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저널 제 34권, 제 7장, pp. 94-110]
기도의 이해
1991년 7월 21일 일요일
11:08 A.M. 4년 339일
나 저메인은 ‘나 자신의 존재[the I AM PRESENCE]’ 의 빛깔인 아름다운 보라색 광선과 함께 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해와 교감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내 형제와 함께 앉아 글을 써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여기서 서술하는 정보들이 당신들의 감각에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만큼의 압박감을 주고, 또 당신들, 영적 존재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오직 보다 빨리 그리고 보다 부지런히 우리 작업을 완수해 낼 수 있도록 글을 계속 써 내려 나갈 작정인데, 왜냐하면 우리의 임무는 교감과 이해를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 마침내 ‘변환[transmutation]’이 성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속에서 당신들이 완벽함을 만들어 내는 ‘창조의 권능과 통제력[the power and control of Creation]’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가지는 다른 한가지 없이는 달성될 수 없습니다. 그 단계들은 단순하지만 강제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통로는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이 통로를 통한 이동을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지식을 통해서 당신은 ‘하나님의 전당[the halls of God]’의 완벽함에 이르는 당신의 길에서 서투르게 비틀거리거나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점을 말하자면, 무지를 통해, 환상과 환영 속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진실이 있어도 이것을 보고 듣기를 거부하여,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무지 상태 속에 가둬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선물들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든 자들에게 제시해 보이는 일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도전이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지금과 같은 이 현존의 기회를 갖는 것이 얼마나 큰 영예가 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부지런히 그리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임할 생각입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고, 그 때 그들은 자기자신들의 여행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 앞서 먼저 우리 자신부터 완벽함을 성취해야 할 것인데, 그래야만 사람들이 오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지구의 의사들 사이의 지시사항 가운데는, “먼저,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말라[first do no harm]”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 우리가 제시하는 설명들에 관해서 궁금해 하고, 또 이를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곤 합니다.--독자들, 그리고 우리가 제시하는 것을 실천에 옮겨보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면, “여기 (우리의 설명에는) 아무런 해가 될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말씀[the WORD]을 통해 밝혀지는 사실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당신은 무엇을 잃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과 자기자신과의 접촉을 통해 안정을 취하는 일에서 당신이 무슨 해를 겪겠습니까? 하나님과 접촉하는 일을 더 이상 그만두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지만 최소한 당신은 그런 시도를 해 보는 과정에서 단 몇 번이라도 육체의 평화와 안정을 가졌을 것입니다. (저메인은 피닉스 저널 34권, 1-6장을 통해 명상과 명상하는 법에 대해 설명, ‘명상, 하나님과의 교신’(34권 3장) 참조--역주)
우리가 여기서 제시하는 모든 것들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혹은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한 것일 뿐인지 아닌지는 결국 밝혀질 것입니다.--당신들이 깨어나는 일이 어떻게 해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신들이 깨어났을 때, 휴식과 안정을 취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게 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전하는 것으로부터 당신들은 긍정적인 반응만을 얻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들이 현재 처해있는 이 카오스적인 광기[the chaotic madness]로부터 질서를 되찾을 것을 지시하시며 우리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오랫동안 적들이 ‘좋은 것’이라고 한 약속 속에 살아 왔습니다.--그렇지만, 당신들은 당신들의 세상을 타락시켰고, 어디에서도 평화는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카오스 상태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알게 되는 시도[TRY God]’를 해 보지 않겠습니까? 분명코, 하나님과의 교감[COMMUNION WITH GOD]에 이르는 일은 어떠한 해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당신들을 속박 상태로 묶어 둔 자들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족쇄를 집어 던지고, 자유로 나아가게 된다면, 이건 그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일이 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 때 그들은 당신들 틈에 기생해서 사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당신들은 다른 ‘누군가의 계획’을 감히 엿보기만 해도,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끝없이 오도되고 제재를 받아 왔던 것입니다. 