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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 얘기들 !

+ 한국의 가신제도 무속신앙(巫俗信仰)

 

한국의 가신제도(家神制度) 무속신앙(巫俗信仰)

 


가즈기오.. 가즈기요.. 북망산천 가즈기오.

이 말을 현대어로 해석하면

잘 가세요.. 편히 가세요.. 본디 있던 조상의 땅으로 편히 가세요.

얼핏 들어도 이정도 해석은 된다는 생각이다. 즉, 이것은 문자가 음원화된 현상이다. 우리 무속에는 이런 식의 구음(口音)이 많다.

그렇기에 하고 싶은 말이라면 그 음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전통이기에 당연히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그 뜻을 알리는 과정에서도 당연히 현대적인 어법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로 인하여 이와 흡사한 단어들이 신을 봉청하는 정성언어가 아닌 마치 신의 영험함만을 부르는 단어 등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식의 단어는 많을 것이라 추정된다.

현재 무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음원화된 단어들은 대부분이 두세가지의 합성언어로 조합되어 계승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음원화된 문자 + 지방 사투리 + 개별소리 (현대어)

그렇기에 이런식으로 배열된 무속언어는 무속을 공부하는 무관(巫款)들이 전통보존의 입지상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며, 문화인과 학인들께서는 이를 연구하여 무당문화에 숨겨진 민족사, 정치사, 예술사를 함께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무당은 무속역사 통해 전통성과 신명신앙의 마음가짐을세울 필요가 있으며, 학인은 무속역사를 통해 전통민족사와 전통역사관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견해이다.

그러한 노력으로종국에는 대한민국의 뿌리가 무엇인지 정립하여 사람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계몽하고 홍보하는 노력을 통해 일하는 사람은 일이즐겁고, 배우는 사람은 배움이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대대로 부강했거나 지금도 부강한나라를 보면 전통신앙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더욱이 가정 내에 가신(家神)을 모시고 있지만 그런 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미신(迷信)이라며 배척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인도문화권에서는 가정내에 부처님을 모시고 항시 경배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기엔 지금 그들이 가난해 보이지만대다수가 스스로를 가난하다 생각치 않는 민족이기에 어찌보면 그들 눈에는 우리가 가난한 민족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며,

일본과 중국은 오래전부터 가정 내에 가신과 신단을 모시고 조석으로 제배를 올린다. 그들은 그러한 신앙을통해 결속력과 긍정의 힘을 얻고 있으며, 이는 사회가 비대해질수록 더욱 필요하기에 오히려 정부차원에서 적극 추천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의 강대국을 보면 대부분의 가정과방에는 십자가가 걸려있으며, 식사 전의 기도식과 뜻 있는 행사에서는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는 아직 개척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 개척교의 성격도 미국의 아메리카 대륙 정벌형식이기에 아직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나 이도 분명 진보한 형태로 안정되어갈 것이라 생각된다.

더욱이 한국의 개신교는 일본을 걸쳐서 넘어왔다. 그리고 그 당시의 일본은 한국을 통해 중국을 정벌하려는 야욕을 다시계획하고 있었기에 이는 순수 종교목적이 아닌 정치에 앞선 침략준비로 인한 뜻을 같이하였던 국가간의 타협적인 종교작업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내부에는 순수하신 분들도 계셨겠으니 대부분이 무조건 적인 신앙을 강요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바, 신앙 의식은 매우 낮았을 것이라 판단되기에 정치에 도구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민 특히 한국여성이지금 개신교를 선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대적 발전 유형에 따라 지금의 신앙의식에서 갈끔하고 거대한 신앙소를 선호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번거로운 유교사상에서 오는 제사의 개념을 타파할 수 있다는 한국개신교 논리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많아지는국가발전의시기적 형태 등과 맞물려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한국개신교의 종교논리는 아무런 여과 없이 한국여성들에게 받아 들여졌으며,이를 통해사회적 지위가 점차로 자리잡혀 감에 대다수 여성이만족과 안주를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는 알고 보면 조선왕조의 남존여비 사상을 잘 못 해석하고, 대대로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남성의 잘못으로 인한 현상이며, 이를 한국개신교 신앙이 적절히 흡수하였기 때문에 한국개신교의 발전은 한국경제의 부흥시기였던 80~ 90년대를 기준하여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남존여비 : 고려조 이후 조선조 건립에서 여성의 정치적인 신분을 조정하기 위해 왕가의 법도에서 비롯됐다는 사견)

그 결과 한국의 신앙정서는 뿌리째 흔들렸고, 그를 통해 개인과 가정은 위 아래도 없이 무너졌고, 너나 할 것 없이 가정의 소중함 보다는 밖으로만 돌게 되는 현상이 생겨났으며, 자기 필요성의 의한 가정의 형태만을 선호하게 되었다.

