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년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
중국 1만년 역사 프로젝트
동북공정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역사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이미 중국은 1996년에 시작한 단대공정으로 하, 상(은), 주 3대 왕조의 연대를 확정짓고 그 실행 프로그램인 서북 서남 동북공정을 통해 위구르, 티벳, 고구려 등 ‘현재’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문명을 중국 것으로 억지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2003년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原工程)’, 약칭 탐원공정을 추가하면서 무시무시한 야심을 드러냈다. 탐원공정은 황제헌원, 염제신농씨 등 중국에서 지금까지 신화로 받들던 중화문명의 시원을 추적해 동북지역 전체 고대문명을 중국사로 편입하고, 나아가 아즈텍, 마야문명을 일으킨 사람들도 상나라의 후예들이라는 논리를 개발, 궁극적으로 중국의 역사를 1만 년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전략인가. 아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현실인가. 환국, 배달, 단군조선에서 비롯되는, 우리가 그토록 외쳐왔던 한민족의 9천년 역사인데 우리가 복원해야할 우리 뿌리역사를 중국이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천인공노할 중국의 이런 만행도 분개할 일이지만,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한 우리 사학계와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부에도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보아야 한다.
동북공정 불러온 우리 국사 교과서
“단군조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에 대응하는데 근본적인 문제점이 생긴다. 일제 식민사관의 잔영이 그대로 투영돼 있는 국사 교과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얼마 전 한 월간지 기사에 실린 역사학자 이덕일씨의 말이다.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현 사학계가 동북공정이라는 화를 자초했고, 단군조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다보니 뿌리가 모호해진 고구려와 발해는 덤으로 중국에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한민족의 역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단군이 조선을 개국했다고 막연히 알고 있다. 그런데 단군 이전의 환국, 배달국은 차치하고라도 실제로 현재의 국사교과서는 단군조선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기록하고 있다.
‘청동기시대가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에, 만주지역에서는 기원전 15세기~기원전 13세기경에 전개되었으며, 청동기시대 족장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이 고조선’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 <삼국유사>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B.C. 2333)’ 고 써놓았다. 한 교과서에서도 고조선의 건국시기가 800년에서 1300년이나 차이가 난다. 거기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 건국하였다고 한다” 라고 마치 남 얘기하듯 기술하며 사실상 고조선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고조선을 이어 부여, 옥저, 동예 등을 잠시 언급한 뒤 바로 고구려로 넘어가는 등 고조선 2000년 역사는 얼렁뚱땅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고조선(단군조선)을 유령화 시켜놓으니, 그 헛점을 파고들어 중국은 고조선에 대해 ‘은나라 말 기자가 한반도에 처음 기자조선을 세웠으며, 기자조선이 고구려 발해 역사의 시발점’이라 주장하고 있다. 단군조선조차 이러한 실정이니, 그 이전의 배달국과 환국시대는 꿈도 꾸지 못할 신화 속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말로는 ‘반만년’, ‘배달겨레’라 하지만, 실제로 왜 반만년인지 왜 배달겨례인지 현 국사교과서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도가 없다. 사대주의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의 뿌리 깊은 잔재가 우리 역사를 이처럼 불구로 만들어 놓았고, 그 여파는 중국에 좋은 먹잇감을 만들어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1만년을 이어온 한민족 역사
그런데 사실상 중국 한족의 시조로 알려진 황제헌원으로부터 소호, 전욱, 제곡, 요임금, 순임금과 그 뒤를 이은 하나라의 주임금, 상(은)나라의 탕임금,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은 모두 100% 동이족 혈통이다.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은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 불렀다. “중국 고전 <초서>를 보면 ‘황제(黃帝)는 백민(白民)에서 태어나고… 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라 기록하고 있다. 또 <맹자>와 사마천의 <사기>에는 ‘순임금은 동이인(東夷人)이다’, 또 <사기>에는 ‘창의(昌意)는 황제헌원씨의 아들이다’, ‘창의로부터 7세가 순(舜)이다’라 기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고대사는 바로 우리 배달 조선민족의 역사이며, 오늘날 중국은 한민족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창업의 시조가 된 우리 한민족의 뿌리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의 정통 도가사서인 『환단고기』 「삼성기」상편 첫머리가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즉 ‘우리 환국의 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 되었다’로 시작한다. ‘환국’은 파미르 고원에 있는 천산(天山)에서 발원하여 천해(바이칼호)의 동쪽으로 뻗어나가 그 영토가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에 달했다. 지금의 중앙아시아, 중국 등에 걸치는 광활한 영토였다. 환국은 초대 안파견 환인(BCE 7197)으로부터 3301년간 존속되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민족 시원역사가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BCE 3900년 전, 인구증가와 기후변동으로 환국 백성들은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환국의 정통을 계승한 환웅께서 문명개척단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백두산) 아래에 ‘신의 도시(神市)’를 열고, 나라이름을 ‘배달’이라 칭했다. 배달국은 1대 거발환 환웅천황을 시작으로 18대를 이으며 1565년 간 지속되었다. 우리민족을 ‘배달겨레’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 배달국이 실질적으로 한민족 역사의 시조이다. 월드컵을 통해 크게 알려진 ‘치우천황’이 배달국 14대 환웅천황이며, 인류문명의 시조인 태호복희씨, 의학의 시조인 신농씨 등 중국인들이 신화로 모셨던 인물들이 사실상 모두 배달국시대 실존했던 우리의 선조들인 것이다. 이 배달국을 계승하여 초대 단군왕검께서 BCE 2333년 전에 아사달(하얼빈)에 나라를 연 것이 고조선이다. 당시 동북아 전체를 호령했던 그 주역이 바로 단군조선인 것이다. 47명의 단군왕검이 2096년간 다스렸던 단군조선은 BCE 232년 해모수의 북부여로 계승되고, 북부여는 다시 고구려(BCE 58년)와 대진국(668년)으로 국통맥이 이어진다.