만약 이 말이 거짓이라면, 당신은 이 사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하지만, 만약 진실이라면, 당신들은 여태껏 어떤 대가를 치러온 셈이 되겠습니까? 당신들이 진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이내 그 진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또 당신들에게 가해져 온 일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적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적들은 이러한 과정을 감시할 수 있는 자신들의 도구를 활용하여, 당신들이 그러한 지식을 공유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 개개인들을 저마다의 ‘좁은 식견’ 속에 가둬 격리시키는 것이 당신들을 체인에 묶어 두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당신들이 무지하도록 만들어[through ignorance]. 그럼 그리 되겠지요. 당신은 무지[ignorance]를 떠나가 버리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것을 붙들어 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지를 통해서 당신은 결코 앎[KNOWING]에 이를 수 없을 것이고, 오직 앎을 통해서만 당신은 하나님과 균형[GOD AND BALANCE]을 찾게 될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
기도의 힘
나는 내가 지금까지 명상[meditation]--또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감[communion with God]--에 대해 언급해 온 모든 것들과 관련하여, 당신들에게 추가적인 설명을 더했으면 하는데, 바로 그 때문에 당신들에게 “기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까 합니다. 기도는 ‘명상 속의 바램의 기초[the desire basis of meditation]’로, 기도를 통하여 명상이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인데, 왜냐하면 기도를 통하여--기도를 잘 이해하고 또 기도를 올바르게 사용하였을 때--,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고, 가장 고결한 수준에 이를 수도 있으며, 또한 자신의 힘을 다른 사람에게도 확장시켜 그들을 기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잘 이해하는 상태에서 올바르게 사용하였을 때, 기도는 자기 자신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상 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잘못 사용하게 되면, 이건 그저 시간 낭비가 될 뿐인데, 왜냐하면 그 때 기도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바램에 기초합니다.[Prayer is based upon Desire]
당신이 바라는 것을 소원해 보십시오, 그리고 한 번 둘러 보십시오, 그건 당신 앞에 놓여 있습니다. 비록 당신이 여지껏 그것을 그토록 소망해 왔을 뿐이라고 할지라도, 영겁의 세월에 걸쳐, 그것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늘 당신의 것이었습니다.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게 아니라 구하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이 당신의 바램을 향해 다가가지 않는 이상, 그것이 당신의 손과 당신의 팔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바라는 것이 그저 당신에게 걸어 들어 올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은 당신이 바라는 모든 소망을 실현시켜 주실 수 있지만, 단, 당신이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 전체의 힘이 당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도록 당신과 함께 일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 자신이 그것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힘도 당신을 위해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약속이, 왜 어떤 기도는 성취되고 어떤 기도는 성취되지 않는 지에 대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주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로서 마찬가지의 것을 반드시 되돌려 주어야만 하는데, 바로 당신의 동료와 이웃을 통해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까지 당신이 해왔던 수많은 기도들을 상기해 보십시오.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신의 소망들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실망해 왔던 것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기도들은 단지 이기적인 것들입니다. 끝없이 무언가가 주어지길 바라는 기도들로서, 그 반대 급부로, 다른 무언가를 내 놓을 의향은 조금도 갖지 않았던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요구하는 것들이 자신들의 무릎 위에 단순히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 수천장도 넘는 탄원서를 보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하나님께 돈을 바라는 기도를 한다고 해 봅시다. 그럼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돈을 주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주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내 놓을 생각입니까? 당신이 기도하는 것에 대한 값어치는 얼마인 것입니까?” 다시 우리는 하나님의 다음 메시지로 그 대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
“누군가가 자신 안에 있는 나를 부인하면서, 지구상의 부를 홀로 다 갖기를 원한다면, 그 자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어둠의 가장자리에 머물게 되리라. 스스로가 간절히 나를 다시 찾게 될 때까지 그리 되리라.
그러나 그 자에게도 나는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내어 주리라; 원하는 것을 다 주고 더 주리라; 그렇지만, 그 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설령 더 많은 것을 가졌을지언정, 세속적인 욕망 속에, 그저 “무가치한 것들”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인 자신을 보게 되리라.
