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김정일 명령→해상육전대가 했다→김정은ㆍ작전총국이 했다
2010년 04월 25일 (일) 02:23 중앙일보
[중앙일보 안성규.박정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남조선 군함이 가라앉았는데 (북한) 해상육전대가 했다고 소문이 쫙 돌고 있다. 알 사람은 다 안다.” 천안함 사태 발생 13일째인 지난 4월 7일 밤, 북한 회령에서 서울의 탈북자 매체인 자유북한방송의 진선락씨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전화를 해 온 ‘보안부 통신원’이었다. 진씨가 “천안함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는 그렇게 답했다. 청와대가 ‘쉬쉬’ 한다는 인상을 주고, 야당과 네티즌들은 ‘정부의 북풍 공작’ 주장을 펴 국면이 답답하던 당시였다. 그럴 때 평양부터 북중 국경까지 이미 ‘북조선이 한 건 했다’는 소문이 좍 퍼져 나갔다. 북한에 천안함 소식이 어떻게 유포되고 확산됐는지 서울의 ‘정통한 북한 관계자’ 3인이 3월 28일부터 4월 19일까지 11번에 걸쳐 한 북한 현지주민과의 통화를 추적했다. 소문은 처음엔 미미했으나 곧 구체화돼 갔고 곧 기정 사실화됐다. 평양·회령·남포 주민과 전화 천안함 사태 발발 직후 탈북자 사회는 예민해졌다. ‘북한이 배후’라는 직감을 떠올렸다. 자유북한연합 박상학 대표는 사태 사흘 뒤 3월 28일 북한 국경 지역에 사는 경찰·보위부의 두 정보원을 휴대전화로 접촉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접경지역 친구 누나와 통화했다. 그녀는 “서해함대사령부 하급 장교인 동생이 약혼식을 앞두고 3월 중순 온다고 했는데 아직 못 오고 있다”고 했다. 비상의 이유는 몰랐다. 약혼식을 앞두고 못 나오니 뭔가 단단히 일이 났다는 짐작만 할 수 있었다. 무력부 통신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역시 몰랐다. 구체성이 조금 짙어진 첩보는 4월 2일 나왔다. 무력부 통신원은 박 대표에게 “지난해 12월 말 김정일이 서해함대사령부가 있는 남포에 왔는데 2월에 다시 와서 ‘대청해전 보복을 하라. 98돌 전후에 하라’는 얘기를 했다더라”고 했다. 98돌은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을 의미하며, 북한은 이날을 태양절로 부르며 기념한다. 요컨대 4월 15일을 거사 기준일으로 못 박았다는 것이다. 북한 배후설 윤곽이 처음 나온 것이다. 그러나 모호했다. 당시는 북한은 이상 징후를 보이지도 않았고, 청와대도 북한 개입 가능성 언급을 꺼려하던 때였다. 그런 가운데 4월 7일 회령 보안부의 정보원이 진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진씨가 운영하는 북한 정보망 세 개 중 나머지 두 개는 계속 숨어 있었다. 보안부 정보원은 “해상육전대가 했다더라”고 했다. ‘북한 한 건 설’이 평양을 거쳐 회령까지 올라온 것이다. 북한 대좌(대령) 출신인 자유북한방송의 채명민 본부장은 “육전대는 테러·암살 등을 맡은 특수부대인데 정찰총국·서해함대 모두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천안함 공격 주체는 여전히 애매했다. 김정일이 국방위원회-정찰총국-서해함대 경로로 지시한 것인지, 정찰총국이나 서해함대가 각각 독자적으로 한 것인지 모호했다. 진씨는 “서해함대 주변에도 알아보고 황해도에도 사람을 보내라”고 했다. 3일 뒤인 4월 10일 박상학 대표와 북한 통신원의 통화가 이뤄졌다. 이 통신원은 인민 무력부 작전국에서 근무하는 대좌의 사촌동생이다. 그는 무력부 작전국 대좌가 말한 민감한 내용을 전했다. 골자는 이렇다. “뻔하다. 우리가 한 방 갈겼다. 장군님 명령을 영예롭고 빛나게 관철했다. 2월 5일엔 남포 서해함대사령부에 있는 800~1000명 들어가는 체육관에 해상육전대·해상저격대·서해함대사령단이 다 모였는데 거기에 김정일이 왔다. 김정일이 ‘주석님 98돌이 오기 전에 대청해전 복수를 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남 공작을 하라’고 했다. 2월 16일 아침엔 결의대회도 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서해에서 교전이 벌어졌나. 서울에서 미사일을 쐈다는 거냐”고 물으며 어리둥절해했다. 아무튼 그가 전한 첩보는 4월 2일 내용과 맥락이 같으면서도 훨씬 구체적인 것이었다. 박 대표는 “이 작전국 대좌가 근무하는 곳엔 대좌급이 200명이나 된다”고 했다. 이후 국방부 정보 관계 담당 중령이 박 대표를 찾아와 “중요한 정보인데 왜 안 알려줬느냐”고 하는 바람에 거친 말싸움이 있었다. 같은 날 진씨에게도 회령 보안부 통신원의 전화가 왔다. “서해함대나 황해도로 가서 알아보라”고 한 지 5일 만이다. 첩보가 흥미로웠다. 통신원은 “(서해함대는) 뚫기 어려웠지만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서해나 동해나 (군인들이) 모두 밤에 집에 못 들어오고 한 달간 대기 상태였다고 한다”고 했다. 줄곧 비상이 걸렸다는 얘기다. 3월 8일 시작된 한·미 합동 ‘키리졸브’ 군사훈련은 3월 18일 끝나 이를 이유로 4월 중순까지 비상이 유지되는 것은 이상했다. 김정일이 ‘4월 15일 이전 복수를 지시함에 따라 비상이 걸린 것’일 수도 있었다. 