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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Jesus) 부활 후의 여정 - 갈리아. 브리태니아. 프랑스. 독일 등 [Jeshua]

 

 

 

돌아온 예수 (Jesus) ESU - 십자가형 이후의 삶에 대한 진실을 직접 밝혀주는 이야기

예수 (Jesus) 부활 후의 여정 - 갈리아. 브리태니아

[프랑스. 독일 등]

 

 

부활 후의 여정

After the Resurrection...Gaul 부활 후…갈리아

 

Jeshua Speaks About: June 2014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삶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여러분과 지금 공유하는 내용은 내가 나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들었던 내용과 다릅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나는 누군가에 맞서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가 기억하는 것과 그것을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말할 뿐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 이후 부활의 날, 내가 무덤에서 나왔을 때 빛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 그러리라고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 빛의 파장을 조절해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있고 그들이 알고 있던 인간존재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성경에 내가 엠마우스(Emmaus)로 가고 있을 때 두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한 기록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뉴스가 있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난 거죠?” 그들은 나에게 어떤 위대한 스승, 라비(rabbi)가 전날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을 때,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해낸 일은 당신들 또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때는 믿지 않았지만 후에 그들 또한 육체를 부활시키게 됩니다. 육체는 신성한 에너지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베다니(Bethany)의 저택의 윗방인, 십자가형을 당하기 전날 우리가 만나 유월절 음식을 먹었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베다니에 있는 마르타, 마리아와 나사로의 집으로 돌아가 제자들과, 어머니와 마리암과 내가 더 이상 무덤에 있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던 모든 친구들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나 베다니는 예루살렘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어 머물기에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고, 내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소문은 사실 십자가 형에 처해진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이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오래 머물지 않고 나사렛(Nazareth)을 향해 북쪽으로 출발했지만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았습니다. 아리마대(Arimathea)로 알려진, 마리암의 삼촌, 요셉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는 지금의 브리튼 섬(Britain)인 브리태니카(Britannica)로 항해하는 많은 배들과 주석 광산을 소유하고 대량의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라비가 죽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이 나이거나 나와 관련되었을 지 모르는 이들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따랐던 이들이나 제자들, 군중들에게는 공포의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친구라고 말했던 이는 누구에게든 두려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침묵을 유지했고, 그에 따른 군인들의 일상적이지 않은 조용한 탐문들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밖에 항상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위치에 대해 침묵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시간이 되면 그 지역을 떠날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여행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다른 이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리암과 내가 인도와 티베트 사이의 기간에 돌아왔을 때, 그리고 목회자의 아주 모험적인 생활을 하기 전에 생간 두 아이들은 그에 동의했습니다.

 

아리마대의 요셉은 그의 광산에서 캐내는 광물을 이송할 수 있는 여러 배들, 큰 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의 기술이 아닌 바람의 힘만 사용해서 항해를 했습니다. 그는, “내 배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배가 브리튼으로 항해할 예정이니 마리암, 벤자민, 사라가 그 배에 타고 싶다면 그리 조치하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며,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항해가 나의 메시지와 제자들을 따르는 군중들의 지속적인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가장 안전하고 조용한 경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떠난다면 그들은 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조용한 삶으로 돌아갈 것이며, 모든 소문들은 잠잠해질 거야.”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되었을 때 욥바(Joppa)라는 항구로 갔습니다. 여러분도 알듯이 모든 도시와 지형의 이름은 시대가 흐르면서 바뀌었고 그래서 작지만 아주 번성한 항구 욥바는, 오늘 날 텔아비브(Tel Aviv)로 알려진 곳입니다.

 

