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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좋은 것들 !

+ ■ 내면(內面)과의 대화의 방법과 의미

 

[내면과의 대화]

 

■ 내면(內面)과의 대화의 방법과 의미

 


[1] 내면에 대한 정의.

1. 내면이란?

1) 자신의 본질을 원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면 나타나는 절대계의 속성이며 창조주인 근원의 자리이다.

2) 자신을 포함(합일)하면서, 상대적으로도 존재하는(분리로 체험되는), 자신과 자신의 본질인 창조주를 함께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하나이나,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체험되는 상대성의 세계이기에, 자신과 창조주는 환상(분리)의 시야에서는 둘의 모습이고, 실상(합일)의 시야에서는 하나이다.

3) 개별의식의 입장에서는 내,외부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전체의식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창조주 자신의 내면이다.

4) 내면(창조주)의 존재상태는, 양극성(이원성, 상대성)이 통합되어 있는, 합일(규정없음, 한정없음, 조건없음, 고요한 평화)의 자리이며, 모든 것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상대계의 전체의식의 자리이다.

5) 내부와 외부라는 경계가 없는 합일의 존재상태에 머무를 때 체험된다.

6) 자신이 창조주 또는 근원임을 잊지 말고, 자기 자신의 고요함으로 들어가라. 그곳이 바로 자신의 고향인 내면이다.

2. 내면과의 대화란?

1) 자신의 확장된 영역인 자신의 본질인 창조주와의 대화이다.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식을 사용해서,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구체적으로 이끌어내는 행위이다.

2) 몸과 마음과 영혼이 안정되고 명료한 상태에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설정) 으로, 자신의 본질인 창조주와의 대화를 원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3) 나 자신과의 대화이지만, 대화형식이므로 분리되었다는 설정으로 진행한다. 설정은 분리이지만, 합일의 존재감으로 진행한다.

3. “내면으로 가라?”

1) 내면으로 가라는 것은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것이며, 자신에게 고요하게 집중하면 자신의 본질(창조주)의 영역이 일깨워지기 때문이다.

2) 신과의 만남이나 신 또는 삶에 대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소수에 의한 권력(勸力)이나 금력(金力)의 추구에 의한 지배욕에 의하여 주입되어온 잘못된 가치관이 있다.

이전(以前)이나 지금의,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나 그릇된 종교의 틀들에 의하면, 신과의 만남이나 신 또는 삶에 대한 진리를, 성직자나 정치권력자와 같은 매개자(媒介者)에 의존(依存)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권력이나 정치권력에, 대다수의 일반대중들을 의존케 함으로써, 소수의 권력층에 의한 지배(支配)와 대다수의 일반대중이 피지배(彼支配) 관계의 입장에 놓이는, 지배-피지배 구도(構圖)를 강화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이는 각자의 본질이 신(神)임을 가리는 행위이며, 각자의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신성(神性)을 스스로가 밝혀서 깨닫지 않고,외부적인 정치권력이나 종교권력에 의존하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선각자(先覺者)들은 자기 자신의 본질이 창조주임을 깨달았으나, 당시의 정치권력이나 종교권력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밀한 느낌에 귀 기울이면,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일반대중에게, 내면(內面)으로 가라고, 은유적(隱喩的)으로 표현하여 이야기한 것이다.

3) 신은 자신을 세부적인 체험으로 알기 위해서, 전체인 ‘하나’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신 자신을 상대적으로 무수히 나누어져 보이도록 창조하였다.

본질은 하나이나, 상대성이라는 환상 속에서, 무수히 많은 신의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작용하면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그 속에서 각자의 깨달음을 위해서 상대적으로 작용하는 역할과 활동이 있다.

그러한 상대적인 역할과 활동 속에서의 판단의 주체는 자신이기에, 당연히 믿음의 주체가 외부의 대상(종교나 정치에서 주장하는 특정존재)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는 것이며, 자신의 구원 또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4)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철저히 적용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므로, 채널링의 상태로 접근되는 과정에서, ‘내면(內面)’이란 용어자체가, ‘자신의 내부(內部)의 에너지-장(場)’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본질과의 대화로 접근하게 해 주는 기능이 있다.

