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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편지 !

+ 천국편지 / 삶의 운전대 & 두 가지 곤경들

 

 

 

천국편지 / 삶의 운전대 & 두 가지 곤경들 

 

 

삶의 운전대

The Steering Wheel of Life

 

Heavenletter #5542. - God  1/26/2016

http://heavenletters.org/the-steering-wheel-of-life.html

 


 

신이 말했다.

 

너의 가슴은 너의 삶의 운전대가 되기로 되어 있다. 너의 두려움은 너의 삶을 운전하게 되어 있지 않다. 두려움은 세상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세상이 두려움으로 너를 예방 접종하려는 것과 같다. 너는 두려움에 매달리는데, 마치 두려움이 너에게 오는 그 길에 있는 역경으로 네가 보는 것에서 너를 다소 보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로 지구상의 삶은 하나의 체험이다. 너는 체험하기로 되어 있다. 너는 점점 더 높이 가기 위해 여기 있다. 삶은 너를 이런 저런 식으로 자극할 것이다.

 

너는 네가 모험을 바란다고 말할 수 있지만, 너는 상상된 위안 구역 안에서 같은 상태로 머물기를 오히려 바랄 수 있다. 이것은 네가 너로부터 어떤 거리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너는 오히려 삶을 접근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언젠가 너는 삶을 가슴과 영혼으로 살 테지만, 바로 지금, 너는 삶의 모든 것을 구석에 두기를, 옆으로 발을 질질 끌며 가기를, 네가 현재 너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의 길을 방해하지 않게 하기를 좋아할 수 있다.

 

너는 삶을 산다는 생각에 벌벌 떨 수 있다. 너는 거의 모험하러 감히 나가지 않을 수 있다. 나를 이해해라. 나는 네가 파티의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삶이 소란스러워야 한다거나, 네가 행진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너는 멋진 외형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너는 멋진 악수 하는 자가 될 필요가 없는데, 그것이 참된 너 자신이 아니라면 말이다. 네가 참된 너 자신이고, 너의 큰 자신your Self의 다른 그림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너는 너의 삶과 너의 가슴을 함께 유지한다.

 

나는 너에게 삶을 환영하라고, 그것으로 열리라고 요청한다. 다른 쪽을 보지 마라. 기회를 보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지 마라.

 

나는 너에게 말하고 있다.

 

삶으로부터, 삶이 너에게 주는 것으로부터 너의 눈을 피하지 마라. 삶이 너를 공격하고 너를 때릴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너는 과거를, 과거의 상처들과 세상의 상처들을 가리키고, 삶에게 울부짖을 수 있다. 너는 전반적으로 삶에게 노No를 말할 수 있다. 너는 삶을 거부하고,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서 있으려고 할 수 있다. 아니면 너는 삶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시도에서 빠른 속도록 여기저기를, 모든 곳으로 다닐 수 있다.

 

그것에 직면해보자. 너는 너 앞의 삶을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위험스러운 심연으로 볼 수 있다. 멋진 좋은 것과 기쁨이 또한 일어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라. 그것을 생각해봐라. 너는 삶으로 운명 지어져 있지 않다. 너는 삶으로 축복 받았는데, 너의 삶이 너의 의지와 반대로 나타날 수 있을 때에도 말이다.

 

현재, 너는 나이가 먹어 가는데, 네가 그것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최고의 성형 수술도 지속되지 않으며, 어쨌든 모양은 단지 모양일 뿐이다.

 

세상에서 나이 먹는 것은 너의 육체를 언급하는 것이다. 나이 먹는 것은 세상에서 시간에 대한 하나의 증거이다. 무한 속에서는 나이 먹는 것과 같은 일이 없지만, 지구상에서는 하나의 형태는 하나의 형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태는 참된 너 자신이 아니다.

 

따라서 너는 누구냐? 너 자신의 어떤 그림을 너는 세상에서 그리느냐? 나는 과자 형틀로부터 너를 만들지 않았다. 하나됨은 네가 다른 모든 이들의 완벽한 이미지라고, 다른 모든 이들처럼 해야만 한다고 의미하지 않는다. 네가 무리를 따르기 위해 준비될 때, 너는 무엇을 놓치고 있느냐? 사랑하는 이들아, 나를 따르라.

 

너는 세상에서 명백히 보이듯이 다른 모든 이들과 같지 않다. 너는 세상을 너 자신의 창문으로부터 볼 기회를 가지고 있다. 네가 지각하는 대로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의 일이다. 네가 모든 이들로부터 할 수 있는 대로 배워라, 그러나 다른 모든 이들이 너의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너는 너 자신의 신적 존재God Being이다. 무엇이 너에게 영감을 주느냐? 너를 위한 무지개가 있고, 그것은 다른 모든 이들이, 심지어 너처럼 보는 다른 이가 보는 무지개가 아닐 수 있다. 가끔 너는 네기 세상을 보는 식으로 세상을 보는 세상의 유일한 자이다. 이것은 좋은 일이며, 그러나 세상은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듯이 보인다. “다른 모든 이들과 같아져라. 비슷해져라, 아니면 최소한 다른 모든 이들과 비슷하게 보여라.”

 

세상은 너에게 다음을 말할 수 있다. “세상의 다양성 속으로 나가지 마라. 세상은 위험한 장소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 자신을 드러냄을 피해라. 현상유지로만 있어라.”

 

나는 다르게 말한다. 나는 거기로 나가라고 말한다. 참된 너 자신을 찾고, 참된 너 자신이 되어라, 비록 네가 그 유일한 자라 해도. 너 자신이 아니라면 너는 누가 되겠느냐? 아니면 더 나아가, 너의 큰 자신your Self이 되겠느냐?

