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병궁의 성약
이 책은 탁월한 영적인 시대가 될 보병궁 시대의 도래를 인류에게 예고했던 쌍어궁좌의 그리스도 '임마누엘 예수'에 관한 아주 특이한 기록이다.
저자는 다년간 영적인 명상과 수행을 통해, 아카식 레코드라 불리우는 행성 주위의 에너지 벨트에 고밀도의 진동수로 각인 된 모든 생명체의 경험과 사고에너지의 총체적인 저장고인 비셀 기록전시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고도의 진동수를 지닌 매우 정교한 이 우주의 근본 에테르에 자신의 진동수와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저자는 우주 도서관 아카샤의 영내로 옮겨져 절대 엄정한 시간 속에서, 곧 닥칠 보병궁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인류를 영적으로 진화시킬 사명을 띠고 육화한 쌍어궁 시대의 그리스도였던 예수의 사상과 사명, 진실들을 자신의 전 존재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한 획도 틀리지 않고 예수에 관한 고도의 에테르의 진동, 그 소리와 사상을 감광판 위에 기록해 낼 수 있었다.
갈리리인(人) 예수의 전 생애와, 모든 인간에게 개방되어 있는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하기까지의 인간적인 역정에 관한 가장 완전한 기록이다.
'인도의 편작'이라 불리우는 우도라카의 문하에서 전수받은 동양의 의학사상과 성지 나레스에서의 연회 참석. 인도, 티베트, 희랍, 이집트 등지에서 12세에서 30세까지의 구도 과정과 115세까지 생존했던 인도에서의 말년의 삶. 그 밝혀지지 않은 생애와 가르침의 공개.
갠지스강가에서의 가르침과 카스트제도에 대한 만민평등 사상의 설파.
이집트의 밀의 적 성 형제결사 단 에서의 훈육과 페르세퓰리스에서의 3인의 동방박사 멘구스테, 비지빠찌, 카스파아, 아시바나, 아폴로, 맛세노와 함께 한 세계의 7성현 종교회의 예수가 밝힌 기독교 왜곡의 주범 베드로와 사울(바울).
예수는 인도에서의 자기성찰과 깨달음의 유학과정을 거친 뒤 이집트의 밀의 적 형제교단에서 마침내 지상에서의 자신의 사명에 대한 깨달음을 밝히고, 인류의 미래뿐 아니라 곧 자신에게 벌어질 운명적인 사건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후세에 자신이 신의 아들로 둔갑됨은 물론 본래 이름 '임마누엘'이 '예수'로 바뀌어 불려 질 것까지 내다보았다.
본서가 나온 이후『예수의 잃어버린 세원(엘리자벳 C 프로펫트, 동국출판)』『인도에서의 예수(홀거 케르스텐, 고려원)』『불제자였던 예수(엘리자베스 클레어, 나무출판)』『법화경과 신약성서(민희식 저,불일 출판사)』『탈무드 임마누엘(유다 이스카리옷(가롯 유다), 홍진기획』『셈야제 이야기 1 (오다카 요시야, 대원출판)』등 다양한 연관 서적이 국내에 선을 보였다.
<우주인과의 만남, UFO 그 숨겨진 실체>를 방영한 바 있는 CTN방송에서는 "미 CIA, NASA, 전 KBG 등의 정보담당 고급관리들이 한 결 같이 주장하는 결론은 이제 소위 미국을 포함해 세계를 움직이는 고급 '프리메이슨(Free mason)'이나 '유태 신디케이트'와 같은 세계를 움직이는 장막 뒤의 세력은, 외계인의 존재를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일반에게 공개해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 다"는 내용을 내보냈다.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적인 연결고리를 가진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지구의 아버지 격 역할을 담당하면서 환생이라는 신비주의적 채널을 통해 지구문명의 통합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편 천량 성(개자리)으로 불리는 시리우스좌는, 본류 라이라족과 베가 라이라족이 충돌하는 사이 이들을 통합하고자 시도했던 베가 직녀성의 라이라인들이 최초로 이주해 온 지역 중의 하나인데, 레무리아 문명 시기를 비롯해 이집트·마야문명 등의 지구문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지구의 어머니 문명 격에 해당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라이라 성단에서 가장 발전한 사회가 에이펙트(Apex)행성인데, 이들이 새로운 시공 차원으로 전이해 나아간 것이 소위 회색인종으로 알려진 대머리에 곤충 눈의 형상인 제타 레티쿨리인(人)이다. 제타인(人)은 고대에 벌인 핵전쟁으로 인해 방사능 낙진을 피해 지하로 숨어들어 살아왔기 때문에 눈이 퉁방울처럼 발달해 외형상 곤충의 눈처럼 보이며, 귀와 코는 퇴화되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하에서 사는 생활 특성상 양성 생식의 형태를 포기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단성화 했으며, 단성생식의 유전자 복제를 통해서만 번식이 가능하다. 그들은 다시 옛날의 양성생식으로 복귀하기 위해 성(性)신경회로와 난소, 정자 등의 생명의 씨앗에 대한 생명공학의 차원에서 매년 5만 명씩의 지구인을 납치, 임신시키는 등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는 이 인종을 소재로 하되 1947년 비행접시의 기계적 결함으로 추락하여 미 육군에 의해 생포된 외계인 사건인 뉴멕시코주의 '로스웰(Roswell)사건'을 기본으로 해서 헐리우드가 특유의 상업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마야 예언과 예수 탄생의 비밀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생리를 마음대로 조절하며, 아기의 영혼이 부부 생활하는 자리에 찾아오면 '아가야, 지금은 네 때가 아니란다.' 하고 설득하여 보내기도 한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전해주는 정보에 의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미아즘(miasms)이라는 반입자(Antiparticle)가 있는데, 이것의 활성화로 인간은 은하인류처럼 반에테르체인 광자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미아즘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수도를 통해 차크라 안에 잠재된 영적 에너지 쿤달리니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쿤달리니의 활성화는 현재의 DNA염기구조 1쌍 2개를 6쌍 12개 DNA의 완전한 구조로 재구성하게 해주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마야인의 예언에서도 2012년 말이 새로운 인류역사의 분기점이 된다고 하듯이 외계인들의 메시지에 의하면 태양계가 포톤벨트(광자대)에 진입을 완료하는 2012년 말에 지구인은 누구나 미아즘의 활성화로 5차원 광자인간인 에테르체 신선(神仙)이 된다고 한다(그러나 이 시기는 지구인의 의식 수준 성취에 따라 다소 앞당겨지거나 미루어질 수 있다).
예수 임마누엘의 탄생은 지상의 마지막 플레이아데스 지도자인 플레요스(Plejos)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그는 그의 만년을 플레이아데스로 돌아가 보내고 싶어 했으며, 그 대신 창조의 가르침과 인생의 교훈을 수행할 예언자를 남기고 싶어 했다.
지상에는 지구를 통치할 어떠한 신(神)도 있지 않았으므로 플레요스는 플레이아데스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지구로 임마누엘의 영혼을 배정해 줄 것을 간청했으며, 이 간청은 허락되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경우, 그의 영혼은 너무 높은 수준으로 진화되어 있었으므로 평범한 지구 부모들의 육신을 빌려 올 수가 없었다. 따라서 먼저 그의 아버지는 임마누엘의 영혼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된 플레이아데스인으로 인연을 맺기로 결정되었다. 그 사람이 바로 그들 플레이아데스인의 8순위 계급인 천사 장(大天神 Arch Angel)직을 맡고 있던 가브리엘(Gabriel)이었다.
가브레엘의 정기(精氣)를 받아들여 수태할 지상의 여인으로는 마리아라 부르는 여인이 선택되었다. 그녀는 지상에 살고 있었던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조상인 고대 라이라 인들의 영혼 중의 하나였으며, 그녀의 유전학적 특질은 자신이 잉태할 영혼의 보다 높은 진화를 감당할 수 있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 임마누엘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마리아의 설득과 동의가 필요했으므로 그는 마리아가 훗날 성령잉태로 불리 워 진 아주 특별한 임마누엘 영혼의 탄생을 돕는 것이 인류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고, 마리아는 에테르체로 채널 링 되어 가브리엘의 요청에 동의한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는데, 그는 그녀의 임신소식에 깜짝 놀라 격노하여 약혼을 깨고 마리아에게서 떠나려 했다. 요셉의 심정을 이해한 가브리엘은 그에게도 채널링 하여 지구를 지배하는 신(神)이 이일을 주도하는 것이며, 이 사건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요셉은 신을 경외하는 사람인지라 마음을 가라앉혀 순순히 마리아와 결혼했다.
신의 보호에 길들여 진 지구인은 창조(Creation)와 신(God)을 구별할 능력이 없었다. 복잡한 은하세계의 다차원적 천계구조와, 지구인과 똑같은 혈육을 지닌 천계인간이 에테르체(體)로 비(非)물질화 할 수 있는 빛의 존재(신선神仙)임을 이해 못하는 요셉에게 가브리엘은 플레이아데스인들을 편의상 신(God)이라 했고, 후일 임마누엘은 신의 아들로 왜곡된다.
