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로운 코리아(Awesome Korea!)
3부 : 역사 한류
주: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 중 [베이징발 한국 보고서]와 [한국이 키운 일본은 부모를 이렇게 속였다] 참조
첫 번째 이야기 (출처:문학비평)
가.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한 안호상(1902-1999)박사가 문교부장관 재직시에 중국의 저명한 문학자이며 평론가인 임어당(1895-1976) 선생을 만나 여담으로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 나라까지 문제가 많다"고 하자 임어당 선생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東夷族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주: <단군 조선>의 저자 김 산호 화백의 글 참조(도서출판 다물넷 홈페이지)
최근 농초(聾樵) 박문기(朴文基)씨를 비롯한 여러 한학자들이 한문자는 애초에 우리 동이에서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초는 최초의 한자들이 중국식의 언어가 아닌 우리 식(알타이어)의 말과 뜻으로만 풀어지는 놀라운 예문을 무수히 제시하였다...금문(金文)이란 청동기로 만든 제기, 농기구, 무기들에 새겨진 옛 글, 즉 원시 상형문자를 말하는데, 지금까지 중국의 한자로만 알았던 이 글들의 뜻과 발음이 놀랍게도 우리의 소리 말에 의해서 비로소 정확하게 풀이된다고 소남자 선생은 말한다.
부사년(傅斯年)은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에서 최근 산동, 강소, 안휘성 등지에서 발굴되는 고조선식[古朝鮮式] 분묘(墳墓)들을 근거로 “은(殷)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학계에 보고하였다...심지어 중국의 정사(正史)라는 사마천의 『사기』조차도 “은나라는 동이족이고 주나라는 화족(殷曰夷周曰華丈云東曰夷西曰夏)”이라 하였다.
나.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 박사가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당시 같은 입학생인 중국 학자 서량지(徐亮之)가 한 박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겠으니 받아달라며 큰 절을 올렸다.
두 번째 이야기:
일본 문화 훈장을 받은 존 코벨(Jon Cater Covell,1910~96) 박사:
"일본의 신도(神道).. 일왕의 뿌리..일본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 등...한반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놀라운 일이다. 심지어 1945년 8월15일 일왕이 자신이 타고 다니던 백마를 맥아더에게 넘기는 것으로 항복을 표현하는 것조차 한국식이다"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大野 晋, 1919∼) 교수: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금속 사용법을 가르치고, 야금·금공 기술을 전했으며,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등 모든 것을 가르쳤다”(‘日本語の 世界’, 1980)
마쓰모토 세이쵸우(松本淸張):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조선의 분국(分國)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과 같다"
도쿄대 사학과의 이노우에 미쓰사타(井上光貞)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日本國家の起源, 1967)
“한국은 부모, 일본은 부모 버린 不孝子息”
도쿄대 하니히라 교수:
“7세기말 당시까지 한반도 출신 이주민이 대부분이었고 원주민은 소수였으며, 이때까지 야마토(4C), 아스카(7C)시대 사람들은 한국 의복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었으며, 건국신화 대부분이 한국형이고 한국어를 사용하였다”고 말했다.
미 캘리포니아대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야요이인(한국을 제외한 대륙민족)], [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당시 한반도는 동북아 문명의 최대 발생지라고도 할 수 있다"
세 번째 이야기: 동이족의 적자, 신비의 왕국이 기다린다 2008.01.31
사이언스 타임즈 이 종호 과학저술가
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홍산문화(주: 훙산문화·紅山文化·BC 4500~BC 3000년의 빛나는 창조물들)가 광대한 지역에서 통일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인구가 폭발적인 증가를 갖고 왔다는 점이다...최근에 중국사회과학원의 왕웨이(王巍)는 홍산문화의 유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 의해 문화 발전이 낙후된 곳이라고 여겨졌던 중국 동북 지역의 서부에서 지금으로부터 5천여 년 전에 발달한 문화가 꽃피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이로써 선사 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사회와 발전 수준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우하량 홍산문화 유적지를 중국 상고시대의 사회발전사, 전통문화사, 사상사, 종교사, 건축가, 미술사의 연구 대상으로 삼고 화하족의 조상을 제사지냈던 성지로 간주하면서 동방문명의 빛이라고 자랑한다...또한 앞에서 설명한 우하량 홍산문화 지역에서 제단, 돌무덤은 물론 신석기시대로 간주되는 빗살무늬토기, 청동시대의 비파형동검 등이 발견됐다는 것을 볼 때 이들 문화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더구나 이지역의 토템이 곰이라는 것은 한민족에게 많은 것을 연상케 한다.
