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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편지 !

+ 천국편지 / 너의 가슴의 끈들 & 그것이 다리를 건너게 만드는 것

 

 

 

천국편지 / 너의 가슴의 끈들



너의 가슴의 끈들

Your Heartstrings


Heavenletter #5550. - God  2/4/2016

http://heavenletters.org/your-heartstrings.html

 



신이 말했다.

 

너의 가슴 끈을 팽팽하게 당기는 것이 아니라면 너의 고통은 무엇이냐? 언어는 가끔 긴장을 겁먹는 것으로 묘사한다. 고통은 너의 가슴의 수축이다. 네가 팽팽하게 당기는 것은 너의 가슴인데, 마치 너의 가슴이 네가 놓으려는 활시위와 같이 말인데, 그러나 너는 결코 놓지 않는다. 너는 계속 너의 가슴을 팽팽하게 당기는데, 마치 삶이 긴장하도록, 쉼이나 방출 없이 엮어지게 만들려는 듯이 말이다.

 

언어가 또한 너에게 태엽을 풀라고 말한다.

 

너의 가슴은 바이올린 줄과 같다.

 

너는 너의 가슴을 뒤로 너무 멀리 당기고, 너의 가슴을 매듭들로 묶는다.

 

너의 가슴은 두려움으로 제약된다. 만약 네가 모든 쌓아올린 긴장을 방출하고 긴장으로부터 너의 뛰는 가슴을 풀어놓는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자유가 일어날 것이다.

 

너는 너의 가슴 속으로 너무나 많은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왔는데, 마치 너의 가슴이 풍선이었듯이. 공기의 일부를 내보내라, 너의 가슴이 생존 가능한 가슴이 될 수 있도록, 단단히 짓눌린 가슴이 되지 않도록.

 

너는 심지어 네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너의 두려움은 경계 표시 없이 일반화되었다. 너를 들쑥날쑥하게 만드는 것은 미지의 압도적이 두려움이다. 들쑥날쑥한 두려움이 너를 누르며, 너를 압박하며, 너를 짓누른다. 두려움은 네가 너무나 단단히 감는 지혈대와 같다.

 

너는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듯이 보이는 주자와 같다. 잠속에서도 너의 다리들이 휘저어진다.

 

너는 네가 팽팽히 감지 않았다면 네가 끝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너는 두려워할 수 있고, 넘어질 것이며, 너는 네가 긴장 속에서 실수할 때 재발을 갖는다. 물론 이 이완relaxation이 정확히 요구되는 것이다.

 

너의 오래 살아온 동료로서 긴장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는 네가 정말로 삶으로부터 도망하고 있을 때 삶을 정면으로 만난다고 느낄 수 있다. 만약 네가 삶을 하나의 포장이었다면, 우리는 네가 그것을 너무나 단단히 쌌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들아, 숨을 쉬어라, 숨을 쉬어라. 평화를 들이마시고, 긴장을 내보내라, 네가 수영할 때 두 가지 운동을 갖는 것처럼. 너 자신을 경계 없는 자유 속에서 찾아라. 너는 긴장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 너는 평화 속에 있도록 자유롭다. 너의 가슴의 노를 호수로 담그라, 그런 다음 노를 호수로부터 가볍게 잡아당겨라.

 

너의 숨을 잡아라, 그것이 나가게 해라.

 

우리는 “보내라Let go, 보내라let go”로 돌아온다. 사랑하는 이들아, 너희는 네가 원하지 않는 것에 매달리고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네가 너무나 단단히 묶여있을 때 네가 하고 있는 것 아니냐? 누가 너에게 이것을 하라고 말하느냐? 나는 너에게 뒤로 누워서 떠있으라고 말한다. 물고기는 그들이 잡혔을 때에만 투쟁한다. 어떤 어망에 네가 잡혀 있느냐? 그리고 너는 새장에 든 새가 아니다.

 

너는 용이함 속에 있게 되어 있다. 휘저어지는 물들이 너를 넘어가게 해라. 네가 끌고 다니는 이 저항의 산을 – 마치 저항이 너의 방패라도 되듯이 – 놓아버려라. 너의 삶으로부터 공격을 풀어라, 네가 너 자신에 대항해 미리 계획한 공격을. 너는 지탱될 필요도, 묶일 필요도, 지나치게 엮일 필요도 없다. 너 자신을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라. 두려움을 버려라. 두려움은 너의 마스터가 되기로 되어 있지 않다. 이름 없는 두려움은 너에게 봉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봉사하지 않는다. 너 자신을 익명의 두려움의 노역으로부터 해방시켜라. 두려움은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게 해라. 일단 두려움이 버려라.

 

너는 두려움을 충분히 가졌다. 너는 그것으로 너무나 잘 들러붙어 있었다. 두려움과 일을 끝내라. 네가 묶은 매듭들을 풀러라. 그것들을 풀러라. 이 모든 바늘 없는 매듭들로부터 너 자신을 푸는 것을 그려봐라. 두려움의 너의 장악에서 느슨해진 너 자신을 느껴라.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라.

