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속 얘기들 !

열, 수, 기, 공, 각

열, 수, 기, 공, 각



: 생명에 명을 이어주는 양성에너지에서 음화 하여 음 에너지로 변하는 과정, 하늘이

준 힘, 온도, 식량이다.


: 우리 몸에 열원을 실어 나르는 매체 음수 즉 물이다.


: 우리가 호흡하므로 산소를 공급하여 연료를 체온과 힘으로 변화시켜주는 공기다.


: 우리의 우주공간에 철을 녹여 부어 놨다면, 우리 생명은 어떤 공간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생의 공간, 그 공간이다.


: 우리의 감각, 그 감각이 규격화된 의식에서, 신의 공간으로 나가 삶의 길을 넓힐 수

있는 감각과 정보인식이다.


이러한 천부 재는 생명을 살게 하기위한 기본재이다.
이것이 기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너무 우리의 생명과 존재를 이어가는 것,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등한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 기이 한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음흉한 사적 욕심을 채우려는 생각을 한다면 반드시 반성하고 생명의 일원, 본래의 그 자체로 돌아오기 바란다.




우리는 왜? 그렇게? 무엇을?


생태계


우리에 건강은 공 생태계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것에 생태 건강이 약화되면 않되



삶이란?


하늘이 생명에게 준 열, 수, 기, 공, 각,
이 기본을 해하거나 그릇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천부 재원을 해하지 마라.



천부 재


이것을 강자의 마음 내키는 대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 바로 신의 지체이며, 신의 소유를 인간이 해할 수 없다.



만약에


이를 부득이 조작해야 할 경우
본래의 생태건강을 위한 해로움 없이 더 건강하게 하는 조건이 꼭 필요 하다.



이것이


안되면 다음 세대에 큰 부담이 되
생태조작의 이익은 강자의 재산을 늘리기는 하지만 약자의 생명을 해한 대가다.



약자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음흉한 방법으로
신의 생명을 무시하고 저들의 장난 같은 일에 위해를 당할 수는 없다.



이익은


생명해악보다 아주 작은 일이 많다.
이러한 생태의 깊이를 모르고 함부로 한다는 것은 다만 무식한 소치라 할 것이다.

강한 체력과 살기위한 생각



우리는 아이들을 말을 듣지 않으면 매질을 한다.
그러니 아이는 맞기 싫어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매질을 벗어나든지 아니면 가해하는 사람에, 뜻에 맞추기 위해 애쓰고 기계에 부속처럼 규격화되는 영리함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그 아이가 살 수 있는 최선은 아니다.
그 아이는 가해자가 없을 때, 어떻게 해야 아이 자신이 살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익숙해진 행동을 반복하면서 그 행동에 대가를 얻어, 빈 하게 살든 부 하게 살든, 아니면 윤택하게 살든, 사회에 처해 있는 대로 살아가다가 또다시 그 자신과 같은 자식과 후대를 남기고 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그러한 무리를 꼭 살아남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인류는 수억에서 수십억으로 또는 백억을 넘거나. 아니면 삶에 이치에 따라 환경이주는 적정 인원으로 조정되어 살 것이다.
어떻게 되든 우리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수많은 사람과 경쟁하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할 것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국제 사회가 된다고 하드라도 경쟁은 해야 하고 그 경쟁의 대가는 바로 그 자신 또는 우리에게 지워져 혹은 인간다운 삶을, 또는 노예처럼 국제적 평화 속에서 숨쉬며, 임종을 기다리는 시대적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도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숨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이들을 구겨서 내 입맛대로 만들면 우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짐작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예측 가능한 미래란 확실한 보장이 되어있는 것은 아니면 그나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대로 되거나 그와 비슷한 방향으로 갈 것이다. 우리가 경쟁자들의 선두에, 설 수밖에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궤도를 따라가는 열차처럼 가야 할 길을 가기만 해야 한다.


우리는 새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우주를 동경했고 결국엔 우주를 가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습관을 무조건 따라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새를 보고 때로는 물고기를 보고 나름대로 배우고 생각하며, 보다나은 길을 가기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고서를 읽고 흉내를 내면 그것이 이상이라고 말 하면서, 생각을 같이 하는 무리들끼리 모여서 생각을 하나로 주입시키고 생각이 다르면 서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저들의 사회질서에 맞지 않는다고 적대시하며, 상대방이 약하다고 굴복 시키려하는 이러한 삶은, 앞으로 언젠가 죽고 죽이며,

살기위해서는 강한 자들의 무리에서 삶을 보장받기 위해 빌붙거나 흡수당해서 구별이 불가능한 인간으로 변질해야 하는, 처절한 삶을 계속해야 한다면, 우리는 끝없는 우주를, 수많은 별들을, 그리고 인간이 없다고 하나,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헤아리지 못 하는 우주의 질서, 생명에 이치는 인간들의 장난이여야 한다.