텔아비브는 많은 인구의 유입이 있었으며 작은 도시, 작은 항구로써 먼 외곽에 설립되어 있었지만 아주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은 요트처럼 보이는 4개의 상선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들에는 커다란 돛대가 있어 오늘날 이해하는 것처럼 요트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 마리암, 벤자민, 사라와 나는 배에 올랐으며, 어머니는 나중에 합류했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필수품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섬을 향해, 항구를 향해 갈 때 우리에게는 그 일들이 아주 큰 모험이었습니다. 우리가 배에 탄 것이 알려지면 안되었기 때문에 배가 다양한 항구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침묵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키프로스(Cyprus)에 들러 필수품들을 구했으며 다음 목적지까지의 항해는 커다란 모험이 되었습니다. 봄에 발생하는 폭풍 때문에 경로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배에 음식이 충분하지 않는 때가 왔습니다. 다른 항구에 닿기를 희망했으나 그보다 휠씬 더 남쪽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으로 우리 가족과 선원들을 먹일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그냥 손을 잡고 빵이 거기에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뱃속의 배고픔과 고통이 그 의심보다 컸기 때문에 그 도박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손을 잡고 눈을 감고 희망하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배에 있는 모든 이들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한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들이 자신들의 생각에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배위에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했습니다. 사라는 아주 어렸으며, 벤자민은 항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배가 어떻게 방향을 잡는지, 항해에 대한 모든 것을 궁금해할 나이였습니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영리했기 때문에 자신이 이해한 것에 대한 모든 것을 흡수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 바람이 예정된 경로를 항상 벗어났기 때문에 오랜 시간처럼 여겨졌습니다 – 갈리아(Gaul)라고 알려진 곳의 남쪽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지금 프랑스와 남쪽 프랑스의 지중해 지역이라고 알려진 곳입니다. 우리는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항구에 착륙했습니다. 우리는 내렸고 배는 광물 거래를 위해 브리태니카로 항해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 일은 마리암, 나와 아이들에게 큰 모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여행을 했기 때문에 커다란 모험이었으며, 동시에 십자가와 부활과 상승으로 의식이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주제에 대해 언급할 좋은 시점인 것 같습니다 – 상승에 대해 – 그렇습니다. 나는 육체의 분자구조가 빛(Light) – 그 분자들의 원래 상태가 빛입니다 - 되도록 허용했으며, 그렇게 상승이 일어나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상승을 해서 모든 이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지금 여러분에게 까지 전달되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신성해서 천상의 아버지에게로 올라가 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나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이 자신의 경험으로 선택하는 것이고 – 이 부분을 잘 들어주세요 – 어떤 것도 나쁜 선택은 없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모든 것은 자신의 광대함을 이해할 수 있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선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종교/철학적 질서는 여러분이 자신이 한 많은 선택을 참회하도록 하지만, 나는 그 선택들에 대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나는 상승을 해서 멀리 떠나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삶에는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더 많은 것이, 모험할 수 있는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들어주기 바랍니다. 나는 진정으로 당신을 떠나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항상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오른손에, 당신의 왼손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오른손에, 아버지의 왼손에 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처럼. 분리는 없습니다. 비록 인간들의 마음은 육체를 보고 에너지의 뭉침을 보고 말합니다, “보세요. 저기에 모든 것들이 따로 있잖아요” 그러나 육체의 외부 윤곽을 따라 바로 위에, 육체 내부를 포함하지 않은 에너지의 오라장이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이나 사진작가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것은 몸을 넘어 당신이 상상하는 만큼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에너지가 단지 자신의 피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한대로, 당신은 영원히 확장하고 영원히 창조하는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리아라 불렸던 오늘날의 프랑스의 게르마니쿠스(Germanicus)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론강(Rhone River)의 서쪽부근의 작은 항구에 착륙했습니다. 우리는 항구의 외곽지역에서 한동안 머물렀는데, 친척들 집에서 동쪽부근으로 조금 이동하면서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작은 마을에 이르렀을 때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환영해 주었으며 그곳에 적응할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빛의 신성한 에너지로 매 순간 육체를 재창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벤자민과 사라는 나이를 먹고 성장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마리암과 나는 인생의 전성기인, 소위 30대에서 40대쯤의 상태에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나이대의 건강함, 강함, 삶을 즐기는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마을에서 다른 이들처럼 우리가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이 드러날 때쯤이면 우리는 갈리아나 게르마니쿠스 혹은 다른 지역에 친척을 방문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이동했습니다. 그 일들은 빠른 시간이 아닌 얼마 동안의 시간에 걸쳐 일어났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눈치챌 쯤 되면 우리는 이동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생명을 창조하고 싶었기 때문에 – 여러분들이 삶을 통해 행하는 것처럼 – 우리에게서 태어난 생물학적인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있었지만 마을에서 부모님이 먼저 죽은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아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한동안 대가족을 거느리기도 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성장하고 함께 놀고 서로 싸우면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열린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본질(Reality – 대문자 R)에 대해 공유했으나 그때는 모든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농장, 닭들, 염소들 이외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어린 청소년들이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행복한 상태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또 다른 아이들은 앉아서 질문했으며, 그들이 물어본다면 우리는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여행을 했습니다. 브리태니카까지 올라가 광산에 있는 요셉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브리태니카에 이르렀을 때 요셉은 사망했지만 아주 영적인 상태로 우리를 방문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볼 수 있었으며, 그와 교류하고 말을 걸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젊어서 그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관점으로 광산의 개발 과정을 바라보는 것에 아주 흥미로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많은 우리의 친구들이 나사렛, 카멜 산, 예루살렘, 베다니, 베들레헴으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많은 이들의 육체는 사망했지만 다시 돌아와 우리와 합류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 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교류하고 만약 그들이 원한다면 물리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 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영적인 존재 상태로 머물렀습니다.

