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부터 칠레까지…
세계 곳곳 시위는 "미래없는 청년의 분노"(종합)
송고시간 | 2019-10-24
칠레는 지하철비 50원 인상, 레바논선 왓츠앱 과세가 시위 계기
NYT "세대간 불평등에 양극화에 누적된 불만, 임계점 넘은 듯"
정부 긴축정책 항의하는 에콰도르 시위대
(키토 로이터=연합뉴스)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8일(현지시간) 시위대가 유류 보조금 폐지를 포함한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발,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ymarshal@yna.co.kr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황철환 기자 = 남미의 부국 중 하나인 칠레에선 지하철 요금이 한국 돈으로 겨우 50원가량 오른 것을 계기로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현재까지 18명이 숨졌다.
레바논에서는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 이용자에 하루 20센트, 한 달 6달러의 세금을 부과했다가 일주일째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최근 수개월간 세계 곳곳에서 이처럼 비교적 사소한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현상이 잇따랐다.
이런 시위는 소셜미디어를 매개 삼아서 모인 불특정 다수가 벌인다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발생국들은 모두 특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정부가 국민의 민주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소수 정치 계급이 부를 독차지하며, 젊은 세대는 살아가기조차 벅찬 나라들이란 점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출신으로 안보 컨설팅업체 수판 그룹을 설립한 알리 H. 수판은 "젊은이들이 더는 참지 못한 것이다. 신세대는 자국 정치·경제 엘리트의 부패한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변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해당 국가들의 정치 지도자들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달 17일 외신 인터뷰에서 자국의 사회적 안정성을 자랑했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그 이튿날부터 수십년래 최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지자 "강력하고 인정사정없는 적에 대항한 전쟁"까지 언급하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에 맞서는 칠레 시위대
(산티아고 EPA=연합뉴스)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남미 칠레의 반정부 시위 엿새 째인 23일(현지시간)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위대가 경찰에 맞서고 있다. bulls@yna.co.kr
레바논의 사드 하리리 총리는 정치권을 향한 시민의 분노가 뜨겁게 타오르자 급히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시위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그는 세이셸 제도의 호화 리조트에서 만난 비키니 모델에게 1천600만 달러(약 187억원) 상당의 선물을 했던 과거 사실이 뒤늦게 폭로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주 메신저 프로그램 과세를 발표하자 정치 엘리트의 부정부패에 신물이 나 있던 레바논 국민은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왔다.
레바논은 1975∼1990년 내전의 상흔이 여전하고 35세 미만 청년의 37%가 무직일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주요 정치인을 포함한 상위 0.1% 부자들이 국민소득의 10분의 1을 차지한 채 사치를 즐겨왔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정치 전문가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는 최근 들어 가시화한 것일 뿐 이런 형태의 시위는 꾸준히 늘어왔다고 설명했다.
세계 경기 둔화와 빈부격차 심화, 청년실업률 상승으로 좌절하고 분노한 젊은 세대가 민주적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정부를 변화시킬 수단은 거리 시위가 유일하다고 믿게 됐다는 것이다.
중동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 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은 미국에서 낡은 정치체제에 대한 회의가 선거에서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의 득세로 나타나는 것처럼 "국민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다른 나라에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칠레와 아이티,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중남미에서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진 데는 원자재 주도 경제 구조로 인한 경기 급등락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000~2010년 원자재 가격 인상 등에 힘입어 호황을 누렸다가 갑자기 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일제히 경제난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기에 부가 국민에게 고루 나눠지지 못하고 양극화가 심화했던 것이 충격을 가중하는 요인이 됐다.
2019년 10월 20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시내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국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자료사진]
스테판 두자릭 유엔(UN) 대변인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이런 시위들에는 일부 공통점이 있다"면서 "사람들이 극도의 재정적 압박과 불평등을 비롯한 다른 많은 구조적 문제에 노출돼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양극화와 세대 갈등에 가까운 양상을 지닌 탓에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과거처럼 종파적, 이념적 차이에 크게 구애되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 레바논 국민들은 2011년 '아랍의 봄' 당시와 달리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 엘리트 집단 전체에 책임을 묻고 있다.
음악 교사가 되려 했지만 정치적 뒷배가 없어 취업이 안 됐다는 레바논 여성 다니 야쿱(22)은 "그들은 도둑질하면서 아닌 척한다. 그들이 아니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NYT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 탓에 대중시위가 사실상 불가능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식당에서 물담배를 팔 경우 100%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한 데 대한 반발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위와 소요가 빈번해진 반면 실제로 정치변혁을 이뤄내는 비율은 20년 전 70%에서 현재는 30%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체노웨스 교수는 분석했다.
과거처럼 풀뿌리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방식은 느리지만 지속성이 있었던 반면,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한 최근의 시위는 신속히 결집하는 만큼 빠르게 무너진다는 것이 그 이유다.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채 시위가 장기화해 과거처럼 대중봉기가 중요한 사건으로 부각되지 못하는 문제와, 권위주의 정부들도 프로파간다 전파와 지지층 결집 등에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lucid@yna.co.kr, hwangch@yna.co.kr> 2019/10/24 17:1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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