임마누엘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몇몇 경우에 그를 찾아와 만난 적이 있는 가브리엘이 그의 실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 가브리엘이 신(神)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가브레엘이 그 당시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영적 지도자들로부터 명령을 받들어 자신을 지구에 보내어 2월 3일에 태어나게 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2. 예수의 정체
<탈무드 임마누엘> 에서 임마누엘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가르침을 준 바 있다.
'나는 원래 아라하트 아테르사트(높이 진화된 영적인 수호자들의 그룹)의 영역에 있다가 이 세상으로 환생하였습니다. 나는 신(神)의 의지에 따라 예언자로서 이곳에 보내졌으며, 이는 내가 이 새 인종에게 새로운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라하트 아테르사트에 의해 예정되었고, 신에 의해 요구된 길을 가야만 하나니, 이는 신이 창조의 법칙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신의 뜻과 법칙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말 하노니, 나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영적 스승들이 계십니다. 그들은 창조에 가까운 정신 층에 있는 프탈레 영역에 계신 우리들의 아주 먼 조상들이십니다.'
'나는 수호천사인 가브리엘로부터 태어났으니 내가 어떻게 그(다윗)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까?'
'신과 하늘의 아들들은 쇠로 만든 기계를 타고 저 먼 우주로부터 온 다른 이종들입니다(에스겔서 우주선 묘사 및 에녹서 참고).'
'(빌라도에게)잘 들으시오. 영겁 전에 나는 한 가지 어려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더 높은 영역으로부터 환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언자가 되기 위해 하늘의 아들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운명과 또한 이 지구상에 인류를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존재인 신(神)의 요청에 의해 행해진 것입니다. 이생을 통해 얻은 지식에 더하여 나는 신의 배려 덕분으로 커다란 통찰과 올바른 지식을 배웠으니, 나는 그것을 신과 같이 거주하는 선생들로부터 40일 동안 밤낮으로 배웠습니다.'
임마누엘의 특별한 재능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어서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훗날 어떻게 왜곡되어질 것인지 미리 내다보았으며, 그의 아버지가 천계(天界)의 한 아들이었다는 사실 대신 자신이 신의 아들로 둔갑됨은 물론 본래의 이름 임마누엘이 예수(Jesus)로 바뀌어 불려 질 것까지 내다보았다(플레이아데스의 사명-대명출판, 1997)
그는 인도에서의 자기성찰과 깨달음의 유학과정을 거친 뒤 이집트의 신비교단인 밀의적 성(聖) 형제교단에서 마침내 지상에서의 자신의 사명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인류의 미래뿐 아니라 곧 자신에게 벌어질 운명적인 사건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일원으로 태어나 그가 걸어야 할인도(人道)의 한계적 규범이 그에게 운명적으로 짐 지워진 사명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예정된 운명을 바꾸는데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사실 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i Eli lama Sabachthani: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로 해석됨)'라 소리치고 임사상태에 빠졌는데, 이 말은 본래 티베트 라마 불교의 주문인 '엘리 엘리 라마 삼약 삼보리 다라니(Eli Eli lama Sammach Sam Bori Darabii:성자의 위대한 바른 지혜의 종지)'였다. 그가 가사상태에 빠지기 전 끝말이 흐려지는 바람에 성서 기록자들에게 주문 전체가 온전히 전해지지 않은 채 뜻이 왜곡된 것이 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임마누엘은 인도 티베트 유학 과정에서 체득한 라마불교 주문을 즐겨 암송했다는 사실이다.
미륵의 어원인 마이트레야(Maitreya)가 팔리(Pali)어로 메테야(Metteyya)인데, 이는 메시아(Messiah)와 동일한 의미로 고대의 태양신 미트라(Mitra)에 동일한 어원을 두고 있는 점도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아무튼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둠으로써 그의 지상에서의 외형상 사명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성경기록과는 달리 탈무드 임마누엘에 보면 임마누엘은 실제 죽은 것이 아니고 가사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은 그가 임사상태에 놓여 있음을 눈치 채고 죽은 줄 알고 있는 빌라도로 부터 시신을 인도 받아 장래에 자신의 안식처로 쓰기 위해 미리 예비해 둔 바 있는 바위를 깍아 만든 석벽동굴로 안치한다.
아리마대 요셉은 동굴 묘지를 조성할 때 앞에 공식적인 출입구 외에 뒤쪽에 별도의 비밀통로를 마련해 놓았다. 모친 마리아와 빌라도의 병사들은 동굴 앞 입구만 봉인하여 시신을 감시했지만 건축 당사자인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만이 아는 뒤쪽의 비밀 통로를 통해 인도에서 온 임마누엘의 친구들과 수시로 드나들며 고약과 약초로 삼일 밤낮을 지극 정성 치료하여 충분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시켰다.
임마누엘이 비밀 통로를 통해 떠나자 하늘에서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나타났다. 그 속에서 가브리엘이 나타나 병사들을 잠들게 하고, 굴 입구를 막았던 거대한 바위를 치웠다(플레이아데스의 사명(대원출판)에서는 가브리엘로 묘사되고 있지만 탈무드 임마누엘(홍진기획)에서는 수호천사로 묘사됨).
그는 임마누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로 하여금 임마누엘이 떠나가고 없는 텅 빈 무덤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들은 시내로 들어가 임마누엘이 살아 일어났다는 사실과 갈릴리 길가에서 그를 만나도록 그의 사도(제자)들에게 전해주라는 것과 그의 사도들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당부 받았다.
이때 막달라 마리아가 가브리엘의 손을 잡으려 하자 그는 "나를 건드리지 마시오. 나는 당신들과 다른 인류입니다. 내 옷은 이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나를 만지면 당신은 죽을 것이고, 불에 타서 소멸될 것입니다"라고 경고한다.
임마누엘은 그의 사도들 앞에 두 번 이상 모습을 드러냈다. 한 번은 최후의 만찬을 축하하기 위해 며칠 전 모인 바 있었던 바로 그 방에서였고, 또 한 번은 갈릴리로 가는 노상에서였다.
다음은 탈무드 임마누엘(홍진기획)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같은 날 저녁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城) 안. 아론의 집에 모였는데 그곳은 유월절 전날 임마누엘과 함께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은 곳이었다. 도마가 임마누엘의 옆구리와 두 손 두 발의 못 자국 상처를 확인한 바로 그 곳이다.
그는 갈릴리에서 다음과 같이 사실상 역사 속에서의 마지막 설법을 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그러고 나면 나는 떠날 것이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길이 나를 인도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곳에도 또한 이 인종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나의 사명(使命)이 나를 그들과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로 가는 길은 매우 멉니다.
사람들은 선과 악을 분별하고, 사물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야만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지혜로워지고 올바르게 되며, 법칙들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무엇이 실상이고 허상인지,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며 무가치한 것인지, 또한 무엇이 창조로부터 온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우주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창조와 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대들의 삶을 자연의 법칙과 일치가 되도록 만드십시오.
사랑을 사람들은 무지한 가운데 이 가르침을 온갖 방법과 형태로 왜곡하기 때문에, 가르침이 흩어져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2천 년 내로 그것은 다시 새롭게, 또 왜곡되지 않은 상태로 가르쳐질 것입니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되고 지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때는 바로 대변동을 예언하는 새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은 위대한 혁명가들일 것이라는 것을 별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선택된 몇 사람들이 나의 가르침을 새롭게 선포할 것이며 또한 큰 용기를 가지고 변조함이 없이 전파할 것입니다." 28
그들은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 종파의 일원들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나를 신(神)의 아들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 에세네파에 속해있지 않고 그들과 아무 관련도 없으며, 그들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았습니다.
에세네파가 나의 이름을 도용할 유일한 집단은 아니니, 많은 종파들이 내 이름을 내걸고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상한 종파들이 생겨나서 스스로를 좀 더 믿음성 있게 만들기 위해 나를 찬양하려고 할 것이니, 이는 그럼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노예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의 가르침이 변조됨이 없이 새롭게 전파될 때가 오려면 앞으로 2천년이 걸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신(神)을 <창조>라고 믿고 있으며, 또한 성서를 왜곡한 자들이 섞음질을 한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을 전능한 창조라고 믿을 때, 사람들은 창조의 진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神)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인 <은하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과 우리 인간과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으니, 그것은 신은 그의 의식과 지혜, 그리고 논리와 사랑에 있어서 우리보다도, 또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보다도 수천 배나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神)>이 곧 <창조>는 아닙니다.
