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분의 이야기 중에서.. 발췌
우주 물질에 양(정) 압과 음(부)압 그리고 인간의 숫자
물(만물)질(바탕)에 음양 압은 우리의 각에 나타나는 것들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합니다.
우리는 우주에 질 압을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 그 자체는 알지만, 수백억년이 라는 장구한 시간에 그 실상을 알기 힘 든다. 이를 풀기위해서는 반드시 우주에 질 압을 알아야 한다.
우주에 정 질 압일 때는 우리의 각으로 그 있음을 알게 되지만 수많은 시간 즉 수백억년이 지나간 뒤에 우주에 부 질 압이 형성하면 인간의 각으로 있게 하는 어떠한 것도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주에 평창과 수축이, 어떠한 조건에서 가능한지를 인간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 질 압은 바깥쪽은 정압을 형성하지만 안쪽은 끝없는 부압을 만들어 인간의 각에 나타나든 모든 것을 희석 시켜 인간의 각으로부터 그 있음을 부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우주의 부압 부와 외적인 정압부에 열 차이로부터 발생되는 힘으로 인간의 착감과 불 착감 현상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주 외적 정 질압에 힘에 균형이 무너지면 그때부터 부 질압 쪽으로 우주 압의 힘이 바꾸어지지만, 그 밖에 우주는 곳 우리의 우주와 경계를 만들면서 외 우주와 내 우주로 구분이 됩니다. 이것은 그 질 압의 경계로서 가능 하며, 어떠한 선과 면으로도 구분 되지는 안습니다.
우리는 우리 우주와 외우주의 경계를 풍선을 만들어 큰 통에 넣고 압을 가하면 풍선이 서로 서로 닫는 부분이 점에서 풍선 전면으로 바뀌는 현상과 같이 되면서 그 풍선은 서로 서로 접하고 이어진 바깥풍선은 다시 다른 풍선과 서로 접면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주의 바깥과 안을 나눌 것이 아니라 우주계에 끝없는 구조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주는 인간이 선호하는 규격품이 아닙니다. 우주가 인간의 규격에 들어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창조주에 몸은 끝없는 우주와 같아서 우리에 바람을 여지없이 어긋나게 합니다. 이것이 창조주에 뜻입니다. 인간의 잣대를 싫어하는 창조주에 본질을 우리가 잣대로 재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은 인간처럼 또는 인간의 공식과 같은 것으로 보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창조주는 인간이 만든 숫자 구골플렉시안-(0이1조개)으로도 그레이엄수(0이 100조개)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항공모함에서 주변 비행물질을 수백 개 추적하고 수십 개의 유도탄으로 비행물질을 추적하여 폭파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창조주의 추적기능은 수만은 별과 수만은 우주 물질 낱개와 수만은 생명과 그 체내에 세포를 직접적으로 운영하며, 약간에 부분을 생명개체로서 움직이게 합니다. 그것은 열섭취와 그 행방을 임의로 선택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의 기능은 전체기능의 10%에서 20%선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극소수에 기능을 제외한 부분을 창조주에 직접 운영에 지음을 벗지 않습니다. 이러한 창조주에 무한 능을 우리가 만든 숫자로 헤아리려 하는 인간이 어리석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세상을 보려는 무모함이 가상스럽지 않습니까? 나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웃음을 웃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창조주에 일을 그을음에 가두려는 인간들의 무모함에서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오만하게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지금까지의 오만을 뉘우치는 인간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컴퓨터는 이런 일에서 상당한 모방이 있을 것이라 믿기도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숫자로 외우주의 수도 셀 수 없으며 우리 우주 안에 일도 감히 상상 하지 못합니다. 가능하다면 인간이 숫자로 세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상상으로 접근하려 함이 오히려 웃음거리를 면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주의 착감과 불 착감 그리고 그 헤아림의 숫자와 인간 그리고 우주를 인간에 부호로 가두어보려는 무모한 어리석음 그리고 오만 이 모두는 새 시대에서 청산되어야 할 일들입니다. 다만 지나간 일이 고귀한 문화로 그 가치를 잘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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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창의에 뜻 맛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성역은 ?
