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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편지 !

+ [창조의 법칙] 원념(願念) 은 모든 창조의 동기를 주는 힘

[피닉스저널 - 창조의 법칙 중에서]

원념[願念] 은 모든 창조의 동기를 주는 힘이다


원념[願念] 은 모든 창조의 동기를 주는 힘이다.

DESIRE is the motivating force of all Creation.

영감을 받은이는 홀로 참을성 있는 일을 창조할 수 있다.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대는 먼저 상상해야만 한다. 상상하기 위해서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알아야만 한다. 모든 감각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생각하는 데는 아무런 힘이 없다. 생각하는 것은 앎 속에 놓인 힘을 단지 표현한다. 그대는 자신을 멈춰있는 빛 속에 집어넣어야만 하는데 그 빛은 신과 대화하는 앎의 정지된 빛이다. 그대가 하나의 생각 형태를 만들어내려면 생각을 상상하기 위해 신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의 개념이란 것이 형태를 갖춰서 표출되기 전에 앞서 있어야만 한다.

조직적 물질은 물질 속에서 생각을 표출하려는 원념으로부터 순수하게 생성된다. 형태를 창조하려는 우주적인 원념은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낸다. 원념은 모든 창조의 동기가 되는 힘이다. 사람은 하나의 세포처럼 그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사람의 전체적 생각은 바로 그 단일 세포이다. 그것이 시간과 공간에서 우주법칙에 따라서 펼쳐진다. 그런 식으로 모든 창조의 전체적 생각은 그런 단일 세포 안에 존재한다. 모든 생각은 모든 곳에 편재한다.

전체적인 것의 부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이 펼쳐지는 각 단계는 펼쳐짐을 위한 계속적인 원념을 따라간다. 목적을 가진 세포의 기억은 그것이 펼쳐질 때 각 세포에게 주어진다. 생각의 유형은 신의 마음 안에 있는 원념에 따른 순서대로 따라간다. 그리고 자라나는 생각 안의 원념은 생각을 형태로 표현하기 위해 함께 일한다.

사람이 펼쳐내는 모든 행동은 사람의 생각을 펼쳐내는 일의 한 부분인데 그 행동이 전체적으로 신의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원념은 빛의 양방향의 확장성인데 이는 신으로부터 인간에 이르는 양방향을 말한다. 신이 인간 안에 표현하려는 원념은 무엇이든 그분이 표현하는데 왜냐하면 신이 인간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만일 내가 신이라면 나는 그대를 창조했다. 그것은 따라야만 하지만 그러나 만일 그대가 역시 신이라면 그때는 그대가 되려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모든 비방, 신용, 불신 등등은 그대가 창조해서 그대가 되려한 것을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만일 바뀌어야 하고 내가 신이라면 그대가 변하게 해야만 그것이 바뀌는 것이다. 나는 그대가 나의 파편을 유지하는 것 안으로 주는데 그것이 자신이 되려고 하는 스스로를 창조하도록 그대에게 허용하는 것이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부의 신이 창조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도 신과 함께 신의 우주의 법칙에 따라서 공동으로 창조해야만 한다. 만일 사람이 그 법을 깬다면 법도 같은 방식으로 그 사람을 깨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사람이 신의 법칙과 창조의 법칙 안에서 행동하길 배우도록 강제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능이라 함은 신의 창조물의 행동에 대한 신의 통제를 말한다. 맥박이나 백혈구, 적혈구 같은 불수의 행동은 인체의 치유활동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신의 마음은 중심에 있어서 그의 창조물의 모든 원자를 통제해서는 그 분이 창조물과 공유하는 모든 것과 각 요소들이 치유 목적을 충족시키도록 강제한다.

장애는 그 자아에게 어떤 형태의 형벌의 목적을 세우는데 왜냐하면 비록 장애의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창조가 완전에 이르도록 조성되기에 그렇다. 예를 들어 만일 본능의 방향이 암병을 가지려 한다면 본능의 기능은 인체가 완전한 암을 창조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사람이 정확하게 되길 원하는 것을 따라야만 한다. 만일. 병이 감지되고 어떤 장애가 감지된다면 문제를 파악하고 불균형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그것을 당해내라. 그리고 방향 신호를 변화시켜라. 그러면 몸의 운행이 확실히 제대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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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의 전체로서 알고 있는 정신이다. 나는 생각하기 위해 존재한다. 모든 생각은 내가 알고 있음을 반영한 빛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다. 나는 창조자인데 나의 생각을 통해서 창조한다.