나의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그녀는 외계에서 온 우리 조상들의 자손인 수호천사(가브리엘)로 말미암아 나를 가졌으며, 또한 내 지상의 아버지는 요셉이니, 그는 오직 나의 양아버지로서 행동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나를 예수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모두 그대들의 무지함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 이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통을 가지고도 담지 못할 정도로 흐르게 될 것이니, 이는 그대들이 무지한 탓입니다. 35
이 질서의 법칙들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반드시 준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들은 자신들과 인류 전체에게 죽음을 초래할 것입니다. 지구는 5억 정도까지의 인류를 먹이고 지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들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는, 2천 년 안으로 5억의 열 배가 넘는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게 될 것이며, 그러면 지구는 더 이상 그들을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기근과 재앙, 세계적인 전쟁과 전염병들이 지구를 뒤덮게 될 것이고, 인류는 자살행위를 저지르게 되어 불과 극소수만이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2천 년 말까지는 그 새 예언자가 변조되지 않은 내 가르침들을 작은 모임을 통해 밝힐 것입니다. 그 때에 인류는 5억의 열 배를 훨씬 더 넘을 것이므로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멸망하고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하여 하늘과 땅과 물에서 사용하기 위한 쇠로 만든 기계를 제작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철제 기계들을 사용하여 땅과 도시들을 가로질러 무서운 발사체들을 던질 것입니다. 발사체들에서는 불이 나와서 온 세계를 태울 것이니, 남아있는 것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중략…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될 날짜와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수호천사는 물론 신(神) 자신도 모르시며, 나 임마누엘 또한 모릅니다. 오직 가장 위대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창조의 법칙과 명령들 속에 있는 섭리와 운명만이 알고 있을 뿐입니다. 창조만이 모든 인류들의 까마득한 위에 홀로 우뚝 솟아 계시며, 또 그 혼자만이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3. 예수의 결혼
십자가 처형의 실상
예수는 처형되기 전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았을지 모른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 자손이 더 늘어났을 수도 있다. 예수가 정말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는가. 또 십자가 처형 자체가 사기였다는 증거는 있는가?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주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의 적(敵)은 예루살렘에서 상당 수준의 기반을 닦은 유대인들이다. 그러나 그런 계층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들은 로마를 개입시키지 않고도 자신들이 예수를 투석처형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로마 당국과 싸운 일도 없고, 그 법을 위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로마의 법과 절차에 따라 십자가 처형의 처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예수는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 당국에 도전하는 어떤 일을 했을 것이다.
예수가 로마의 비위를 어떻게 건드렸든 그의 십자가 처형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대목이 있다. 복음서에 적힌 대로 예수가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믿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
로마 시대의 십자가 처형은 매우 치밀한 절차에 따라 집행되었다. 판결을 내리면 사형수는 우선 매질을 당한다. 그러면 그는 많은 피를 흘리고 탈진된다. 사형수의 축 늘어진 양팔은 보통 가죽 끈으로 묶어나, 때로는 못질하여 무거운 나무 기둥에 묶어 그 나무를 목과 어깨 위에 지운다. 이 나무를 지고 사형수는 형장으로 끌려간다.
처형장에 이르면 사형수가 어깨에 매고 있는 나무를 거기 수직으로 서 있는 말뚝 또는 기둥에 옆으로 부착하여 십자가 모양을 만든 후 형을 집행한다. 이때 건강한 사람이면 그 상태로 하루 또는 이틀 동안 버틸 수 있다. 어떤 때는 사형수가 탈진, 또는 굶주림으로 숨이 끊어 질 때까지 일주일이나 걸릴 때도 있다. 또 발에 못을 박았을 때는 출혈로 죽는 수도 있다. 이때 사형수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다리나 무릎을 부러뜨리는데, 그건 사형수가 더 빨리 고통 없이 죽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예수의 처형 장면에 대해서는 <제 4복음서>에 한 목격자의 얘기가 적혀있다. 이에 따르면 예수의 발은 십자가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는 나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었다. 또 그의 다리는 부러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는 최소한 2∼3일을 족히 살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지 몇 시간 만에 사망한다. 복음서에는 심지어 빌라도마저 너무 빠른 죽음에 놀란 것으로 되어 있다. (마가복음 15장 44절)
그렇다면 예수의 사인(死因)은 무엇인가?
로마 군졸이 찌른 창의 상처 때문은 아니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창에 찔리기 전에 죽어 있었다. 또한 로마 군졸이 찌른 곳은 심장이 아니라 오른 쪽 가슴이었다.(요한복음 19장 33절)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예수가 탈진과 피로와 허약체질과 그리고 채찍질로 인한 후유증 등의 복합적 원인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예수가 그처럼 빨리 운명한 상황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물론 사람이란 대단찮은 타격으로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에는 뭔가 석연찮은 데가 있다.
<제 4복음서>에 의하면 예수 처형자들은 그의 죽음을 촉진키 위해 다리를 꺾을 려 고 했다. 하지만 우연(?)하게도 그 순간에 예수는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다리 꺾이는 일도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서 예수는 구약의 예언대로 죽어갈 수 있었다. 예수는 '메시아'의 재림을 주장하는 예언들의 방식대로 죽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개선하기 위해 나귀를 빌린 일이라든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광경 등은 모두 구약의 예언대로다.
예수가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가장 적절한 순간에 운명했다는 건 아무래도 의심이 간다.
<제 4복음>에 의하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목이 마르다"는 말을 한다. 그러자 식초에 적신 스폰지가 주어진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식초(또는 시어진 포도주)는 일시적 자극제로서 그 효과는 소금과는 다르다. 그것은 채찍을 맞고 실신한 노예들을 되살아나게 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상처를 입고 기진맥진한 사람에게는 잠깐의 식초 냄새가 원기를 회복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경우에는 반대의 효과가 나타났다. 그는 식초 냄새를 맡자마자 최후의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식초 냄새를 맡고 나타났다는 이 같은 반응은 생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예수가 보인 반응은 식초가 아니라 일종의 마취제를 맡았을 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중동에서는 그런 마취약이 널리 사용되었다. 하지만 왜 마취약을 주었을까? 그것이 십자가 처형의 여러 가지 요건 상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런 약을 줄 필요가 없다. 그건 어쩌면 예수의 생명을 구하여 예언을 실행토록 하려는 하나의 책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처형에 이와 같은 책략이 게재되었음을 암시하는 또 다른 모순적 상황도 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해골의 장소>라는 골고다에서 처형되었다. 후세의 전설들은 골고다란 곳이 해골 모양의 불모의 언덕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제 4복음서>가 정확하게 적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요한복음 19장 41절)
그렇다면 예수는 해골 모양의 언덕이나, 공중 사형장에서 처형되지 않았다. 그는 개인 무덤이 있는 정원 가까운 장소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마태복음> 27장 26절에 의하면 이 무덤과 정원은 아리마테아의 요셉의 개인 재산이었다. 네 복음서에 의하면 요셉은 부자였고, 예수의 비밀 제자였다.
민간 전설에 의하면 십자가 처형은 원래 수천 명이 보는 가운데 집행된 대규모 공중 행사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표현한다. <마태·마가·누가복음>에 의하면 십자가 처형은 예수의 아는 자들과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자들에 의해 목격되었다.
(누가복음 23장 48절) 그렇다면 예수의 처형은 공중 행사가 아니라 사적(私的) 장소에서 이루어진 사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몇몇 현대 학자들은 실제의 처형장소가 겟세마네의 정원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겟세마네가 예수의 비밀 제자의 땅이었다면, 예수가 처형되기 전 어째서 그런 장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건 말하자면 면밀하게 계획된 하나의 종교의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장을 본 목격자도 몇 사람밖에 없다. 약간의 거리를 떨어져서 그 광경을 본 대중들은 그것이 그냥 십자가 처형이려니 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며, 누가 처형을 받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연극을 하는 데는 빌라도 또는 로마 행정당국의 고위층의 묵인 내지 협력이 있어야 했을 것이고, 또한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빌라도는 잔혹하고 포악한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부패되고 뇌물에 약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빌라도는 복음서에 표현된 것과는 달리 상당한 뇌물이나, 더 이상 정치적 선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과 교환하여 예수를 살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동기가 무엇이든 빌라도는 예수 처형에 깊이 관련됐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는 <유대의 왕>이라는 예수의 주장을 인정했다. 그는 또 예수가 예상보다 빨리 죽었다는 말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혹은 놀라는 척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예수의 시체를 아리마테아의 요셉에게 돌려주도록 허용한 일이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시체는 매장될 수 없었다. 군인들이 처형장을 감시하면서 가족이나 친지가 시체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런 규정을 깨고 예수의 시체를 요셉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빌라도가 어떤 음모에 협력했다는 얘기이다.
영어판 <마가복음>에는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되어 있다. 빌라도는 예수가 죽었다는 보고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백부장을 불러 사실을 확인한 다음 요셉의 요구대로 예수의 시체를 내주었다. 이 얘기는 얼핏 보기에는 사실 같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된 <마가복음>에 보면 그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르면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을 때 "소마(SOMA)"란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살아있는 육신을 부를 때만 쓰이는 단어이다. 그런데 빌라도는 요셉의 요구를 수락하고 시체를 돌려주라고 할 때 <시체>를 뜻하는 "프토마(PTOMA)"란 말을 사용했다. 이렇게 보면 요셉은 분명히 살아 있는 육신을 달라고 했고, 빌라도는 자기 생각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시체를 되돌려주도록 명령했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시체의 매장을 금지한 규정을 고려할 때 요셉이 시체를 되돌려 받았다는 자체도 그 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무슨 근거로 그는 시체를 받을 수 있었는가? 만약 그가 비밀 제자였다면 그는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는 시체를 요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빌라도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거나 혹은 그 과정에 뭔가 음모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요셉이 다짜고짜 예수의 시체를 요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셉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복음서에는 그가 예수의 비밀 제자이고 산헤드린(로마 당국의 감독 하에 있는 유대사회 통치기구)에 속해 있다고만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요셉이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이 사실은 빌라도를 상대한 그의 태도나 그가 묘지까지 갖춘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로도 입증이 된다.