이와 같은 발굴 결과는 중국학자들을 놀라게 했고 결국 중국대륙의 앙소-용산문화와 전혀 다른, 요령지역의 홍산문화 전승자는 만주대륙-한반도-일본열도 전체를 포괄하는 ‘빗살무늬-민무늬 토기, 비파형 동검’ 등을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른바 동이족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무대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그 무대는 요하 유역뿐 아니라 중국의 하북성, 요령성, 내몽고(內蒙古)자치주, 길림성, 흑룡강성은 물론 중국의 산동반도, 그리고 한반도까지를 포함한다. 이형구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중해 문명이 서양문명의 자양분을 공급했듯, 동이족이 발해연안에서 여명을 연 문명은 중국문명은 물론 요동과 만주, 한반도, 일본의 문명을 일궈내는 젖줄이었다.’
주: <치우천왕>의 저자 김 산호 화백의 글 참조(도서출판 다물넷 홈페이지)
...홍산(紅山)은 적봉시의 북쪽 교외에 있는데 산 위의 암석이 온통 붉은색이어서 홍산으로 불린다. 유적이 발견된 이곳은 요령성과 내몽골 그리고 하북성의 접경으로 옛날 치우천황의 배달한국과 불조선[卞朝鮮]의 중심지역이다.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천하를 제패한 동이족
경향신문 이기환 기자 2008년 02월 01일
...사기에 나오는 은(殷)은 본래 상(商)나라이다...은이라는 나라 명은 상왕조의 마지막 도읍 명칭인데, 주나라 사람들이 은으로 낮춰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도성은 국가의 중심이자 왕조의 위세를 나타내주는 상징이다. 그런데 상나라는 멸망 때까지 10차례가 넘는 천도가 있었으나, 흩어져 있는 도성의 규모는 만만치 않았다. 모든 상나라 도성이 판축기법으로 쌓은 점은 특기할 만하다. 신희권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관은 “자연적인 방어시설인 강변에 쌓은 점이라든지, 흙을 켜켜이 쌓아 조성한이른바 판축기법으로 보면 기원 후 1세기 때부터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백제 풍납토성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훗날 갑골문으로 확인되었다... 상나라의 위대한 발명품인 한자의 원형, 즉 갑골문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상나라 문화와 동이족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이미 상나라가 차하이·싱룽와 문화(BC 6000~BC 5000년)-훙산문화(BC 4500~BC 3000년)-샤자뎬 하층문화(BC 2000~BC 1500년·고조선의 문화로 여겨짐)의 찬란한 발해문명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보았다. BC 1600년 무렵 발해문명의 일파가 남하하여 중원 하나라를 쓸어버린 뒤 천하를 통일한 나라가 상나라라고….
다섯 번째 이야기: <한단고기>의 역자 임승국 교수의 역사 입문 이야기
제가 경희대 영문학 교수시절 때 우연히 중국 25사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5사 가운데 사기(史記), 전한서(前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다음으로 여섯 번 째 책이 송서(宋書)입니다.
하루는 윤영춘 박사댁에 놀러갔다가 그 분이 갖고 있는 장서 중에서 우연히 이 송서를 끄집어 냈습니다. 윤 박사가 이걸 보라고 권한 것도 아닌데, 제가 펼친 곳이 송서 97권 '백제의 전'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그 기록을 무심코 쭉 읽어 내려갔지요.
중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4학년까지 그곳에서 성장했으니 한문 실력은 그런대로 있어서 쭉 읽어보니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송서에 기록되어있는 백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송서 97권을 보니까 아예 백제의 위치부터가 달랐습니다. 반도가 아니었습니다.
