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참고자료 모음 !

업, 인과응보에 대하여...


- 옮김S H E-

業, 인과응보 하늘의 말씀...

종교를 떠나서 업과 인과응보는 인간의 세상, 하늘과 우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사회의 질서와 규칙이 있는 것처럼 ..


오늘은 어떻게 하면 업이 되는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함부로 참견하지 말라


어떻게 하면 업을 해소하는가?

"인간의 일은 하늘에 등록 된다 " 란 말씀을 알아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업이 되는가?


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에 따라 업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나가다 심심풀이로 나무를 꺽 으면 엄청난 업이 된다고 말씀드렸지요?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나무끼리 너무 붙어 있어서 솎아 내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심다 죽이는 경우는 죄가

아니지만 그냥 심심해서 베었다면 죄라는 것입니다. 예쁜 들꽃을 봤을 때 '편찮으신

어머니께 꺽어 드리겠다.' 하는 좋은 마음으로 꺽는것은 괜찮지만, 화풀이 삼아 뽑아

버리면 죄입니다.


또 누가 했느냐에 따라 업의 무게가 다릅니다.

인간계의 법도 과실과 고의가 다르듯,하늘의 법도 선한 자가 저질렀느냐, 악한 자가

저질렀느냐에 따라 같은 행동이라도 업의 무게가 다릅니다. 착한 학생의 한 번 잘못과

악한 학생의 또 한 번의 잘못이 다르듯, 본성의 차이에 따라 같은 행동의 업 이라도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사람마다 단계에 따라 죄의 무게가 다릅니다.

어느 정도 공부가 된 사람은 알고 지은 죄가 더 크고, 공부가 안 된 사람은 모르고

지은 죄가 더 큽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지은 죄는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라도 받습니다.

왠지 편치가 않습니다. 그런데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지은죄는 막무가내입니다.


남한데 어떤 죄를 지었는지,자기 자신에게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쿨쿨 잡니다.

더 무지한 것이죠. 이처럼 인간 진화의 초기단계에는 모르고 지은 죄가 더 큽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공부가 되고 나면 그때는 알고 지은 죄가 더 큽니다.

이미 무지를 벗어난 단계에서는 알면서 안 하는 것이 더 괘씸한 것이죠.


가르침을 통해 무지에서는 벗어났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주어진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실천을 안 한다면 그때부터는 죄입니다. 갓난아이가 불인지도 모르고 장난

치다가 불을 지르는 것보다, 성인이 재산도 타고 인명도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불을

지르는 것이 더 큰 죄인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업을 해소하는가?

첫 째 , 자신의 과오를 인식하고 사죄해야 합니다. 자신의 과오를 인식하는 순간

업장의 반은 소멸됩니다. 자각 수련 숙제를 내드리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숙제를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통감하고 사죄 하라는 것 이지요.

그 과정에서 업이 많이 감해집니다.


둘 째, 내 탓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업은 스스로 짓는것이지 전혀 남의 탓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떤 업이 온 것이고, 저 것은 어떤 업이 온 것입니다.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한 짐은 계속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받아서 내가 지고 간다고 생각지 않는 한, 업을 덜 수 있는 일이라도 업을 쌓고 마는

식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같은 일로도 어떤 사람은 업을 덜고 어떤 사람은 업을

쌓습니다. 닥쳐오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생각해야 업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셋 째, 겪을 만큼 겪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인생은 원래 고행이며, 고행의

의미는 본인의 업을 소멸시키는 과정이라는 데 있습니다.

겪어야 하는 모든 것은 겪을 만큼 겪어야 하는 것 이므로 피하는 것은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꾀를 부리거나 원망을 하면 더 큰 매가 올수 있습니다.