 

이 시기는 오늘날의 시간 감으로 150에서 200년쯤 되는 시간이었으며, 내가 이전에 말했듯이 나의 삶은 직선상의 시간으로 따지면 600에서 700년에 달합니다. 나는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인 삶을 즐겼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들은 내가 성스러운 어머니 지구의 모든 지역을 여행하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들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마리아, 마리암이 프랑스, 독일, 폴란드, 모든 나라들을 거친 신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며 우리가 여행하면서 그녀들과 나는 다양한 지역을 거치면서 우리들의 표식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많은 아이들은 그들이 성장했을 때 우리에게로 왔으며, 또 다른 많은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머물면서 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하고 자신들이 태어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행복한 마을에서 소위 인간적 삶의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마도 어떤 영적 형태를 가지고 돌아와 우리를 발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순간은 어떤 마을의 어떤 이들은, 그들이 행복한걸 알았고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해서 결코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뒤에 두고 온 이들이 있었는데, 후에 같은 에너지가 다른 영적인 친근한 형태로 신성한 어머니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느끼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이라는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은 이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친숙한 에너지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경험을 당신은 이 삶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들을 만났을 때 바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즉각적으로 당신의 가슴에서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은 이해하며 가족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궁금해 합니다, “어떻게 그런 느낌이 가능하지?” 그 이유는 그 에너지를 이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아마 바뀌고 형태가 달라졌겠지만 여전히 당신이 알고 있는 친숙한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So be it.

 

- Jeshua ben Joseph (Jesus)

in expression through Judith

 

[원문출처]  http://www.oakbridge.org/articles.php?aid=237

[번역출처] Jeshua 의 부활 후의 여정 |작성자 jamiejeong84

 

 

 

 

 

 

After Gaul...Britannia 갈리아 이후 브리태니아

 

Jeshua Speaks About: July 2014

 

사랑하는 여러분, 이 천년 전의 나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활 이후에 요셉의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하며 그 경로를 벗어났던 모험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쯤에서 의문이 들것입니다, 왜 내가 모든 것을 바꾸면서 편안한 항해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모험을 경험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암, 나, 벤자민과 사라는 모험을 위해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여정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육체를 위협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모험을 즐겼으며, 바람이 그들이 원하는 데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우리의 항해 친구들이며 배의 책임자인 선원들이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우리가 바람 때문에 경로에서 벗어나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원래 계획했던 항구에 이르지 못했을 때, 그들은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다음 항구까지 버틸 식량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마음이 열려있던 한 선원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식량을 원한다면 각자의 손을 잡고 바라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음식, 빵을 기대하면 그것들은 주어질 것입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시도했을 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자 말했습니다, “아, 그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다른 이들은 말했습니다, “난 정말 배가 고파. 정말 음식이 나타났음 좋겠어.” 그리고 그 순간 – 그들은 자신들의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동기가 충분하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 빵이 나타났습니다. 다른 선원들이 자신들의 친구가 해내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음, 아마도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 그들은 손을 잡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에게로 와서 말했습니다, “마스터, 라비(rabbi) – 그 당시 나를 호칭했던 이름입니다-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겁니까?” 나는 답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당신의 손을 잡으면 음식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나의 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손을 댔을 때 그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작은 믿음은 그들이 필요로 한 빵을 현실화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은 믿었습니다. 때로 당신이나 친구들은 작은 도움, 작은 격려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말하길, “너도 알겠지만 나는 너와 같은 경험을 해봤어, 그리고 이것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너와 나누려 해, 네 손을 잡을게 – 말 그대로 혹은 상징적으로 – 그리고 그것을 함께 통과하는 거야.”

 

그래서 그 일은 선원들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수준에서 나와 여정을 함께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의식적은 아니었을지라도 영혼의 수준에서 모험을 하고 기적을 보기로 선택했습니다. 자신들이 이전부터 들어왔던, 삶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그들의 예상과는 달랐기 때문에 마리암, 나, 벤자민과 사라가 그 배에서 내렸을 때 그들은 스스로 바뀐 채로 떠났습니다. 그것은 소위 자신의 신성한 본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는 의식의 확장이며, 무엇이 가능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믿음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고 창조된다는 것에 대한 경험의 확장이었습니다. 진실은 당신의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곳에 닿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당신은 그 믿음의 결과를 보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왜 그것을 믿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번 그 믿음에 대한 결과를 목격하고 나면 당신은 다시 기억을 상기시켜 보면서, “나는 이 믿음을 가져야 해, 나 자신에게, 세상에 대해서,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의식적으로 묻습니다, “내가 이 믿음을 지속해야 할까?”