5) 대상(對象)으로서의 존재 중에서, 자신의 영혼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존재도 있지만, 방해(妨害)를 하거나, 이기(利己)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존재도 있으므로, 그러한 존재들에 연결이 되어서, 현혹(眩惑)되어지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말로서, ‘내면으로 가라!’고 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영적존재가 개입됨으로써, 채널링의 대상과의 연결이 강화되면, 나중에는 스스로가 그 연결을 끊기가 어려워진다. 채널링의 내용 또한 명확한 논점이 없으며, 자신의 우월의식, 분리의식을 부추기며, 삶을 허무하게 바라보게 하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없다. 그 정보의 교묘함이란 너무도 정교해서, 속는 줄도 모르고 속게 된다.

6) 깨달음은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말하므로, 내면으로 가라는 것은, 자신을 일깨우는 집중을 도우며, 자신의 본질에 모든 지혜가 다 있음을 의미한다.

7) 자신에게 고요히 집중하는 상태는, 이원성(양극성, 상대성)을 넘어선, 합일(규정없음, 한정없음, 조건없음, 고요한 평화)의 자리이고, 자신이 창조주로 ‘되어있음의 존재상태’이다.

[2] 내면과의 대화를 위한 준비.

1. 대화에 들어가면서.

1) 자신의 본질과의 대화이므로, 부담감을 가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 그냥 하면 된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

3) 특별한 어떤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자신이 하는 것이다.

4) ‘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겠다는 선택’의 문제이다.

5) 지금 시대의 상황에서는, 누구나가 자신의 본질과의 심층적 교류가 가능하다. 그러한 방법을 모르고 있거나, 시도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6) “자신을 믿고, 자신의 본질을 결코 포기하지 마라.”

2. 대화에 도움이 되는 몸 만들기.

1) 평소에 심호흡이나 스트레칭 등을 자주 하면서 에너지 정체를 풀어낸다.

2) 어떠한 운동이든지 꾸준하게 한다. 몸을 사용하는 동적 명상이나 기운의 감각을 활성화시키는 수련이 더욱 좋다.

3) 대화를 하기 전에 호흡을 원활하게 하는 운동을, 피로하지 않을 정도로 하고나서, 차분히 안정되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다.

3. 대화에 도움이 되는 마음 만들기.

1) 외부와 자신과의 관계를 볼 때, 의도적일지라도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라는 ‘합일의식(合一意識)’으로 바라본다.

2) 주변 사람들의 시시비비에, 한쪽으로 마음을 기울여서 편중되지 않도록 한다.

3) 다만, 내가 모를 뿐이지, 인정하지 못할 외부인들의 모습은 없고, 나 자신이 처한 삶의 상황의 의미 또한 그러하다는 것으로 바라 봐야 한다.

4) 외부정보는 참고사항일 뿐,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강화하지 않는다.

5)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근원과 교감하기를 간절하게 원한다.

6) 생각으로 살지 말고 느낌으로 산다.

7) 신을 알기를 추구하는 목적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함이고, 자신을 알기에 몰두하면, 결국 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8)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때, 있는 그대로의 외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누는 마음은 자신의 에너지 정체를 풀어내는 것이며, 하나로 연결된 전체의 에너지 흐름에 기여하게 된다.

[3] 내면과의 대화의 시도와 방법.

1) 몸과 마음이 이완되어 충분히 고요해질 때까지 호흡하면서, 자신에게 집중하고, 영혼의 에너지 중심인 가슴을 편안하게 느낀다. (머리로 가슴을 보는 것이 아니고, 가슴자체로 가슴을 느낌)

2) 초기에는 좌정(坐定)자세로 하여, 하반신의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신체적으로는 '편안하면서 이완된 집중'이며, 집중함을 의식 않고 집중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본질과의 대화를 원한다.

3) 간절한 느낌에 집중하면 에너지 진동수가 높아져 영감의 수신이 원활해진다.

4) 대답을 차분하게 기다리다가, ‘첫 생각이 나타나는 것'을, ‘소리 없는 말이 느낌으로 오는 것'을, 펜을 가지고 천천히 적어 나가면 된다. ‘첫 생각을 놓치지 마라.’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5) 느낌은 온 몸으로 온다. 머리(뇌)에서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지는 생각으로 판단되기 쉬운 것은, 뇌의 세포밀도가 높아 그 부분이 인지되기 때문이다. 온 몸의 느낌에 집중하면서 이루어지는 대화형식을,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냥 적어라. 그냥 넋두리하듯이, 떠오르는 생각(느낌)을 차분히 적는다. 생각이든 느낌이든 떠오르는 정보를 민감하게 판단하면서 차단하면 안 된다.

