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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편지 !

+ 천국편지 / 너는 확장하는 너의 가슴에 어떤 제한을 놓느냐? & 네가 앉아있는 의식의 자리

 

 

 

천국편지 /  네가 앉아있는 의식의 자리

 

 

네가 앉아있는 의식의 자리

The Seat of Consciousness You Sit on

 

Heavenletter #5574. - God   2/28/2016

http://heavenletters.org/the-seat-of-consciousness-you-sit-on.html



 

 

신이 말했다.

 

내가 세상을 내가 앉은 의식의 축복받은 자리로부터 볼 때, 가끔 나는 세상이 기능한다고, 그것이 환영적 시간 위에서 기능한다기보다는 핑계들 위해서 기능한다고 생각된다. 너희는 아느냐? 핑계들은 절름발이이다. 핑계들은 한 타스에 10 센트이다. 핑계들은 전혀 핑계가 아니다. 일종의 상호 동의가 있는 듯 보이는데, 마치 핑계들을 파는 자들과 핑계들을 사는 자들이 서로 윙크를 하듯이 말이다.

 

주어진 이유는 거의 진실한 핑계가 아니자만, 나의 어린들이 삶에서 그럭저럭 지내기 위해 핑계들을 만든다. 그처럼 풍부하게 준비된 핑계들이 있어서 나의 어린이들이 그들이 정기적으로 상용하는 핑계들의 몇 개의 기록들을 만들 수 있고, 그들 자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낀다.

 

대체로, 하나의 핑계는 하나의 핑계이고, 하나의 핑계이다. 그것은 메꾸기이다. 솜으로 막는 것이다.

 

아마도 너희는 세상의 모든 핑계들을 들었을 것이다.

 

“난 시간이 없었어. 난 먹어야 했어. 버스가 늦었어. 난 잊어버렸어. 난 바빴어. 난 쇼핑을 가여 했어. 난 너무 피곤했어. 난 단지 너무 친절해서 거절을 말 수 없었어. 이것이 나야. 난 어쩔 수 없었어.”

 

이것들이 너에게 친숙하냐?

 

나의 어린이들은 그들의 핑계들을 가상현실처럼 믿는 경향이 있는데, 진실은 그 핑계들이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는 허약한 조작들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상황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다른 무언가가 있어. 내가 너에게 약속했던 것보다 내게 더 중요한 다른 무언가가 있어. 난 의존하게 되는 것이 싫어. 난 너무나 많은 것을 걸었어.. 난 내가 지키지 못하는 약속들을 만들었어.”

 

진실은 네가 약속을 만든 것이고, 너는 너의 약속을 깨뜨린데 대해 너의 무고함을 정당화 하려고 의도한다는 것이다.

 

진짜 이야기가 은폐되었다. 진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핑계를 만드는데 구변이 좋다는 것이고, 그들은 그들이 말한 것을 따르지 않는데 대해 구변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진짜 이야기는 그들이 그들의 편이성을 그들의 말 앞에 멀찍이 놓는다는 것이다.

 

핑계들 만드는 자들은 꾸물거린다. 그들은 책임감으로부터 면제되기를 원한다. 그들은 사실들을 직면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벌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똑같이 신용을 원한다.

 

나는 엄격한 사실로 부르는 것을 항상 옹호하지 않지만, 핑계의 문제로 올 때, 나는 문제의 핵심적 사실들을 동경한다.

 

핑계들은 왕좌로 권리 주장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헛소리가 아니다. 핑계는 네가 다른 쪽으로 건너기 위해 밟는 돌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의 토대/기초이다. 그것들은 미끄럽다. 권리 주장자는 무엇도 붙잡지 못하지만, 거짓들은 건너간다. 그는 말을 빙빙 돌린다. 그는 그의 핑계들을 성실하게 믿는 것을 좋아하며, 그것은 그가 무략하다고 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핑계들은 무언가를 피하려는 하나의 방식이다. 핑계들은 지연한다. 핑계들을 만드는 자들은 환영을 유지하기를 바라고, 그들 자신의 눈에 솜을 덮는다.

 

너무나 자주 핑계할 파트너가 있다. 이것은 핑계를 사들이거나 그런 척 하는 자이다. 누군가가 인조 다이아몬드를 사고, 그것들을 진짜로 받아들일 때, 그는 또한 환영에서 파트너이고, 속임수에서 하나의 역할을 한다. 핑계들의 반복된 수령자들이 또한 그 환영을 받아들이기 위한 의무감을 느낄 수 있다. 핑계를 주는 자와 핑계를 받는 자 둘 다가 그들의 책임감을 미룬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곤경인가?

 

하나의 핑계는 거의 용납될 수 없다. 문제는 네가 전혀 핑계를 만들기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네가 바람 빠진 타이어를 가진 것이 사실일 수 있고, 그것이 네가 늦은 이유이다. 네가 너의 가장 속에 돈지갑을 갖지 않은 것이 진실일 수 있다. 불이 났던 것이 진실일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인가? 얼마나 자주? 게으르게 자주 사용되는 핑계를 전혀 좋지 않다.