 

그것이 지금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 때까지 바꾸고 싶을 때까지 그 믿음을 유지하면 됩니다. 당신 이외에는, 누구도 어떤 것도 당신의 삶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오래된 가르침을 내려놓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자유입니다. 모든 오래된 가르침들은 여러 세대들을 거쳐 내려왔습니다. “이 것이 우리 가족이 항상 믿었던 것이며,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야.” 그것이 당신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동안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을 뿐입니다; 당신은 새로운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마리암과 내가 한 일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선택했습니다. 지금의 프랑스인 갈리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한동안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언어와 방식을 배움으로써 – 이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로부터 환영 받았습니다.

 

우리는 환영 받길 원했기 때문에 그들은 환영해 주었습니다. 아주 순박한 사람들이었으며 우리는 마을에서 성장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낫다거나 더 많이 알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일원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가족인 마을의 일원이 되는 것이 어떠한 느낌인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편안한 동안 머물렀으나, 그들이 나이를 먹고 우리는 여전히 인생의 전성기의 나이로 – 30대 초나 20대 후반으로 – 보였기 때문에 다시 이동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방문할, 일반적인 의미의 친척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신성한 본질에 합류하게 되면 우리는 서로의 친척이 됩니다. 우리는 다른 마을로 이동하고 거기서 다시 몇 년동안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아이들에 대해 물어보곤 합니다. 우리는 분명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이 내가 신성한 본질, 그리스도적 본성, 신의 자식(Son of God) –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 이기 때문에 여성을 허용할 수 없다고 믿도록 자라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리암을 만났고 그녀를 아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물학적 자식들이 있었고 때로는 그 이상으로, 엄마가 없는 아이들 .. 처음에는 아빠가 있었지만 아마 이런 저런 이유로 아이들 주변에 머물지 않은 경우에는 그 아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제공해줄 집이 항상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당신이 주변의 친구들이 이런 일을 할 때 본 것처럼 그 일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오늘날의 독일로 들어갔으며, 거기는 프랑스와 비슷한 관습과 언어를 가진 작은 마을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지형학적 위치나 친구를 만드는데 있어 한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때는 여러분들이 집시라 부르는 무리와 섞이기도 했는데, 그들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면서 특정 지역에 뿌리내리지 않고 모험을 위해 여러 지역을 여행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특정지역에 있을 필요도 전생에 동안 그곳에 살아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색다른 것들을 구경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살았으며 우리는 이따금씩 그들과 합류해 오늘 날의 유럽지역의 나라들을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만물의 존재 안에 있는 신의 사랑 – 아버지/어머니/신 등 여러분이 신성한 법칙이라 부르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 을 공유하면서 여행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우리는 그 진실에 대해 설교를 하지 않고, 여러분이 친구들과 어울릴 때처럼 우리 본연의 모습만을 드러내면서 단지 우애를 즐겼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우리는 요셉이 가지고 있던 주석 광산을 보기 위해 브리타니아(Britannia)로 여행했습니다. 비록 그는 육체를 놓아주었지만 우리와 영적인 형태로 함께 했으며, 시간 한참 흐른 후에 모든 것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지금 드루이드교의 학자(Druid)들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 조상들에게서 지식을 전승 받고 종교적인 신화의 믿음을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운 이들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외곽에 있는 여러분들이 농부나 토착인들 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드루이드 계급과는 달랐습니다. 에세네파 공동체처럼, 드루이드 교파 그들도 세대를 걸쳐 가족들을 통해 전승되는 자신들만의 믿음 체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연에 대한 공경과 이해, 자연과 하나됨(Oneness)의 느낌과 인간 삶의 노동에 대한 고차원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시간과 연구들을 자연에 대한 이해 속에서 하나됨에 대한 가르침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주 희귀한 떡갈나무가 있었습니다. 모든 성장한 나무들은 신성하지만 특별히 그들에게 떡갈나무는 삶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암과 나 그리고 우리와 함께 여행했던 아이들은 얼마의 기간 동안 드루이드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때 벤자민, 사라, 캐서린, 마리, 야곱, 마이클, 수잔과 레베카가 – 우리의 생리학적 아이들입니다 – 성장했으며 그들 또한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삶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 일을 해내는 거지요?”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조금은 나이를 먹었으며 특별히 두 소녀는 마을의 소년들과 사랑에 빠져 “평범한”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남편과 자신들의 아이들과 함께 나이를 먹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우리는 드루이드인들과 그리고 여러 다른 공동체들과 함께 하면서 그 기본체계를 이해했습니다. 그 시기는 확장의 시간으로, 우리가 아는 것과 그들이 아는 것을 공유하면서 공통의 이해기반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드루이드인들이 아주 깊은 수준으로 현명했으며, 인간의 삶을 살았지만 또한 그 삶을 확장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드루이드 남성사제와 여성사제들은 우리와 함께 여행하기도 했는데, 드루이드 공동체는 갈리아뿐만 아니라 브리태니아에도 있었고 서로 다른 공동체들은 어떤 경우 믿음 체계에 대해 중요시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브리태니아에 머무른 후, 우리는 북쪽 지역에 사람들이 동물의 털옷을 입는, 그러면서 동물과의 하나됨(Oneness)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있는 지역으로 갔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다양한 마을에서 마을로,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거치면서 우리가 만나고 교류한 대부분의 이들은 여러 다른 형태를 가진 생명들에 대한 하나됨에 대한 이해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화살을 겨눈 상태에서 나타날 사슴에 대해 음식과 의복을 얻을 수 있음에 미리 감사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갈리아에 살던 시기 동안, 또한 게르마니아(Germania)와 다른 지역을 그리고 브리타니아와 그 너머 지역을 여행할 때 우리 삶들에 있어 또 다른 측면을 맞이했습니다: 우주의 가족을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측면입니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여러분들 중 어떤 이들도 다른 행성이나 다른 태양계, 다른 별 시스템 어딘가에 생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구 이외에도 지성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부분에서의 의식의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위 우주 여행이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구 너머 우주에 우리의 형제 자매 – 여러분들이 이해하는 성의 구별은 없습니다 – 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우리는 여러분이 ET 라 부르는 외계인들을 만나 대화해볼 기회들이 있어, 비록 어떤 우주 형제 자매들은 인간이 아닌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물리적인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사랑과 교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굳이 그들이 인간의 형태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영혼들은 다른 행성에 적응하면서 그 형태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신성한 본질은 항상 같습니다.

