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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편지 !

+ 천국편지 / 사과는 핑계가 될 수 있다 & 네가 삶에게 말할 수 있는 것

 

 

 

천국편지 / 사과는 핑계가 될 수 있다

 

사과는 핑계가 될 수 있다.

Apologies May Be Excuses

 

Heavenletter #5575  - God  2/29/2016

http://heavenletters.org/apologies-may-be-excuses.html




 

신이 말했다.

 

삶에서 너의 실수로, 혹은 나나 너의 큰 자신을 잘못 대변함으로써 너 자신을 더 이상 질책하지 마라. 절대로 너 자신을 두들겨 패지 마라.

 

너는 너 자신을 패는 것에 매우 능했다. 맨 처음에 너 자신을 비난하는데 어떤 근거도 없다. 너 자신의 등에서 내려와라. 너 자신을 약골에서 면제해라. 너 자신을 패는 것은 큰 약점이다. 그것은 헛된 방어, 알리바이, 혹은 핑계를 꾸미는 것을 능가한다. 너 자신을 패는 것은 너나 누구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다.

 

핑계들은 단지 말들일 뿐이다. 너 자신을 패는 것이 또한 단지 말들로 만들어진다. 말들을 포기해라, 너 자신을 다시 한 번, 영원히 사랑해라. 눈으로 너 자신을 보는 것을 사랑해라. 너는 책임감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했을 수 있는 인간이다. 전체 인구가 책임감을 피하려는 욕망과 매우 친숙하다. 그런 다음 너의 접시들을 너무 높이 쌓아올린 것으로부터 이점을 얻어라. 네가 잘못 위에서 어슬렁거리는 동안 너 자신을 방어한다고 부르는 이런 종류의 몰두를 끊겠다고 맹세해라. 더 이상 너 자신을 질책할 이유들을 찾지 마라.

 

더 이상 너는 네가 그처럼 흠 없이 너 자신을 놓은 상황으로부터 너 자신을 빼려는 시도에서 너 자신에게 몰두하지 마라. 또한 더 이상 후회로 들어가지도 마라.

 

너 안에 성인이면서도 아이인 둘 다가 있다. 너 안의 그 아이는 온 천지에서 구멍들을 찾으며 하나를 붙잡는데, 동요가락에서 자두를 꺼내고 “난 얼마나 착한 소년인가”를 말하는 식으로 말이다. 진실성을 피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너 자신을 속이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너 안의 성인은 너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너의 책임감을 너 자신에게 인정하는데, 풍성하지도 않게, 영화배우가 잘못을 인정할 수 있듯이 세상으로도 아니다. 너의 성인 자아는 무엇으로부터도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너의 성인 자아는 삶과 대면하고, 드라마 밖에서 머문다.

 

네가 만드는 모든 핑계에 대해 너는 일 인치 더 짧아진다. 사과도 너의 키로 더하지 않는다. 사과는 너를 책임감으로부터 면제하지 않는다. 사과는 너의 삶에서의 목적이 아니다. 네가 만든 모든 사과들에 대해 너 자신에게 사과해라.

 

진실이 정확히 말하는데 최선의 정책이라고 누가 말했던, 만약 네가 너 자신을 내려놓기를 원한다면,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은 정직해지는 것이다. 진실성으로 가는 길은 너 자신을 긴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쉬운 길이다. 진실성은 평화로 가는 길이다. 다른 길이 있느냐? 맨 먼저 너 자신과 진실해져라.

 

더 이상 너 자신으로부터 숨지 마라. 침착하게 너 자신에게 진실하게 대답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 일이냐. 이것은 너의 전체 자세를 바꾼다. 너의 실수들을 인정해라, 너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지며, 그러나 너의 실수들을 행진시키지 말고, 사과를 풍부하게 해라.

 

너는 무엇으로부터 숨어 있었느냐? 너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왜 너는 불가피한 것을 지연시키고 있느냐? 너의 앞으로 나가는 다음 걸음에서 악수를 하자. 축하한다.

 

너 자신에게 마모를 세이브하고, 너의 진정한 자아를 데려오고, 너의 진정한 자아를 앞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 너의 진정한 자아는 꾸부정하게 서있지 않다. 너는 실질적인 물건이다. 너의 진정한 자아는 중요해질 수 있다. 너의 진정한 자아에 의존해라, 나머지는 가게 해라.

 

너는 밝은 햇빛이다. 너는 전혀 그림자 인물이 아니다. 너는 진실을 들락날락 하지 않는다. 너는 나의 이미지 안에 흔들리지 않는다. 네가 대표하는 것이 누구인지를 기억해라. 너는 도젬(작은 전기자동차로 부딪치면서 노는 놀이 시설)을 하고 있지 않다. 나의 이미지로 진실해져라. 세상을 들어 올려라. 그것을 높이 처 들어라.