6) 진행 도중에 수시로 호흡을 돌보아서, 자연스런 호흡이 되도록 하고, 갑갑하면 심호흡이나 몸을 움직여서 긴장을 풀고 다시 느낌에 집중한다.

7)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없는 경우는 없다. 고요한 집중의 상태가 아니라서 듣지 못할 뿐이다.

8) 초기에는 앞의 문장에 기록되어지는 내용에 마음 쓰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현재 자신이 심각하게 여기고 있거나,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주제에 대한 대답을 원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민감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경직되어서, 답변이 있어도 그 느낌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익숙해지면 앞의 문장을 차분하게 바라보고도 진행할 수 있다.

9) 익숙해지면, 의자에 앉거나 타이핑으로 작성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10) 고요한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순조롭게 진행되므로, 생각으로 주고받는 것처럼 여길 수가 있다. 그러한 판단을 유보하고 계속 진행하여야 한다.

11) 평소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낌으로 잘 살피게 되면, 대화 때에 자연스러운 질문으로 드러나게 된다. 생활 속의 명상인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되면, 대화의 소재에 대한 영감을 챙길 수가 있고, 메모로써 체크해 두었다가, 대화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

12) 대화의 내용을 음미하고, 되풀이하여 읽어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중요한 의미를 계속하여 발견하게 된다.

13) 표면의식(마음)의 생각으로 질문하지 말고, 느낌으로 질문하고, 느낌으로 오는 답을 적는 것이 바람직하다. 느낌은 영혼의 언어이므로, 자신의 영혼이 질문할 수 있도록 한다. 진도가 나가게 되면 표면의식으로 질문하는 것인지, 영혼의 심층의식으로 질문하는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14) 일상의 수행과 함께 하는 일상적인 내면과의 대화가 바람직하다. 처음부터 급하게 대화의 상대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대화의 내용을 몰고 가려고 할 필요가 없다. 조급함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의도함은 잡다한 질문과 답변의 이어짐으로 대화가 꾸려 나가지기 때문이다. 대화의 상대가 자기 자신의 본질이므로, 평생 이어져 나가야 할 것이므로 느긋하게 임한다.

15) 대화의 기록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고요하게 가다듬지도 않고, 기록하지도 않으면서, 대화하지 말기를 바란다. 일상에서 어수선하게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방식의 대화는, 생각과 생각이 만들어 내는 허상(虛想)으로, 에고의 놀음으로 진행하는 초보자의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대화능력이 견고해지기 전에는 금(禁)하기를 당부한다.

[4] 내면과의 대화를 위한 도움 얻기

1) 스스로 시도해서 기록이 가능한 사람도 있다.

2) 경험자의 지도를 받아서 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한번이라도 확인하면, 혼자서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 할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고,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해 본 체험이 가장 중요하다.

3) 기록물이 챙겨지면, 그것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소중하게 관리하며,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 자신의 진행사항을 점검 받으면, 자신이 생각으로 판단한 것보다, 경험자가 느낌으로 판단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는 경우의 의미에 대처하면서, 진도가 나가게 되므로, 포기하지 않고 진행할 수가 있다.

4) 내면과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는 경우는, 수행과정이나 에너지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문제를 알기가 쉽지 않은 경우에는, 처방이 가능한 사람의 도움을 얻도록 한다. 대화의 진행과정과 함께 하거나, 정체된 에너지 상태를 개선시키고, 대화를 시도할 수 있게 해 줄 사람의 도움을 얻으면 수월하다.

5) 대화의 기록물이 나오는 초기의 일정기간에, 집중적으로 시도하여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돕는 노력이다.”


[5] 내면과의 대화의 전개과정.

1. 탐색하기.

1) 대화의 초기에는 표면의식인 생각인지, 심층의식인지 구별해 내기가 어렵다. 평소에 자기 자신이 즐겨 쓰는 표현방식인 어휘들로 기록되어지는 데, 이는 자기 자신이 번역기관이기 때문이며, 평소에 자기 자신이 생각하면서 선호한 것에 대한 언급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2) 대화를 원하는 상대는, 보다 본질적인 자기 자신이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설정)을 제대로 유지한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영적존재는 개입되지 않기에 안전하다.

3) 대화의 상대자를 다각도로 의심하고 질문하면서 알아 나간다. 대화의 상대자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히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화의 상대자에 의한 정보를 자신의 삶의 상황에 적용하면서, 그 효용을 점검하게 되면, 믿음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유의할 점은, 의심하는 생각이 자신의 에너지 수준을 낮추거나 흐트러지게 되므로, 대화를 진행하는 능력이 커지기 전에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2. 교감하며 도움받기.

