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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편지 !

+ 천국편지 / 깨달음은 개인적 선물이 아니다 & 나의 소리를 들어라

 

 

 

천국편지 / 깨달음은 개인적 선물이 아니다


깨달음은 개인적 선물이 아니다

Enlightenment Isn't a Personal Gift


Heavenletter #5769. - God  September 10, 2016

http://heavenletters.org/enlightenment-isnt-a-personal-gift.html


 


신이 말했다.


만약 네가 오늘 깨달음enlightenment을 실현한다면, 너는 네가 어떻게 느낄 것으로 생각하느냐?


대개 너는 감동/흥분을 받을thrilled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동시에 나는 너에게 말하겠는데, 깨달음이 어떻게 느껴져야 하거나 나타나야 한다는 어떤 방식이 없다고 말이다.


네가 심지어 주목하지 못하게 될 것도 가능하다. 네가 주목하지 못하는 것도 심지어 가능하다.


네가 깨달음과 연관시키는 것이 너의 체험이 아닐 수도 있다. 너는 네가 그럴 것으로 생각했던 식으로 개달음을 체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너는 놀라운 무언가를 기대했지만, 너는 여전히 네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네가 항상 그랬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같아 보인다.


너는 너의 모든 가슴으로 네가 기다려온 밝은 색채들로 이 멋진 변화를 체험하지 못할 수 있다.


친애하는 이들아, 너는 삶이 항상 그 자신을 너에게 제시한다고 알고 있지만, 삶은 항상 네가 기대하는 식으로 너에게 그 자신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것을 기억해라, 깨달음은 항상 희열의 체험으로 나타나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음은 네가 기대한 것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은 너에게 중대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깨달음은 심지어 너를 기쁨이 아니라 울게 만들 수도 있는데, 그러나 너는 왜 네가 우는지를 모른다. 아아, 너는 무엇이 너와 문제인지를 의문하는데, 네가 기쁨으로 뛰어오르는 너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깨달음을 이 세상 체험의 밖에 있는 것으로 체험할 것이라고 확신했는지도 모르며, 지금 너는 그 깨달음을 세상의 하나의 체험으로 체험한다.


너 자신에게 상기시킬 일은 깨달음이 너의 가슴에 다는 하나의 메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깨달음은 다소 네가 세상의 이익을 위해 신뢰 속에 간직하는 무엇이다. 그것은 너의 등에 또닥거림으로 의도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보상이지만, 하나의 메달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명예이지만, 너는 깨달음을 하나의 명예나 다른 무엇으로 느끼지 못할 수 있는데, 너의 깨달음이 너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을 위한 것이다.


너는 경탄을 느끼기를 원하지만, 너는 오히려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너는 희열을 느끼기를 원하지만, 너는 그렇게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깨달음의 존재는 너를 위한 개인적인 선물 포장으로 되어 있지 않다.


네가 깨달음을 추구할 때, 너의 추구는 깨달음에 대한 것이지, 깨달음의 멀리 떨어져 있는 체험이 아니다. 너는 그 차이점을 보느냐? 오래된 습관들이 어른거린다. 지구상의 너의 육체적이고 개인적 삶의 체험으로 단연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너의 일이 아니다.


너는 너 자신 위로 올라가고 있다. 너는 너의 진정한 큰 자아로 올라가고 있다.

너의 개인적 체험은 깨달음의 목적이 아니다. 너는 오히려 깨달음의 부산물과 같다.


깨달음의 특성들의 하나는 네가 균형 위에 있다는 것이다. 너는 멋진 고조를 체험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너는 낮은 길들을 그처럼 명확히 체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대조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


고요하게 되어라, 너는 너를 둘러싸는 하나됨의 고요함Quietness of Oneness을 주목할 수 있다. 너는 흥분을 능가하는 하나됨Oneness을 주목할 것이다.


하나의 고조는 너를 더 이상 흥분시키지 못할 수 있다. 흥분하게 되는 것은 대조를 요한다. 네가 이미 휘저어졌을 때 너는 높은 온도로 끓어야 할 필요가 없다.


너는 평온과 편안해질 수 있다. 순탄한 길은 둔하지도 않고, 오르락내리락 하지도 않는데, 마치 너의 영이 네가 휘두르는 하나의 검인 것처럼. 평화의 유지자는 보통 놀라게 하지도 놀라지도 않는다. 평화의 유지자로서 너는 평화와 사랑을 휘두른다. 너는 평화와 사랑의 원천이고, 따라서 너의 생명이 흐른다.


낡은 습관들은 좀 채로 죽지 않는다. 너는 확고한 침해할 수 없는 기대감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너는 또한 실망감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너는 최고의 상으로 승리하지만, 너의 새로운 큰 자아your New Self가 결국 어디에 있는지를 의문한다. 너는 네가 찾는 환희가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지를 의문한다. 너는 놀라게 될 너 앞에 있는 경이로운 생물로서 너 자신을 아직 보지 못한다.


감동/흥분들이 네가 지금 주는 봉사의 기본적 삶Elemental Life of Serivce을 선호하면서 가라앉을 수 있다.