중세의 전설들에는 요셉이 성배의 관리자로 그려져 있다. 그 후의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어떤 면으로든 예수와 예수 가족의 혈통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에게 예수의 시체를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제공해 준다. 그렇지 않고는 빌라도가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의 시신을 제 3자에게 주었을 까닭이 없다.
요셉이 예수의 친척이라면 빌라도는 뇌물을 받고 그에게 시체를 줄만도 하다. 만약 부자이고 산헤드린 위원인 요셉이 예수의 혈족이었다면 예수의 귀족적 계보에 대한 내력도 설명이 된다. 그리고 그가 성배의 관리자라는 얘기도 더욱 그럴 듯 해진다
예수의 결혼
시나리오
예수가 신권제왕(귀족이며 합법적 왕위 계승권자)이었다는 건 갈수록 분명해진다. 그는 합법적 유산을 찾기 위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 자신은 어쩌면 로마 제국에 대한 반대세력의 온상지 갈릴리 태생이었을 것이다.
그는 또한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 어느 곳에서나 귀족, 부자, 권력자 등 각계에 걸쳐 많은 지지자를 포섭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지지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산헤드린의 강력한 위원이자 그의 혈족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베다니에는 그의 아내와 가족이 있었을지 모른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 바로 거기서 살았다. 거기서 그는 그의 불가사의한 숭배의식의 본거지를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 의식을 거행하여 추종자들을 규합했을 것이다.
그의 존재는 일부 계층, 특히 로마 당국의 비호를 받는 유대인 부유층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반대에 부딪쳤을 것이다.
이 계층의 하나 또는 둘 모두가 어쩌면 예수의 왕위 계승권 실현 노력을 저지하려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제거 작전에서 희망한 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은 예수가 고위층에 친구들을 확보하고 있었고, 이 친구들이 빌라도와의 은밀한 공모 하에 예수에 대한 가짜 처형 극을 연출했다. 그 장소로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개인 정원을 택했다.
일반인들이 먼 거리에서 보는 가운데 십자가 처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십자가엔 예수 대신 다른 사람이 못 박혔다. 그러니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해가 넘어가자 더욱 시계(視界)가 나빠진 가운데 몸뚱이 하나가 인근 무덤으로 옮겨졌고, 2∼3일 후에 기적적으로 사라졌다.
시나리오가 정확하다면 예수는 어디로 갔는가?
일부 회교 및 인도 전설에 따르면 예수는 훨씬 늙어서 동방(어쩌면 캐시미르)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한편 호주의 한 기자에 의하면 예수는 기원 74년 마사다 요새가 로마에 함락되었을 때 거기서 80세에 죽었다고도 한다.
예수의 결혼
교회가 금지한 비밀
기독교의 가르침이란 것이 수 세기를 전해내려 오는 동안 삭제되고 편집, 수정되어 특정 이익집단(이 일에 중요한 이해가 걸려 있는 단체와 개인들)의 필요에 맞게 예수와 그 시대를 그려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이익집단을 곤란케 만드는 모든 것(예를 들면 <비밀복음> <마가복음>)들은 신약에서 삭제되었다. 너무 많이 삭제되는 바람에 일종의 공백마저 생겼다. 이 공백을 상상이 메워 정당화되고 또 불가결해졌다.
만일 예수가 정당한 왕위 계승권자라면 그가 적어도 초기에는 소수의 민중(갈릴리에서 온 가족, 그 자신의 귀족 계층, 유데아와 예루살렘의 소수 고관)으로 부터 지지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지원으로는 왕위를 계승하는 데는 여건이 충분치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계층에서 더 많은 추종세력을 규합해야 했을 것이다.
다수의 추종세력을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 십중팔구 사람들의 충성과 지지를 끌어내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방법이 적합했을 것인데 아마도 매우 고상하고, 불타는 이상주의를 갖춘 훌륭한 신앙의 형태로 선포되었을 것이다.
예수는 바로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메시지를 선포했다. 가난한 사람들, 피해를 입는 사람들, 약탈당한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에게 그는 희망을 주었으며, 동시에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색채도 띠고 있었고, 그 메시지는 언제나 가난한 피압박 민중 속에서 메아리쳤기 때문에 수많은 추종자들을 규합할 수 있었다.
복음서를 통해 볼 때 예수의 메시지는 완전히 새로운 것도, 유별난 것도 아니다. 예수 자신이 바리새인(人)이어서 그의 가르침에 여러 가지 바리새 적 교리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예수 자신은 무한히 카리스마적 인물이었다. 그는 어쩌면 병의 치료나 기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것이며, 신기하고 생생한 우화의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전파하는 천부의 재능을 가졌었다.
예수가 예루살렘 입성 때 그의 가족과 귀족, 부자, 그 밖의 영향력 있는 핵심 지지자들이 이미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예수 왕국을 건설한다는 정치적 목적에 있어서는 이해가 일치되었으나 그 동기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따라서 그 과업이 실패하자 메시지를 중시하는 세력과 왕통을 찾으려는 세력 간의 불안한 동맹은 붕괴되었으며, 조직의 붕괴와 학살에 직면한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갔다.
왕통 복위론 자 들은 그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보존하려는 혈통을 위해 망명을 작정했다. 그러나 메시지에 매혹된 사람들에겐 혈통의 장래 같은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눈엔 혈통은 2차적 문제였으며 그들에게 꿈과 약속을 심어준 메시지의 전파가 목전의 과제였다.
기독교는 한 마디로 이들 메시지 신봉자들의 덕분에 수많은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른 셈이다. 성 바오로 때 <메시지>는 이미 집약되었으며, 종교의 기본적 골격이 완성되었다.
기독교는 1차적으로 로마인 또는 로마 화 된 청중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신(神)으로 모시는 데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시저(케사르)를 신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도 신격화돼야 했다.
기독교가 팔레스타인에서 시리아, 아시아, 그리스, 이집트, 로마, 서유럽에 이르기까지 성공리에 전파되기까지는 그 지역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끔 만들어져야 했으며, 기존 신(神)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력, 장엄함, 기적의 시행 등 여러 분야에서 타 종교와 필적할 만해야 했다.
시리아, 포에네시아, 이집트 등의 '메시아'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현신 할 신(神)이 돼야 했으며, <부활>의 중요성을 띠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 이유는 예수를 타무스, 아도니스, 아티스오시리스 같은 신(神)과 동격의 자리에 올려놓기 위함이었다.
똑같은 이유로 예수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얘기도 널리 선포되었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극복하는 부활절도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봄 의식에 때를 맞추었다.
하나님의 종교를 전파하는 필요성에 밀려 현실의 왕족 혈통과 그에 따른 정치적 왕조적 요인들은 2차적 일로 밀려났다. 그런 방향으로의 관심을 더욱 깊게 하기 위해 예수의 경력에서 정치적이고 왕조적인 요인들은 제거되었다. 또한 제알롯과 에세네 교리에 관한 흔적도 철저히 말살되었다. 신(神)은 애당초 정치적 음모 따위에는 관련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결국 복음서에는 신화 같은 얘기, 로마 점령하의 팔레스타인에서 우연히 일어난 전설 같은 내용만이 수록되었다.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 <메시지>신봉자들에게는 이들 예수 후손의 존재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 존재가 언젠가는 상당한 위험 요인으로 등장할지 몰랐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증언자인 그 가족은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진 진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작된 신화쯤은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
예수의 혈통에 관한 무서운 비밀을 보존하기 위해, <메시지 신봉자>들과 새로운 신화의 포교자 들은 유대인을 책망하고 로마인을 면책해줌으로써 사실상 이중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들은 신화와 <메시지>를 로마 청중에게 솔깃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가족의 신뢰를 헐뜯었다. 그래서 그들이 조장한 반 유대 감정은 갈수록 깊어갔다.
로마 청중의 비위를 맞추고 예수를 신격화하며 유대인을 속죄양으로 이용함으로써 뒤에 정통 기독교가 된 새 신화의 전파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정교의 입장은 2세기에, 특히 기원 180년 경리용의 주교 이레나에우스에 의해 스스로의 터전을 확정적으로 굳혔다.
초기 기독교에서 옆길로 간 여러 가지 형태의 교파 가운데 그노시스파가 있다. 이 교파는 이레나에우스의 분노를 가장 극심하게 자아냈다. 그노시스 교리는 개인적 경험, 개인과 신과의 연합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레나에우스가 볼 때 이 교리는 사제와 주교들의 권위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종교의 일체성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그노시스 교리를 탄압했다.
이레나에우스는 개인적 경험과 그노시스 교리에 대항하여 사도적 기반과 계승에 입각한 단일 <카톨릭>(우주적인) 교회를 주장했다.
그는 모든 자료를 동원하여 더러는 빼고 더러는 삽입하면서 신약의 기초가 된 성전을 최초로 저술하였다. 그 후 콘스탄틴 치하에서 로마 제국은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왕국이 되었다.