1)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의논하며, 인정이나 위로, 처방까지도 얻는다.

2) 과거의 삶이 이루어진 이유를, 현재의 삶에 대한 필요를, 미래의 삶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3) 자신의 존재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수행과정을 지도해주며, 인식의 확장에 관계되는 삶의 이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4) 현실에서의 세세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3. 영혼의 목적에 대해 알고 적용하기.

1) 자기 영혼의 바탕생각(꿈, 목적, 역할)에 의하여 되풀이되어 온, 과거의 삶의 모습이 이루어진 이유를 알아 나가게 되며, 그러한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경향성을 알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자신의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이후의 삶에서 영혼의 꿈에 관계된 현실구현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게 된다.

2) 전생, 현생, 후생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자신의 에너지 차원에서의 상호작용을 알게 되고,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과관계를 알게 됨으로써, 그러한 의미에 따른 처세를 하게 되고, 보다 숭고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면서서로의 진화를 돕게 된다. 전생의 유사한 상황에서 시작되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진화의 법칙이며, 인과(까르마)의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신의 됨됨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이다. 현생의식을 넘어서 인과의식으로 진화된 현실의 삶을 진행하게 된다.

4. 분리에서 합일로.

1) 대화의 상대자가 보다 심층적인 자기 자신(창조주, 근원)임을 알게 된다.

2) 대화의 상대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현실의 삶에 적용해 보면서, 나 자신의 본질(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적인 삶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얻어 가면서, 서로가 하나라는 믿음을 배양해 나간다.

3) 외부의 정보로 규정되어 있는 초라한 나 자신을 내려놓고,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며, 대화의 상대자 또한 내가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신이 원하는 것이며, 신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전체(신)와 부분(인간)의 입장이지만, 서로를 부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5. 함께 세상 속으로.

1) 자기 영혼의 목적(역할, 취향, 선호, 욕구)에 충실한 삶을, 자기의 본질과 하나되어, 현실적인 삶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함께하여 진행한다.

2) 현실과 밀착된 실시간(實時間)으로 적용될 정보의 송수신이 가능해지면, 영적의식(靈的意識) 또는 신적의식(神的意識)의 심도가 깊어지게 되므로,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삶을 살게 된다.

3) 영혼의 목적에 초점이 맞추어진, 미래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현시점에서 필요한 공부나 외부활동에 관계된 정보나 수단을 얻게 된다.

※ 외부에 전달할 일정한 주제에 대한 정보의 전달만을 목적으로 경우가 아닌, 존재능력 향상을 위한 맞춤형 대화의 특성에 맞추어서, 굳이 단계의 구분을 해 본 것이지, 혼재되어 진행되는 것이며, 주된 흐름이 그렇다는 이야기임.

[6] 내면과의 대화의 의미.

1) 삶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것이므로, 내면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을 알아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자기 자신에 몰두하여 “구체적으로” 알기를 원해야 한다.

2) 내면과의 대화는 자신의 ‘지금 여기’의 상황을 적절하게 다루는 맞춤형이다. 각자의 내면과의 대화이지만, 지향점은 ‘모든 하나’를 위함에 있다. 그러므로, 각자의 내면에 충실할 때, 우리의 하나됨은 원활해진다.

3) 인생은 선택의 연속으로 진행된다. 전체의식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에, 자신의 선택에 가장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가 있다.

4) 기록의 수단을 사용하면, 가시화되는 물질로서 구현시키는 것이므로, 기억의 수단보다 훨씬 명확하며, 기록이 보존되는 한 영구적이다. 자세하게 검토할 수 있고, 음미할 수 있으며, 연결지어서 알고 싶은 것을 챙길 수 있는 자료가 있게 된다. 기록하는 속도에 맞추어 영감을 받아들이는 조절능력이 얼마 안 가서 생긴다. 기록하는 행위는 집중력을 향상시켜 명확성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된다.

5) ‘나는 물어볼 것이 없다. 궁금한 것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모든 것’이라는 것은, 신과 나의 속성에 대한 원론적인 개념 또는일시적인 영적체험에 대한 이야기이고, 일상이라는 구체화된 현실에서, ‘지금 여기’의 나는 신의 분신으로 존재하고 있다. 분신으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나의 물질세계에서의 삶이므로, 삶의 세세한 상황에 필요한 정보들을, 넓고 깊은 시야를 가지고 보는, 자신의 본질에게서 받아야 한다.