또한 신앙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남성들은 아내와 딸을 외래종교에게 빼았긴 셈이 된다.

종교활동은 남성 보다 여성이 감수성면에서 월등하고,다루기 쉽다는 점을 알고, 누군가는 이를 악용하였으며, 어떤이는 지금도 그러한 의도를모르고 혼자만의 사명감에 불타있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렇다 보니무기력한 남성들은 다른 곳을 지향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교회인가를 묻고자 한다. 견해일 뿐이다.

유교식 제사의 근본이 갖는가문과 가족의 화합적 의미도 모르며, 유교의식과 상관없이 신앙식 제사를 주도하는 무당도 하지않는 말로 무슨 귀신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유교사상과 의미가 다른 민족신앙마저 함께 미신으로 치부하고, 제사를간소화하는 일에는 찬성하지만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말로서 가정주부를 현혹하기를 조선조의 약600년간의억압과 분노의 인자정보를담고태어난한국여성들의 심정을 부추겨서 하나님이란 이름으로소중한 가정의 자리를 망각하게 하였으며, 종교를 마치보급형 판매품처럼 포장하여 앞세워 홍보하였기에 지금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국개신교는 분명성공한 종교 케이스로 보여진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하나님이 보급형일까.?

한국개신교는 이제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히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뿌려놓은 미신사상을 한국민이여과 없이믿고 있는 의식 때문이며, 지금 그 제국주의자들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한국민이 이를 알지 못하도록 여전히 연막작전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역시 견해다

그러니 이런 견해가 싫다면 괜한 전통신앙과 무당잡는 일보다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더욱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뿌리가 든든하면 가지 역시 활짝 펼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필자는 적극 친일과 단순 친일을 분명히 구분한다. 밀고 내려오면 인공기 흔드는 것이 살 길이요, 밀고 올라가면 태극기 흔드는 것이 살 길이었듯이 일본의한국 강점기 시절에도다르진 않았을 것이라 판단된다.

다만 그렇기에 적극 친일이 아니라면 나머지는 민초의 고초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그러나 흔들기만 하면 될 것을 두고, 적극 참여하여 자신이 살자고 동물적으로 동족을 괴롭혔다면 이제 그런 행위의 응당한 보복으로자신이 무너진다 한들 마찬가지로 감수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동물이니까. 설령 가족이 위협을 받았기에 그랬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그대들이 어쩔 수 없었듯이 말이다. 감수해라.

그 처벌 과정에서 더욱 살펴야 하는 것은 겉으로는 적극 참여한 것처럼 보여졌으나 독립자금을 모으거나 백성을 먹이기위한 행위였다면 이는 그 과정을 면밀히 살펴야 하며, 어설픈 독립운동을 한다는명분으로 전시와 강점기 중에 가정을 등안시 하였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어찌보면 침략기에도 그 자리를 지키자고 엎드리고 조아렸던 사람 중에는 더 큰일을 하신 분도계실 것이기에 말이다.

유럽의 신앙역사에는 마녀사냥이라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현대적 시각에서는 이들은 특별한 영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로서 특히 여성이라는 감수성과 맞아 떨어져 예지력이 있었다고 하며, 정의감까지 있었을 때, 정치적인 이유로 마녀로 몰아 흑사병등의 희생양으로 처단되어 백성의 동요를 막았다는 보고도 접한듯 하다.

마녀가 그토록 대단한 힘을 가졌다면 일개 병사의 단두대에서 죽어갔겠는가를 묻고자 한다. 이는 명백히 정치적인 권위주의와 저급한 신앙의식이 합작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라 판단된다. 더욱이 동시대의 의학을 보면 출산하는 여자들의 사망률도 엄청났다고 한다.

그 이유는 출산을 담당하는 의사 대부분이 손을 씻지 않았기에 병균노출로 인하여 사망할 정도로 의술면에서 청결개념 조차 없었던비전문적인 의식을 야만적이라꼬집고자 하는 것이며, 이런 사람들이 권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시절이다 보니 옳은 말을 하는여성운동가를 마녀로 몰아 화형을 처한 경우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하여 본다.

마녀라고 몰았었던 이유에는 당시의 저급한 신앙이 연결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기에 저급한 신앙의식이 초래하는 일은 참으로 참담하다는 점을 각인하기 위한 표식이다.