 

다시 강조하면 우리는 하나됨(Oneness)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렇게 자주 분리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어떤 형태를 가지든 모든 생명들은 오직 하나(One)입니다. 그래서 형태가 다른 존재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그들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다른 형태가 다가오거나, ET 나 다른 태양계의 형태를 가진 존재들을 초대하고 싶을 때, 그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당신을 위해 그들은 올 것입니다. 처음에는 좀 놀랄 수도 있지만 빨리 깊은 호흡을 하고 말해보세요, “환영합니다, 형제 자매여, 환영합니다” – 환영이라는 단 두 마디면 됩니다 – 그러면 그들이 당신과 같은 신성한 본질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기존에 유지해 왔던 일반적인 믿음 체계를 확장하는 일이며 당신은 그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단지 요청하고 알기를 원하면 됩니다, “신성한 본질로써 나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 더 있을까요?” 의문을 제기하면 답은 주어질 것입니다; 환영해야 될 일입니다.

 

즉각적으로 우주의 형제 자매들과 대화할 수 있었던 시기들이 있었습니다. 그 일들로 인해, 여러분에게 이야기한대로 내가 우주 함선의 지휘자라고 일컬어지게 된 것입니다.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주어진 이름이 있습니다. 인간 존재들은 때로는 모든 것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우주함선의 지휘자로써 사난다(Sananda)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나의 유일한 이름이 아니며 내가 지휘하는 유일한 함선이 아니지만 한동안 그 이름으로 불리도록 내버려둘 것입니다. 나중에, 여러분들이 관심이 생긴다면 그 함선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암과 나는 그 이후 이 백년의 시간 동안 다른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만난 마을 사람들과 여러 형태의 생명들과의 하나됨을 경험했습니다: 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오늘 날에는 신화로 남겨진 유니콘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존재했냐고요? 물론, 존재 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색다른 조합의 모든 형태들로 여러분이 그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여기에 어떤 시기에, 어떤 지역에서 존재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다양한 형태를 가진 존재들을 만났습니다. 그와 같은 일은 마음을 확장시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 일이 가능하고 그러한 신화적 존재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같은 일을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에도 이야기를 이어나갈 것입니다. 마리암과 나에게는 정말 흥미로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렇길 바랍니다.

 

So be it.

 

- Jeshua ben Joseph (Jesus)

in expression through Judith

 

[원문출처] http://www.oakbridge.org/articles.php?aid=238

[번역출처] 그 이후, Jeshua 와 Mariam 의 여정 |작성자 jamiejeong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