누가 우리 역사를 되찾을 것인가
한민사의 국통맥을 보면, 사실상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 아니라 9천년을 상회하며, 중국사는 오히려 한민족에서 뻗어나간 방계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장대하고 찬란한 배달 조선민족의 역사가 있었건만 우리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식민사학은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되찾기는커녕 축소시키기에만 급급하다. 반면 우리가 되찾아야 할 1만년 역사는 중국이 자기네 역사로 둔갑시켜 복원에 나선 것이다. 참으로 통탄스럽고 어이없는 일이 옛 우리 선조들의 땅에서 대대적으로 자행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외교’라는 이유 때문에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않고 있다. 나라를 팔아먹는 것만 매국이 아니다. 민족의 혼인 역사를 팔아먹는 것은 장기적으로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다. 중국의 계획대로라면 머지않아 중국은 자기네가 세계문명의 뿌리임을 자처하고 나설 것이다. 그들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1만년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인 우리 배달민족이 먼저 깨어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진리로써 진정한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 (道典 5:347:16)
출처 : 월간 개벽
환국과 4대 문명
환국의 증거중 하나
아메리칸 인디언은 환국문명에서
다음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환국문명이라는 증거를 살펴본다.
① 미국의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이 아시아의 동북지방에서 베링해협을 건너(소개벽이 발생하기 약 1만여년 이전까지는 베링해협이 없었고 러시아와 알라스카가 이어져 있었다)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것은 언어, 혈액형, 체질(형질), 치아모양 등의 과학적 연구방법(DNA 추적)을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 일례로, 독일 뮌헨대의 스반테 파보 교수팀은 미 플로리다주에서 발견된 7천년전 미라의 DNA성분은 미국 인디언의 DNA와는 전혀 다르고, 현재 아시아인의 DNA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을 밝혔다.
②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그들 부족의 최고지도자를 ‘아파치’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초대 환인 ‘안파견“에서 유래된 것이다.
③ 북미의 오리건 주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방소성 탄소 측정결과 약 9천년전의 것이라고 하며,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하다.
하
④ 미국 와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인디언들이 쓰던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삼태기, 베틀, 어망, 물레 등은 우리 선조들이 쓰던 것과 동일한 것이 많다. 특히 빗살무늬토기는 그 모양과 토기가 우리의 고대 빗살무늬투기(신석기 토기)와 거의 유사하다.
<태왕사신기 중에서 환웅과 웅족 여성의 만남 >
■ 환웅은 삼신교의로 민족을 통일하였다
신시神市란 환웅이 세운 나라를 말한다. 일연의『삼국유사』에는 환웅을 환인의 서자라 했고 단군을 환웅의 서자라 했다. 왜 하필 환웅이나 단군이 적자가 아닌 서자란 말인가. 하필이면 서자라고 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서자란 적자가 아니란 말이기도 하고 장자가 아니라 차자 이하란 뜻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삼국유사에서 서자란 말을 쓴 것은 “새로 나라를 세운 건국자”란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바꾸어 말해서 건국자란 뜻이다.