콘스탄틴은 「로마 제국을 기독교 제국으로 바꾼」사람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실제로 콘스탄틴은 그와 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
콘스탄틴의「개종」은 기독교가 아니라 이교인 것 같다. 당시 그의 군대를 수행한 목격자에 의하면 그가 본 환영은 태양신이었다.
콘스탄틴은 계시를 받기 전「솔 인빅투스(보이지 않는 태양)」숭배에 가입했다는 증거가 있다. 로마 원로원은 원형경기장에 전쟁승리의 아치를 세웠다. 그 아치에는 <콘스탄틴의 승리는「신의 덕택」>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그 신은 예수가 아니며 이교도들이 받드는 태양신이었다.
전설과는 달리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하지는 않았다. 콘스탄틴 자신은 전 생애를 통해 이 이교의 사제로 봉사했다. 그의 왕국은 「태양 제국」으로 불려 졌으며, 「솔 인빅투스」라는 제국의 깃발과 동전 등 도처에 그 흔적을 남겼다. 그는 임종의 침상에 누워 세례를 받았는데, 그때는 그의 상태가 너무 쇠잔하여 세례에 대해 「항의」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전해진다. 또 한 군대에 '그리스도' 문장을 휴대케 한 것도 그가 아니었다. 폼페이의 무덤에서 이 문장이 새겨진 명각이 나왔는데, 그건 2세기 반 전에 만들어 진 것이었다.
솔 인빅투스교의 가장 중요한 날은 12월 25일 이었다. 이 날은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기점으로 <태양의 생일>로 기념되었다. 이런 점에서도 기독교는 정부 및 기존 국교와 제휴한 셈이다.
기원 303년 우상숭배자인 디오클레티아 황제는 모든 기독교 서적을 파괴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독교 서적들, 특히 로마에 있던 서적들은 거의 없어졌다. 콘스탄틴이 새로운 성경의 작성을 지시하자 정교 관계자들은 그들의 교리에 맞게 성경 내용을 수정·편집·가필했다.
신약 내용에 결정적 변경이 생기고 예수가 지금과 같은 별난 지위를 갖게 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콘스탄틴이 취한 조처의 중요성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 초기의 신약성서 5천부 가운데 4세기 전에 나온 건 한 권도 없다. 오늘날 존재하는 신약은 본질적으로 4세기 때 편집자와 저자들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교의 관리자인 동시에 이른바 <메시지 신봉자>들로서 예수의 실상에 대해 숨겨야 할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다
예수의 결혼
베드로복음서
<베드로복음서>의 사본은 1886년 나일 상류의 계곡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는 기원 180년 안티오치 주교가 만든 것인데, 이 복음서에 의하면 아리마테아의 요셉은 본디오 빌라도의 가까운 친구라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둘러싼 공모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 복음서는 또한 예수가 묻힌 무덤은 <요셉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마지막 말도 놀랍다. <주여,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기예수 복음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경외 성서는 <아기예수 복음서>이다. 이것은 2세기 또는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예수는 탁월하지만 다분히 인간적인 어린이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 나오는 예수는 너무 인간적이어서 난폭하고 무례하며, 충동적으로 화를 내는가 하면 자신의 권능을 무책임하게 행사한다. 한번은 예수가 그를 거역하는 아이를 때려 죽게 했는가 하면 또 한 번은 귀족 스승을 구타한 일도 있었다.
<아기예수 성서>에는 어린 예수의 말썽스런 행동 외에도 매우 흥미롭고 어쩌면 중요한 한 대목이 있다. 예수가 할례를 받았을 때 그의 몸에서 떼어낸 포피는 한 늙은 여자가 가져갔다. 이 여자는 그것을 향유로 담을 때 쓰는 설화석고(雪花石膏)에 보관했다. 그런데 마리아는 바로 그 통에서 향유를 꺼내 예수의 머리와 발에 발라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부모가 아들의 소중한 살점을 맨 처음 요구한 늙은 여자에게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따라서 그 늙은 여자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예수의 부모님과 막역한 처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막달라가 그 별난 물건 혹은 그것을 담은 용기를 보관하고 있었다는 얘기는 그녀와 늙은 여자 간의 관계를 암시한다.
예수의 결혼
제알롯(열광신자)
예수와 제알롯의 관계가 어떤 것이든 예수가 별도의 죄인으로서 처형되었다는 데는 의문이 없다.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두 사람을 '레스타이'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로마인들이 제알롯을 호칭하는 말이다. 예수 자신이 제알롯 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는 복음서의 여러 대목에서 제알롯과 유사한 도전적 호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한 대목에서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누가복음>에서 그는 아직 칼을 갖지 않은 제자들에게 하나씩 사라고 지시한다. (누가 복음 22장 36절)
<제 4복음서>에는 예수가 체포되었을 때 시몬 베드로가 칼을 휴대하고 다니는 광경이 나온다. 이런 일들은 온화하고 평화주의적인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평화로 사랑하는 구세주가 어찌하여 제자의 무장을 승인할 수 있는가?
예수와 바라바의 관계를 말해주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 그런데 바라바도 '레스타이'로 표현되어 있다. 야고보·요한·시몬 베드로 등도 모두 제알롯에 직접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그 동정자임을 암시하는 자취를 가지고 있다. 현대학자들에 의하면 유다 이스카리오트란 이름은 <유다 시카리>에서 유래했다는데, <시카리>는 제알롯의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쓸 수 있는 호칭이다. 사실 <시카리>는 제알롯 조직 내에서 암살을 전담한 정예 신분이었다. 시몬이란 제자를 살펴보자.
그리스어(語)로 된 <마가복음>에서는 시몬이 '카나나이오스'로 불린다. 이것은 제알롯의 말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야고보 왕의 성서에서는 '카나나이오스'가 오역되어 시몬은 <가나 사람 시몬>으로 나온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이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몬은 제알롯으로 확인되어 있으며, 심지어 <야고보 왕 성서>에서는 그를 <제알롯의 시몬>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예수의 추종자 가운데는 최소한 한 사람의 제알롯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예수의 결혼
그노시스의 저술
1945년 12월 나일 강 상류의 나그함마디 마을에서 땅을 파던 한 농부가 붉은 질그릇 항아리 하나를 발굴했다. 거기에는 13개의 두루마리로 된 사본이 가죽에 묶여 들어 있었다. 그 농부와 가족들은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사본의 일부를 불쏘시개로 사용했다. 그러나 남은 것들이 드디어 전문가들의 눈에 띄었다. 그 중 하나가 이집트에서 유출되어 암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C.G.융 재단이 사들인 그 중의 한 사본이 오늘날 그 유명한 <토마스(도마) 복음서>다.
한 편 이집트 정부는 1952년 남은 사본들을 국유화했다.
국제적인 전문가 팀이 그 사본들을 복사하고 번역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은 1961년에 와서 였다.
1972년 최초의 사진 복사판이 나왔다. 그리고 1977년에는 사본 전집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나그함마디 두루마리는 성경 사본 집 으로서 본질적으로 그노시스 성격을 띠고 있으며, 4세기 후반 또는 5세기 초 때의 것으로 보인다.
이 두루마리들은 사본이며 그 원본은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일부, 예를 들면 <토마스복음>, <진리복음>, <이집트복음> 같은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레나에우스, 오리젠 같은 초기 교회 창시자들에 의해 기재되었다.
현대 학자들은 그 사본의 일부가 늦어도 기원 1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나그함마디 선집은 현재의 복음서와 맞먹는 권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문헌들은 특이한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다.
첫째 이 문서들은 로마 정교회의 검열을 받지 않았다.
둘째 이것들은 로마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로마인의 비위에 맞게 왜곡되거나 편집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서들은 직접적인 소스 또는 목격자의 진술에 근거하고 있다. 거기엔 성지에서 피난 온 유대인의 진술도 담겼을 것이고 예수를 잘 아는 사람, 또는 측근의 얘기도 수록됐을 것이다.
현대의 복음서에는 전술한 바와 같은 내용이 없다.
이들 두루마리에는 정교회나 <메시지 신봉자>들이 보면 경악할 내용들이 많이 적혀 있다. 예를 들면 연대가 적히지 않은 한 사본에는 바실리데스 이단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은 예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즉 대리자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뒤 현장에서 도망친 예수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들이 계획한 대로 굴복하지 않았다.......그리고 난 실제로 죽지 않았고 죽는 척했다. 그들에게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한 나의 죽음은 실은 그들의 과오와 무지 속에서 그들 자신에게 일어났다.......쓸개즙과 식초를 마신 건 다른 사람, 그들의 아버지였다. 나는 아니었다.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진 건 다른 사람, 시몬이었다. 그들이 면류관을 씌운 건 다른 사람이었다.......그리고 나는 그들의 무지를 비웃고 있었다."
나그함마디 두루마리의 다른 사본에는 베드로와 막달라가 불화에 관한 목격자 얘기가 적혀 있다. 그와 같은 불화는 <메시지 신봉자>와 <혈통 신봉자>들 간의 내분을 반영하는 듯하다.