6) 무념무상은 고요함으로 가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고요함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의 본질이 근원임을 일시적으로 확인하는 것을견성(見性)이라고 한다. 일시적인 체험을 한 이후에도,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에 필요한 구체적 정보를 챙기는 것이 내면과의 대화이다.

7) 내면과의 대화를 통하여, 영적각성이 점점 심화될수록, 평소에 이루어지는 생각들이 영혼의 목적에 관계되는 방향으로 사고의 작용이 이루어진다.

8) 내면과의 대화는 영적체험이며, 견성(見性)이며, 진아(眞我)체험이고, 자기 영혼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관계한다.

9) 고요한 집중력이 향상되므로, 기록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도, 필요할 때마다 작용하는 영감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향상된다.

10) 설정은 분리이지만, 영혼차원의 느낌 속에서 존재하면서 진행되는 것이기에, 존재상태는 분리가 아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분리의 파장은 발생하지 않으며, 근원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분리의식 또는 이원성이 심화되는 문제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대화의 상대자에 대한 머리로 하는 생각이 많은 경우인데, 그것은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존재해야 하는, 생활 속의 명상의 기본적인 수행과제이다.

11) 내면과의 대화는 집중하는 명상이고, 근원의 에너지로 강화되는 수련이며, 수행과정에 적절하게 맞추어진 도움을 얻는다.

12) 자기 수준만큼의 대화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인식능력(존재능력)의 향상에 따라서 대화의 수준도 향상된다.

13) 자신의 심층과의 대화이므로, 대화상대자의 형편에 따라서 도망가는 일이 없다. 내가 고요히 집중하여 원하는 상태만 만든다면, 언제든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빙의나 외부의 대상적인 존재와의 연결이 끊어진 이후에 발생하는 교신두절 같은 현상은 없다.

14) 내면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중심에너지가 강해지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에 의한 힘으로써, 천상계, 식물계, 동물계, 자연계, 정령계 등과의 교감이 가능해진다.

15) 내면의 소리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그 소리에 자신을 내 맡길 수 있다면,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 없다. 모든 정보는 이미 나 자신의 내면에 있기에, 필요에 따라서 다가오게 된다. 끊임없이, 무한정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금 여기’에 필요한 깨달음에 충실할 때, 자신의 삶에 충실해지는 것이며, 그것이 순리이고, 섭리이며, 영적진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의 원활함이다. “자기 자신에게 모든 것이 다 있다.” “자기 자신을 고집스럽게 거부하지 마라.”

[7] 내면과의 대화 시의 주의사항.

1) 자신의 본질적인 면이 신이기도 하지만, 전체의식인 신이 아니니, 신과 대화한다고 해서, 자기 자신이 최상의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신과의 대화는 깨달음의 과정이다. 내면의 스승을 참스승으로 모시고, 철저히 배워서 깨닫겠다는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내면과의 대화를 하는 참의미를 못 살리게 될 것이다.

2) “신은 모든 것이니, 합일의식이자 분리의식이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철저히 적용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합일이냐!, 분리이냐!)을 원한다.”

그것에 따라서, 신이나 타인과의 합일에 관계되거나, 분리에 관계되는 내면의 정보가 전해지기에, 자신의 의식 상태를 끊임없이 점검하여야 한다.

3) 사심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원하지 마라. 오로지 ‘모든 하나’를 위한 마음으로 내면의 지혜를 이끌어 내라.

4) 자신의 본질인 신을 끊임없이 의심(분리)하면, 그 의심의 마음에 맞추어지는 그릇된 정보를 자기 자신이 불러오게 된다.

5) 자신만이 유일한 신의 대변자거나, 위대한 예언자로서의 우월함에 마음이 미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월의(분리의)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에 대한 자각을 돌보지 못하고, 분리의식으로서 내면(신)의 분리의식을 원한다면, 사실과 다른 내면의 정보를 끌어내어서, 신 또는 타인과 분리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자기 자신이 분리를 원했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합일의식을 충분히 고양시켜서 대화를 시도하면 된다. 자신의 본질인 신과 분리되어져 대화가 단절되었다고 해서, 대상으로서의 존재를 원하지 마라. 대상으로서의 존재 중에서, 자기 영혼의 여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존재도 있고, 방해를 하고자 하는 존재도 있지만, 도움을 주기 위한 존재와 연결되기는 어렵다.