병으로 겪어 넘기는 경우 갚아야 할 업이 있을 경우사고를 당하거나,돈을 잃거나

직장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겪거나 하는 여러 가지 해 업의 방법이 있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병입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는 것보다는 본인이 아파서 고통 받으며 겪어

넘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또, 갑자기 병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게 되었다면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금년이 좋지 않은 업이 드러날 시기인데, 병으로 때우는 것일 수가 있으니까요.

질병이 자신의 업을 해소 하는 방법일 수 있음을 이해한다면, 병이 왔을 때 불청객을

맞이하듯 하지 말고, 담담하게 맞이하는 것이 좋습니다.


병의 치료는 자력에 의한 방법, 타력에 의한 방법이 있습니다. 병이 일단 나타났다면

수련과 병원치료를 병행하며 직간접적인 치료 방법을 찾으십시오.

병의 진전이 50% 미만일 때는 수련으로 이겨 보는 것이 좋고, 50% 이상 진전이 되었

다면 병원에 가시고 수술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전생의 업에 의해 평생 불완전한 건강을 감수해야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의 경우 마음공부 수준은 상당히 높은데 몸이 부실해서 문제입니다.

완전한 건강이 찾아지면 그때는 이미 본성을 만나는 단계가 될 것입니다.


제가 이분께는 "대주천은 아예 생각도 마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버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평생 불완전한 건강과 친구처럼 함께 가야 하는 스케줄이기 때문입니다. 건강이

웬만해졌다 하면 그때는 이미 상당한 차원입니다. 부실한 몸을 거부하지 말고 친구

처럼 맞이하도록 말씀 드렸습니다.


목적 있게 사는 법 , 정확하게 계산해서 갚는 경우.


제 먼 친척 중에 선善을 많이 베푼 분이 계셨습니다.

천주교에서 큰 활동을 한 분이셨지요. 그런데 병석에서 3년을 보내고 돌아 가셨습니다.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덕을 많이 베푼 분이고, 3년이 짧은 세월도 아닌데, 누워 계시는 동안 온갖

수모를 다 겪고 돌아 가셨습니다. 며느리와 아들로 부터 인격을 모독당하며 사셨습니다.

누워계셔서 수발들기가 귀찮으니까 음식을 아주 적게 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병문안 가면 배고프다고 하소연합니다. 인간적으로 수모를 당하셨지요.

그런데 원망을 안 하고, 아들과 며느리를 끝까지 옹호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저렇게 선량하고 베풀며 산분이 어떻게 말년에

그런 수모를 겪게 되었는가?


지금 살아계시면 연세가 백세쯤 되는데, 그 시절에 박사까지 한 분이면 참 대단한 분

이지요. 유학도 다녀오셨고요.

그런 분이 어떻게 3년 동안 저런 수모를 당하고 돌아가실 수 있을까?

살펴보니 그 분이 전생에 자기 일 한다고 병석에 계시는 시아버지를 안 모셨더군요.

그렇게 내버린 것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수모를 당한 것이지요.


업 이라는 게 그렇게 정확한 겁니다. 지금 죽는 게 나은가?

반신불수가 되는 게 나은가? 식물인간이 되는 게 나은가?

그런 것을 다 따지면서 부채관계가 정확하게 계산됩니다.

몇 년 몇 개월, 며칠, 몇 시간 겪어야 하는지 시간까지 정확하게 나옵니다.


그러니 죽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 죽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자기는 죽고 싶은데, 이렇게 살 바에는 죽고 싶은데 남을 공부시켜야 하기에 못 죽는

이치가 있는 것이지요.


누워있으면서 아들 , 며느리 로 하여금 시중들게 하면서 공부를 시켜야 하기에 못 죽는

겁니다. 생사는 인간의 소관이 아니고 신의 소관이라고 하는 게 이렇기 때문이지요.



목적 있게 사는 법, 갚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업해소란 것이 꼭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이렇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를 희롱하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업을 지었다면, 똑같이 실연당하는

걸로 갚는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다른 걸로 갚게 합니다.


