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저널 제 18권 .19권
시오니스트, 볼셰비키, 그리고 록펠러 카르텔
[아래의 글을 읽기 전에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들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물론 지금 언급드리는 부분은 동일한 책들(피닉스 저널 제 18, 19권)에 이미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지난 1982년 9월 17일, 전 세계는 제1차 핵전쟁의 발발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소련에 대해서 핵 선제 공격 계획을 세웠고, 치밀한 준비 끝에 전쟁 개시 날짜까지 잡았지만, 소련의 저항, 미국내 반대세력의 방해, 이에 더해 보다 결정적으로, 전쟁과 관련된 일급비밀들이 사전에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유포되는 바람에 결국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미국과 소련은 서로간에 적대국들이 아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 두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자들(소련 : 소비에트 볼셰비키, 미국 : 록펠러 카르텔(주도), 아메리칸 볼셰비키 및 시오니시트)은 서로 내통하고 있었으며, 냉전은 그저 그들끼리 만들어 내는 ‘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1976년경 반볼셰비키 세력으로 뭉친 러시아인들은 자국의 권력체계안에서 마침내 볼셰비키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고, 러시아 혁명 이후 처음으로 정권을 탈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1977년도 후반기에는 우주공간에서 미소간의 실질적인 제 1차 우주전쟁이 발발하였는데, 이 전쟁에서 소련이 승리하였습니다.
과학기술력 및 무기체계에서 소련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채, 미국의 계획들을 사사건건 방해하게 되자, 마침내 미국은 소련에 대한 핵선제 공격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1980년대 초반 여러 차례에 걸쳐 행해졌던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 시험발사는 모두 군사용으로, 핵공격 타격지점에 관한 정보수집에 그 근본적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우주왕복선들은 코스모스페어[Cosmospheres](소련이 보유한 UFO형태의 비행체들—역주)의 공격에 의해 요격되거나 기능고장을 일으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우주왕복선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의 인명손실이 거의 매번 반복되었지만, 사전에 지상에서 미리 촬영해 둔 교신 장면을 방영하여 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꾸미거나, 혹은 대체된 복제인간으로 복귀 후 기자회견을 여는 등의 방법을 써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꾸며 왔던 것입니다. 발사장면 방영 이후, 카메라가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요격사건들에 대해서는 굳이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설령 핵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엄격한 의미에서의 핵전쟁은 ‘전지구적인’ 핵전쟁이 아닌, ‘북반구’만의 핵전쟁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오랜 연구, 관찰을 통해, 지구상의 북반구와 남반구간의 공기는 특이한 대류현상으로 인해 서로 거의 섞이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전쟁으로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초토화되고 방사능 낙진이 떨어지더라도 그건 단지 북반구만의 문제가 될 뿐이라는 점을 알았기에 이런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미국의 엘리트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요 지하시설 및 군사기지들(핵전쟁 발발 이후 도피 목적)의 대부분이 호주 및 뉴질랜드 등지에 위치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1982년 당시 핵전쟁을 감행하려 했던 세력들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오니스트-볼셰비키 연합 세력이었고, 또 다른 주요 파벌인 록펠러 카르텔은 이에 반대했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이라고 해서 신세계질서 아젠다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상황에서는 전세가 역전되어, 핵전쟁이 벌어졌을 경우, 그들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수 밖에 없었기에 전략적인 반대를 했을 따름이었습니다. 1982년 4월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있었던 포클랜드[Falkland] 전쟁의 내막은, 사실상, 볼셰비키(영국의 대처정부 : 볼셰비키 통제하)와 록펠러 카르텔(아르헨티나는 록펠러 카르텔의 사주를 받고 대리전을 치룸) 사이의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의 실체는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 다툼이 아니었고, 이 섬에서 보다 남쪽, 남극 대륙 근처에 위치해 있는 남 조지아 섬[South Georgia Island]내에 있는 전략적 군사기지의 사수(볼셰비키)와 파괴(록펠러 카르텔)간의 싸움이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은 이 기지를 파괴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핵전쟁 개시의 카운트다운을 멈추게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영국은 미국과 더불어 시오니스트-볼셰비키 세력의 주요 근거지였습니다.