이는 최근인 1900 대 까지도 서양의술의 비청결개념으로인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일이 있었다는 보도를 보았기 때문이고, 그를 인정하지 않던 권위의식을 일깨워 상대적으로 동양의술의 청결성을 통해 한민족 정신사상의 기상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로서 기록한다.

그리고잘못된 신앙으로 인한 어처구니 없는 예가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서는 서로 하나님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제일 앞에 내걸고 자그마치 100년이나 싸웠다고 한다. 이 전쟁을 하나님이 시켰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당시에는 서로가 하나님이 시켰다는 믿음으로목숨을 내 걸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신을 팔았을 뿐, 상대적으로 신을 믿지 않았으며, 그런 사람들의 신심을 이용해 자신의 야욕을 채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신앙은 어찌 돌아가고 있는가.

좋은 목적으로 계승되어야 할 신앙과 종교가 야욕자의 전유물로 전락한 케이스이다.

그리고 이는 명맥히 악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의 무지한 이야기와 흡사하다.

또 하나의 세계사의 아픔을 돌아보자.

아돌프 히틀러 - 그의 어릴적 본명은 외가쪽 성을 따른 시클그로버 였다고 한다. 1889년 4월 20일에 독일이 아닌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였고, 부모님이 법적인 결혼상태가 아니었기에 사생아로 알려져 있으며, 16세에 성적불량으로 중등과정을 졸업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로인해정규학력을 포기한 상태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는 예술에 대한 지대한 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그는 언변이 뛰어났으며, 경제를 이해하는 회계사 출신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면

히틀러가 유태인을 싫어하게 된 동기는어렸을 때, 모친이 유태인에게 모욕을 당했다는설로 인한 증오심과 예술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데서 오는 허탈감 그리고충격을 이겨내기 위한 어긋난 예술혼과 어려서 일찍히 부모가 사망한 탓에 홀로 이겨낸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성장 이후의지독한 생존본능으로 인한 다양한 기회와 정치인연 등이 합작된 사례자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결국 필자는 그를 가정불화가 빚어낸 예술과 경제를 겸비한 성격파탄자로 결론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가 유태인을 학살할 수 있었던 가장유력한 설로 1차 대전의 패전 이유가 유태인이 자금을 해외로 빼돌렸기 때문이라 믿었기에 2차 대전에서는 자금을 묶기 위해 그와 같이 대량학살을 감행하였다는 설이 있고,

그것이 가능하였던 것은 유태인은 예수님을 팔아 넘긴 민족의 후예로서 신앙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상태였고,

그렇다 보니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 없었던 그들이 선택한 일이바로 악덕 고리대금업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렇기에 당시 유럽사회에서의 유태인의 이미지는 신앙적 배신행위자와 고리대금업자를 대표하였기에 좋은 시선일 수 없었다는점이 아마도 대량학살이 가능케 된 이유라 생각된다.

또혹자는 대량학살의 증거가 없다라고도 한다. 백신이 부족하던 당시 주기적으로 도는 전염병에 의한감염 주장설도 있으니 말이다.그러나필자 생각에 이 당시 독일의 경제 사정은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인하여 침략국에 대한 전쟁 배상금을 토해내느라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이었기에 결국 먹고 살자고 총을 들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가능했던히틀러의 의식을 성장배경과 가정사에서 살펴보면 신앙에 대한 종교적 의미만 있었을 뿐, 신앙이 주는 사랑은 없었다는 결론이다.

즉 너무나 황당한 이유로 전쟁의 명분이 주어진 것이며, 거기엔 여지없이 하나님이 팔려 나갔고,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는다는 명분으로 마치 수위조절을 하듯이 신앙과 경제 논리를 두고 인종청소를 감행하였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이는 명백히 가정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기에 벌어질 수 있는야만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을 가능케한 것은예술을 통한 영적 창의력에서 나왔을 것이며. 결국 악의적으로 사용된 것이 문제이고, 그 과정에 필수적으로 도입한 요소를 보자면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독일군 제복의 우수한 디자인으로 인한명예성과 게르만 민족 특유의 선민의식으로 인한 신앙이 주는 정당성 그리고경제적 몰락성으로 인한 극도의 위기의식이 그런 학살을 가능케하였다는 생각이다.

또 모르지 그 이전에 유태민족이 게르만민족을 그와 같이 탄압한 일이 있었기에 윤회적으로 조상의 한풀이를 한것인지도. 그냥 그런 상상을 하여 본다.