현 수도인 북경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산동 반도를 지나 양자강 남북의 평야지대를 포함한 중국 동해안 일대를 백제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록을 보고서 그 때 하고 있던 영문학이라는 낡아빠진 학문을 집어 치우고 스승도 안내자도 없이 한국 상고사라는 난장판 학문에 뛰어 들었습니다. 만 5년 동안 학교도 나가지 않고 직장도 없이 도서관에 파묻혀서 사서삼경과 25史와 씨름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6년 만에 다행히 명지대학으로부터 다시 교수발령을 받은 후에, 영문학 교수가 아닌 한국고대사를 강의하는 사학교수가 되었습니다.
... 송서 97권 백제전의 머릿부분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에 함께 있었으며, 그 후 고려는 대략 요동에 있었으며, 백제는 대략 요서에 있었고, 백제가 다스린 곳은, 진평군 (晉平郡) 진평현(晉平縣)이라 불렀다. 요서는 북경을 포함한 하북,하남, 산서 등을 포괄한다. 산서성의 옛이름이 晉이다.
송서에만 이런 기록이 있고 다른 기록에는 이런 것이 없다고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25사 중 송서 다음이 양서(梁書)인데, 양서 54권 백제전에도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양서 다음은 남제서(南濟書)입니다. 당시 양자강 남쪽에는 제(濟)나라가 있었고, 북쪽에는 북위(北魏)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남제서에도 백제전이 있는데, 그 내용은 더 엄청납니다.
당시의 백제왕은 무령왕의 아버지인 동성왕이었습니다. 동성왕의 무덤이 산동 반도에 있다고 25사에 기록되어있고요, 동성왕은 산동 반도에 서경(西京)을 설치하여 직접 도읍하면서 대륙을 경영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서나 진평이라고 했던 백제의 세력이 놀랍게도 남쪽으로 확장되어 북위의 군대와 싸워 이겼고, 또 한 때는 양자강 남쪽까지 점령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땅을 일곱 구역으로 나누어서 백제장군 일곱을 각각 파견하여 통치하게 합니다. 쉽게 말하면 총독 일곱 명을 두고 중국 동해안을 싸그리 지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을 중국인들은 다 없애 버렸습니다. 남제서 백제전의 머리부분을 다 뜯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현재 한국으로 오는 25사 중 남제서를 보면, 백제전의 앞부분이 뜯겨나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중국 본토에는 오리지날 25사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대만에는 물론이고요. 중국본토와 대만에 가공하지 아니한 원본 25사가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흔하지 않지만. 중국 가는 사람들은 오리지날 25사를 구해서 남제서 백제전을 펼쳤을 때, 공백이 아니라 글씨가 꽉 차 있다고 한다면 무조건 갖고 와야 합니다.
...얼마 전에 KBS에서 사학 관계 서류를 모아서 연변대학에 기증을 했습니다. 약 몇 천권 보낸 모양입니다. 연변대학 총장이 그걸 받아서 읽어 보니까 식민사관이 그대로 남아있길래, 예를 들어 김철준씨가 쓴 문화사관이나 이기백씨가 쓴 한국사의 무엇 등등이었는데, 무슨 이런 책을 보냈느냐 하면서 모조리 폐기처분해 버렸다고 합니다. 남한에서 보내 온 사서는 모조리 식민사학에 젖어 있어서 폐기처분했다는 사실, 이것만큼 대한민국 망신시킨 적이 어디 있습니까?
여섯 번째 이야기: 홍 윤기 교수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
나라현 아스카절과 부여 왕흥사
...미즈노 유(水野祐) 와세다대 사학과 교수는 "5세기 당시의 오사카며 나라 지방의 지배자는 백제 왕족이었던 오진천황이었다"('日本古代國家の形成' 1978)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역사책에서는 오진천황을 3∼4세기(270∼310 재위) 일본 고대왕이라고 쓰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후대인 4∼5세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현재 일본 사학계의 통설이다. ...