이유도 모르게 자꾸 기운이 빠집니다. 특별히 아픈데도 없는데 못 일어납니다.

너무 몸이 무겁고 기운이 없어요. 병원에 가면 만성 피로라고 말하지요. 이유를

모릅니다.


바짝바짝 마르거나 정체불명 의 병을 앓습니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돈을 떼이거나 ,배우자나 가까운 사람이 아파서

닥거리를 하거나.... 이렇게 갚는 방법이 다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가

아닙니다.

보통사람의 경우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러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분처럼

전생에 시아버지를 방치했기에 며느리로 부터 똑같이 돌려받는 경우입니다.

고행을 함으로써 상쇄하는 것이 지요.


허나 명상하시는 분들은, 정상참작은 있겠지만, 똑같은 일로 겪게 하지는 않습니다.

명상을 하면서 반은 상쇄가 되고 반은 본인들이 겪는데, 다른 일로 겪게 합니다.


말씀을 나누기 위해 글을 올렸는데 일반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좀 까다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대중에게 잘 알려 지지 않은 지식들 입니다.


종교를 떠나서 업과 인과응보는 법칙이라고 합니다.


복을 짓는 일 이란 ...


복이란 예상치 않았던 얻음으로써, 일견 소득 없는 노력인 것 같으나 세상에는 자신의

노력 하지 않는 소득은 없다.


언제 어느 때고 자신이 받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하고 있던 것들이지 어찌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겠는가?


복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미리 복을 받을 만한 일을 많이 해 왔다는 것을 뜻하는

것 이기도하다.


설령 아무 것도 안하고 받은 듯 보여도 언젠가 자신이 치렀던 것에 대해 돌려받는

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인간은 보통 노력 없이 얻는 것을 바라는

심정이 있으나 어떤 것도 자신의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사람의 일생은 짧아도 그 안에서 행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보람 있는 것이 복을

짓는 일이다. 그저 남을 돕고 편하게 해주는 것은 복을 짓는 가장 좋은 일이다.


그저 돕고 사는 것이 좋다.

자살은 죄인가, 죽었다 깨어나는 경우, 죽은후 바로 환생하는 경우..

벌레를 죽이면 죄인가, 잠깐의 인생이 영생을 가름 한다 .

사후세계 란 어떤 곳인가...맑고 밝고 따뜻하고 비워야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업이란...어떤 것인가 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자실은 죄인가...?

인간의 창조 목적은 경험을 통한 진화입니다. 인간의 목표는 대 자유이며, 그것에 이르는 과정이 경험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면서 공부할 양과 역할에 따라 수명을 부여받고 나오며, 정해진 기간 안에 자신이 해야 할 공부나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자살이 죄인 이유는 자신에게 해야 할 공부나 경험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끝나면 남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남아 있으며, 남에게 일을 시키는 것까지도 끝나야 돌아가게 되는데, 그 시점이 바로 자연 수명이 끝나는 시점입니다 ,자연 수명이 끝나기 전에 미리 당겨 죽는 것은 아직 일이 남아 있을 때 죽는 것입니다. 죄입니다. 결코 후생이 보장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선인들의 경우는 자신들의 운명을 자기 스스로 관리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목숨을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 ) 에 보면 이순신 선인이 마지막 결전으로 전쟁이 끝날 것을 알고 스스로 이승을 떳다고 하셨습니다.

지상에서 하여야 할 일이 완수되었을 뿐더러, 더 이상 존재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이승을 뜨는 방법은 여러가지 있으나 번잡스럽지 않은 방법을 택했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피동적인 관계인 채로 "몇 살까지 살아라, 십 년 동안은 병석에서 본인도 죽을 고생을 하고 주변 사람도 고생시켜라 " 하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나온 경에는 자기가 죽고 싶어 해도 마음대로 죽어지지도 않더군요.

벌레를 죽이는 경우 .....

인간들이 파리나 개미 같은 벌레들을 많이 죽이는데 그건 어떻게 봐야 합니까. ?