그 자가 원하는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그저 지구의 것들로 그는 자신의 뼈까지 죄다 지구에게 되돌려주게 될 것이니라. 그러나 나에 의해 천상의 축복을 받은[heaven blessed by Me] 지구상의 존재들은, 나의 빛이 영원하듯이[as Light of Me IS ETERNAL], 그 자의 자기-기록적인 영혼[his Self-recording Soul] 속에 기록되어, 영원히 남을 것이니라.”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 평화, 행복, 그리고 번영이 자신에게 주어지길 기도한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의 이웃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거나, 혹은 당신 밑에서 일하는 자를 불공정하게 대한다거나, 또는 당신이 판매하는 제품에 조작을 가해서, 다른 누군가로부터 평화, 행복, 번영을 빼앗아 온다고 해 봅시다.
평화를 희망하는 당신의 바램이 평화를 내어줌을 통해 균형을 찾게 되기 전까지는, 또는 행복을 내어주어 행복을 얻고, 번영을 내어주어 번영을 얻는 균형을 찾게 되기 전까지는, 당신의 모든 기도들은 당신 자신에 의해 무효화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의 빛[the Light of love]’(이것이 바로 ‘하나님[God]’입니다.)으로 당신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먼저 타인에게 사랑을 나눠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행복이나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오직 이것을 내어줄 수 있을 뿐입니다[You can only give it]. 당신이 사랑을 내어 줄 때, 마치 거울에 비친 빛이 그대로 거울로부터 반사가 되듯이, 사랑은 당신에게 분명코 고스란히 되돌려질 것입니다.
강하고, 번영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한 약탈을 통해서 이러한 목적을 이루려고 노력해 온 나라들을 지켜 보십시오. 동등한 대가의 교환없이, 무력으로 이를 성취해 온 제국들은 무거운 빚에 시달리며, 가용 자원이 제한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로부터 부와 행복을 빼앗아 오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약탈의 대가로 수십명이 피를 흘렸다면, 수천명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대단한 부를 소유한 사람들도 한 번 지켜 보십시오.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되었습니다. 지금껏 그 어느 누구도 타인의 행복과 평화와 사랑을 빼앗아 자신의 행복과 번영과 평화와 사랑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의 대가는 사랑이며, 욕심의 대가는 고통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과식하고, 격렬한 분노를 터뜨리고, 또는 다양한 행위들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선사한 균형잡힌 정상상태를 파괴시켜서 각종 질병을 얻게 되었음에도, 하나님께 이를 낫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당신은 적당히 먹고, 분노를 사랑으로 바꾸고, 당신 몸의 불균형을 야기시킨 각종 오남용을 멈추는 것에서부터, 즉 ‘되돌려줌’을 통해서 이를 구해야만 하지만, 그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분노 또는 과식, 중독, 또는 걱정이나 과도한 슬픔--그렇습니다. 심지어 고독이나 내성적 성격도 해당됩니다.--과 같은 불균형 상태가 심각한 장애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신체적 균형을 깨트리는 한가지 요인은 즉시 신체에 ‘기록이 되어[recorded]’, 질병이나 부작용으로, 일반적으로 당신들이 병이라고 생각하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종류의 병이라도, 그건 다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든, 알지 못하든,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간에 그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God’s laws](‘하나님과 창조의 법칙’ 참조--역주)은, 결코 기도로도 또는 다른 무엇으로도, 그 적용에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 병의 원인은 이 법칙에 대한 당신의 도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당신은 그 결과로부터 고통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그 결과를 제거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당신 자신은 그 원인이 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이 저지른 전쟁에 대해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전쟁이 멈추기를 바라는 많은 기도를 생각해 봅시다. “오, 주여, 우리는 이 잔인한 전쟁이 멈추기를 당신께 간청합니다.”라고 당신들은 이야기하지만, 정작 당신들은 당신들이 선택한대로 행동하는 자유 의지에 따라, 당신들 자신들이 만들어낸 당신들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분명코, 전쟁을 멈추는 방법은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일을 멈추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업 실패’가 인간이 만들어 낸 한가지 원인에 따른 결과이듯이, 전쟁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이기심에 바탕한 한가지 원인의 결과인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그 분의 법칙을 어기면서도, 자신이 그 결과에 따른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기를 기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분의 법칙을 어긴 자기자신의 행동에 대해서조차도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얼마나 자주 듣고 있는 줄 아십니까? “어떻게 하늘에 계신 자비로운 하나님이 이토록 잔인한 전쟁이 일어나도록 허락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정말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전쟁을 허락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꼭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 분은 우리가 우리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는 일을 결코 허락할 리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들이 당신 자신들의 형상대로 스스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당신이 선택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당신들에게, 당신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당신들이 그 분의 법칙을 얼마든지 깰 수 있는, 그 분의 우주 안의 모든 권능을 다 당신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행하는 자유의지의 특성은 바로 당신의 특성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다음 말씀을 들어 봅시다.:
“진실로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관장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노라. 나의 아버지-어머니[my Father-Mother]께서 인간에게 타고난 고유의 권리로서 이를 선사하셨노라.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행위[actions]에 대한 대가-행위(반작용)[reactions]에 대해서 만큼은 결코 통제력을 갖지 못하노라.