...왕흥사 발굴 터를 최근에 답사한 일본 와세다대 오하시 가즈아키(大橋一章, 佛敎美術史 전공) 교수는 지난 5월22일, 필자에게 직접 "왕흥사 터에서 발굴된 각종 출토물이며 기와(연꽃무늬 수막새)의 문양과 탑 구조 등은 일본 나라땅 아스카 절의 유물과 거의 일치한다. 일본에 건너와서 596년에 아스카 절을 건축한 백제 건축가들은 이미 그 이전에 백제 땅에서 왕흥사를 건축했던 똑같은 기술자들이었다. 나라 땅의 아스카 절은 왕흥사를 모델로 건설한 일본의 유일한 1탑 3금당 형식 사찰이다"고 말했다.
...일본에다 백제가 불교를 보내준 것은 일본 역사책에서도 고대 백제의 제26대 성왕(聖明王·523∼554 재위)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실제로 성왕은 그 스스로가 직접 일본에 건너다니면서 왜왕(긴메이천황·欽明·539∼571 재위) 왕위를 겸임했던 것(제47회 참조)이며, 성왕이 왜왕으로 왜 왕실에 재임하고 있던 당시부터 성왕의 왕자였던 백제 위덕왕은 열성껏 백제 불교 일본 포교에 참여했던 것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 백제분국 '일본'은 백제가 건국한 나라 진성조 글
...KBS와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된 〈일본 천황가는 백제인인가?〉 프로그램을 보면, 최근에 일본 아키히토(明仁)왕이 “옛 칸무(환무: 781~806)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공식 발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에 백제왕족들이 건너가서 일본왕국을 세웠다는 것을, 일본왕 자신의 입으로 명확하게 확인시켜준 것이다.
...소가씨 가문은 당대 실권자로서 사실상 최고권력을 약 100년간 누리는데, 미즈노 유우의 저서 『천황가의 비밀』에 “이 소가씨 가문은 본래 한국에서 건너온 가문이다”라고 되어있다. 일본왕도 백제왕족, 최고실권자도 백제귀족, 이것만 봐도 백제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위 사실을 근거로 보면, 분명히 고대 일본(왜)국은 백제왕가와 혈연으로 연결된 국가이다. 정치·문화적으로는 300년간(근초고왕 칠지도 사건∼멸망 의자왕) 백제 밑에서 간접통치를 받으며, 백제의 찬란한 선진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고대 일본(왜)은 대백제국에서 파생된 혈연적 분국(分國,제후국)이라는 특성을 띄고 있었다.
...부여용(의자왕 아들)은 망국의 깊은 한을 품고 유민을 거느리고 왜국에 건너가서 38대 텐치(천지: 661∼671)왕이 되고, 국호를 왜(倭)에서 일본(日本: 해뜨는 본국)으로 고친다)(『일본서기』 「천지왕조」 참조). 이것은 한국고대사(특히 백제역사)에 속한 왜(倭)국 역사에서 새로운 나라 일본(日本)이 탄생한 사건이다.(668∼670년)
...그 이후 50대 칸무(환무: 781∼806)왕 때는, 일본과 한(韓)민족은 같은 민족이라는 ‘한일 동족론’이 적힌 고문서(옛 족보)를 모두 불태워 버린다. 칸무는 본국(백제)과 단절하는 정책을 편다. 그러나 그는 백제인을 고관요직에 많이 등용하고 기존의 백제문화 토대 위에서 ‘새롭고 자주적인 나라, 일본을 만들어나가는’ 정책을 대부분 매듭짓는다.
...칸무는 794년, 헤이안(平安京: 현,교토)에 도읍지를 옮겨 헤이안 시대를 열어나간다. 신생국 일본은 헤이안에서 8∼19세기(1860년대 메이지 이전)까지 1천년간 사실상의 수도가 되어, 왕도(王都)와 막부(幕府: 무사정권) 문화를 펼쳐나간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 초기(795∼ )부터 비로소 고대 백제사로부터 독립(이질화)된, 일본국 특유의 문화를 펼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여덟 번째 이야기: 간도
1948년 중화민국(현 대만) 국방부가 작성한 한인 자치구 건설 예상 지도. 지도에 동북 9성 중 압록강, 두만강과 접한 안동성 안동구, 길림성 길림구, 간도성 간도구 등이 북한 영토로 표시돼 있다.