 

 




두 가지 곤경들

Two Quandaries

 

Heavenletter #5536, - God 1/20/2016

http://heavenletters.org/two-quandaries.html

Translated by Osiearth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끔 너는 네가 겪고 있는 그것이 무엇이든 한 순간조차도 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네가 너 자신을 불운한 무기력한 희생자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 입장(상황)이 너에게 참을 수 없다. 판단하지 마라. 너 자신을 희생자로 판단하지 마라. 너 자신을 순교자로 판단하지 마라. 판단하지 마라.

 

전반적으로, 너는 너 자신의 생각들로 스스로 예고되어진 희생자이거나 너는 너의 선견의 부족 때문에 그리고 너의 순진함의 우월성을 말하기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래, 이것 또한 진실이다, 그렇지만 너는 네가 너 자신을 그 안으로 넣은 그 입장에 대해 그리고 자기 스스로 부과한 희생자 신분의 판정에 계속 봉사하는 것에 대해 너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더 현명하다. 너는 너 자신의 상처들에 대한 발표자이다.

 

만약 무언가가 너에게 용납할 수 없다면, 왜 그것의 배너(기치)를 계속 표방하느냐?

 

내가 삶이 산들바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라. 나는 네가 지불하는 그 가격을 설정하는 그 자가 바로 너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고통으로 지불하지 마라. 고통은 상태가 나쁜 길이다. 고통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마라.

 

자주 너는 한 가지 고통을 다른 것을 위해 거래한다고 생각한다. 이따금 너는 ‘그랬더라면’을 생각한다. 너무 많은 ‘그랬더라면’들이 있다. 여하튼, 하나의 길이나 또 다른 길로, 너는 너 자신을 올가미 안으로 안내했다. 너는 네가 너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이 당연했을 때 너는 그 안으로 빠져버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삶은 선택들로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시간에서 너는 네가 선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으며, 종종, 심지어 네가 선택하고 있는 중일 때조차도 생각이 없다.

 

조만간(머잖아), 너는 삶에서 네가 응보를 받는(자기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그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너는 조만간 삶이 간단하게 너의 목덜미를 움켜잡는다는 그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너는 너무 많이 생각하는 누군가가 될지도 모르거나, 너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친애하는 이들아, 너희는 실로 이 춤에서 빠질 수가 없다. 너는 너의 삶에서 파트너(상대)이다. 여하튼, 어딘가에서, 너는 발생시켰다(비용을 물게 되어있다).

 

이것은 네가 앉아서 죄의식을 느끼는 어떤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죄책감은 삶의 낭비이다. 죄의식은 확실히 너의 삶의 목적이 아니다. 죄책감은 네가 있는 장소에서 너를 지키는 막다름(교착상태)이기 때문에, 죄의식은 네가 주의를 기울이기 위한 가치 있는 목적이 아니다. 죄의 완전한 고삐를 떨쳐 버려라 그리고 삶을 앞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라.

 

네가 고통을 창조하는 너 자신을 그 안으로 넣는 상황이 무엇이든 너는 - 네가 너 자신에게 너 자신의 삶을 지적하는 방법을 -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의해 변화하게 된다.

 

너의 삶의 할부금(불입금)이 무엇이든 너는 곧 만나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또 다른 할부금이 있다. 너는 두 가지 곤경을 겪는다:

 

1. 삶은 동일하게 유지된다(삶은 똑같은 채로 머무른다).

2. 삶은 동일하게 유지하지 않는다(삶은 똑같은 채로 머물지 않는다).

 

어느 한쪽의 길이든(두 길 다) 고통스럽다. 너는 너의 삶을 똑같이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리고/또는 너는 너의 삶을 다르게 만들기를 원한다.

 

너는 삶이 입장을 확실히 할 때, 그것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너는 경험적으로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이 너를 세상에서 삶을 사는 한 인간으로 만든다. 가끔, 삶은 네가 그것을 원하는 방식이고, 가끔 삶은 네가 그것을 원하는 그 방식의 반대이다. 너는 너의 삶에서 변화를 겪거나, 너는 갇힌 느낌을 받는다.

 

너는 고통이 네가 마땅히 받아야할 것이라는 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면 어떨까? 나는 고통이 네가 마땅히 받아야할 것이 아니라고 명확히 말하겠다. 사랑이 네가 마땅히 받아야할 것이다. 이제 너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해라. 너는 너의 가슴으로 사랑을 나르면 나를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랑을 느낄 것이고, 너의 사랑이 더 많이 진심에서 우러날 것이다. 사랑은 네가 부양(양육)할 어떤 것이 되기로 되어 있지 않다. 만약 네가 너의 사랑을 저지하는 무엇이든 버릴 작정이라면, 너의 사랑은 스스로 밝게 빛날 것이다. 너는 나의 사랑으로 만들어졌다. 너는 나의 사랑의 바로 그 존재이다. 너는 나의 이미지(상)로 던져(드리워)졌지만, 너는 흐려진(결점 있는) 이미지로 받았고 그것을 너라고 불렀다.

 

삶의 혼란을 교정하기 위해 너무 힘들게 시도하기보다는, 아마 너는 그것을 버릴 수 있다. 너는 그것을 너의 어깨로부터 떨어낼 수 있으며 너의 삶의 목적을 향하여 최단 거리를 만들 수 있다. 너의 삶의 목적은 분명히 견디(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목적은 단순히 너의 삶을 구조하기 위한 것보다 더 위대하다.

 

너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나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너는 이런저런 것에 대한 너의 쾌락과 오락 외에 너를 저지시키는 것을 고통이라고 부른다. 과거로 되돌려라(원상태로 돌려라), 나에게 오너라(합류하여라), 지금 어떤가?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9120 신의 편지/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