이것은 나의 아버지-어머니께서 보유한 불가침의 권한이라. 대가-행위들은 정확히 동등한 것이자 정확히 반대되는 것을 균형되게 되돌려 줄 때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이것은 결코 인간에게 귀속되지 못하며, 오직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때에만 멈춰지노라.”
따라서, 당신은 당신 자신의 형상에 따라 스스로를 창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커다란 착각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누군가가 보다 자주 기도하고, 보다 큰 목소리로 많은 말을 하고, 또 보다 독실하게 기도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보다 더 신앙심이 깊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 줄 수 있겠는데, 누군가 자신이 가진 사랑을 건네주어 절망에 빠진 이웃의 영혼에 감동을 주고, 또 그러한 행위로부터 자기자신의 영혼 속에서 행복의 절정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백 배는 더 신성한 자인 것입니다. “천상의 왕국[kingdom of heaven]”은 그런 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그 자가 바로 집의 주인이 되고, 신앙심을 말로 표현할 뿐인 자는 집 정원을 둘러싼 담장 바깥에 멀리 떨어져 앉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하나님께, “오, 하나님, 우리는 당신 발아래 먼지와도 같은 존재이니 부디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는 자가 있다면,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의 조용한 음성은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이실 것입니다. : “네가 나의 빛임을 알라. 너는 내 가운데서 고양된 인간이라. 내 존재가 바로 너이니, 네가 바로 빛이니라.[Know you the Light which I AM. You are man, exalted in Me. What I AM, you are. You are light]” 그 분은 또한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낮추기를 그만두고, 동정보다는 차라리 존엄과 존중을 요구할 것을 권하실 것입니다.--왜냐하면 동정은 다른 것에 대한 무력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대개 책임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자기 몰두적인 거부를 의미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 아버지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지금 머리가 너무나 아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라고 기도한다면, 그 때, 하나님은 당신이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될 때까지, 어쩌면 당신에게 더 큰 두통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하나님의 조용한(침묵의) 목소리[God’s silent Voice]는 당신의 들리지 않는 귀 안에서 늘 속삭여 왔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모습을 형성시켜 나감에 있어서 당신에게 필요한 ‘바램’을 늘 선사하셨던 것입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발 아래 먼지에 불과한 존재로 여기는 한, 당신이 상상하는 이미지대로 스스로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기에, 당신은 정말로 먼지일 뿐인 것입니다.