...박선영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최근 대만의 외교문서보관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중화민국 국방부 명의의 ‘소련이 향후 지린(吉林)성 옌지(延吉), 무단장 등을 조선에 획입(劃入)하려는 배경’(1948년 7월 작성) 제목의 문건을 찾아내 26일 공개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북한과 소련 공산당은 48년 2월 간도구, 안동구, 길림구 등 3곳에 한인 자치구를 만든다는 내용의 ‘평양 협약’을 체결했다.
문건은 “극동 소련 당국의 정책은 중국 동북9성 영토를 침범해 차지하는 것으로, 옌지 무단장 등과 그 부근 지구를 획분(劃分)해 북한 영토로 하려는 것”이라며 “지금 이 지역에는 북한 정규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지방 행정도 조선인이 주관하는 등 실제 북한에 합병된 것과 같다”고 돼있다.
박 교수는 “소련과 북한 사이에 이 같은 내용의 ‘평양 협정’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확인된 것으로, 미래에 중국과 간도 영토 분쟁이 발생할 경우 소중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며 “양측이 중국을 배제한 채 맺었던 배경과 협정의 내용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4부 : 정치/군사/외교/교육 한류
주: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 중 [워싱턴 한국보고서], [곳곳에서 한국인에 대한 원성이 들려온다], [미쳤구나 영어 시장] 참조
첫 번째 이야기: 신동아 이 정훈 편집위원 2008년 1월 25일
통일부에 따르면 2006년 중 정부는 북한에 2336억원어치의 물품을 지원했다. 247개 광역·기초자치단체에 지원한 평균 지원금 1279억원보다 1.85배 많은 금액을 북한에 지원한 것이다...2006년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2336억원은 2억5100만달러에 해당하는데, 암달러 환율로 계산한 2006년 북한 정부 예산(1억3976만달러)의 1.8배다.
...몸피가 커진 데다 미국까지 업은 한국을, 대만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상대해야 하는 중국이 충분히 견제할 수 있을까. 한중 경쟁에서 균형이 깨지면 북한은 한국 영향권 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중국의 영향력이 퇴조하면 북한은 한국에 맞서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은 평화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라고 명시된 한중수교공동성명 5항을 정확히 이행한 것이 된다.
두 번째 이야기: 한국 군사력 평가
1. 인도국가안보협의회 사무국 (NSCS) 2003년도 국가 안보 연간 보고서:대한민국 현대전 5위, 북한 8위, 일본 10위
2. 미국 군사 전문가 제임스 F 더니건의 [현대전의 실제(How to make war)] 에서 세계 각국 군사력: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세계 4위 (총점 1020점) 북한 세계 9위 (총점 645점) 일본 세계 11위 (총점 421점)
3. 한국군의 항공 전력은 세계 8위 수준으로 평가 되었으며 현재 전투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나라는 5개국뿐이다...한국 지상군의 전력은 세계 4위 정도로 평가된다.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1천5백 대 이상의 3세대전차를 보유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자주포 기술에 있어서는 세계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헬기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적 수준의 기화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보유량 세계 5위).
세 번째 이야기: UPI 통신 2008년 6월 11일자
"성난 시위자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전경과 충돌하려는 듯 보이는 곳 어디에서나 다른 집회 참석자들이 "비폭력", "비폭력은 우리의 힘이다"고 노래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다행히 큰 폭력 충돌은 없었다. 참석자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인기있는 시위 형태가 되어온 저녁 촛불 집회 동안에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어울렸는데 이는 보통 축제에서 보게 되는 장면이었다."
네 번째 이야기: OECD 통계 및 보고서
*학생들의 읽기(1위), 과학(5위), 수학(2위) 실력 모두 최상위 수준이며 교육기관에 대한 지출수준(3위)이 높음
*...그러나 젊은 세대에서는 이 수준(고등학교)에 97%가 도달한 한국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취도를 보인다...십대들 가운데 수학은 한국이 핀란드 다음으로 두 번째이다... 한국은 미국의 약 절반 정도를 학생들에서 투자하지만 수학에서 성취도는 훨씬 더 높다.
다섯 번째 이야기: 뉴욕 타임즈 샘 딜론 기자 2008년 4월 27일
하버드에는 37명의 한국인 학부생들이 있는데 캐나다와 영국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숫자이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에는 총 103명의 한국 대학생들이 있다.