만일 환웅과 단군이 적자도 장자도 아닌데 왕위에 올랐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거슬리면서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고 왕조가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백일사』에서는 환웅이나 단군이 모두 서자라 한 것이며 그들은 스스로 왕위에 올라 정권을 잡았던 것이다. 『환단고기』에서는 환인도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이며 환웅도 하늘에서 지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단군도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니 이 세 분은 제위를 위양(委讓) 받은 것이 아니라 왕조를 교체한 분들이었다고 해석된다. 환국 말기에 호족과 웅족 사이에 갈등이 생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이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무력보다도 정신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환웅은 양편에 삼신숭배의 가르침을 권고하고 호족이 환웅의 권고에 응하지 않자 마침내 호족을 제거하기로 결심하였다. 『삼성밀기』에 말하기를 “환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이 있어 우환이 되었다. 우환은 원주민인 호족虎族과 이주민인 웅족熊族 사이의 갈등으로 비롯되었다. 환웅은 이 두 족속을 화합하기 위해 먼저 삼신교의三神敎義를 믿도록 권고하였다. 그러나 호족은 이를 듣지 않았고 웅족만 환웅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위의 글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을 간추린 것이다. 신시본기의 원문은 아주 복잡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세히 검토해 보면 그 내용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호랑이와 곰 이야기를 다른 차원에서 다시 쓴 것이다. 가령 호족과 웅족의 성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웅족의 성품은 어리석고 괴팍하며 스스로 잘난 채 하고(우퍅자긍愚愎自肯) 서로 어울리기를 싫어한다(불긍화조不肯和調). 그에 반해 호족은 욕심이 많고 잔인하여(기탐잔인嗜貪殘忍) 약탈을 일삼았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호랑이와 곰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여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으나 이 신화는 웅족과 호족간의 싸움을 신화적으로 묘사한 데 지나지 않다. 글귀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환국에서는 말기에 호족과 웅족 간에 서로 잘났다고 싸웠는데
월간 개벽 : 박성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
5대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 태호복희씨
동이(東夷)의 혈통으로 온 태호복희
한민족의 뿌리역사를 밝혀주는 역사서『환단고기』를 보면, 태호복희씨에 관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 “태호복희(BC3528∼BC3413)는 동방 구이(九夷)족 중, 풍이(風夷)족 출신으로 제5대 태우의 환웅천황의 12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크게 밝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복희씨는 지금의 행정관에 해당하는 우사(雨師)의 직책을 맡았으며, 우주 생성변화원리의 이치를 담은 팔괘를 처음 그었다.”(참고 : 『환단고기』) 복희씨가 동방 한민족[東夷]의 혈통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중국의 사서(史書)에도 그 기록이 전해온다. “태호복희왕은 진국의 출신이다.(帝出於震)” [『태평어람』*卷78 「제왕세기」태호복희씨조] “태호복희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 공인되어 온 일이다.” [『夷夏東西說』, 중국학자 부사년(傅斯年)] 『태평어람太平御覽』*: 송나라 때 이방(李昉)이 편찬한 책으로 중국 백과사서 중 백미로 평가된다. 여기서‘震’국은『주역』 설괘(說卦)에“만물이 출호진(出乎震)하니, 震은 東方也”라고 한데서 알 수 있듯 동쪽지역을 뜻하며, ‘동방’이라는 말은『후한서』「동이열전」서문에“東方曰夷”라 하였으므로, 결국 태호복희가 우리 동이족임을 뜻하는 것이다.
14대 자오지 천황 치우천황
몇 대를 지나 자오지한웅(慈烏支桓雄)이 나셨는데, 귀신 같은 용맹이 뛰어났으니 동두철액(銅頭鐵額)을 하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듯 온 누리를 다스릴 수 있었고,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크게 그를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이라고 불렀으니 치우란 속된 말로 우레와 비가 크게 와서 산과 강을 크게 바꾼다는 뜻이다"『한단고기』 「삼성기전」 下
역사라는 것은 현실을 창조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가장 커다란 원동력이 되는 것이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무에 보이지 않는 뿌리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나무에 줄기와 가지에 부분이 있습니다. 역사란 것은 나무의 뿌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부분 줄기와 가지를 창조하는 근원적인 힘이 뿌리에 있듯이, 보이지 않는 뿌리에 있듯이 과거에 흘러간 역사라는 것은 현실을 창조하고 어떤 미래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그런 근원적인 힘이 역사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 대전대 윤창렬 교수님 "한민족사의 국통" 강의 中에서 -
韓 民 族 의 國 統
[삼성조 시대]
환국(桓國) 환인 계보 (7대, 재위년수 : 3,301년서기전 7199~3898(3301년 )
신시배달국 환웅 계보 (18대, 재위년수 : 1,565년서기전 3898~2333(1565년)