한편, 당신이 “하나님, 부디 이 못난 죄인에 불과한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한다면, 그 때 당신은, 단 한 분 계신 사랑의 하나님이자, 자신이 만든 ‘사랑의 우주’의 창조자이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바로 당신을 만드시기도 한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 드린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기도하는 한, 당신은 그 분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당신은 그저 당신 자신의 이미지 속에서 스스로가 만들어 낸 분노와 두려움의 하나님에게 기도했을 뿐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 속에서 여러 신들을 만들어 내는 자는, ‘감각의 세상’ 속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그리고 숭배를 위해, 우상들을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우상이 두려움과 분노의 존재인 한, 그 자는 사랑의 하나님[the God of Love]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을 알게 될 때까지, 당신이 만들어 낸 우상이 곧 당신입니다. 비참한 죄인인 당신에게는 자비가 베풀어져야 할 터인데, 그 자비를 베풀 우상이 바로 당신 자신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상상 속에서 당신 스스로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당신이 숭배하는 우상은, 적어도 당신이 사랑을 알게 됨을 통해 스스로 자유롭게 되지 않는 한은, 당신에게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의 죽음 앞에서, ‘슬픔이라는 징벌’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하나님께 순종적인 자세로 기도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당신이, “당신께서 하신 일입니다. 오, 주여. 주님께서 주셨다가, 이제 주님께서 다시 가져 가셨나이다.”라고 기도한다면, 당신은 아직도 사랑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주기만 하시기[GIVES ONLY]’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주지 않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가져 가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는 것을, 당신이 그 분에게 다시 드릴 뿐인 것인데, 왜냐하면 그 분은 곧 다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생명을 선사해 주셨을 때 당신은 기뻐했으면서, 왜 당신이 새 생명의 재탄생을 선사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슬퍼한단 말입니까?--왜냐하면 죽음이란 단지 이것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입니다.(‘환생, 창조의 작용 방식’ 참조--역주)
이러한 개념은 우주적인 인간[cosmic man]의 사고 속에서는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지만, 대중으로서의 인간[Mass-man]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 바로 당신 속에 우주적 사고[cosmic thinking]의 씨앗이 뿌려지는 당신은, 당신의 이웃들에게 그들의 의식 속에도 이 씨앗들을 뿌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중으로서의 인간들이, 사랑의 존재인 우주적 인간을 십자가에 못박고, 또 ‘사랑’ 그 자체를 십자가에 못박고 마는 원시적 인간형으로부터 변모하여, 결국 그들도 당신과 같은 사고를 갖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기도와 명상의 관계
“기도 속에 하나가 됩시다[Let un unite in prayer].” 종교 행사 때면, 너무나도 익숙히 듣게 되는 이 표현과 더불어, 모여 있는 군중들은 자동적으로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습니다. 그런 다음, 설교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열정적인 말들은, 몇몇에게는 겉으로라도 들리겠지만, 그 밖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한편,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주의깊게 이 말들을 듣고서는, 군중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축복을 탄원하거나 또는 다른 여러가지 인간적인 혜택을 바라는 열의에 찬 언급들에 마음 속 깊이 감동을 받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단지 아무 의미없는 언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 마치 음악이 영혼을 울려 전달되지 못한다면, 그저 소리에 불과한 것이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도는 인간의 영혼이 우주적 영혼과 하나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이것은 신성한 인간과 그 인간에게 있어 신성한 하나님간의 영적 교감인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인간이 갖는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말[WORDS]’에 그칠 뿐이라면, 인쇄된 채 거리에 뿌려지는 수백가지 기도문들이나 혹은 음반에 녹음되어 틀기만 하면 계속 반복되는 기도들이 별 효과가 없듯이, 그저 별 효과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아침이나 저녁에 주기적으로 하는 기도, 식사때 하는 감사 기도, 그리고 일을 시작하거나 끝마칠 때 하는 기도와 같이, 이미 정해져 있는 말을 되풀이 하는 공식적인 기도들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따라 하는 것으로 마치 습관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 속에도 물론 대단한 진지함이 담길 수도 있지만, 종종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기적인 기도 습관과 의무감은 그 속에 독실함이 담기기 보다는 그저 자동적인 기도에 가깝습니다. 