내가 알고 있음의 빛의 바깥에는 성별을 갖고서 탄생되는 생각함의 나의 두개의 빛이 존재한다. 이것은 반대되는 성별의 쌍들로 되풀이되는데 이런 반대되는 성의 쌍은 전체가 닮은 것으로부터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반대의 성이 쌍을 이루게 된다.

생각하는 것은 창조하기 위함이다. 나는 빛으로 창조한다. 어떤 것도 빛이 아닌 것은 없다. 나는 어떤 생각을 생각한다. 빛은 나의 생각의 두개의 성별을 가진 빛 안에 나의 생각을 기록한다. 그러면 형태가 나의 생각의 형상 안에서 태어난다.

형태는 존재를 갖지 않으며 나의 형상도 갖지 않는다. 이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오로지 나의 소유물이다. 나는 홀로 존재한다. 나는 모든 존재인 나의 존재함이다.

나는 내 우주의 맥박치는 흡입 호흡을 갖고서 내가 형상화한 몸체를 창조한다. 나의 우주는 나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내 이미지는 나 자신이 아니고 나의 소유물이다. 모든 것은 나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아니다. 비록 내가 그것들 안에 존재하고 그것들이 내 안에 있어도 그것들은 나의 소유물이다. 그럴지다!

창조자인 신은 힘 POWER 이다. 그 외에 다른 힘은 없다. 모든 에너지는 신의 하나의 자기장 빛의 정지된 상태의 내부에 놓여있다.

신은 정신인데 우주의 지성이다. 신의 정신 안에는 창조의 표현을 내보내려는 원념이 들어있다. 그것을 생각하므로 하나의 생각이 부분으로 표현된다. 정신의 빛 내부의 원념은 정신의 힘의 성질이다. 원념은 정신의 영혼이며 정신의 의지이다. 신이나 인간의 모든 산물은 산물을 창조하려는 정신의 원념의 결과이다.

산물을 창조하는 힘은 정신 안에 있다. 힘이 산물 안에 있는게 아니다. 산물은 그것을 만들기 위한 그것 안에 아무런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산물이 그것을 만드는 자체 내부에 힘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가정은 또 하나의 인간의 환상일 뿐이다. 이는 그가 등장한 초기 시절에 인간의 감각을 속였던 것이다. 이런 말은 마치 건축가가 자기가 만드는 성당에게 그 스스로의 창조의 힘을 준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성당은 건축가가 형태를 갖게 하려는 원념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 형태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의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뿐이다.

생각을 창조하는 힘은 앎안에 들어있다. 성당이란 생각은 이미 존재한다. 영혼의 눈은 명확하게 그것의 영적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몸의 눈이 그가 알고 있는 석재 안에서 이미지를 감지하듯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을 산물로 창조하는 힘의 표현은 생각의 전기적 운동 안에 놓여져 있다. 그 생각하는 것은 두개의 운동 파동의 빛이 생각을 구현해 낼 때 정신의 빛 안에 존재한다.

정신의 일꾼으로서 전기는 움직이는 형태를 생각에게 주는데 그러므로서 산물을 만드는데 요구되는 일이 진행되도록 해준다. 따라서 산물을 만드는 힘은 전기나 운동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로지 정신의 원념에 있을 뿐이다. 원념이 없이는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안에도 원념이 없다면 창조하려는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

안의 귀라든지 안의 눈이라는 친숙한 말은 진정으로 정신의 각성을 의미한다. 이런 것은 내면의 지각력이나 감각이 영적으로 드러난 것을 의미한다. 이런 능력은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영감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은 그가 그의 신성을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 만이 지식이며 신께서 홀로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스:http://blog.daum.net/petercskim/7861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