진모습과 유사하다.
“교구청의 행사준비로 눈코 뜰새없이 한 주일을 보내다보니 단전호흡을 잊고 있었소.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외다.”라며 사과말씀이다.
오늘은 개혈할 시기가 아닌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룰까 하고 관(觀)을 놓는다.
이때, “잠깐! 도사양반! 이것은 내가 다 치울테니 신부님 어깨 치료나 하시구려. 기공치료가 전문 아니요!”
난데없이 터져 나오는 선계(仙界)의 소리에 깜짝놀라 바라보며 “누구신가요?”하며 물어본다.
신부님의 주보천사란다. 모든 게 텔레파시로 문답이 오간다.
“웬걸 난 기공치료사가 아닌데....”하며 억울한 심정으로 신부님 어깨를 관(觀)한다.
그 사이 어지럽게 널려있던 백회혈 주위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드디어 백회혈의 개혈을 시작한다.
“신부님, 백회혈을 관(觀)하세요! 기운을 보냅니다.”
백회혈의 관(觀)을 유도하면서 기운을 보내었다.
“펑!” 하면서 상대의 정수리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난다.
백회가 열리는 순간 이제까지 경혈을 막고있던 에고와 선입견의 먼지가 화산 폭발하듯이 2중,3중의 폭발과 함께 날아간다. 한참을 지난 뒤에 먼지로 가득 찬 공간에 백회가 드러난다.
그러나 백회가 너무 크게 열렸다. 아주 강력한 에너지의 전달로 머리끝 정수리의 백회혈이 백두산 천지 못처럼 엄청 넓게 자리를 잡았다.
“신부님, 백회가 너무 크게 열려 조금 줄이겠습니다. 경혈의 크기는 엄지손가락 정도가 가장 적당합니다. 조금 줄이겠습니다.”하며 백회를 정상적 크기로 줄였다.
이윽고 백회의 경혈이 미소짓듯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회는 하늘의 문으로 천기가 들어오는 곳이지만 영혼의 등급이 높은 사기(邪氣)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또는 수행자가 잘못 판단하여 사법(邪法)을 받아들이면 빙의령이 들어오는 출입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기(邪氣)가 들어오지 못하게 벽사문(辟邪門)을 달아 드리겠습니다. 벽사문은 금실과 은실로 짠 돔형태의 인공위성 모양으로 고정시킬 수 있는 발이 달렸습니다. 부드러움과 탄력성이 우수하여 사기를 막아주는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방어문 입니다. 다시 백회를 관하세요.”하며 관을 유도했다.
“벽사문을 보냅니다.”며 고급 에너지의 결정체를 보낸다.
벽사문을 보낸 후 그 위치를 관한다. 그런데 백회혈위에 반듯하게 놓이지 않았다. 상대가 관을 놓치면 그 위치를 다시 수정해야한다. 이러한 일들은 텔레파시로 전해지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다. 다시 한번 벽사문의 위치를 조절한다.
“신부님, 백회 위에 벽사문이 잘 설치된 것 같습니까?”
“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불편한 것은 없습니다.”며 벽사문의 존재며 그 위치까지 느낌을 말씀하고 있다.
“벽사문을 설치하겠습니다.”며 장치를 고정시키며 백회 개혈을 마감했다.
선정(禪定)에서 깨어난 신부님은 머리가 개운해 진 것 같다며 상쾌한 표정이다. 백회가 개혈되면 하늘의 기운이 다이렉트로 내려오기 시작하여 박하 향을 뒤집어쓴 듯 머리전체가 시원해져 자꾸만 의식이 머리로 간다.
“어깨가 무거워서 혼이 났는데 굉장히 편해 졌네” 하며 어깨를 움찔거린다.
신부님은 기(氣)를 볼 수 있었고 백회의 모양을 보고 느끼고 또한 벽사문의 존재에 대한 신비함에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단전호흡을 게을리 하면 백회가 다시 막힐 수 있음을 경고하고 수련을 마쳤다.
방금 전에 나타난 주보천사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누구세요?”하고 다시 텔레파시로 물어본다.
가슴에 코발트빛깔의 큰 보석을 보여주며 미소를 짓는 모습이 크로즈- 엎 된다.
그 후 신부님의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교구청에서 중책을 맡으셔서 애석하게도 선도수련을 계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백회가 열린 후에는 육신의 질병은 자연스럽게 치료가 가능한데 시간이 없어 다음단계인 기공치료를 강행할 수가 없었다. 애석한 마음 금할 수 없었지만 신부님처럼 수도자의 뒤에는 항시 주보천사의 돌보심이 현존함을 체험하였다.
사랑의 전령사인 수도자(修道者)들은 세속의 알음알이에 관심이 없어 본인의 청정함조차 무심하겠지만 혜안(慧眼)이 열린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상대의 청정함의 깊이까지 자연스럽게 판별이 된다. 믿음의 예수님이 아닌, 깨달음의 예수님이라면 누구라도 혜안(慧眼)을 얻어 오늘의 예수님이 되어 하느님의 아들로서 거듭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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