나의 소리를 들어라


나의 소리를 들어라

Hear Me


Heavenletter #5770. - God  September 11, 2016

http://heavenletters.org/hear-me.html


신이 말했다.


분노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을 일으키는 너의 거절하는/방해하는 일부이다. 분노는 너 자신의 자아 안에 네가 꺼야 하는 불꽃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네가 화내도록 만들지 않는다. 이것을 세 번 말해라. 아무도 네가 화내도록 만들지 않는다. 아무도 네가 화내도록 만들지 않는다. 아무도 네가 화내도록 만들지 않는다. 분노는 내부 작업이다.


너의 삶의 전체 이야기는 하나의 내부 작업이다. 아무도 비난하지 마라. 너 자신을 책임지게 하는 것은 너 자신을 비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네가 너 자신을 넣은 진창으로부터 너의 길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틀을 낮추어라.


너는 너의 정의righteousness라는 자아-이미지로 집착해있다. 너는 화를 내어야 할 필요가 없다.


너는 어떻게 분노를 지나가느냐? 어떻게 너는 그것을 극복하느냐? 너는 그것을 삼키고 싶지 않는데, 네가 그것으로 목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분노가 없는 체 하고 싶지도 않지만, 너는 극히 너의 분노를 간직하고 싶지도 않다. 너는 심지어 정말로 너의 분노를 관리하고 싶지도 않다. 너는 그것이 너 밖으로 터지게 하고 싶지 않으며, 또한 너는 그것이 내부에서 부글거리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더 많이 네가 너의 분노를 두들길수록 너의 분노가 더 상해진다. 분노가 경계를 모르는 듯이 보일 것이다.


나는 분노로 빠른 처방을 알지 못한다. 너는 분노를 제거하기 위해 성형외과로 갈 수 없다. 너는 그것이 없는 체 할 수 없다. 너는 그것을 잘게 썰어서 던질 수 없다. 동시에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게 느껴진다. 분노는 너를 먹어치우는데, 너의 분노가 그 수신자에게 가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너는 너의 분노에 마스크를 씌우고 싶지 않다. 너는 또한 소심해지고 싶지도 않으며, 또한 너의 분노를 마치 그것이 담배인 양 불을 붙이고 싶지도 않다. 너의 분노를 다른 이들에게 가져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을 너 자신에게 가져가서, 너의 내장 속으로 넣는 것도 옳지 않다.


몸은 무엇을 하느냐? 네가 분노의 장악 속에 있을 때 너의 분노는 압도적이다. 너는 너의 분노를 제한시킬 수도 없었고, 네가 그것을 피할 수도 없었다.


너는 다른 사람들이 심호흡을 하면서 그들의 분노를 모든 이들의 선을 위해 억제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러나 너의 분노가 타오르고, 너는 행복하지 않으며, 너의 분노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는 자들도 행복하지 않다.


너의 분노를 끝내기 위해 무언가가 – 보이든 보이지 않든 – 이루어져야만 하는데, 너는 단순히 그것을 알지 못한다.


너의 분노의 바로 그 원인은, 그 명백한 원인에 상관없이, 무력감에 대한 너의 느낌이다. 나는 분노를 막는 데의 너의 무력감이 아니라, 너를 삶 속에 인질로 잡고 있는 듯이 보이는 무력감을 말하고 있다. 만약 네가 삶에서 그처럼 무력하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너는 화를 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너는 너의 분노를 저장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또한 네가 그것을 내보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위한 원인이 없을 것이다.


무력감은 너를 그 속박 속에 가둔다. 너는 너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근육들이 부족하다.


그리하여 비난이 일어난다. 비난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든 공정하지 않다. 네가 삶의 피해자처럼 느낄 때, 너는 손에 있는 것을 비난하고, 너는 너 자신을 기어 나오기가 힘든 구덩이 속으로 던진다. 너는 막다른 거리에서 너 자신을 발견한다. 분노는 너를 그 손 안에 잡고 있다. 분노는 미봉책이 되지 못한다.

 

분노를 규제하려고 하는 대신, 네가 너 자신에게서 피해의식을 벗기는 것이 필요하다. 분노는 그 인접 원인이 무엇이든, 너의 무력감을 투사한다. 우리는 너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것은 네가 삶의 모든 것 위로 외부 컨트롤을 행사해야함을 의미하지 않지만, 그것은 네가 삶에서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기 위한 것이다. 친애하는 이들아, 그것이 너에게 무엇으로 보일지라도, 너는 무력감을 버릴 수 있다. 네가 그렇게 할 때 분노가 너를 그 속박으로 잡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삶에서 네가 너의 선택들을 만드는 그러한 작은 영역들을 찾아라. 분노는 선택들을 만들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이다. 너 자신의 선택들을 만들지 못하는 지각된 무능력 외에 무력감이란 무엇인가?


이제 분노에 대한 그 더 깊은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너의 일이다. 너는 통찰력을 얻고 있다. 너의 판단에서 더 높이 올라가라.


더 이상 분노가 너의 권리들을 다른 이들에게 주어버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나의 소리를 들어라.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9762 신의 편지/1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