한편, 그 무렵 프랑스는 지스카르 데스텡 정부가 있을 때 까지만 해도 새롭게 부상한 소련내 반볼셰비키 러시아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1981년 사회당의 미테랑이 정권을 잡으면서 볼셰비키 세력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미국만을 국한해서 볼 때, 시오니스트, 볼셰비키, 그리고 록펠러 카르텔은 미정부 내에서 정당과 무관하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당시 상황에서 볼셰비키 세력의 주축은 닉슨, 와인버거(레이건 정부하 국방장관)등이었고, 록펠러 카르텔의 경우는, 헤이그 국무장관, 이와 더불어, 과거에도 늘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듯, 그들의 마스터마인드인 헨리 키신저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었습니다.
대체로 국방성엔 볼셰비키 세력이, 국무부엔 록펠러 세력이 강하며, 최근에 활약한 록펠러파로는 콜린 파월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한 때, 키신저는 ‘케네디 암살’이라는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닉슨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들 세력 간의 다툼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어지고 있으며, 또 동시에 이들 모두와 러시아인들 간의 전쟁도 진행 중인 것입니다.—역자]
……
왜 1982년도의 사건들이 발생했던 것일까요?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그 이유들이란 근본적으로 도덕적, 영적 성격의 문제들인 것입니다. 어떠한 불상사가 발생하든지 간에, 거기엔 사전에 미리 알아채는 것이 불가능한 결과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결국, 여러분들 대부분에게 있어서, 핵전쟁의 위협이란 그 발생 가능성에 있어서 오직 반정도의 믿음만을 가질 수 밖엔 없는 문제가 될 뿐입니다. 새로운 위기들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될 때 당신들은 걱정을 하고, 또 점차 강화되어져 가는 핵무기 경쟁에 관한 뉴스에 몸서리를 치곤 합니다.
하지만, 결국에 당신들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저 일상사로 되돌아가 자신들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당신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분명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는 없을거야.” 당신들은 당신들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삶이 인류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아니, 오늘날 이 문제는 보다 악화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고대에 노아[Noah]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마찬가지로 상상하기 힘든 재난에 대해서 미리 경고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습니다. 노아는 창조주와 창조의 법칙에 대한 완전한 무시와 경멸만을 보일 뿐인 사람들이 가득찬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이러한 영적, 도덕적 타락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거대한 죽음의 홍수가 곧 밀어닥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또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바대로, 자신의 이웃들에게도 경고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방주를 만드는 데에는 단지 수년이 걸렸던 것이 아니라 수십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내내 노아는 향후 닥치게 될 일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경고를 결코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생각에 거대한 홍수라는 것 자체가 납득할 수도 없고, 또 믿기지도 않는 일이었던 것이, 왜냐하면 그 전에 결코 그러한 일이 한번도 일어났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너무나 바빴고 또 저마다의 쾌락을 추구하기에 그저 여념이 없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끝없는 경고에 대해 늘 조소를 퍼부었습니다—바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그날까지 그랬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날,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한 그 때서야, 그들은 노아의 경고가 맞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그들은 멸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한 빗방울들을 느끼고 있습니까? 내 생각에 당신들은 이내 완전히 젖게 될 것 같습니다—당신들은 수영을 잘 합니까? 숨을 참고 얼마나 오랫동안 물 속에서 버틸 수 있습니까? 비는, 1982년, 보다 정확하게는 1982년 6월 25일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포클랜드 전쟁에 격분한 볼셰비키 세력의 역공으로 록펠러 카르텔의 헤이그가 미정부에서 축출됨:역자주]국무장관이 강요된 사임에 의해 �겨날 때부터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이 대중에게 알려진다면, 당신은 그 때 어디에 있겠습니까? 상황을 급반전시킬 드라마틱한 무언가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이는 오직 시간의 문제일 뿐입니다—게다가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당시, 펜타곤의 볼셰비키 전쟁 입안자들은 끝까지 1982년 9월 중순, 핵전쟁 개시라는 그들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계획한 전쟁 준비가 마지막 국면에 이르러서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그들은 계속 매달렸습니다. 중동에서 첫 핵폭발을 일으키려 했던 그들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 퍼센트였습니다.