지금 한국개신교는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믿는 기독교라는 이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로인해 대중의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 로마제국주의가 선물한 종교란 것을.일부 내용은 상상일 뿐이다.

정치만 신당을 창설하지 않는다. 신앙 역시 신당을 창설하며, 창설 시의 규모에 따라 신앙은 곧 종교로서 거듭난다.

그래서 "거듭남의 비밀인가." 사실은 그런 뜻으로 사용되는말이 아닌데.. 그리고 구당을 밀쳐내기에 이른다. 왜.. 신당이란 이름을 생각해 보라. 왜 세웠을까.?

그리고 기독교 이전에는 분명 그민족에게도 원시종교인 전통신앙은 있었을 것이며, 그 전통신앙은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모태신앙으로서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십자모양을 본 떳을 것이고, 그 모양으로 기독교 이전부터 섬겨왔을 것이며, 그것은 잉태의 신비를 간직한 여성의 자궁을 탄생의 신비로서 받들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원시종교가 갖는 동질성과 집단성의 가신제도를 박멸하기 위해 그리고 그를 통해 정착되었던 유대교 정치세력을와해하기 위해 로마정부는 고심 끝에 민족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십자가에 한시절을 풍미한 선지자와 예수님을 못 박음로서 동시에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여 정치적인 입지를 확립하였다는 설은 어떨까..?역시 일부는 상상일 뿐이다.

그러니 결국 예수님과 부처님 같으신 선각자와 거기에 귀의하신 분들은 기성종교의 문제점을 개혁하고자 신앙개혁을 주도하신 성인들이기는 하시나 두 분다 종교를 만드신 분은 아니게 된다.

그렇기에 불교도 고대 인도의 모태신앙으로 가신제도를거쳤을 것이라 예상되며, 그 후에는 브라만교(Brahmanism, 바라문교, 범교)로서 자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시대가 요청하는의식의진보에따라 신앙적인문제점과 의문점을 해소하시기 위해 석가모니(Gautama:고타마, Siddhārtha:싯다르타) 성인께서 수정하신 부분을 후대의 왕과 제자님들이 불교(Buddhism)라는 이름으로 전파하고 정립시켜 그 교주로 신봉된 경우로서 기록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열반하시면서 결코 자신을 신격화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셨다지만 사실상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주문이셨다는 생각이며, 기복신앙자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신격화 한다하여 무슨 문제가 있다라는 생각이기 보다는 당시 기성종교의 지나친 신사상의 개념과 오류에 대한 경계심으로우려하신 말씀이라 상상 하여 본다.

기독교 역시고대의 이스라엘의 모태신앙으로 가신제도에서 출발되었을 것이라 예상되기에 그 이후 선각자 모세님의 율법을 기준으로 한유대교(Judaism)가 신앙형식으로 출발되었다는 생각이며, 훗날 역시 잘못된 신앙의식의 개혁을 주도하신 나사렛 예수님(Nazareth Jesus)이란 선각자를 통해 많은 수정과정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를 기리는 제자와 후대를 통해여러가지 복음서가 편찬되면서 부터 오늘날 예수님의 업적이알려지고는 있으나, 혹자는 예수님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동시대를 살던 모든 학자들이 단 한사람도 예수님의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마정부가 철저히 기록을 삭제하였다 할지라도 어떻게 그토록 유명한선각자가 동시대를 살았던 모든 학자들의 기록에 단 한글자도 언급되지않을 수가 있는가를제시하고 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복음서는 동시대와 후대를 걸쳐 지속적으로 기록되기는 하였지만 모두 제자들의 의한 기록일 뿐이란 점과 당시의 성경의 날조와 삭제, 수정 등이 수 없이 이루어졌다는 부분 또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발론을 제기 하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들이란 점이다.

이런 주장이 타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정리해 본다면 수라는 명칭의 원어를 보면 헤브라이어 해석으로 "하느님(야훼=여호와)은 구원해 주신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것이 인디언식의 이름이 아니라면 분명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이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당시의 지명도 있으셨던 특정인물을 지칭하는 단어이거나 선각자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여 본다.


그 밖의참고할견해로는 네이버 지식인의 priessay님의 견해를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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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sua"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야훼)는 구원해 주신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이름인 '요수아(Yosu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요수아'가 모음 이화(異化)현상을 일으켜 '예수아(Yesua)'로 변형되어 쓰였고, 이것이 그리스어 '예수스(Inaous)' 및 라틴어 '예수스(Jesus)'로 번역되어 '예수'란 이름으로 발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유다인들 중에는 '요수아' 또는 '죠수아'라는 이름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그리스도교를 믿는 스페인어권 지역에서는 '헤수스'라는 이름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모두 '예수'라는 이름과 같은 이름입니다.

