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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 얘기들 !

+ 조선의 마지막 황녀 ` 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 덕혜옹주 "

1912년 5월 25일 덕수궁. 이 날, 고종황제의 고명딸 덕혜옹주가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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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에 고종황제가 덕혜옹주를 위해 덕수궁 함녕전 옆의 즉조당을 개조해 만든 유치원인데,

이 사진에 있는 사람들 중 가운데 앉아 있는 소녀가 바로 덕혜옹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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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차림의 덕혜옹주.

이 사진을 바탕으로 동강 권오창 화백이 아래의 진영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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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소학교 시절의 덕혜옹주.

조선 내의 일본 거류민들을 위한 학교라서 덕혜옹주도 때때로 일본옷을 입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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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시절의 덕혜옹주.

명목상으로는 유학이었지만 반강제로 일본에 온 덕혜옹주는

오빠인 이은 황태자 부부의 거처에서 지내며 우울함을 달래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고종황제와 오빠 순종황제가 붕어할 때마다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괴로워했고

이게 훗날 그녀를 정신병으로 몰고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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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날의 덕혜옹주.

1931년 5월 8일에 덕혜옹주는대마도주인 소 다케유키 백작과 결혼식을 합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은 모두 양친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 다케유키는 그의 후견인인 구죠 공작(다이쇼 국왕의 왕비 사다코의 친정 오빠입니다.) 부부,

덕혜옹주는 이은 황태자 부부, 이런식으로 결혼식을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이들의 결혼은 일본에서 주도해 억지로 맺은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지 않았는지의 여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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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소 다케유키(종무지)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속 두 사람은 다정해 보입니다.

항간에는 소 다케유키가 덕혜옹주를 못살게 굴어서 그녀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금슬도 그리 나쁘지 않은 사이였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이름을 마사에라고 지을 정도였으니까요.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 양쪽의 이름을 합한 의미를 지니는 이름이 바로 마사에(정혜)...)

하지만 대체 이렇듯 행복해보이는 부부가 왜 종국에 가서는 파경에 치달았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아무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덕혜옹주는 정신병이 발병해 도쿄의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되고,

남편과의 관계도 끝납니다.

1951년 경에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서 처음 만난 김을한 기자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 사람은 훗날 이은 황태자 부부와 덕혜옹주의 한국 귀국을 성사시키는데 큰 공로를 세웁니다.)

나중에 김을한 기자가 동분서주하여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의 도움으로

1962년 1월 26일 덕혜옹주는 서울에 도착합니다.

그때까지 생존해있던 덕혜옹주의 유모 변복동은 덕혜옹주가 탄 비행기를 향해 큰절을 올렸고,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린 덕혜옹주를 본 모든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풀각시처럼 아름답던 소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 상태에서 아래 사진을 보면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가 가시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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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축을 받으며 창덕궁 낙선재로 들어가는 덕혜옹주.

이 때 순정효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린 덕혜옹주는

정신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놓아버린 상황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궁중 예법대로 절을 올려 주변을 놀라게 했습니다.

마치 정상인이 행동하는 듯이 그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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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의 회갑날.

가장 왼쪽은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그녀 옆에 앉은,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저 할머니가... 바로...

'덕수궁의 꽃'이라고 불리던...

덕혜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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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두번째가 덕혜옹주입니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입원과 왕진 치료를 번갈아 하며 지내던 덕혜옹주.

그녀는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내며

상궁들의 도움을 받아 나들이를 하거나, 상궁들과 화투를 치기도 했습니다.

노년의 덕혜옹주는 생전에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런낙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구 씨가 보고 싶다" (얼마 전에 훙서한 회은황태손 이구, 이은 황태자의 아들.)

"나는 비전하가 보고 싶어요" (여기서 비전하는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를 가리킵니다)

"나는 낙선재 살고 싶어요"

덕혜옹주를 간병했던 이방자 여사는 병상의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빨리 깨어나세요. 이대로는 너무나도 일생이 슬퍼요..."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77세를 일기로 타계합니다.

덕수궁의 꽃으로 불리던 황녀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홍유릉 뒷편에 모셔집니다.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고,

또 그녀 스스로도 정말 사랑했던

아버지 고종황제와 오빠 부부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의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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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무덤 앞에 세워진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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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덕혜옹주지묘(大韓 德惠翁主之墓)"

비운의황녀 " 덕혜옹주 "


" 바람 앞에 스러지지만 않으면 반드시 살아날 수 있다."

출간 소식을 들은 이 후 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덕혜옹주'였다. 지연되는 출간 소식에 기대감은 부풀대로 부풀어 올랐고, 분명 부푼 기대감 만큼 실망감도 클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안타까웠는데.. 책을 받아들고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부터 한시도 눈을 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게하는 책이었다.

고종황제의 막내딸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 일본의 정치적 희생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 그녀에게 주어진 비극과도 같은 운명이다. 황족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 수년을 이름도 없이 지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고종황제의 죽음과 얼마 후 일본으로 타의로 인하여 보내져 괴롭힘과 감시로 사춘기를 보내고 대마도 도주의 후예인 소 다케유키와의 강제 결혼, 출산, 정신이상이라는 이유로의 7년간의 병원에서의 감금. 오로지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덕수궁에서 지내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그저 자유를 꿈꾸던 그녀.. 일방적인 이혼통보로 황실의 이씨도 일본인의 성씨인 소씨도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른 양씨가 되어버린.. 조국은 해방되었지만.. 조국에서조차 황실 사람들을 외면하고.. 일본에 방치해 두어 37년만에 간신히 다시 되돌아오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의 마지막 황녀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낸다.

소설과도 같은 삶을 살다가 간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출생 - 사망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

1962.01 귀국

1931.05 백작 '소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 후 딸 '마사에'를 낳음 (마사에 = 정혜)

1930 조발성치매증으로 영친왕의 거처로 옮겨 치료

1925.04 일본 학습원으로 연행됨

실제 소설의 내용과 덕혜옹주의 삶이 다르지 않았다는것을 인물검색을 통하여 알게되었다.. 이렇게 검색이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그녀의 삶... 학교의 수업시간에도, 소설과 같은 여느 책들에서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찾아볼 수 없는 분이 되어버렸다. 나부터도 별다른 관심을 가진적이 없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책을 읽은 후 가장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명성황후의 시해가 있었던 그 날.. 그 날로부터 한참을 우리네는 얼마나 많은 핍박과 설움속에 삶을 살아왔다고 또 그것을 참고 이겨내 독립을 했노라고 귓구멍에 딱지가 앉도록 얼마나 많이 듣고 배워왔던가.. 헌데!! 조선의 마지막이었던 황녀가.. 마지막에는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백작부인도, 황녀도 아닌 그저 정신이 이상한 여인이 되어 병원에 갖혀 있다가 기자인 정을한의 도움으로 간신히 조국의 땅을 다시 밟았지만.. 그 후에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다 가셨다고 한다. 그저 조국에서 자유롭게있고 싶었을 뿐인 연약한 여인에게 그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비록 소설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억울한마음, 분노, 서러움을 느끼며.. 잠깐이나마 반성의 시간을 갖은 것 같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덕혜옹주가 조금 더 유명세를 타고 인기를 얻어 드라마화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하나. 출간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의 손이 가고 노력과 땀이 들어가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일본어를 쓰려거든 정식으로 쓴 후 괄호에 해석을 넣었음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오타들을 지적해본다. 간혹 이름이 바뀌기도 하고 오타가 나기도 하며 난데없이 한글로 쓰여있는 일본어에 '이건 뭐야!' 하는 생각을 갖는 이가 많지 않기를 바라며..

출처 :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