 

너 자신을 자유롭게 해라. 두려움에게 이별을 고해라. 그것을 너의 왕국으로부터 추방해라. 이것은 너의 인생이다. 너의 삶은 너에게 속해 있는데, 정당하게지 — 무서워하면서가 아니다. 너는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너는 두려움의 습관으로 매이지 않는다. 두려움을 버려라. 두려움은 너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를 해친다. 두려움은 너를 손상시킨다. 더 이상 두려움과 관계하지 마라. 거기서, 지금, 더 이상 두려움으로 고개 숙이지 마라. 두려움을 몰아내어라. 너는 두려움이 필요 없다. 너는 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다리를 건너게 만드는 것

 


그것이 다리를 건너게 만드는 것

Making It Across the Bridge


Heavenletter #5551. - God   2/5/2016

http://heavenletters.org/making-it-across-the-bridge.html

 

 

신이 말했다.

 

삶이 너에게 나타날 때 네가 삶으로 압도될 때, 나는 너에게 묻는다. “누가 압도되느냐? 삶이 이 경우에 행하는 자인가? 아니면 너는 내가 네가 압도되게 주장하는 그 행하는 자라고 생각하느냐?” 압도되는 자가 압도하는 자인 것처럼 보인다.

 

너의 팔들이 가득 차 있다. 너의 머리는 책임감으로 가득 차 있다. 당연히 네가 나르는 짐이 너에겐 너무나 많다. 만약 네가 목재를 나르고 있고, 천 파운드를 다리를 건너 운반할 수 없다면, 너는 네가 나르는 짐을 줄일 것이다. 너는 일부를 남기고, 그것의 두 번째 운반을 위해 돌아갈 것이다. 간단한 육체적 수준에서는 해결책들이 너에게 더 쉽다. 너는 너 자신에게 단번에 너무나 많은 것을 운반하기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의 짐을 한동안 내려놓는데 책임을 다한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다룰 또 다른 길을 찾을 것이다.

 

네가 지금 나르는 무게는 네가 너 자신에게 말했던 하나의 이야기이다. 너는 너 자신을 그 상자 안에 넣었다. 심리학적 수준에서, 너는 너에게 속하는 책임감의 느낌만이 아니라, 또한 시급성의 큰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덧붙여, 너는 너 자신에게 시급성을 부과했다. 너는 실로 너의 시급하다는 느낌에 대해 책임이 있다. 시급성은 너의 압도됨의 정수이다. 시급성은 압도적이고, 정말로는 그 자체 책임감이 아니다.

 

너의 시급한 느낌과 너의 그것의 처리과정이 얼마나 너를 돕고 있느냐? 전혀 돕지 않는다.

 

시급성과 압도됨은 비명을 지르는 너의 방식이다. “아, 슬프다, 이 모든 것이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너는 너 자신을 압도하는 진단으로 진단하고, 그리하여 너 자신을 압도하게 한다. 너는 이 무게를 너 자신에게 더했는데, 네가 과식하고, 몸무게가 늘 때, 그런 다음 네가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탄할 때처럼 말이다.

 

너는 둘 다의 경우에서 네가 어찌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친애하는 이들아, 누가 도와주겠느냐? 어쩌면 너는 여전히 삶에서 지니genie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는 짐의 무게를 한계점으로 올리고, 따라서 너는 압도적인 짐으로부터 휴식을 너 자신에게 주는데 필요한 자이다. 모든 것이 같은 식으로 머물 수 있다. 같은 어려움들이 너를 추구할 수 있지만, 너는 압도적인 그 느낌을 버리는 자이다. 압도됨은 너의 강점이 아니다.

 

왜 너의 에너지의 너무나 많은 것을 비생산적이고, 아무 데도 가지 않으면서 펄렁이며 돌아다니는 것으로 주느냐? 와우, 그 낭비된 그 염려의 에너지를 사용해라, 너는 지금쯤에 너를 압도하고 있는 모든 것을 너의 어깨로부터 벗어버렸을 것이다. 사실상 너는 너 자신과 타협을 했다.

 

네가 나르는 무게가 너의 직접적인 지배력 아래 있지 않고, 네가 너의 리스트를 지울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진 일이 또한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너의 압도됨이 너의 인접 가족 안에 일어난 사고나 병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자. 너에게 그 무게는 비탄이다. 네가 그 비탄을 버려야만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비탄은 너에게 압도적이고, 어쨌든 그것은 그 자신의 시간이 되어야만 떠나는 듯 보인다.

 

그것을 이런 식으로 고려해라. 네가 일자리를 가졌고, 너는 아침 8시까지 직장에 도착해야만 한다. 네가 제 시간에 직장에 도착하거나 하지 못하는 것이 쉽든 아니든, 너는 너 자신을 거기 도달하게 한다. 만약 네가 너의 일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너는 매일 아침에 시간에 맞게 직장에 도착한다.

 

비탄의 경우, 너는 세상에서 완전히 기능하기 위해 올 것이다. 너 자신에게 어떤 재량을 주어라, 그런 다음 너의 삶에서, 삶을 위한 너의 사랑에서 일하는 곳으로 돌아가라.

 

매번의 경우에, 너는 다음 걸음을 택하고, 다음의, 그 다음 걸음을 걷는다.

 

무엇이 너의 실질적인 책임감이냐? 비탄이냐 아니면 삶이냐?

 

네가 너의 아이들을 가질 때, 너는 너의 가슴의 상태에 상관없이 매일의 여건을 만나는 것이 요구된다. 심지어 네가 두통을 가질 때에도 너는 단순히 의문 없이 너의 아이들을 돌본다.

 

너의 진정한 존재가 너를 운반한다. 모든 이들이 진정한 존재를 가지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진정한 존재는 고요한 진실한 존재이다. 조만간 너는 그것이 다리를 건너게 만들 것이다. 그것을 더 빨리 만들어라.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9164 신의 편지/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