더 구체적인 얘기가 4월 16일 나왔다.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가 북한 정보원인 소좌(소령)와 통화해서 얻은 내용이다. 서해 쪽에서 근무하는 현역 소좌가 말한 핵심은 ‘후계자 김정은이 신무기 어뢰를 만들고, 잠수정도 개조해서 천안함을 때렸다’는 것이었다. 작전총국동원도 거론됐다. 대화 골자를 소개하면 이렇다. -그쪽 소행이냐. “김정은 대장이 지시하고 계획했다고 한다. 김정은 대장이 신무기를 개발해 가지고 한 방에 날려보냈다고 한다. 김정은 대장도 김정일이한테 칭찬을 받고 사기가 살았다고 한다.” -신무기가 잠수정이란 말이냐. “반잠수정을 개조해 열세 명이 타 가지고 들어왔다. 이 사람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그중에 나와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잠수정에서 어뢰로 쐈나. “어뢰도 김정은 대장이 무기도 신무기로 개조해서 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다른 큰 일을 벌일 것 같다.” -김정은이 진짜 후계자냐 “이번 1월에도 회의를 크게 했다. 군부에서는 김정은 대장이 앞으로 후계자로 될 거라고 본다.” 3명 타는 잠수정에 13명을 우겨 넣는 ‘상식을 넘는 북한식 군대’의 예로 채 본부장은 ‘인간어뢰’를 들었다. 사람이 어뢰를 타고 수면 5m로 잠수해 가다가 배를 조준해 놓고 뛰어내리는 방식이다. 진선락씨는 ‘폭탄을 안고 배 밑에 들어가 자폭하는’ 자살폭탄조를 꼽았다. 그는 “자폭하지 않으면 가족이 당하니 자폭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선 그런 게 아무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 남한식 사고로는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진선락씨는 4월 17일 회령 통신원을 통해 여론을 알아봤다. ‘공화국의 천안함 공격’은 이미 기정 사실화됐다. 통신원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는 다들 ‘우리가 갈겼다. 우리가 대단히 세다’고 한다. 그러나 친한 친구들끼리 모이면 ‘그렇게 해 놓으면 마지막으로 죽는 건 백성 아니냐. 국가 뒷감당은 어떻게 하느냐고 탄식한다’”고 했다. 진씨는 “보위부 스파이들 때문에 사람이 많은 직장 같은 곳에선 ‘대단히 세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진씨는 친척 방문차 중국으로 나온 사람들과도 통화했는데 다들 “김정일이 했지 뭐”라는 반응을 보였다. 4월 19일 박상학씨도 무력부 소좌급 군 정보원과 다시 통화해 이미 소문이 북한 전체로 퍼진 것을 확인했다. 그는 “4월 17~18일부터 ‘장군님 명령을 영예롭게, 빛나게 관철했다. 후계자 청년 대장 김정은이 한 건 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소근소근대서 내려오는데, 당 간부들부터 군·보위국·안전국 같은 상층부에서부터 나돌기 시작했다”고 했다. 남는 의문과 설명 ①북한 당국의 소문 조작 가능성=세 사람에게 ‘북한이 하지도 않은 일을 놓고 거짓말을 하거나 정보 부서가 역정보를 흘릴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자 탈북자 출신 박상학·채명민·진선락씨는 모두 “북한은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자기가 했다면 잡아뗀다. 아웅산·KAL기 테러 때도 그랬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면 벌써 ‘남조선 괴뢰군 함정이 폭파됐다’고 대서 특필하고 크게 선전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현재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②통신원 신뢰도 문제=박상학·진선락씨는 “평소 통화해 온 사이”라고 했다. 최성용 대표도 “나와 통화한 사람은 몇 년 동안 안 사람”이라고 했다. 생명을 걸고 오랫동안 통화해온 ‘북한 통신원’들을 굳게 신뢰한다는 의미다. ③비밀 작전 정보가 그렇게 빨리 샐 수 있나=폐쇄 사회인 북한에서 비밀 작전 내용이 너무 빨리 알려진 것은 이상하다는 지적이 있다. 채 본부장은 아웅산 사건을 예로 ‘북한은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을 했다. “아웅산 사건 때 동건호라는 공작조 소속 선박이 동원됐는데 그 배 부선장이 내 친구였다. 그 친구는 목적지를 알기는 했지만 배에 누가 탔는지 몰랐다. 공작조 따로 선원 따로였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아웅산에서 남한 대통령 암살기도가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선원이나 공작조 다 ‘내가 했다’는 식으로 자랑하고 다녔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입소문을 타고 퍼졌을 것”이라고 했다. 안성규·박정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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