 

잊지 마라, 네가 너의 DNA 안에 나를 운반한다는 것을. 나는 나의 가슴 안에 너를 운반한다. 너의 DNA는 너 안에 심은 나의 가슴이다.

 

너의 상위 자아가 너에게 말하게 해라. 상상된 과거를 버려라.

 

 

 


네가 삶에게 말할 수 있는 것

 

네가 삶에게 말할 수 있는 것

What You May Be Saying to Life

 

Heavenletter #5576 - God  3/1/2016

http://heavenletters.org/what-you-may-be-saying-to-life.html


 

신이 말했다.

 

물론 너는 소리 내어 말하기 원한다. 물론 너의 마음을 말하는 것은 네가 장황한 비난을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는 네가 사람들에게 터뜨리는 것보다 더 많이 삶에게 터뜨리지 않을 것이다. 너는원인을 가질 필요가 없다. 너는 단순히 드라마 없이 너 자신을 나타낼 수 있다.  너의 몫을 말하는 것은 큰일이 아니다. 네가 느끼는 방식으로 관심을 주기보다는 네가 느끼는 방식을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습관에 있을 때가 너에게 큰일이다.

 

부디 내가 너를 위해 있음을 알아라. 나는 너의 자기-표현을 위해 있지만, 너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는 네가 숙녀이거나 신사이고, 누군가에게 호언하지 않을 때 사기꾼이 아니다. 너의 진실은 맹렬하지 않다. 너는 네가 너무나 많은 것을, 너무나 오래 동안 간직했고, 정말로 너 자신에게 언짢았을 때에만 맹렬하게 느낀다.

 

내가 너에게 요청하는 한 가지 일은 네가 너의 가슴 속에 정전을 부르라는 것이다. 이것은 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너는 잘못 취급되었을 수도 있다. 너의 유명한 쟁점을 학대하지 마라. 하나의 대의는 존재를 위한 너의 이유가 아니다. 너는 불쑥 화를 내기 위해 지구상에 살아있지 않다. 분노는 너의 이름이 아니다. 너의 이름은 신의 아들이나 딸이다. 너의 이름은 네가 누구인가이다. 너는 나의 어린이이냐, 아니냐? 나는 네가 나의 어린이라고 말한다.

 

너는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는 한 세상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삶이 힘들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 삶은 너에게 온다. 삶은 너처럼 신나하지 않는다. 너는 삶에 대해 큰 소동을 피우는 자이다. 삶 그 자체는 하나의 늙은 대기자이다. 무슨 코트를 삶이 입었던, 그건 단지 이런저런 양식의 코트를 입는 삶일 뿐이다. 너는 그것에 대해 계속할 필요가 없다. 너는 삶에게 무엇을 가르칠 필요가 없고, 그것에게 어떤 교훈을 줄 필요가 없다.

 

네가 삶으로부터 몇 가지 교훈들을 배우는 편이 낫다. 너는 삶에게 친구가 될 수 있다. 너는 삶을 네가 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너는 삶과 저항하고 싸울 수 있다. 너는 또한 삶과 합의로 올 수 있고, 그것과 쉽게 지낼 수 있다. 삶은 단지 삶일 뿐이다. 너는 그것의 해석자이다. 너는 삶을 다른 각도들로부터 볼 수 있다.

 

삶은 한 가지 일이 아니다. 삶은 많은 일들이다. 삶은 많은 색깔들로 오고, 어던 색깔들은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며, 어떤 색깔들은 네가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네가 싫어하는 색깔들도 똑같이 삶이다. 너는 무슨 색깔들이 혼합 속에서 올지를 항상 집어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환영안의 환영이고, 너는 삶이 그 자신을 너에게 드러낼 때 그것과 언짢아함으로서 너의 삶을 채색할 수 있다. 삶은 과시하지 않는다. 삶은 단지 한 발자국씩 느릿느릿 걸어가는 삶일 뿐이다.

 

삶은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삶은 너에게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삶은 네가 삶을 대하듯이, 그렇게 개인적으로 너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삶은어딘가에 착륙해야 하고, 자주 그것은 너에게 내린다. 삶은 너를 무너뜨리려고 의도하지 않는다. 삶은 중압감이 되려고 의도하지 않는다. 아마 삶은 네가 그것의 혼란에 대해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 자신에 대해 말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너는 삶이 나타날 때 그것을 너에게 오도록 손짓할 수 있다. 너는 주어진 순간에 너의 삶이 입고 있는 코트를 집어낼 수 있다. 너는 너의 삶을 만지작거린다. 너는 너의 삶을 조립하고 다시 조립한다. 너는 너의 삶을 강압할 수 있다.

 

그때 너는 삶에게 말할 수 있는데, “니가 했던 것을 보니?”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9215 신의 편지/1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