예언자들이 남긴 말들의 진실성은 예언한 바가 실제로 발생할 때에만 입증됩니다—그런데 이는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단지 “타이밍”이 바뀐다거나, 또는 일련의 사건들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앞뒤 순서가 얼마간 바뀌거나 할 따름입니다. 다시 1982년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약 3년간에 걸쳐, 미국 정부 내부는 두 개의 대립하는 세력들 간의 치열한 권력다툼으로 갈갈이 찢겨져 있었습니다. 한 세력은 거대 석유 회사, 거대 기업들, 그리고 거대 은행들이 주축이 된 록펠러 카르텔[Rockefeller cartel]이었습니다. 다른 한 세력은 아메리칸 볼셰비키들[American Bolsheviks]이었는데, 이 세력 속에는 러시아로부터 쫓겨난 후 미국에서의 새 출발을 위해 날아든 구 소비에트 볼셰비키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시오니스트들[Zionists]은 미정부 내에서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정도에 머물렀으나, 그들의 노선만큼은 뚜렷하게 표명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만약 1982년에 핵전쟁을 일으키는데 실패할 경우, 적절한 타이밍에 중동 문제에 다시 몰두할 계획이었습니다.
사실 역사적인 원인들에 따라, 록펠러 그룹과 볼셰비키들은 바로 이 민감한 시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항상 서로 협동해 왔었습니다. 록펠러 제국이 발흥하게 된 기원은 약 1세기 이상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그 시절 영국과 유럽에 기반을 갖고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s]의 도움이 바로 그들의 모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볼셰비키파 역시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로스차일드 가문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러시아 혁명을 일으킬만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로스차일드 기원의 볼세비키주의는 바로 록펠러의 도움을 등에 업고 러시아로 주입되어졌습니다. 바로 그 때부터 록펠러 그룹과 볼셰비키 세력은 전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서로간의 비밀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었지만, 오늘날 이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반볼셰비키 통치 그룹이 마침내 러시아를 탈환하고, 그 곳에 머물던 대부분의 구 볼셰비키 세력들을 몽땅 내쫓아 버렸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몇 년에 걸쳐서 그들 대부분은 무리를 지어 미국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그들의 오래된 동맹이었던 록펠러 세력은 이들을 기꺼이 환영하였습니다. 또한 그 곳에 이미 오랫동안 기반을 잡고 있던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은 이 새로운 볼셰비키들에 의해 보다 세력이 강화되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79년 초반, 볼셰비키들은 그들의 록펠러 파트너를 속이고, 완전한 권력 장악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오니스트들도 마침내 이들과 더불어 권력의 핵심에 자리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볼셰비키의 미정부에 대한 권력 장악은 1979년 1월 26일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1908-1979, 정치인, 포드 정부 시절 부통령—역자주)의 살해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수개월에 걸쳐 두 그룹 사이에서는 베일에 가려진 암투가 발생했고, 그러는 동안 주요 인물들의 암살, 사직, 그리고 행방불명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들은 볼셰비키의 전통에 어울리게, 철저히 대중의 눈을 피한 채, 그림자 속에서만 행해졌습니다. 이러한 소요는 점점 더 확대되어 마침내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들 마저도 이 갈등 구조 속에 연루되게 되었습니다.