출처 : 인터넷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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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필자가 듣기로는 기독교(그리스도교:Christianity)는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이후에 어떤 왕과 제자들이 설립한 불교와는 달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제국주의가 군중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종교라고 알고 있지만 그 당시를 살아 보지 않았기에 분명하지 않은 가설로서 받아드릴 뿐이다.

그리고 또한가지는 결국 세상에 선각자는 많으셨으나 배경과 환경이 이를 받쳐주었을 때, 비로서 세상에 빛이 되실 수 있다는 생각이다.대부분 성인의 이력을 보면 이름 날 수 있는 족보가 있었거나 왕가의 후손이셨다는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지금이나 세상흐름이 다르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뜻을 알릴 때에는 당연히 앞에 설 수 있는 분께 귀의함이 가장 빠른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과는반대로 성자 예수님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한 복음 14:6). 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그냥 전신을 다해 믿으라는 말씀을 하신 선각자시기에 당연히 신격화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여기서도 동양과 서양의 음양적 취향과 이치가 들어난다는 상상을 잠시 하여 본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라는 말은 분명 한국어 번역이다.

이 말을 한국식으로 이렇게 번역하였다면 그것은 한국적 정서와 학풍상 다음과 같은 받아드려 진다는 생각이다.

나 = 길 . 말미암지 = 나의 신념적 행적에대하여 살피고, 돌아보고, 반성하고, 진실하지 않으면 . 아버지께 = 진리 .

올 = 이미 진리와 함께 있음을 뜻함 . 아무도 = 결코 불가능함을 뜻함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을 때는 당연히 그 나라의 정서와 사고에 따라 달리 해석되지 싶다.

한국의 무당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혼란하고 자고나면 변하는 세상변수에서 어떻게명맥을 보존할 수 있었을까..?

역사적으로 보아도 근사한 궁궐이나 단체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피의 역사에서 뿐이었다.

로마 교황청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 성직에 대한 한국신부님들의 노력과 세계 각국의 성직에 계신 성직자님들의 노력이 있기에 불만은 없다.

다만 기독교가 구교와 신교를 합쳐개화기에 상륙할당시 자행한 정치적 만행과 또 반대로 조선이 그들에게 저지른 불합리한 처우를 포함하여 생각해 볼 문제이고,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불교와 대치한 상황이나 무속과 대치한 상황에서 과오도 있을 것이나 역시 불교도 무속신앙과 대치한 일이 있으니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역사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지금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진정한순교자님들께는 지금도종교와는 상관없이신앙차원에서 무한한경배를 올린다.

이처럼 세계의 모든신앙은 결국 정치와 연결되면서 종교로서 자리하게 되었고, 그를 확립하고자 정치세력은 지원 또한 아끼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옛시절의 특정한 절은군왕세력이 불사해준 일이 많았듯이 현대의특정 성당과 특정 교회 역시 국가세력이나 다른 루트를 통해설립과 지속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정녕 신도의 후원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종교는 한국의 전통신앙을 여지없이 몰아 세웠고, 언론과 재정의 활동성을 동원하여그를 통해 무장한후,민속신앙을 무력화 시켰으며, 그를 행하는 본 목적이었던 외자유치를 통해경제를 어렵게 하였고, 그 돈의 일부로서 기독교 재단이나 이름만 달리할 뿐, 사실상 자신들의 야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종교의 그늘막에 숨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생각해 보자.. 돈은 안빌리는 것이 좋다라는 것이 아마도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돈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다른 외부의 빚청산이 아니라면 한국이 외부에 수출이라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빚도 자신이란 의미와 통상발전기금이란 의미를정확히 알고 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본문에서는 다른 각도로 보고자 한다.

국가가 어디로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빚 못 갚았다고 죽이겠는가, 전쟁을 하겠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 말이다.

통상마찰이나 무역제재는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그 수출을 댓가로 한국은 돈을 빌려야 하는 것이며, 그 돈은 수치만 왔을 뿐, 그 액수만큼 돈다발이 온 일도 없다.

다만 그 수치만큼 국가간의 공신력을 투자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국가간의 채무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채권, 채무 관계와는 완전히 개념부터 다르다는 생각이다.

