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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 얘기들 !

+ 소비, 소비, 소비하라는 말, 이것은 거짓 행복의 말! - 국민 통제수단

 

 

 

소비, 소비, 소비하라는 말, 이것은 거짓 행복의 말!

Consume, Consume, Consume With The False Promise Of Happiness!

 

 

 

By Andrew Martin

Jul 23, 2014 - 9:21:06 AM

 

 

Consume, Consume, Consume With The False Promise Of Happiness!

 

Andrew Martin, Collective-Evolution

Waking Times

 

빅터 리보우는 경제학자이며 유통 분석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그의 저작 "가격경쟁 1955" 는 현대 소비주의의 뛰어난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의 경제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우리의 막대한 생산 경제는 우리가 삶에서 소비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물건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이 제식을 치르는 수준으로 변질되기까지 한다. 제식이란 우리가 영적인 만족을 취함에 있고, 우리의 직성이 소비를 통해서 채워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위상을 표하는 수단이나 신분, 권위가 우리의 소비행태에서 표출된다. 그러니 삶의 의미와 중요성이 소비행태로 나타난다. 개인들이 사회 기준에 맞추고 안전에 일치하라는 압력이 크면 클수록 그는 취향과 개성을 더욱 표출하려고 한다, 그것이 입는것, 자동차, 먹는것, 집, 취미가 된다.

 

이런 상품과 서비스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소비자에게 공급되야한다. 우리는 "강요받는 소비가 요구되기도 하며 또 값비싼 소비를 한다. 우리는 물건들이 소비되고 태워지고 소진되고 교체되고 폐기되야는데 그 속도가 빠르게 일어나야한다. 그러려면 많이 먹고, 마시고, 입고, 타고다니고, 더 복잡하고 값비싼 소비를 해야한다. 가정용 전력기구나 스스로 하자는 운동은 값비싼 소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소비주의는 지탱할 수없다

Consumerism Is Not Sustainable

 

우리는 소비의 길로 자신을 밀어넣는다, 그래서 마치 양계장의 닭같은 사육되는 인간형으로 변질된다, 그것은 정부와 기업, 이해집단이 우리를 소비주의의 신도로 양육하는 형태가 된다. 그 가운데 사기술이 깔리며 허황된 희망으로 부추기며 도저히 지탱할 수없는 곳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이런 일은 경제와 국민생활이 안정상태로 들어간 2차대전 이후에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석탄과 석유가 풍부하게 공급되었다. 대중은 성장과 번영이란 이념으로 조건화되었는데 그것은 소비주의를 통해 실현되고 충족되었다. 유권자와 시민운동은 소비운동으로 충족된 것이다. 이런 본능의 충족을 제외한 다른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경제를 말할때 마치 그것이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큰 의미있는 순환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금융과 유가증권시장을 조종하는 지배그룹이나 정부, 대기업, 정치가 측은 경제를 대중을 충족시키거나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지배층들은 경제를 신뢰와 성장, 투자, 수요, 지출, 경기자극, 소비로 풀어내며 국민을 통제하고 충족시킨다.

 

서서히 우리는 변화의 조각을 보고 있다. 우리는 장기적인 행복이 무엇에 있는지 눈을 뜨기 시작했다. 우리를 충족시키는 소유와 소비가 그런 것과 관계가 없는 것임을 알게된다.

 

불교에서는 집착이 모든 인간의 고통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붓다는 집착이 욕망을 낳으며, 궁핍과 불안을 야기한다고 가르쳤다. 집착은 사로잡힘을 원하는 것이며 어떤 물건이나 사람으로부터 독립시키지 않는다. 집착을 벗어나서 독립적인 것은 마음을 수양하는데서 시작한다. 우리가 이것을 하면 우리는 개방된 마음을 갖게되며 그게 열정이 된다. 또 허망한 것을 알게 되고 우리 존재를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물리적 대상에 집착되어있다

We’re Attached To Physical Objects

 

사람은 물리적 대상에 종속될뿐아니라 관계성과 이념, 여론에 종속된다. 우리는 행복, 성공, 외적 충족에 연계되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계속 행복하게 만든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쳇바퀴에 돌아가는 다람쥐처럼 우리는 종국에 원하는 곳에 도달하길 희망한다. 우리는 늘 끊임없는 결핍과 소유의 사이클을 달리고 있다. 그런 것이 내일은 더 낫고 행복할 것이란 희망때문이다. 서구의 경제체제는 그런 성장과 번영의 주문에 걸려있다. 그것은 우리를 결핍과 최적 충족의 패턴에 엮어놓았다. 우리는 뭔가 약속된 소비주의의 양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의 원하는 목적이 소비를 통해 실현된다고 꾀는 것이다.

 

이제 잠시 벗어나 숲을 보면, 우리는 깨어난 자들을 보게된다, 그들은 내면에서 행복을 실현하고 사거나 팔지않고도 충족을 얻는다. 소유와 외적 모양으로 연연하지도 않는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음을 우리에게 자유와 생각의 공간, 시간을 준다. 그곳은 삶의 진짜 의미를 느끼게 인도하는 곳이다. 집착했던 것은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것은 우리가 현세을 인지하고 반응하는걸 조종했다. 세상은 높은 충족과 절벽아래의 두려움의 청룡열차를 우리에게 강요했다. 이번에는 더 높은 수준의 기쁨을 찾도록 눈을 떠야한다. 우리는 원하는게 충족되는 자가 충족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은 행복을 지속시키려는 의도가 더 깊은 곳에서 이뤄지는 곳이다.

 

 

http://www.wakingtimes.com/2014/07/19/consume-consume-consume-false-promise-happiness/

http://abundanthope.net/pages/Political_Information_43/Consume-Consume-Consume-With-The-False-Promise-Of-Happiness.shtml  

번역출처: 영문중략 http://blog.daum.net/petercskim/7868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