1979년 봄까지, 정보기관들 간의 전면전은 미국을, 특히 워싱턴을 완전한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갔습니다. 록펠러 카르텔 및 볼셰비키에 제각각 소속된 비밀요원들에 더하여, 러시아, 영국, 이스라엘에서 온 정보기관 요원들도 이 암투에 개입하였습니다. 저마다 이 위기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고자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였으며, 각각의 그룹은 최첨단의 정보 기술들, 적어도 21세기는 되어야 선보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기술들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새롭게 변화된 러시아도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물론 그들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왜냐하면 이들은 여러가지 다른 이유들로 미국을 경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사악한 침략국이 되었고, 만약 미국과 영국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전지구적 수준에서 이루어질 UN의 통치아래, 장기적으로 러시아인들이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게 될, 이 UN이라는 기구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들이 중동 지방의 이라크와 이라크를 둘러싼 지역 문제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꼴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전술한 모든 사건들은 굳게 닫혀진 문 뒤에서 발생한 일들로서, 승자들과 패자들이 뒤얽힌 이 치열한 공방전들은 모두 대중의 눈을 피해 벌어졌던 것입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전투는, 그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를 스스로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러한 다툼 속에서는 대중에 대한 호소나, 경찰에 대한 고발, 또는 법원에 대한 고소란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원과 경찰과 기타 모든 공립, 사립 기관들을 전부 통제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그들에게 보다 높은 기구에의 호소란 있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런 것 자체가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분쟁의 해결은 결국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처리될 뿐입니다 : 말하자면 무력. 누가 더 크고 강한 무기를 가졌느냐 하는 것만이 오직 답을 제시해 줄 뿐입니다. 정부안에서 발생하는 권력 투쟁, 국가들 간에 발생하는 전쟁의 속성이란 결국 이런 것입니다. 이러한 다툼이란, 바로 금지된 것이 없는 장,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장에서 발생하는 가장 원시적인 권력 투쟁일 뿐인 것입니다.
1979년은 이상한 사건들이 발생했던 해이기도 한데, 이 해에 소위 말하는 카터 행정부는 몇몇 사안들에 대해서 도저히 제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선적으로 카터 내각 전체가 집단으로 해고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 이 복제인간 카터[The entity Carter]는 캠프 데이비드에 가서 수주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를 염려하는 괴소문들이 폭풍처럼 워싱턴 정가를 휩쓸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베일에 쌓인 소요사태들이 만들어낸 직접적인 결과였고, 이러한 일들의 배경이 더러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지만, 대중은 아예 믿으려 들질 않았습니다. 모든 충격적인 사건, 사고들이 발생하고, 또 정리되어져 갔지만, 단 한 조각의 진실도 건드려진 적은 없었습니다.
1979년 말이 되자 마침내 먼지는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렇더라도 미국 정부내 영향력에 있어서 완전히 제거되거나 박탈되지는 않았습니다. 볼셰비키들은 미 정부의 지배적인 위치들을 장악했지만, 그들의 권력 기반은 오직 군사 영역에 한정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후 볼셰비키들은 러시아와 미국간의 전면적 핵전쟁이라는 아이디어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볼셰비키들에게 있어서—당신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너무나도 낯선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는 그저 그들의 세계지배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도구정도에 불과했고, 이러한 관점은 시오니스트들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볼셰비키들에 의한 이 은밀한 쿠데타가 발생하기 3년전까지만 해도, 록펠러 카르텔은 그들 자신들 역시 핵전쟁 쪽으로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군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록펠러 카르텔은 더 이상 핵전쟁을 치뤄낼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노선을 변경시켰던 것입니다. 사방팔방에서 록펠러 세력의 대변인들은 핵전쟁의 위협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의 대중 홍보[public relations] 기구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강력한 반핵 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거의 매일같이 이들은 핵전쟁의 공포감을 대중에게 불어넣었던 것입니다—우리가 이러한 기구들을 가졌었다는 게 어쩌면 행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편, 행정부 안에서도, 록펠러 카르텔은 조금씩 잃었던 권력을 회복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들은 볼셰비키들의 임박한 핵전쟁 계획을 조금씩 허물어뜨려 나갈려고 애썼습니다.
록펠러 카르텔 소속으로 미 행정부 내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 국무장관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레이건 행정부가 최초엔 록펠러 카르텔에 의해 형성되어졌었기에, 헤이그는 그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볼셰비키들은 록펠러 그룹이 그들의 입지를 공고화시키지 못하도록 응분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980년 11월 30일, “임시변통으로” 치뤄졌던 레이건 대통령 선출이 있은지 몇 주가 지난 다음, 볼셰비키들은 빠르게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후, 1981년 3월 30일,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대통령 암살 시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알릴 용도로, 모든 이야기들은 재빨리 전통적인 “고독한 암살자” 이론으로 꾸며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보다 신빙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마인드 컨트롤로 프로그램된 희생양 하나가, 무작위로 쏜 총을 손에 든 채, 그 자리에 있도록 배치되어졌던 것입니다—존 힝클리 주니어[John Hinckley, Jr.].