인간이 없다고 하는 우주는 무한한 빛의 발산과 흩어진 빛의 기능을 소멸한 뒤, 인간의 각(覺)으로 알 수 없는 암흑물질 빛의 시체, 또는 우주에너지로 차있는 하늘에 양 압과 음압이 쉴 새 없이 요동하며, 밀리고 부닥치며, 조건이 물어 익으면 순간적으로 우주 대폭발을 하며,

이로서 얻은 우주최고의 양 압을 서서히 풀어가면서, 기계적 생명을 낳아 우주 곳곳마다. 나타나고 살아지는 천체 생명을 낳으며, 그곳에는 유기 생명으로서, 신에 꽃이 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신에 몸 된 수많은 생명 숲에서 나름대로의 건강을 지키며, 적정한 분별 심을 유지하고 신이 준 생명에 윤택을 갈구 한다.


우리는 고전에 수많은 글들이, 우주가 하는 말이 아니고 우주에 글이 아니며, 우주의 기계생명과 신에 꽃 됨을 누리는 유기 생명체들과, 미래에 인간의 힘으로서 기계적 생명과 유기적 생명을 읽고 그 깨달음으로 각을 열게 되니 이로서 기계적 생명과 유기 생명을 조합하는 인간의 창조물 뇌리 적 생명체를 짓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우주 질서를 인간이 만든 글과 말과 욕정으로, 조작된 백색 거짓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저들에 영욕을 따라 이치를 조작해서, 수많은 생명에 고통인 재물과 돈을 받아내며, 그들의 본질은커녕, 저들 자신인 저들의 정채조차 바로알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인류 사회상을 무조건 따르라 하니, 어찌 우리가 인류를 위한 값진 삶을 산다고 할 것인가?
다만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대로 살면서 처절하게 싸워서 죽고 죽이며, 인간과 인간이 서로 잘못된 일을 저질러 생명의 멸종만 기다리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들만이 살기위해 생명을 무자비하게 해하지 않아야 하며, 이치를 팔아 돈을 받으며, 저들의 질서에 모이고, 서로 저들의 질서가 진리라며, 싸우면서 끝없이 재물을 거두어들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거짓 이치도 이치라면서 돈 받는 일은 단 1원 이라도 받아서는 안 된다.


생각을 기차 철처럼 묶어서도 안 되며, 신에 가르침인 생명의 이치, 곧 생명이 나타내는 이치를 읽고 깨달아, 자유로이 생각하되 생명을 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늘이 준 생명 재, 곧 천부 생명 재를 어떤 인간이, 또는 강자의 재물 욕을 따라. 수많은 생명, 신에 소유이면서 신에 지체인 소중한 생명 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이는 작게 주려 나타내면 곧 열(에너지 식량 , 생명이 살수 있는 녹색 온도), 수(힘과 열과 영양을 실어 나르는 생명체에 유동물), 기(생체와 생명 계에 공급된 열에 일을 완성시키는 재료, 공기 ), 공(지면과 공간 신의 소유인 생명이 살 수 있는 영역), 각(생명과 인간의 감각과, 인지하고 깨달음을 갖는 일, 곧 신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힘과 능력 )이다.

다시 말하여 열, 수, 기, 공, 각이다. 이는 천부 인권은 인간이 인간에게 필요한 으뜸 되는 일을 말하나, 천부 생명 원 즉 천부 재는 지구상에 모든 생명에게 주는 신에 소유재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 앞뒤를 가려 강자의 욕심에 따라 조작되는, 우리 인류들의 잘못을 당장 고쳐야 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득권자들의 반발에 대처하기위해 고전을 넘어서, 신의 일, 생명이 나타내는 이치를 빨리 알아서, 널리 인간에게 알려야 하며, 그 필요성을 깊이 이해하도록 해야 하며, 그들과 같이 생명의 이로움을 앞세워, 이를 해하는 무리들의 허구를 밝혀 생명을 해로이 하는 일에 무차별 적으로 그들의 제물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우리는 이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효율을 높이며, 서로 그 힘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 것이며, 당당하게 생명을 이롭게 함을 주장하면, 우선은 약하지만 앞으로 우리를 돕는 자들이 널어날 것이며, 결국 우리를 위한 가장 좋은 활줄과 같이, 곧게 가는 길임을 알아차리고 모두 한곳 즉 신의 지체된 생명임을 알고 죽어서 신의 본체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을 위해 인간을 차별하며, 있는지와 없는 자로 나누어져서 서로 반목하며, 그나마 이루어 놓은 국력을 쓸데없이 헛된 일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곧 신의 의도가 바로 신의 지체인 우리 생명체로 하여금, 이루어짐을 말함이니, 곧 가식되어 가 리(假 理)를 진리라 하는 일이 없어지며, 다 같이 잘 사는 일로서 우리의 자자손손 신의 지체로서 삶의 길에서, 신과 같이 있음에, 신에 삶이되며, 생명은 있으되 죽음은 곧 신의 본체니 이로서 인간이 말하는 두려운 죽음은 본래 있지 않고 이치를 전하여 그릇된 죽음은 생명의 인지(앎, 지각)에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매질하지 말며, 스스로 몸을 강건하게 할 것이며, 생각을 열어 신에 세계에 들어가 우리 모두 함께 살지어다.