살생에 관한 문제인데, 옛날에 어떤 스님은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다니면서 ' 내가 가니까 밟혀 죽기 싫으면 다 비켜라 ' 하고 툭툭 두드렸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지요.

그만큼 사랑이 있으면 그 스님처럼 하십시오.

항상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파리도 왜 죽게 되는가 하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뛰쳐나와 엉뚱한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죽이기 싫으면 " 넌 네 자리로 가라 " 하고 말을 건네 보십시오.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할 수 없지요. 방해가 되니까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기감이 늘 살아 있으면 항상 본인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압니다. ' 여기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구나. ' 알아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생과 사가 늘 반반이지요. 이쪽에서는 죽고 저쪽에서는 태어나는 것이 지구입니다. 태어날 자리에 있는가. , 죽어야 할 자리에 있는가. 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죽었다가 깨어나는 경우 ...

한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분들은 스케줄이 잘못돼서 그러는 건가요?

공부에 의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사후세계를 한번 보고 와야 할 필요가 있으면 인도를 받으면서 그런 일을 겪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 일이 큰 계기가 됩니다. 변화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요.

죽은 후 바로 환생하는 경우

죽고 나서 바로 환생하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요?

극히 이례적인 경우이고 착오가 있는 경우입니다. 죽지 않아야할 사림이 죽었다든가 , 보호령이 잘못 보호해서 죽었다든가 하는 경우입니다. 착오로 죽었을 때는 정상 참작이 있어서

바로 내보냅니다.

환생하고 나서도 같은 분이 보호령으로 계시나요?

일률적이지 않고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보호령이 있어 보호를 받는 인간에 관한 모든 상황은 마치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는 것과 같아서 , 누가 죽으면 그것이 착오에 의한 것인지 순리에 의한 것인지 순식간에 판단이 됩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금방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보호령이 잘못했다 하면 ' 한 번 더 기회를 줄 테니 잘 해봐라 '하고 다시 붙여 나올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에게 보호령이 전부 배치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이 판단하시기에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수준의 인간에게만 보호령이 있는 것 이지요.

잠깐의 인생이 영생을 가름한다.

" 잘 죽기 위해서 산다." 는 말이 맞는 것 입니다.

인생은 잠깐인데, 그 잠깐의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영생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70 - 80 평생이 영생을 판가름 합니다.

사법고시를 본다 했을 때 그 시험 결과에 따라 평생 그 사람이 판사가 되느냐 못 되느냐가 결정되지만, 시험 보는 기간은 하루 이틀 이지 않습니까. ?

마찬가지로 지구에 태어난 우리들이 10년을 살든 , 20년을 살든 , 60 년을 살든 , 그것은 시험장에서의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수련하러 오신 분들은 여기 입학해서 부터가

시험시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움과 나눔을 실천하기

비워야 높이 갈 수 있다....

죽고 나면 진화의 수준에 따라 선인이나 영체 , 기인 , 영인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러한 진화의 수준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진화의 수준을 가름 하는 잣대는 무엇일까요 ?

인간의 진화의 수준을 결정하는 잣대는 기운입니다.

선인이나 영체 , 기인 , 영인들 모두가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우주에서 한 인간의 수준을 평가할 때는 기운의 모습을 보아 결정하지요.

숨길 수도 감출 수도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 기운입니다. 맑고 밝고 따뜻함..

기운의 맑음 , 밝음 , 따뜻함으로 한 인간의 격이 정해집니다. 기운이며 , 마음이 그래야 하고 , 마음이 그렇게 되려면 우주 원래의 상태인 공 空 의 상태로 되어야 합니다.

진공 眞空상태인 본성 本性 은 허공 속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마음이 비워져야만 기운이 가벼워져서 영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짐이 없을수록 높이, 멀리 갈 수 있으니 까요...

나누면 큰 축복이 온다. ....