<마리아복음>에서 베드로는 막달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이여, 우리는 구세주께서 다른 여자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걸 알고 있다. 당신이 기억하는 구세주의 말을 얘기하라---그건 당신은 알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잠시 후 베드로는 격분하여 다른 제자들에게 묻는다.
"주께서 한 여자와 은밀히 얘기하고 우리에겐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인가? 우리 모두가 그 여자를 향하여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주께서는 우리보다 그 여자를 더 좋아했는가?"
다시 잠시 후 한 제자가 대답한다.
"확실히 주께서는 그 여자를 매우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그는 우리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했다."
<필립복음서>에는 이 불화의 원인이 확실히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거기엔 신부방의 이미지를 거듭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주는 만사를 행하셨다. 세례도, 성유식도, 성찬식도, 구원도, 그리고 신부방도......"
얼핏 보기에 신부 방은 뭔가를 상징적으로 또는 풍자적으로 말한 것 같다. <필립복음서>는 이에 대해 더욱 명백히 하고 있다.
"언제나 주와 함께 걸어 다니는 세 사람이 있었다. 주의 어머니 마리아, 그녀의 동생, 그리고 주의 친구라는 막달라 이렇게 셋이다."
한 학자에 의하면 <친구>라는 말은 <배우자>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립복음서>의 다음 구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만하다.
"그런데 구세주의 친구는 마리아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제자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했고 툭하면 그 여자의 입에 키스하곤 했다."
다른 제자들은 언짢아져서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그에게 말했다.
"왜 당신은 우리 모두들 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하나요?"
구세주가 그들에게 대답했다.
"왜 내가 그 여자처럼 너희를 사랑하지 않을까?"
<필립복음서>는 이에 대해 더욱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나체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사랑하지도 말라. 그것을 두려워하면 그것이 너희를 지배할 것이요, 그것을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를 삼켜 파멸시킬 것이다."
다른 구절에서 이 대목은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참으로 위대한 건 결혼의 신비이다. 그게 없이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세상의 존재는 사람에게 달렸고 사람의 존재는 결혼에 달렸다."
그리고 이 복음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람의 아들이 있고 사람의 아들의 아들이 있다. 주는 사람의 아들이고 사람의 아들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을 통해 창조된 자이다
예수의 결혼
마니 교(敎)
나그함마디 두루마리만을 근거로 하더라도 예수의 직계혈통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또한 십자가에 누군가가 대신 못 박혔다는 것, 베드로와 막달라 사이에는 끊임없이 불화가 있었다는 것, 막달라와 예수가 결혼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 등의 주장은 아무리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냥 묵과해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진실은 역사이지 신학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시대에도 역사란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단 종교들은 대부분이 본질적으로 그노시스적이거나 그노시스적 영향을 받았고, 그들 대부분은 예수가 자연적인 잉태의 과정을 통해 태어난 인간이며, 신성한 영감을 받았을지는 모르나 본질적으로는 결코 신성하지 않은 예언자라고 본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단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과격했던 것은 마니키아니즘(마니 敎)이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초기 조로아스터(짜라투스트라의 영어명. BC 7C 말에서 BC 6C 초, 20살 경에 종교생활에 들어가서 30살 경에 아후라 마즈다신(神)의 계시를 받고 새로운 종교 조로아스터교[배화교拜火敎]를 창시하였다고 한다.)교와 미드래스교 전통이 가미된 그노시스 기독교였다. 그것은 페르시아 왕가와 연결이 되는 어떤 바그다드 근처의 가정에서 서기 214년에 태어난 마니라는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다.
젊은 시절 마니는 그의 아버지를 통해 무엇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어떤 신비적 교단(그노시스 파일 가능성이 있다)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교단은 금욕과 독신생활을 중요 시 했으며, 흰 도포를 착용했다.
서기 240년경 마니는 자신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예수와 마찬가지로 영혼을 통한 치료와 구마(驅魔)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새로운 예수>라고 선언했으며, 심지어는 그가 동정녀로부터 태어났다고 까지 주장했다. 동정녀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그 당시에 있어 신성(神性)의 필요조건이었다. 그는 <구세주>, <사도>, <계도 자>, <주(主)>, <죽은 자를 살리는 분>, <항해사>, <조타수> 등으로도 알려졌었다. 그런데 마지막의 명칭 2개, 즉 <항해사>와 <조타수>는 특히 암시적이다. 그것은 시온 소수도원의 단장들이 공식적인 직함 <항해사>(Nautonnier : 노토니에르)와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후 아랍의 역사가들에 의하면, 마니는 많은 책을 펴냈었고, 그 책을 통해 자신이, 예수가 애매하게만 언급했던 비밀들을 털어놓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짜라투스트라, 석가, 그리고 예수를 자신의 선구자로 보았으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본질적으로 똑같은 출처로부터 똑같은 개명(開明)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가르침은 위압적이면서도 정교한 우주론적 체계를 갖춘 그노시스적 2원론으로 이루어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빛과 어둠의 우주적 충돌이었으며, 그 두 가지 반대된 본질이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곳은 인간의 영혼이었다. 그리고 마니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신 죽었다고 주장했다.
서기 276년에 그는 왕명에 의해 투옥되었으며, 껍질을 벗기고 사지를 절단하여 죽이는 참형을 당했다. 부활을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그의 절단 된 시체는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러나 그의 순교로 인해 그의 가르침은 더욱 기세를 얻었고, 놀라운 속도로 마니키아니즘은 기독교 세계에 퍼졌다. 그것을 저지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살아남았고, 그후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현재에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오게 되었다
예수의 결혼
예수의 후손들
예수의 아내와 자식들은(예수는 16세나 17세부터 그가 죽었다는 시기까지 많은 아이를 잉태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성지를 도망쳐 나온 후 프랑스 남부에 피신했고, 그곳의 유대인 사회 내에서 혈통을 보존했다.
5세기 중에 이 혈통은 프랑크족 왕가와 결혼을 하게 되었던 것 같으며, 그렇게 해서 메로빙 왕조가 탄생했다.
서기 496년 교회는 메로빙 왕조와 협정을 맺어 메로빙 혈통을 영원히 후원할 것을 약속했는데, 이때 교회는 메로빙 혈통의 유래를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 교회는 다고베르 2세의 암살을 공모하고, 메로빙 혈통을 배반함으로써 합리화시킬 수도, 씻어버릴 수도 없는 죄를 범하게 되었다.
교회로서는 그 사건은 감출 수밖에 없었다. 메로빙가(家)의 진짜 유래가 드러나게 되면 로마 교회의 위치가 약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필사적인 말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혈통 즉 메로빙가(家) 혈통은 보존이 되었다. 그 혈통은 부분적으로는 카롤링가(家)로 이어졌다. 카롤링가(家) 사람들은 자신들의 찬탈행위에 대해 로마 이상으로 죄의식을 느꼈고, 따라서 메로빙가(家) 왕녀들과 왕조간의 결연을 맺음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혈통이 다고베르 2세의 아들 시기스베르를 통해 이어졌다는 점이다.
시기스베르의 후손 중에는 셉티마니아 유대왕국의 통치자 귈렝 드 겔론이, 그리고 고드프리 드 부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드프리가 1099년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예수의 핏줄은 그들의 합법적인 구약시대의 유산을 되찾게 된 것이었다.
십자군 운동시대에 고드프리의 진짜 태생이 로마 교회의 뜻대로 비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물론 모든 것의 주도권이 교회에 있었으므로 공공연하게 외부에 알려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문과 전설이 무수히 떠돌았을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라면 고드프리의 전설적인 선조 로엥그린에 대한 이야기들, 또는 성배에 관한 전설문학들이 있을 것이다.
성배는 최소한 2가지 것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다.
첫째 그것은 예수의 혈통과 후손들, 다시 말해서 시온 소수도원에 의해 만들어진 템플 기사단이 보호할 임무를 띠고 있었던 <상랄(Sang Raal)> 즉 <진짜(Real)> 피 혹은 <왕의(Royal)> 피를 의미할 것이다. 동시에 성배는 비교적 문자 그대로 예수의 피를 받아 담고 있는 '그릇'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막달라의 자궁', 좀 더 확대해 생각하면 막달라 자신을 의미할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막달라 숭배가 연유 됐을 것이다. 예컨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존재했던 그 유명한 <검은 동정녀>나 <검은 마돈나>는 대다수가 동정녀 마리아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의 사원이었던 것이다. 또한 거대한 자궁의 모습을 한 고딕식 석조물 <노트르담> 대 사원 역시 <붉은 뱀>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의 아내를 위한 사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성배는 예수의 혈통과, 그 혈통을 보존한 막달라의 자궁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것이었을 수도 있다.
서기 70년 유대 지방에 대반란이 있었을 때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 군단은 예루살렘 신전을 약탈했다. 약탈된 보물은 그 후 피레네 산지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시온 소수도원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 신전에는 티투스의 군대가 약탈해 간 보물 이외에 무엇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예수가 정말로 <유대인의 왕>이었다면 신전에는 그에 관한 풍부한 정보가 비치되어 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서기 70년 티투스가 예루살렘 신전을 약탈할 때 예수에 관련된 무엇을 손에 넣었다는 기록이나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있었다면 은밀히 숨겨졌을 수도 있다.