6) 신은 모든 것이니,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정신없이 솔직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 서로간에 허물이 없어지고, 상대감이 줄어들수록 신인합일에 가까워진다.

7)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따르는 실천이 더 중요하다.

8) 신은 우리가 규정하기엔, 지고의 존재이다. 자신의 한정된 사고와 경험의 틀로서 규정하려 해봤자, 신에 대해서는 정리가 되어지는 것이 아니니, 자신을 다루는 것에 충실한 대화를 전개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9) 자신이 대화의 방향성을 잡아나가려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면에서 알아서 인도할 것이니, 오직 자신을 정돈하여, 의도하지 말고, 최선으로 허용하기만 하면 된다.

10) 때로는, 신의 시험이 다가올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선택하게 하는 것에 관계될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항상 자신의 숭고한 의미에 대한 자각을 돌보게 하는, 존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단련과정이다. 그러므로, 신의 시험은 자신의 기국과 역량을 키워주기 위한 기회이자 축복인 것이다.

11) 때로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대화내용이나 에너지의 느낌에 사로잡힐 수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수십, 수백 생애 동안의 삶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자신의 것이며, 두려움의 에너지를 드러내게 해서 정화시키는 작용인 것이다. 사랑이 내부에서 나오듯이, 두려움 또한 내부에서 나온다. 두려움을 넘어서서 사랑의 마음으로, 합일의 정신으로, 자신을 결코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본질인 신을 포기하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12) “자신의 나름대로의 최선으로 추구한 삶을 돌아보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8] 채널링에서 작용하는 존재에 대한 식별법.

1. 설정.

1) 자신에게 집중하고, 대상을 원하지 말고, 자신의 본질인 창조주를 원한다.

2) 질문과 대답형식으로 기록하면서 진행한다.

2. 식별법.

1) “당신은 나 자신입니까?”

2) “당신은 이 우주의 창조주입니까?”

(아닐 경우에는,) “내가 기원한 우주의 창조주입니까?”

(아닐 경우에는,) “당신은 모든 우주들의 창조주인 근원입니까?”

3) 위의 내용으로 물어보며, 대답을 예스(YES), 노(NO)로 받는 것을 원하지 말고, 답변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4)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와 연결되는 것은, 대화를 진행하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힘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5) 명의를 도용하는 존재들은, 위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거나,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하든지, 자신의 정체를 모호하게 할 것이지만,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면 밝히게 된다. 어떠한 집단의식이든 개별의식이든지간에, 명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이름이 있다. 대상으로서의 존재도 ‘신’ 또는 ‘하나님’이라는 호칭(대명사)을 사용할 수가 있으나, 자신의 본질인 창조주에게는 이름(고유명사)이 없다.

6)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대상으로서의 존재들은, 자신의 정체를 명확히 이야기한다. 누구나가 다 자신을 돕기 위한 존재라고 이야기하겠지만, 교묘함에 속지 않으려면 식별을 간간이 할 필요가 있다.

7) 자신의 영혼의 여정에 방해되어지는 존재들 또한 신의 일부분이고,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게임의 상대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니, 미워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은 아니다.

8) 점검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본질을 선택한 상대자에 대해서는, 위의 질문과 같이 간단하게 해야지, 끝없이 의심하는 것으로 진행하게 되면, 의심하는 것에 반응하여, 자신이 분리와 의심을 원했기 때문에, 의심스런 상황이나 분리되는 상황이, 자기 자신의 본질로부터, 제공이 되어질 수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 [내면과의 대화의 방법과 의미]에 대한 내용은,

그동안 내면과의 대화를 통하여 직접 체험한 것과, 다른 분들의 내면과의 대화를 안내한 경험과, 나누어 주신 글들과 상담 등을 통하여 정리한 것이며, 역시, 내면과의 대화를 통하여 명확성을 더하기 위한 작업도 병행하였습니다.

저 자신의 경험과 인식수준의 미흡함을 인정합니다만,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험과 이해가 더해지는 대로, 보완해 갈 것이며, 개별적인 신 체험시대의 ‘맞춤형 채널링’의 다양함을 담아내기가 어렵기에, 여러 개인의 진행상황과는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작업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지만, 자기 자신을 점차 세부적으로 알아가는 접근이 곧 삶의 주제이기 때문에, 함께 경험을 나누고, 노력을 기울여서, 온전함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http://cafe.daum.net/TOINSIDE/Df4E/36[내면과의 대화] 글쓴이 : 신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