힝클리가 혼자 한 일이 아니며, 그가 대통령을 향해 총을 쏠 수도 없었다는 증거들은 무수히도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대수롭잖은 사안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거짓에 관한 것일지라도, 대중들에겐 그저 ‘보는 것이 믿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카메라 바로 옆에서, 힝클리는 손쉽게 보도 쪽으로 밀어 넘어뜨려졌으며, 그의 손에는 총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그런 후, 워싱턴의 배심원들은 “정신이상자”라는 이유로 힝클리가 무죄라고 판단함으로서 세상을 또 한차례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사건이 전개되어진 바대로, 총격 자체가 백악관 주인의 얼굴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그러나 최소한 당신이 이해하게 된 바대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통해 볼셰비키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는 있었습니다. 새로운 록펠러 카르텔쪽 정부 프로그램들의 추진력을 멈추게 만들어, 취약성을 띤 시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모두가 완전한 한 편의 연극이었으나, 당신들 모두는 이를 간파해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단 몇 주 후에, 볼셰비키들은 또 다시, 운전석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특히 펜타곤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새로운 정부와 함께 캐스퍼 와인버거[Caspar Weinberger]가 국방장관으로 지명되었는데, 그는 사실 록펠러 카르텔에 숨어든 볼셰비키 스파이였습니다. 레이건 암살 시도가 있는 후, 와인버거와 헤이그는 서로간의 목을 조르고 있는 형국이었는데, 왜냐하면 이 둘은 각각 권력 다툼의 양극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8권, “Blood and Ashes – Ye Sleeping Children of The Lie, Who Now Hears The Phoenix’ Cry?”, 제 25장, pp. 212-215.
시오니즘[Zionism]과 볼셰비즘[Bolshevism]
시오니즘과 볼셰비즘이라 불리는 두 가지 정치 세력간의 관계, 특히 198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 이들을 보다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이러한 정치적 그룹들이 만들어 내는 오늘날의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배경 지식이 필요합니다.
양쪽 모두는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동 속을 거쳐나와야만 했습니다. 양쪽은 모두 공통의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는 바로 자신들이 유태인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고, 이 두가지 정치 세력은 유태인 공동체를 자신들의 활동을 은닉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뿐입니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볼셰비키들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그들의 형제 세력인 시오니스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 목표는 온 세상을 완전히 지배[Absolute domination of the entire world]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행해졌던 볼셰비키와 록펠러 카르텔 간의 치열한 공방전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여러가지 불리한 여건들에도 불구하고, 록펠러 그룹은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의 완전한 통제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이렇게 확보된 금권을 재빨리 정치 권력으로까지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만약 록펠러 카르텔이 추구하는 바가 그들의 뜻대로 다 이루어졌다면, 미국은 ‘파시즘’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행동 패턴은 히틀러의 독일과 비슷했던 것입니다. 볼셰비키들이 추구했던 복안은 미국을 맑스주의적 독재체제로 몰고가는 것이었는데, 록펠러 카르텔은 이들과는 상반된 노선을 가지고 이에 경쟁하였던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거머 쥐었던 일을 상기해 보십시오. 히틀러는 거대 산업체들의 힘을 통해 권좌에 오를 수 있었는데, 바로 이러한 거대 산업체들을 비밀리에 통제했던 것은 바로 록펠러와 연계된 세력들이었습니다. 히틀러에 의해 세워진 정부 구조는 ‘파시즘’이었고, 그 속에서 거대 기업들은 정부의 파트너로서 특권을 향유하였습니다. 바로 조합 사회주의자들[The Corporate Socialists]은 그러한 패턴을 다시 한 번 더, 보다 강화된 형태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이번엔 미국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그들간의 연대로 형성된 ‘기업체 제국’이 너무나도 강력해져서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그리고 정부 내에 심어둔 그들의 요원들을 이용하여, 볼셰비키 세력에 반하여 그들의 독자 노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레이건 행정부는 내치 문제에 있어서 파시스트적 색채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반트러스트 법안들[Anti-trust laws]은 효과적으로 보류되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미 법무부 장관은 전면적인 기업간 인수 및 합병을 완전히 허락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행정부는 미국민 전부를 감옥에 감금할 수도 있을만큼의 많은 수용소들을 빠른 속도로 만들어 나갔고, 이는 곧 현실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이민자 통제소라는 명분을 내건 채, 점점 더 많은 감금 센터가 문을 열어 나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내 교도소들의 수용인원 초과라는 사회 문제는 거대한 감옥 시설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좋은 변명거리로 작용하였습니다. 언젠가 때가 이르게 되면, 이 모든 시설들은 그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되어질 것이었습니다—바로 강제 수용소들[Concentration Camps].