당시 신전에 있었던 사제는 한 가지 행동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군대가 밀려오는 것을 보고 그들이 탐을 낼만한 것, 즉 금은보화는 몽땅 그들에게 내주었을 것이고, 좀 더 중요한 것, 즉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왕에 관계된 물건이나 '메시아'와 왕가에 관계된 물건들은 어딘가에, 어쩌면 신전 밑에 숨겨졌을 것이다.
1100년에 이르러 예수의 후손들은 유럽에서 높이 올라섰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는 어떤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만일 그러한 증거가 신전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되었다면, 그들은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템플 기사단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가 설명된다. 그들은 은밀히 신전 밑을, 소위 솔로몬의 마굿간이라는 곳을 파는 작업을 행하였다.
템플 기사단이 무엇을 찾아내거나 획득하는 구체적인 임무를 띠고 성지로 보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찾고자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어 유럽으로 가져갔던 것 같다. 그 후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템플 기사단의 4대 단장 베르트랑 드 블랑쉐포르의 주도하에 무엇인가가 비밀리에 르네 르 샤토 근방에 매장되었다는 것은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예수의 미이라일 수도 있고 예수의 결혼증명서나 그의 자식들의 출생증명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대단히 중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면 다분이 이단적이고 심지어는 신성모독이라고까지 할 만 하다. 이미 확립이 되어 있는 교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글들은 틀림없이 그러한 죄를 범한 것이 된다. 그러나 진실로 예수를 존경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조금도 예수를 모독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예수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그의 신성이 사라져 버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예수의 신성이 성적(性的)인 문제와 반드시 연결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설사 그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해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룰 수 없는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세계를 불쌍히 여겨 피 창조 된 세계 속에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예수가 하나님의 화신(化身)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학의 뿌리에 깔려 있는 가설이다
기독교가 전해주는 인류의 미래
기독교의 진리는 그 근본부터 너무도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신비로만 돌려 버리는 예수의 『출생』,
예수님의 인간적 삶의 모습과 구도생활의 핵심을 알수 있는 12세부터 30세까지의 『성장 과정』 그리고 예수의 『기본 사상』까지도 예수의 제자들과 서구신학에 의해 철저하게 오도(誤導)되어 왔습니다. 때문에 예수가 전하고 있는 인간구원에 대한 핵심 명제는 더욱 심하게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제 예수가 전한 기독교의 본래 가르침을 함께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기본경전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경전 외에 기독교 진리의 정수를 전하고 있는 제3의 경전이 있는데, 『보병궁(寶甁宮) 복음서』가 그것입니다. 이 보병궁이라는 말의 유래는 서양의 고대천문학(점성술)에서 비롯됩니다.
고대천문학에 의하면, 우리의 태양계는 멀리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중심 태양의 주위를 회전하고 있으며, 그 일주(一周)기간은 약 2만 6천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태양이 도는 궤도를 황도대(黃道帶)라 부르는데, 이 황도대는 12궁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태양계가 12궁의 한 자리를 지나가는 시간은약 2100년이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이 시간대가 천도섭리 측정의 한 시대가 되는데, 이러한 시대 구분에 따르면 6000년 전 아담이 살던 시대는 태양이 금우궁(金牛宮)에 들어갔을 때이며, 4000여 년 전의 아브라함의 시대는 백양궁(白羊宮) 시대이며, 로마제국의 발생 즉 예수님이 탄생한 때는 쌍어궁(雙魚宮) 시대이며, 지금은 쌍어궁 시대를 마감하고 보병궁(寶甁宮) 시대로 들어가려고 하는 대전환기라고 합니다. 즉 『보병궁 복음서』는 미래 보병궁 시대의 복음서라는 뜻이며,
이에 반해 구약과 신약은 과거시대 (금우궁 및 쌍어궁 시대) 의 복음서라는 말입니다. 이 보병궁 복음서는 「리바이 도우링」목사(1844~1911)가 천상영계의 기록인 『아카샤(Akasha) - 우주심(宇宙心) 기록』을 계시 받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이 복음서의 가장 큰 특징은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으며, 여기에 빠져 있는 예수님의 12세부터 30세까지의 성장과정과 구도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예수께서 전하신 ‘가르침 의 진수’를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병궁 복음서는 『성약성서(成約聖書, 말씀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복음서)』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대원출판사에서 발간되었음(84년)>보병궁의 성약으로 재 발간(95).
어린 시절 목수가 된 예수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남부 인도의 오릿사주(州) 왕족인 「라 반나」가 유대나라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던 차에 성전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총명함에 반하여, 예수의 부모님을 만나 인도 유학을 주선하였습니다. (성약성서 21:1~20)
‘해뜨는 방향’을 향해 떠난 예수는 오릿사 지방의 쟈간나스의 절에 제자로 들어가 4년 동안 수행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때 예수는 베다성전 등을 배우며, 승려 「라마스」와 깊은 우정을 나눕니다. 예수님은 친구 라마스와 함께 갠지스강 주변 마을의 노예와 농부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그들에게 인류는 한 동포이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갠지스 강변의 마을 베나레스는 브라만교의 성지로서 문화와 학술이 고도로 발달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도의 의술(醫術)을 배우기 위해서 당시 인도 최고의 의원이었던 「우도라카」의 제자로 입문합니다. 우도라카의 한줄기 시 같은 가르침의 요지는 이러합니다.
자연의 법칙은 건강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대로 살면 결코 병에 걸리는 일이 없습니다. 이 법칙을 어기는 것은 죄이며, 죄를 범하면 병에 걸립니다. (성약성서 23:5~6)
한편 자연계의 물상(物象)은 모름지기 인간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모두 의료의 비약(秘藥)이 됩니다. (성약성서 23:10)
인간의 의지는 최고의 의약이니까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병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성약성서 23:12) 예수는 우도라카, 승려, 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주신(본체 신)은 한 분이고, 신(인격신)은 ‘한 분 이상’이어서 모든 것은 신(개체화된 인격신), 모든 것은 하나이다. (성약성서 28:4) 어느 날 예수께서 갠지스 강가에서 한 떼의 대상(隊商)들로부터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때 예수는 슬픔을 진정하며,‘한탄이 마음에 떼를 지어 올 때는 모든 것을 잊고 사랑의 일에 깊이 투신하면 슬픔은 사라지고 맙니다.’라는 위안의 서신을 어머니에게 띄웠습니다. (성약성서 30장)
예수의 높고 오묘한 지혜를 인정한 불교도 「바라타 아라보」는 예수님과 함께 유대의 시편과 예언시를 읽고, 베다경전, 페르시아의 아베스타 경전, 석가 부처님의 지혜를 함께 읽었습니다. 인간의 절대 평등을 주장하던 예수께서는 인도의 사회신분(카스트)제도를 파괴한다고 그를 정죄하려 한 승려들을 피해 라마스의 도움으로 네팔로 피신하였습니다.