창조(創造): 처음 짓는 것,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창의(創意)처음에 뜻을 열어가는 것, 새로운 의견을 생각하여 냄. 또는 그 의견, 인간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과 물 생을 짓는 것을 양 분하여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창조주는 그 두 부분에, 동시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는, 창의와 창조를 우리는 인간의 견해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창조라는 것을, 인간이 성역이라면서 묻어둔 곳은, 지금처럼 묻어두어야 하는 것인가?
꼭, 그렇다고 보는 것은 그 부분을 읽을 능 이 부족한 인간의 자기변명일 뿐이다.
실재로 우리가 보는, 창조의 부분은 더 깊이 읽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창조주를 더 높이 여기는 길이다. 그렇다면 창조는 우선 대분하여 말하면, 보호하여 만들어 가는 지음, 즉 세포로 시작하고 그 분열을 이러키 면서 나타내는 지음과 무조건적인 가혹한 분해와 결정으로 짓는 것이 있으며, 이를 간단히 말하면 내적 분결(分結)과 외적 분결이라고 봐야 한다.
내적 분결은 까다로운 조건에서 유지되는 생 적 분결이며, 또 다른 것의 외적 분결은 어떠한 조건도 주어지지 않는 비 물로서, 보려 하는데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나타내려는 생각이며, 창조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에 제한된 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에 물과 열의 현상은 모두 창조주의 무한 각에서 본다면, 숨김없이 나타나기에 이는, 다 같은 의미로서, 허와 물은 모두 같은 재(材)일뿐이다.
우리가 이런 일(짓기)을(를) 쉽게 나열하면 일상생활을, 영화라고 한다면,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만은 장면과, 장면 모두 화면으로 지어(창조하여)서, 저장하고 난 뒤에 1초에 30여 화면을 막 위에 연결하여 영상을 비추어 주어야 한 토막의 이야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에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계속되는 화면을 만들고, 인간(생명)의 일상으로 상영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잠시 지어 주지 않는다면, 그곳은 시간이 멎어야 하는 사고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일을 쉽게 이해하려면 화성에는 상영되어야 할 영상제작이 이루어 지지 않는 다고 봐야 한다. 물이 흘러야 하는데 북극과 남극은 물이 얼어 공간적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른 것은, 어떤 물은 영상이 이어지고, 어떤 물은 영상이 멎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별이 뜨고 지는 것, 역시 영상이 지어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공에 변화는 시를 짓는 것이고, 시를 멎게 하는 것은 공을 짓지 않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에 변화와 물에 변화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나, 이는 곧 시를 짓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는 어떤 화면을 짓지 않으면 곧 영상이 멎어져 나가지 못하는 것이니, 이러한 일은 화면이 진행하는 것을 우리의 각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영상제작을 어떻게 하느냐(짓느냐)에 따라 그 지음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몇 %를 하고 창조주가 몇%를 지었는지 확실히 알기 어려우나, 어쩌든 곳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농사를 짓고, 내가 그 농사를 다 지었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또는 하늘에 뜻이라 하여, 넉넉한 추수를 감사드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창조주에 지음이 우리에 일과 같이 일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지음이 까마득한 옛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 무한 능이 아니고, 신에 각은 무한 능이기에 그 차를 부정할 수 없어서 그 간극에 차를 느끼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전류와 프로그램이 가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결 관계를 어떻게 이용하고 언제 전류의 사용을 가장 효과 있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있습니다. 이렇듯이 우리와 창조주의 일은(지음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각(깨달음)의 문제를 전여 가동 시키지 않아서 어떠한 사건을 풀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지금에 각에서 벗어나는, 일종에 탈각현상을 체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탈각하는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 다면 상당한 부분에서 인류에 문제를 우리가 직접 풀어가는 무거운(큰)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수십억 인류와, 인류와 같이 살아야 하는 생명 계에, 보다 윤택한 부분을 감당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사양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생명재앙을 미리 막아, 보다 질 높은 삶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더 생각하고 우리의 삶과 연결해야 합니다. 성역이라 하면서 거리를 두는 것은 제한된 각에서 벗어날 힘이 없어서 변명하는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극복해야 합니다.
출처 : 작성자 : gkarud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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