단군조선 단군 계보 (47대, 재위년수 : 2,096년) 서기전2333~ 238(2096년 )
송화강 아사달시대 :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백악산 아사달시대 : 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장당경(開原) 시대: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B.C.425∼B.C.238:188년간)>
[열국 시대 ]
북부여 (서기전 239~58년)
남삼한-마한,변한,진한(서기전194~서기8년)
최씨낙랑국(서기전195경~서기37년)
동옥저
[사국 시대 ]
고구려(서기전58~서기688)
백제(서기전18~서기660)
신라(서기전18~서기668)
가야(서기42~서기532)
[남북국 시대 ]
대진국 발해(668~926)
후신라(통일신라,668~935)
[고려 시대] (918~1392) - 요, 금(金), 원(元)
[조선 시대] (1392~1910) - 청(淸)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1945)
[남북분단 시대]
대한민국(1948~ 현재)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1948~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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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국(桓國) 환인 계보 (7대, 재위년수 : 3,301년)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B.C.7199)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任)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 신시배달국 환웅 계보 (18대, 재위년수 : 1,565년)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86, B.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93, B.C.3511, 115세) :환웅 천황에서 5대를 전하여 태우의太虞儀 환웅이 있었다.(.......)아들을 12명 두었는데 장자는 다의발多儀發 환웅이라 하고 막내는
태호太 라 하니 복희伏羲라고도 한다.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거련 환웅(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양운 환웅(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고 환웅(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 단군조선 단군 계보 (47대, 재위년수 : 2,096년)
가. 송화강 아사달(하얼빈)시대: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1대 단군 임검(王儉, 93, B.C.2333) 2대 부루 단군(扶婁, 58, B.C.2240, 태자) 3대 가륵 단군(嘉勒, 45, B.C.2182, 태자) 4대 오사구 단군(烏斯丘, 38, B.C.2137, 태자) 5대 구을 단군(丘乙, 16, B.C.2099, 羊加) 6대 달문 단군(達門, 36, B.C.2083, 牛加) 7대 한율 단군(翰栗, 54, B.C.2047, 羊加) 8대 우서한 단군(于西翰, 8, B.C.1993, ? ) 9대 아술 단군(阿述, 35, B.C.1985, 태자) 10대 노을 단군(魯乙, 59, B.C.1950, 牛加) 11대 도해 단군(道奚, 57, B.C.1891, 태자) 12대 아한 단군(阿漢, 52, .C.1834, 牛加) 13대 흘달 단군(屹達, 61, B.C.1782, 牛加) 14대 고불 단군(古弗, 60, B.C.1721, 牛加) 15대 대음 단군(代音, 51, B.C.1661, ? ) 16대 위나 단군(尉那, 58, B.C.1610, 牛加) 17대 여을 단군(余乙, 68, B.C.1552, 태자) 18대 동엄 단군(冬奄, 49, B.C.1484, 태자) 19대 구모소 단군( 牟蘇, 55, B.C.1435, 태자) 20대 고홀 단군(固忽, 43, B.C.1380, 牛加) 21대 소태 단군(蘇台, 52, B.C.1337, 태자)
나. 백악산 아사달시대 : 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22대 색불루 단군(索弗婁, 48, B.C.1285, 욕살 고등의 아들로 우현왕을 거쳐 단군으로 즉위) 23대 아홀 단군(阿忽, 76, B.C.1237, 태자) 24대 연나 단군(延那, 11, B.C.1161, 태자) 25대 솔나 단군(率那, 88, B.C.1150, 태자) 26대 추로 단군(鄒魯, 65, B.C.1062, 태자) 27대 두밀 단군(豆密, 26, B.C.997, 태자) 28대 해모 단군(奚牟, 28, B.C.971, ? ) 29대 마휴 단군(摩休, 34, B.C.943, ? ) 30대 내휴 단군(奈休, 35, B.C.909, 태자) 31대 등올 단군(登 , 25, B.C.874, 태자) 32대 추밀 단군(鄒密, 30, B.C.849, 아들) 33대 감물 단군(甘物, 24, B.C.819, 태자) 34대 오루문 단군(奧婁門, 23, B.C.795, 태자) 35대 사벌 단군(沙伐, 68, B.C.772, 태자) 36대 매륵 단군(買勒, 58, B.C.704, 태자) 37대 마물 단군(麻勿, 56, B.C.646, 태자) 38대 다물 단군(多勿, 45, B.C.590, 태자) 39대 두홀 단군(豆忽, 36, B.C.545, 태자) 40대 달음 단군(達音, 18, B.C.509, 태자) 41대 음차 단군(音次, 20, B.C.491, 태자) 42대 을우지 단군(乙于支, 10, B.C.471, 태자) 43대 물리 단군(勿理, 36, B.C.461, 태자)
다. 장당경(開原) 시대 : 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 (B.C.425∼B.C.238 : 188년간)
44대 구물 단군(丘勿, 20, .C.425, 욕살) :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고치고 三韓을 三朝鮮으로 개정 45대 여루 단군(余婁, 55, B.C.396, 태자) 46대 보을 단군(普乙, 46, B.C.341, 태자) 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58, B.C.295, 대장군)
계해 58년(B.C.238) 단군조선을 폐관하고, 이후 6년간 오가(五加)들이 함께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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