당시 인도에서 예수의 불교식 이름은 「이사(ISSA)」이였고, 오늘날에도 인도에서는 예수를 이사라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티벳의 ‘랏사’에 있는 사원을 찾아가 마침 요동(遼東)의 최고 성현으로 이름이 나 있던 「멘구스테」를 만나서 이 절에 소장되어 있었던 수많은 고전(古典)의 필사본을 멘구스테의 도움을 받아 직접 읽어 습니다.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는 도중에 페르시아에 들려서 24년 전에 자신을 찾아준 마기 교 승려인 동방박사 3인을 만났습니다. 이 때 예수의 나이는 24 세였습니다. 25세에 다시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 (해의 도시라는 뜻)’로 가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에 입회하기를 원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예수는 이 비밀형제단의 서약을 받아, 『성실, 공정 ,신앙, 박애, 의 열, 성애(聖愛)』의 6단계 시험을 진실과 용기로 극복하고,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 생사의 문제, 또한 태양계 바깥 세계의 비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자의 방에서 일을 마친 뒤에 ‘보라 빛 방’에서 일곱 번째의 시험을 이겨내어 『그리스도(하느님의 사랑)』라는 최고의 법명(法名)을 받았습니다. < 그리스도의 진정한 뜻은 ‘인간을 영원히 구원하려고 하는 하느님의 사랑’ 을 말하며, 그러한 ‘사랑을 구현시킬 수 있는 인격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도 유학시절 예수는 모든 인간의 해탈 가능성을 철저히 가르치는 불교에 매혹되어 승려가 된 후, ‘베나레스(문화와 학술이 발달된 브라만교의 성지)’,‘녹야원’,‘부다가야’등지에서 오랜 수도생활을 하고 티벳을 거쳐 29세 때 귀국을 하였는데, 예수는 인도 , 티벳 밀교 계 고승 「우도라카」,「멘구스테」로부터 심령 치료의 비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이들 스승은 예수에게 도술을 이기적으로 남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귀국 후 예수는 유일신교인 유대교파들에게 모든 인간의 절대 신성을 부르짖으며 이적을 행하고, 군중을 모아 신의 사랑과 평등사상을 전파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는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는데,
이 때 예수가 제자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한 뒤, “엘리엘리 라마 사박 다니”
(Eli Eli Lama Sabachthani :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로 번역되어 왔음)
라는 말 한마디를 크게 소리친 뒤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의 최후의 말씀은 티벳트 라마불교의 진언(眞言)인 “엘리 엘리 라마 삼약 삼보리” (Eli Eli Lama Sammach Sam Bori)라는 다라니 (Dha-rani=總持=呪文)로 밝혀졌습니다. 즉 예수님은 극도로 탈진해 생사를 가늠하는 마지막 순간에, 모든 장애를 벗어나 한량없는 복덕(福德)을 얻게 되는 권능이 있다고 전해지는 라마불교의 주문(다라니)을 암송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의 제자들은 이 주문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죽은 뒤 40~50년 후 예수의 말씀을 정리하기 시작할 때,
마지막 말씀의 의미가 잘못 기록되고 또 잘못 번역되어 후세에 전해진 것입니다. 예수가 죽음을 바로 앞두고 라마불교의 진언을 암송했다는 이 충격적인 사실은 『예수님의 인도 생활』을 밝혀 주는 결정적 증거의 하나입니다. <인도, 티벳, 이집트 등에서의 예수의 구도생활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참고서적은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홀거 케르세텐 지음)』,『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 지음)』,『법화경과 신약성서(민 희 식 지음)』, 『성서의 뿌리(민 희 식 지음)』 등이 있다.> 그러므로, ‘ 인간은 지상의 하느님이다. ’ 그리고 하느님을 숭배하는 자는 사람을 숭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식이 한 몸인 것과 같이 한 몸이기 때문이다. (성약성서 91:41) ‘인간의 본질은 피조물이며 또한 죄인의 상태에 있으므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이 서구 기독교가 2천 년간 오도시켜온 기독교 진리의 핵심내용 이지만, 다음의 예수 말씀을 통해 이런 인간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육화한 신이다. (성약성서 163:17) 인간은 우주의 놀라움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온갖 생명의 단계를 지나온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바라타 2:4) 성경의 예언에 대한 관심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본격화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흔히 2천년을 한 역사의 시간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태복음에 있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24:34)에서 ‘이 세대’란 20세기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담으로부터 유대민족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까지를 한 시대(2천년), 다시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의 탄생까지를 2천년, 이후로 말세 심판까지의 2천 년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인들은 서기 2천 년 전에는 인류의 종말과 구원이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이 굳은 신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비록 성경의 기록에는 뚜렷한 근거가 없더라도 그러합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 임하리라. (누가복음 21:35)
그 때의 재난은 도저히 말로 다 할 수 없도다. 이런 일은 하느님이 세상에 인간을 보낸 후로 아직 없었으므로 …. (성약성서 157:19)
기독교는 현세의 마지막 시대가 종결되는 처참한 모습을 『대 전쟁 - 대 전염 병 - 천지와 일월성신의 대 변국』으로 후세 인류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보라, 추수기는 지금이다. (성약성서 82:7) 진정한 평화는 투쟁 뒤에 오노라.(성약성서 113:10) 성기(聖氣)의 수효는 7 , 하느님은 손에 ‘시간의 7’을 쥐셨느니라. (성약 성서 96:23)
「할 린제이」 목사는 『지상 최대의 예언』에서 이 7년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구 역사의 마지막 7년 … 그 7년은 운명이 판가름 날 운명의 7년이다.
‘7년은 기한이 정해진 내일’이다. 무서운 대재난이 다가올 것이다. 인류 역사에 가장 무서운 대재난이, 세계를 휩쓸어 버릴 역병과 폭동의 유혈, 기아와 살육의 세월이 올 것이다. (『지상 최대의 예언』 중에서)
세계 역사상 최대의 고통이 몰려오는 이 기간은 『새로운 꿈의 세계』를 준비하는 마지막 시간대입니다. 이는 오늘날 일반 기독교 목자들이 주입시키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심판의 차원에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만사는 자연법칙의 결과다.” (성약성서 37:12)
7년 대 환난은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우주 대자연의 섭리인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결정적인 대 개벽이 있기 전에 두 가지의 대재난이 있을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구상의 최후전쟁과 대 병겁』입니다. 사람들이 그 죄를 벌 받으면 재난의 날은 끝나리라. 더욱이 보라. 전 세계가 검투장의 검사와 같이 일어서고, 오직 피를 흘리기 위해서 싸우리라. (성약 성서 157:21) 공기 그 자체가 죽음의 연기로 충만하고, 전염병 은 곧 칼을 뒤따르리라. (성약성서 157:23)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a great white throne and him who was seated on it) 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요한계시록 20:11)
백보 좌 심판은 우주의 창조사상과 인류구원의 핵심이 함축된 기독교 진리의 결론입니다. 혹자는 백보 좌에 앉아 계신 분을 예수와 동일시하기도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백보 좌의 신’은 단순히 흰색의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분은 하늘과 땅을 주재하시어, 후천 가을 개벽 기에 인종의 씨를 추리시는 절대자입니다. 곧 예수가 피 흘리며 증거 한 하느님이며, 예수를 내려 보낸 바로 그 아버지 하느님 입니다.백보좌란 인간과 우주자연의 완전한 구원(full salvation)을 주재하시는 하느님의 조화기운을 나타내는 말 입니다. <동양철학의 五行원리로 볼 때, 백색은 가을의 결실을 의미하는 金氣運을 상징함> 실제로 예수성자는 스스로를 ‘ 하느님의 아들’, ‘사람(人子)의 아들’ 이라 하였을 뿐,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말한 구절이 성경에는 단 한 곳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 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He has sent me). (요한복음 7:28~29)
예수의 사명은 초종교의 지상선경 하느님시대, 성부시대를 예비하는 하느님의 대행자 이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보내신 하느님의 궁극섭리는 ‘모든 인간을 완전한 인간으로 성숙시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인간은 ‘세계교회’를 이해할 만큼 아직 신성한 사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고로 하느님이 나에게 명하신 것은 세계교회를 세우는 일은 아니다. 나는 단지 모델을 만드는 사람일 따름이다. 나는 장래 세워질 교회의 모형 을 만들기 위하여 보내진 자이다. (성약성서 60:7,8)
이 하늘 아래 높고 낮은 자가 없으며, 오직 먼저 익은 자와 뒤에 익은 자의 차이 가 있을 뿐이며, 하느님의 섭리는 언젠가는 그들을 전부 구원해 주신다. 나는 내 속에 아버지가 거하시고 아버지 속에 내가 거하게 된 최초의 완성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 내 뒤에 오실 분이 나보다 큰일을 하실 것이며 ’, 종말에는 인간은 모두 나와 같이 되어야 하며 또 그렇게 되리라. (성약성서 147:21)
예수는, 인류의 문명을 영글게 하실 성부 하느님께서 천상의 보좌에서 내려 오셔서 거닐으시 다가
동방의 하늘에 정착하시어 사람으로 강세하실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물병을 든 사람’이 하늘 모퉁이를 지나서 거닐고, 인자(人子)의 표시와 도장(印)이 동천(東天)에 나타 나리라. 이 때 어진 사람은 머리를 들고 세상의 구원이 다가왔음을 알리라. 준비하라. 준비하라. 평화의 사도는 오시는 도다. (성약성서 157:29,30,41) 백보좌 하느님, 즉 성부 하느님은 과거의 한 시대(先天)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後天)가 열리려는 전환기에 친히 사람으로 오십니다.
성경은 이 놀랄만한 구원의 소식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 만일 다른 분이 자기 이름으로 오시면 영접하리라. (I am come in my father's name, and ye receive me not, if another shall come in his own name, him ye will receive.)(요한복음 5:43)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성부)의 이름으로 온 성자인데도 자기 민족과 세계가 믿지 않았으나, 다른 분(another)이 ‘ 본래의 자기 이름 ’으로 오시면 인류가 모두 다 영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에 오실 이 구원의 주님은 예수님과 같이 아들의 이름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 이름으로 오시는 성부하느님’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요한계시록 21:1)
또한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듯 한 이변이 그 때 천지에 일월성신에 나타나리라. (성약성서 157:24) 이 말씀과 같이 기독교의 최종적인 구원도 천지 자체가 새롭게 바뀐 뒤에 완전히 실현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세상은 진리로 인도되고 사람은 진리 그 자체가 되리라. (성약성서 162:9) 그 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는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르리라. (이사야 35:5~6)
기독교가 전하는 가장 큰 축복의 메시지는 이 지상에 천상의 하느님이 성령으로 강림하여 인류와 함께 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일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four corners of the Earth)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 ‘해 돋는 동방으로부터(from the East)’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치기까지’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만 4천이니... (요한계시록 7:1~4)
구원의 무리가 출세하는 동방의 해 뜨는 곳은 어디일까요? 또 환란의 그 날, 인류구원을 집행하는 하느님의 사역자들은 누구일까요?
우리 한민족이 세계를 구원하는 주체 민족이 될 수는 없을까요? (*)
666의 민족은 ? - 인 - 한 민족 ? -천부경 ?
http://blog.daum.net/amogha/818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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