여섯 번째 이야기: 국제교류재단 [해외 한국학 보고서]
백서를 통해 주목할 만한 사실은 189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국립대학에서 최초로 한국어 강좌가 개설된 이래 100여 년이 오늘날 전 세계 60여 개국 730여개 대학으로 한국학이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국가별로 보면 일본 335개 대학, 미국(140개 대학), 중국과 러시아(각 42개 대학)순이다.
5부 : 종교 한류
주: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 중 [전대미문의 징표들]과 [끝맺는 말] 참조
첫 번째 이야기: 뉴욕 타임즈 카타리나 프라이스 기자 2006년 11월 26일
비록 이 프로그램(템플 스테이:temple stay)은 한국과 일본에서 월드컵 축구 대회가 개최되었던 2002년도에 시작되었지만, 지난 사 년 동안 열 네 곳에서 오십 개 사찰로 빠르게 늘어났고, 2005년도에는 52,549명이 참가했다... 연등 프로그램은 사찰내 땅을 걸어 다니면서 하는 명상, 서예 연습, 전통적인 불교 식사(발우 공양), 주지 스님이 주도하는 불교에 관한 토론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찰들은 불교 무술, 탁본, 산행과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들도 제공한다. 그리고 건물들 자체 또한 새롭게 지어진 참선 센터에서 천 년 이상된 사찰들까지 다양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 뉴욕 타임즈 노리밋수 오니쉬 기자 2006년 1월 10일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는 한국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에서 거의 발전하지 않았는데, 한국은 현재 인구의 약 30%가 그리스도인이고 해외 선교 운동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한국의 선교 운동은 수 백 명에서 현재 만 사천 명으로 성장했다. 2000년부터 50명의 중국 목회자들이 전도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온 황 선교사는 중국에서 보통은 비밀리에 복음화 운동을 하는 천 오백명 한국 선교사들 중의 하나이다...
세 번째 이야기: 지금까지 로마 교황청은 국내외의 공신력있는 증거들을 근거로 한국 주교단(특별히 광주 대주교)에게 나주 발현의 공적 인준을 권유만했지만, 드디어 2008년 4월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교리에 관한 업무를 최종적으로 관장하는 신앙 교리성(장관: 네바다 추기경)이 인류 복음화성(장관: 이반 디아스 추기경)의 협조하에 나주 금지 공지문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작하였고, 그 후 2008년 7월 2일 광주 대주교는 나주를 전격 방문해서 "내가 이곳에서 기도를 금지한 것은 아니다. (그곳에 있던 순례자와 봉사자들에게) 은총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함으로써 나주 발현의 진정성을 시인하기에 이르렀음.
구체적인 내용은 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truekorean)의 [전대미문의 징표들]과 나주 홈페이지(www.najumary.or.kr)를 참조 바람.
1. 프랑스 파리의 록 폴 2001년 6월 30일/10월 19일
한 번은 비신자 가정의 7살짜리 아이가 암에 걸려서 거의 죽게 되었지만 현지의 병원 사정과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하여 죽어가는 아이를 그저 울면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부모는 나주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 나주 성모님 상 앞에서 그곳 신자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던 중에 아이의 암 덩어리가 완전히 부서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 가서 검진을 받아 보았더니 정말로 종양의 흔적조차도 찾아 볼 수 없었기에 그 아이의 검진을 담당했던 그곳 의사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기적이야" 하면서 놀라워했습니다.