그럼 무엇인가..? 수출하는 회사는 큰 돈을 벌고, 상대적으로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값는 것은 결국 국민의 몫이 된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 환수조치로서 국가는 국민에게 세금율을 정하여 징수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챙기는 존재는 법이 허용한 개인이 되고, 물어내는 존재는 법이 제재하는 만인이 되는 셈이다.

그럼 노예인가..?

여러분은 신앙과 정치와 경제가 공동으로 만들어 내는 작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허락한 댓가를 두고 생각하길 개인의 이익금과 국가의 행정금 중 어느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백성이거나 매국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결국 상호개방이 아닌 강제개방은 훔치기 위한 수단일 뿐이기에 거기에 동조하는 일은 명백한 매국행위가 되니 말이다.

그리고 돈빌려준 나라에서는 국가의 공신력을 빌려 주는 것으로 이 조차도 두가지 경우에만 가능케 된다는 생각이다.

하나는 밑밥 던져서 큰 물고기를 건지려는 의도로서 경제적 식민지화일테고, 다른 하나는 잘나가는 한국에 투자하여 공동이익을모색하자는 의도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지금 한국이 잘 나가고 있나..?

더욱이 그도 저도 아닌데 돈을 빌려 준다면..? 이것이 과연 돈이 맞을까. 그 돈은 특정사업을 통해 특정인의 이익된 주머니로만 들어가게 될 것이며, 엉뚱한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그 빚을 떠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무슨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인가.?

하나님이란 단어가 주는 달콤함을 들고 자신의 야욕을 세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세월 중에도 무속신앙이 지금껏 희미하게나마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것은 무당이 그만큼 몸을 사렸다는 증거이고, 때로는 바른 공수로 죽어나갔을 것이란 점을 알수가 있다. 그렇다 보니 그렇게 찢겨지고 더러워지는과정에서 잘못된 남사당패의 무당행위나 시정잡배들의 사이비 무속행위가 옛날이나 지금이나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모든 가정은 조상을 섬기는 풍습과민족 신앙에 대한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떠한 의식의 주인도 될 수 없으며,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가신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태고부터 모태신앙이 받들어졌을 것이기에 그를 계승하신 우리 신조(神祖)인 마고(麻姑)님의 전통을 통해 환인천제님과 환웅황제님 그리고 단군왕검님을 지나 대대로 이어 오길 가정마다 집집마다 불 밝히는 우리의 정성사상은 바로 전통신앙이며, 종교가 아닌 원형 그대로의 모태신앙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전통신앙은 세상만물을 정성으로 돌보고, 정성스럽게 살피자는 성심(成心)의 큰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가정내에 높은 어른을 섬기는 의식이 있는 가풍은 온화하고 평화롭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을 보면 위태롭고, 무미건조하다. 더욱이 이러한 이치의 중요성 보다는 그 이미지만을 본 따서 신앙의 본래 목적인 긍정의 사고로 사용치 아니한다면 이는 어떤 신앙이 되었던 명백한 신성모독이며, 신의 창조성에 대한 도전행위가 될 뿐이라 생각된다.

가정은 소중하다. 신을 믿는다하여 가정을 버리고, 아이를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급기야는 신까지 버리고 향응과 절대권력을 탐하는 일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 소중한 가정을 지키는 한국전통으로 무속신앙에서는 가신을 모셔왔으며, 지금 그 전통은 모양새만 겨우 옮겨졌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전통을 살려야 한다.

성주단지, 제석단지, 신주단지, 신중단지, 시주단지, 세존단지, 시준단지 등으로 어렵게 명맥을 잇고 있는 이름이 바로 가문을 풍요롭게 하는 가신의 전통이며, 이는 가정이 평온토록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시는 신령님의 은사이기도 하시다.

끝으로 우상이란 말의 정확한 의미는 오감(五感)에 의존하고 사는 사람이 처음부터 보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선은 보이는 형상을 통하여 그 믿음을 돈독히 한다는 의미로서 짝 우(偶), 형상 상(像)으로 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 짝으로 보이는 곳에 그 짝을 두어 믿음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개신교(한국식개척교)는 이를 알고 다른 한자인 어리석을 우(愚), 형상 상(像)으로 대체하여 민족신앙성을 말살하였다는 생각이다. 아무것도,,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사람의 인지력이 향상될 수 있을까를 묻고자 하며, 신앙 역시 가능한지를 묻고자 한다. 이는 너무나도 근본없는 이야기가 된다는 생각이다.

(본문의 일부기록은 가설과 견해성 집필문일 뿐입니다.)

출처 : 한국심평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