이 록펠러 조합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반대 세력들과의 대결, 그리고 마침내 이들을 압도해 버리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면서, 록펠러 세력들은 자신들이 궁극적으로는 볼셰비키들과 시오니스트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록펠러파들은 항상 자신들의 적들의 심리적 양상을 주의깊게 연구하는 습관을 가졌었고, 바로 이러한 볼셰비키/시오니스트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이들이 가진 아킬레스건—커다란 약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한 약점이란 바로 권력 자체의 속성과도 상관이 있었습니다. 볼셰비키들과 시오니스트들은 고삐가 느슨해질 때면 언제나 너무 멀리 나아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이들 그룹 내부의 주도적인 인물 한 사람 조차도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갖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권력을 가진 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수면에 보다 가까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취를 남겨왔고, 우리가 수면에 가까이 이르면 이를수록, 언젠가, 누군가가 이 자취를 추적하게 될 위험이 따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 자신들을 파멸시켜 버리는 날이 올지언정, 수면에 보다 가까이 이르면 이르게 될수록, 우리는 계속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그러 모아야만 할 것이다.”
록펠러 카르텔은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이제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시오니스트들은 전쟁 행위에 관한 모든 제한들을 간단하게 무시해 버렸고, 그러한 과정에서 세상 전체로부터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볼셰비키들은 점점 더 높이 높이 올라만 갔습니다. 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자칭 “큰 유태인들[Big Jews]”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비밀스럽게 사용하기 보다가는 교만하게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매체에서, 엔터테인먼트에서, 교육분야에서, 정부에서, 거의 전 분야에 걸쳐서 그들은 이러한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국 내 모든 권력적 지위에서, 유태인들은 그 구성비에 의해서 점점 더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유태 핏줄의 이웃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모든 분야를 통제하는 권력적 지위들은 바로 시오니스트들이 차지하고 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요직에 있는 다른 인종적 그룹의 인물들은 분명히 소수였습니다—일본계 미국인들, 중국계 미국인들, 흑인들, 그외의 어떤 인종 그룹이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유태인으로 눈길을 돌려 보면, 감히 다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인물들이 있었고, 결국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점차적으로 반유태주의적 감정이 생겨나게 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이는 물론 계획된 반응인 것입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이를 목도하게 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한 언급은 오직 자신들의 집안 거실에서나, 변두리 술집에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입에 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요컨대 다음과 같습니다 : 볼셰비키/시오니스트 세력들은 미국에서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손에 넣었으며, 이미 그들은 너무 멀리 나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써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록펠러 카르텔은 바로 이들의 이러한 실수를 호기로 삼아 이 세력들을 괴멸시켜 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미 행정부는 국내 문제에 있어서 점점 더 파시스트적인 정책을 취하도록 강요되어질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메아리가 점점 더 크고 광범위하게 퍼져 나갈 것이며, 그러한 상황에서, 과거 “유태인 문제”로 불리곤 했던, 동일 이슈가 재탄생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유태인들[Little Jews]”은 “지나치게 멀리 나갔다”는 이유로 이 “큰 유태인들[Big Jews]”을 비난했습니다. 독일에서 큰 유태인들은 모든 권력을 다 거머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문제는 하나도 없었지만, 결국은 그 때문에 대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수순을 통해서 독일 정부는 “유태인 이후”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이전에 유태인들은 사업을 지배했었고, 부동산들을 죄다 사들였었고, 독일인들을 박해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소유물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자들에 의해 자기자신들이 산산조각나 버리고만 이들 무리에게는 실로 서글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시오니스트들이여, 나는 당신들에게 한가지 상키시켜 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당신들은진정한 유태인들이 아닙니다!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9권, “Firestorm In Babylon—The Time Is Come”, 제 7장, pp. 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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