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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년 만의 52cm 눈폭탄 … 포항에선 무슨 일이

68년 만의 52cm 눈폭탄 … 포항에선 무슨 일이

중앙일보 | 2011/01/05

68년 만에 내린 폭설로 포항시 청림동 일대에서 4일 해병대 장병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포항=연합뉴스]

포항 구룡포행 200번 시내버스 기사 이종석씨는 3일 내린 눈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그는 이날 오후 3시50분 도심을 출발했다. 쏟아져 내리는 눈 때문에 정류장은 시민들로 넘쳐났다. 배차 간격은 13분에서 1시간40분으로 늘어났다.

버스는 시속 25㎞로 조심조심 나아갔다. 버스가 경사진 석동굴다리에 들어선 순간 이씨는 곤경에 빠졌다. 언덕길 가운데에 포터 한 대가 멈춰 서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눈 때문에 차를 두고 간 것이다. 버스를 세웠다. 뒤따라오던 승용차는 버스가 멈추자 언덕길에서 헛바퀴만 돌다가 눈구덩이에 처박혔다. 112에 연락했지만 눈길에 고립됐다. 승객들은 버스 안에서 꼼짝없이 3시간을 갇혔다. 구룡포 종점에 도착하니 오후 10시50분. 평소 1시간10분 걸리던 구간을 7시간이나 걸려 운행한 것이다. 이씨는 “눈길 운전 경험이 별로 없었는데 정말 고생했다” 고 말했다.

 포항에 68년 만에 폭설이 내리면서 도시의 풍경이 바뀌었다. 포항은 전통적으로 눈이 덜 내리는 지역이다. 5㎝ 정도 내린 게 최대였다. 그것도 2년에 한 번 정도 눈이 올까 말까 했다. 그래서 시민들이 그리는 눈의 이미지는 ‘낭만’이었다. 하지만 3일 내린 눈은 ‘공포’였다. 시민들은 이날 때론 긴장하고, 때론 황당한 경험에 쓴웃음을 지으며 아찔한 하루를 보냈다. 눈이 그친 3일 오후 10시를 기준으로 포항 동해면에 내린 눈은 52㎝나 됐다. 포항 지역 평균은 28.7㎝.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적설량이다.

폭설로 인해 멧돼지들이 먹이를 구하러 시내에 출몰하면서 곳곳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야산이 있는 북구 학잠동 등의 주택가에 멧돼지들이 떼를 지어 나타난 것이다. 주민들의 신고를 받은 119 구조대가 출동해 두 마리를 사살했다. 이 과정에서 멧돼지들이 총소리에 놀라 도망다니느라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했다. 구조대 관계자는 “산에 눈이 많이 쌓이면서 먹이를 찾지 못한 멧돼지들이 주택가로 몰려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의 교통망은 마비됐다. POSTECH(옛 포항공대) 직원 최혜영씨는 3일 차를 세워 놓고 걸어서 퇴근했다. 버스도 택시도 모두 끊겼기 때문이다. 그나마 눈을 조금 치운 차도를 걸어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많은 포항시 공무원은 이날 퇴근을 포기하고 시청 근처 찜질방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큰눈을 처음 접하다 보니 제설작업도 우왕좌왕이었다. 제설차량이 2대에 불과해 눈을 치우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4일 오전 급히 대구시 등에서 16대, 군부대에서 3대의 제설차량을 지원받아 겨우 작업을 시작했다. 준비해 둔 염화칼슘도 2100포에 불과했다. 5일 뒤늦게 3000포를 더 사들일 예정이다. 익명을 원한 한 공무원은 “이런 큰눈을 접한 적이 없어 대응체계가 허술했다”고 토로했다.

 기상청은 영남 동해안에 많은 눈이 내린 것은 5㎞ 상공에 위치한 영하 30도 안팎의 찬 공기 덩어리가 동해 쪽으로 남하하다 영상 13~15도의 바닷물과 만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송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