... 제가 인도에서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전했을 때 많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뿐만 아니라 대주교님까지도 나주 성모님에 관한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으셨으며 나주 성모님을 알게 해준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인도에서는 인도 북쪽 끝에서부터 인도 전역에 이르기까지 나주 성모님이 전파되고 있는데 제가 가는 곳마다 그곳 신부님들과 수녀님들께서는 나주 성모님 상을 성당과 수녀원에서 모시고 싶다면서 될 수 있는데로 많이 좀 모셔와 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이번에 제가 갈 때에는 될 수 있는데로 나주 성모님 상을 많이 모시고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이공에 있는 어떤 성당에서는 나주 성모님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신부님 세분이 계시는데 매일 나주 성모님 상을 모셔놓고 나주 성모님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계십니다. 그곳뿐만 아니라 베트남 곳곳의 많은 신부님들이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기를 원했고, 주교님께서도 당신이 계신 성당에서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기를 간절히 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 곳곳에도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2. 미국 LA의 쥬디 나바레트 2001년 11월 24일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순례 온 쥬디입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올 5월 달에는 이태리에 성지 순례를 다녀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카엘 대성전을 순례하게 되었습니다. 미카엘 대성전은 마치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성당 입구에는 그동안 일어난 모든 성체 기적에 관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성체 기적 사진들을 아주 감명 깊게 보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머나! 글쎄 성당 박물관 중간 정도에 1995년 율리아 자매님이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된 성체 기적 사진이 떡하니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어머나, 한국 나주 율리아 자매님의 성체기적 사진에 이토록 거룩한 곳에 당당히 모셔져 있다니" 하면서 너무나도 기뻤고 한편으로는 가슴 뿌듯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이태리 로마에 머무는 동안 이태리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율리아 자매님과 나주 성모님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이드에게 "어떻게 율리아 자매님이 이태리 방송에서 끊임없이 나오는가?" 하고 물었더니 "지금 이태리에서는 율리아 자매님과 나주 성모님의 기적에 관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기에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이태리에 머물고 있던 토요일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자매님에 관하여 약 한시간 30여분 정도의 내용으로 방송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몬시뇰 한 분이 인터뷰에서 "교황님과 교황청에 계시는 분들은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나주 성모님을 좋아한다." 라고 하시기에 하루빨리 나주 성모님이 인준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욱더 힘을 합쳐서 더 많은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 미국 펜실베니아 캠프힐에서 도날드 럼 신부 2007년 4월 15일
다음은 제가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나주에서 목격한 놀라운 사건들의 일부입니다.
* 2007년 4월 6일, 성금요일, 오후 3시 경 저희 순례자들은 모두 함께 십가가의 길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율리아 자매님께서 머리에 가시관을 받고 자매님의 이마로부터 피가 흘러내리는 것(주: 실제로 가시관을 쓰지 않았지만 초자연적으로 피가 흘러나옴)을 보았습니다.
* 제15처를 지난 후 우리는 큰 십자고상 앞에서 기도드리기 시작했는데, 얼마 있다가 율리아 자매님이 십자고상 위의 예수님 발을 손으로 만지셨는데, 자매님의 손바닥이 향유로 젖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헤르만 신부님과 저에게도 그렇게 해보시라고 권유했는데, 저희가 십자고상의 예수님 발을 만졌더니 저희의 손바닥도 향유로 젖게 되었습니다.
* 부활성야의 미사 전에 묵주 기도가 끝난 후 헤르만 신부, 저, 사진기를 들고 있는 몇 분들, 그리고 지도하시는 몇 분들은 비닐 경당 뒤쪽에 마련된 방에 모여서 율리아 자매님과 환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희 신부들이 걸치고 있던 영대 위에 피가 몇 방울 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걸치고 있던 흰색 영대의 오른쪽에 짙은 선혈이 묻어있었고 또 같은 영대 위에 또 하나의 핏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헤르만 신부님의 영대 위에도 두 군데에 핏자국이 있었습니다.
나주에 머무는 동안 저는 율리아 자매님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진정한 겸손과, 깊은 기도 생활, 거듭되는 금식, 그리고 모든 이들에 대한 큰 사랑을 보았습니다. 저는 또한 자매님이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자신을 맡기고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전 세계에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매우 강하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4. 말레이시아 시부 교구 수 도미니꼬 주교 1996년 11월 8일
지난 9월 17일 오후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여기 예수 성심 대성당에서 있었던 미사 중의 특별한 성체 현상에 대해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예상하고 있었더라면, 저는 성합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며, 율리아씨의 입으로부터 살과 피로 변한 성체를 꺼내어서 실험실에 보내어 분석을 하게끔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과학과 논리에 의지하는 이지적인 신앙이 아니라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한 신앙입니다. 이렇게 논리를 따지는 일부 신자들과 심지어는 일부 사제들까지도 성체 안의 예수님의 현존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있습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 중 필자의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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