생명을 읽고 영원히 살자,


치열하게 싸우고 먹이를 습취하고 더 강해지고 동족을 복속하고 먹이 터를 정복하고 더 넓고 더 두터운 성에 싸여 일생을 살다 죽어서 그에 구조물에 싸인다.
이것이 단위생명 인간에 현상이다.


우리에게는 수억 년 전 땅속에 묻힌 흔적이 화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지금에 삶을 볼 뿐, 그들의 수억 년 전 그들의 삶에 변화를 읽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본다는 것은 적잖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삶의 단면을 보아왔다. 그리고 그 토막을 이어 그들의 삶을 추리해 우리의 지해로 삼아 삶에 도움을 얻기도 한다.


이러한 생명의 단면적, 토막정보를 얻는다는 것에 가치를 알기에 단위 생명에 삶을 다시 엮은 이야기나 소설 영화와 극 등에 호기심을 보여 왔다.
그리고 우리는 글로 우리의 과거를 엮어 역사라고 하면서 우리의 지혜를 넓혀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중요한 정보를 후세에 알릴 때 자기 수치(잘못)를 기록하는 것을 싫어하여 역사를 조작하고, 기득권적 이익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위해 수많은 조작을 해왔다.


그리고 수천 년 지난 지금에 우리는 그기에 신비감을 더하여 아직도 허황된 잡설에서 이익을 창출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정보선호도에 따라 본능적일 정도로 이어지는 호감을 따라 어둡고 높은 낭떠러지도 깊은 늪에도 인간의 몸을 던진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선호에 본능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참다운 정보는 삶에 이익이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때로는 자기 사멸로 치닫는 일을 서슴지 않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종적인 생명의 삶을 읽는다는 것은, 개개의 추리만으로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허황된 기득권층에 이익을 추구하는, 조작된 정보를 끝없이 따라 일생을 그르칠 수는 없다.


우리는 맹목적 신뢰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물의를 일으키며, 비생산적인 일을 양산 하는지 알아야 한다.
다만 우리의 정신세계를 잘 읽고, 그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은 긍정적일 수 있다.
만약에 우리가 2억 번에 풀무질과 5억 번에 펌프질을 했다면, 그 노고에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아니 이러한 일이 내 생명을 유지해 주었다면, 내가 자살 할 수도 있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30년 살아가는 동안 2억 번에 호흡과 5억 번에 맥박을 뛰게 했다면 그 공로를 자살로 갚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죽은 자에 호흡과 맥박을 잠시도 맡아 하지 못한다. 물론 내 맥박과 호흡도 마찬가지로 내 임의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심장과 폐를 내 자신이 관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 마겨진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소임을 누가한다고 보는 가?
그 소임을 하는 자와 같이 살고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다가 왜 그는 나의 삶에 일을 포기하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우리는 그 일을 신비라 하여 어떠한 억척도 이와 같은 일로 삼아, 무리한 추측에 기대어 일생을 살다, 끝 모를 죽음에 두려움을 안고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유와 무를 우리의 각(깨달음과 알려짐)에 의지하고 그 전체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 우리는 한정된 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
만약 우리의 각이 무한 각이라 하면 우리가 볼 수 없는(가시권과 가시기능 밖) 것도 알고 내게 보이지 않는 것도 다 알 것이다.


우리는 있음만 알고 없음은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개는 수 Km밖에 있는 가족과 서로 대화 한다고 한다. 그리고 기러기는 지구 자력을 감지하고 방향을 찾아 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쥐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땅굴을 빠져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쥐보다 기러기와 개보다 절대적으로 우수하다. 그렇게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정된 각이 주는 한계를 두려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한 각에서 볼 때, 우리에 죽음 이라는 현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소멸이 아닌 것 입니다.
육체의 분리와 사라진 육체의 공간은 심장을 뛰게 하고 호흡을 하게하는 이치를 안고 그대로 있는 것이며, 그 기능과 나의 의식이 둘이 아닌 것처럼, 살아 왔듯이 죽어서도 분리할 능을 어디에도 주지 않았기에 그 능을 따라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허무한 것도 없고, 나의 더 큰 부분이 곧 나 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에 삶이 그 크나큰 그것에 일부임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여 크나큰 나의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삶을, 또는 우리 생명을 읽는 일이며, 거짓된 정보에 시달리지 않는 지혜로운 일일 것 입니다.
우리는 먹물에 진정한 부분과 조작된 부분을 갈라, 더 큰 나의 삶을 소홀히 하지 맙시다.
그리고 생명을 정확히 읽어 내 삶에 헛됨이 없게 합시다.

gkarudeh - 옮김 she -

'세상속 얘기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담바라 꽃이피다...  (0) 2008.05.26
" 성난 촛불 "  (1) 2008.05.26
`촛불의 공포`  (0) 2008.05.26
국회 귀신 ?  (1) 2008.05.23
*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0) 2008.05.22
중국지진 전,후  (0) 2008.05.22
최초의 태극기  (0) 2008.05.22
.“한국인 우려 근거없지 않다”  (0) 2008.05.16
★당신은 이미 광우병 환자일 수 있다  (0) 2008.05.16
- 인터넷 예절 10가지  (0) 2008.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