비우는 방법에는 버리는 방법과 나누는 방법이 있습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은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움을 돕는 방편으로 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버림과 나눔의 장소로소 믿음이 가는 곳이 있다면 그런 곳을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자신이 혼자 해결하는 것보다는 신경이 덜 쓰이는 일입니다. 버리는 일에도 힘이 드니까요.

하늘의 장부에는 대차대조표라는 것이 있어서 그 기록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의 경우에는 하늘에, 자연에, 인간에, 세상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남아도는 것뿐 아니라 유용한 것을 아무거리낌 없이 나누게 될 때 더욱 큰 축복이 내려지더군요. 하늘의 속성은 인간들 에게 빚지고는 못 사는 성향이기 때문에 반드시 언젠가는 누구를 통해서든 기하급수로 돌려주시더군요. 좋은 것뿐 아니라 나쁜 것도 그러합니다

나눔에는 또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정신을 나눔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고통을 나눔은 삼가야 하며, 기쁨을 나눔은 많을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정신의 나눔은 기쁨의 파장을 배가시키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정신이나 가진 것이 없어 타인과 나눌 것이 없다면 적어도 한숨만은 남과 나누지 않아 죄라도 짓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착한데 어두운 분들이 좋은 곳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한숨 때문이지요. 한숨은 한 숨이지만 그 무게는 천 근 만 근 이랍니다.

신라시대 나무꾼, 조선시대 화가의 업.

들여다보면 병은 금생에 연유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과거 생의 업 때문에 부실한 몸을 타고나는 것이지요.

오른쪽 다리에 고통이 심한 회원님이 계셔서 전생을 살펴보니 통일 신라 말기에 나무꾼으로 사셨더군요.

그런데 당시 나무를 할 때 자연의 이치를 생각지 않고 오직 나무를 베어내는 데에만 치중했습니다. 나무를 하더라도 숲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좋은 일이지요. 솎아내야 할 나무를 쳐내는 것은 자연의 이치, 진화의 이치에 합당한 일이니까요. 헌데 이러한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했습니다..이러한 것이 업으로 쌓여 몸의 고통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수백 년 되어 동네에서 주민들이 받들어 모시는 신령한 느티나무를 다른 사람들이 보란 듯 벌목했는데, 그 결과 사기 가 범하여 기적으로 병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업보가 금생에 발목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이 분의 경우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마음에서 기운을 일으켜 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대자연에 속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모든 자연에 대하여 미안함을 가지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로 일관하면 나을 수 있습니다.

업(業) 이란 무엇인지요?

이 자리에 흘러오게 된 모든 것을 말한다.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모두 포함되어 흔히 알고 있듯이 잘못한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잘한 것이 더 많다. 잘한 것이 더 많기에 인간이 되고 인간이 잘못한 것을 씻어 낸다고 생각해야 한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고 미래는 현재의 결과이다 .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분석해서 받아들이되 업이 많다고 비관하지 말 것을 요한다.

오히려 크게 깰 수 있는 요인이 되니라. 금생에 이 수련과 인연이 닿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생의 공덕이 축척된 결과이므로 크나큰 영광으로 알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다 실화입니다.

명상 중 . . 최초 ..
-道,수행중인 어느분의 이야기 중에서-

'참고자료 모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神 의 세 계 』  (0) 2008.04.20
사후[영혼]세계 와 巫 ...  (1) 2008.04.20
카 발 라 [Kabbala]  (0) 2008.04.20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0) 2008.04.20
숨겨진 성서 - 에녹서  (1) 2008.04.19
+ 그리스신화 ( Greek mythology )  (0) 2008.04.18
`인디고` 아이들과 영혼  (0) 2008.04.18
태양계 행성,위성  (0) 2008.04.17
사람과 운명에 대하여...  (2) 2008.04.16
우주의 진실 . 물질원자 - 아 누 -  (0) 2008.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