 

책임을 지고 네가 말한 의도로 진실이 되는 편이 더 낫다. 네가 말하는 것에 따라 살아라, 그러지 않으면 그것을 말하지 말라. 너는 또한 네가 앉아있는 의식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 너는 너의 의식의 자리가 확고하기를,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정직성은 상대적 세상으로 큰 호의를 준다. 정직성은 획득 가능하고, 정직성은 그처럼 하나의 해방감이다. 물론 주된 일은 너 자신과 정직해지는 것이다. 네가 단순한 가장 아래 뚜쟁이 짓하는 것이 너 자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느냐? 빈 말들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

 

이제 과거는 개의치 말아라. 새롭게 시작해라. 너희는 평범한 진실을 주고받을 자격이 있다.

 

 



너는 확장하는 너의 가슴에 어떤 제한을 놓느냐?

 


너는 확장하는 너의 가슴에 어떤 제한을 놓느냐?

What Limit Do You Set on the Expansion of Your Heart?

 

Heavenletter #5570, - God   2/24/2016

http://heavenletters.org/heavenletters-feed?filter0=&filter1=&filter2=5570

Translated by Osiearth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현재의 삶을 영화관에서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나오는 시연회(미리보기)로 간주해라. 너의 현재의 삶은 무엇이 올 것인가에 대한 미리보기일 뿐만 아니라, 오래된 영화로부터의 장면들이다.

 

여기서부터 계속, 지금부터 – 이곳은 네가 이륙하는 장소이다. 여기서부터, 너의 새로운 모험은 출발한다. 장기간 혹은 단기간, 너는 마음속에 어느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그 탑승 장소이고 네가 너의 다음 항공편에 승선할 그 시간이다. 네가 욕망하는 그 영역을 향해 출발하여라.

 

네가 지금 너 자신을 발견하는 곳은 하나의 서곡이다. 지금이 너의 출발 시점이다. 지금은 네가 매달려야만 했던 그 과거의 한 이식(축적)이 아니다. 또한 너를 붙잡기 위한 과거도 아니다. 여기는 네가 출발하는 장소이다. 그것이 여기에 있다. 네가 너의 삶의 화살을 뒤로 당기고 네가 원하는 것을 겨냥하(목표로 삼)는 장소가 여기에 있다.

 

비록 과거가 너를 불쾌하게 했던 것이 방금 전일지라도, 너는 더 이상 과거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 과거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 너를 여기로 데려왔다.

 

어쩌면 너는 얼마나 세상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너를 바르게 대우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지금 오너라, 너는 그 과거나 그 과거로부터 너를 불쾌하게 했고 지금 너를 불쾌하게 하는 누군가에게 깨작거릴 필요가 없다. 그것들을 내버려 두어라. 너의 불만을 가게 하여라. 왜 과거를 계속 지껄이느냐?

 

만약 네가 크게(거리낌 없이) 말해야 한다면, 너에게 주어졌던 그 축복들에 관하여 크게(거리낌 없이) 말하여라. 친애하는 아이들아, 만약 내가 말할 수 있다면, 세상의 관점에서, 너는 또한 아직 완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네가 짜증난다면, 너는 짜증낸다. 어쩌면 너는 짜증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왜 너의 불만을 광고하느냐? 내내, 일말의 불평 없이 가거라. 너는 그것을 할 수 있다.

 

옮겨라(이동하여라).

 

사람들이 말하거나 행하는 것이 한 가지이다. 너의 가슴 안에서 사람들이 너에게 무엇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너는 너의 개가 승리하는 푸른 리본(최고의 명예) 때문에 너의 소중한 개를 사랑하느냐? 모든 사람들에게 좋아할 더 깊은 무언가가 있고 너 자신에게 사랑할 더 깊은 무언가가 있다.

 

너는 너의 가슴에 어떤 제한을 놓느냐?

 

네가 불만스러움을 버리고 떠난다면 어떻겠냐? 그러면 너는 무엇을 말하겠느냐? 너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다른 주제를 생각해라.

 

말할 좋은 것들을 가져라. 그리고 그것들을 말해라. 너는 정말로 모든 드라마(극적 사건)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네가 서커스에서 정확히 그들이 어떻게 너의 마음에 들도록 공연해야 하는지를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사자 조련사가 또한 아닐뿐더러, 너는 정말로 희생자(피해자)로서 너 자신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이 너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누가 말했느냐?

 

심지어 네가 너 이전의 그 사람으로부터 배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능하기조차 하냐?

 

언제부터 너의 전체 삶이 모든 사람을 너의 마음에 들도록 개조의 추진력이 되느냐?

 

네가 육체를 갖는 완전이라면, 어쩌면 그때 너의 완전의 본분이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네가 그들을 존경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너는 무척 그들을 좋아할 것이다. 너는 그들의 불완전성과 특이한 성격조차 감사할지도 모른다. 너의 주변의 사람들도 단지 그들이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한 예를 든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너에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라.

 

네가 너의 주변의 사람들을 수용하고 그들을 변화시키거나 그들을 개선하도록 노력하지 말라고 내가 제안하는 것은, 네가 그들과 함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너의 등을 돌리지 마라, 하지만 너는 너 자신이 아닌 시간과 장소에서 편안해지기를 노력하면서 너의 삶을 소비하도록 의무를 지우게 해서는 안 된다.

 

친애하는 겸손한 아이들아, 다른 한편으로는, 한 걸음만 물러나 생각해라. 너 자신에게 너무 부담을 주지 마라. 숨 한번 쉬어라. 너의 이미지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너의 추구(탐색)를 놓아 주어라.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9210 신의 편지/1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