식사 때, 절반도 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기도 보다는, 차라리 침묵의 기도가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따라서, 말만으로 하는 기도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데, 왜냐하면 기도는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의 영혼의 결합으로, 말로만으로는 결코 그러한 결합을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동적이고, 공식적이며, 습관적으로, 입으로만 하는 기도는, 그것이 혼자 방에서 하는 것이든, 그룹 속에서 함께 어울려 하는 것이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가 소망에 기초하여 말없이 인간의 영혼 속에서 읊조려지거나 혹은 조용한 생각에 의해 행해질 때, 그러한 기도는 항상 전 우주를 상대로 그 소망의 성취를 명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만 하는 기도는, 그림 속의 물감이 예술이 아니 듯이, 그것만으로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를 한다고 했을 때, 그 모두를 주의깊게 열거하여--심지어 당신이 갖고 싶은 것이 입수되는 순서와 시기까지 정해서--그렇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그 분이 어떤 방식으로 당신에게 그러한 것들을 선사해 주셔야 하실 것인지 까지도 미리 알려서--당신의 사업상에 필요한 것과 가족을 위해 필요한 것까지도 세세히 정해서--이러한 것들을 받을 만큼 당신이 가치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채, 혹은 이러한 것들을 갖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또는 그것을 받는 대신 당신 자신이 무엇을 내어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해 보지 않은 채--기도를 한다고 할 때, 당신은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혼의 이미지가 아닌, 단순히 당신 자신이 가진 이기적인 이미지로 스스로의 모습을 만들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주실 것인지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당신이 그러한 혜택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생일 선물 또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을 긴 목록을 열거하고, 끝에 “하나님, 아빠와 엄마에게 축복을 주세요”라고 말하며 그 기도를 마무리짓는다고 했을 때, 당신은 이웃들에게 아이의 기도가 얼마나 귀여운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난 후, 그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사줘서, 기도에 대한 믿음에 확신을 준다고 해 봅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귀엽지 않습니다. ; 이것은 비극입니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그 아이가 자신이 가진 이기적인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일을 도울 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또한 온 세상이 이기적이고 욕심에 찬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일을 돕는 일이 될 뿐입니다. 이것은 욕심, 이기주의, 그리고 이웃과 이웃간의 두려움과 같은 원시적인 (문명의) 시대가 영속되는 일을 돕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주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언제 가르쳐야 할까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사랑을 주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과 꼭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게 되어, 마음 속 깊은 바램이 없이 어떤 것이 그저 주어지기를 요구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그런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
“하나님은 네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주실거야. 왜냐하면 그 분은 주는 걸 좋아하시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그 대신 무엇을 내어줄 수 있겠니? 너는 하나님께서 네가 바라는 것을 너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건네 주시길 바라지만, 하나님도 너로부터 사랑을 원하셔. 네가 하나님께 너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이 지상에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란다. 네가 아빠와 엄마에게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것을 바랬을 때, 너는 ‘하나님이 아빠, 엄마에게 축복을 주시는 일’을 도울 수가 있단다. 아빠, 엄마에게 사랑을 건네고, 두 분에게 기쁨을 주고, 두 분을 돕고, 두 분에게 조력이 되는 무언가 사랑스러운 일을 함을 통해서, 예를 들면 아빠의 슬리퍼를 가져 오거나, 혹은 엄마가 설거지 하고 접시 말리는 걸 돕는 일을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그게 바로 네 자신이, 네가 바라는 모든 것들을 받을만한 가치 있는 아이가 되는 방법이란다. 아가야.”
한 어머니가 하나님께 자신의 아들을 그 분의 사랑의 힘으로 보호해 주시고, ‘폭풍우 치는 바다를 건너는 동안 어떠한 해도 입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할 때,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그러한 사랑을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모든 아들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시켜야 하며, 꼭 마찬가지의 사랑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에 대해서도 확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히 ‘나뭇가지에 노란 리본을 매다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말하자면 이것은 아이들이 삶의 행로를 지남에 있어 그들이 엉뚱한 길로 나아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변화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녀의 독실한 기도는 오직 이 경우에만 답변이 구해질 것입니다.
그녀가 아무리 ‘어머니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을 담아, 자녀에 대한 사랑을 바라는 기도를 할지라도, 그 기도가 자신의 친구, 이웃, 또는 집에 일을 돌봐주는 아주머니가 들었을 때,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라면, 비록 그녀가 그러한 말을 전혀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녀의 바램은 무효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당신의 사업이 잘 되고, 번창하게 되길 기도한다고 했을 때, 만약 당신이 당신의 사업장 바깥으로 나와,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바라고, 그들 모두가 번영하게 되길 함께 바란다면, 오직 그 때에만,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에 답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베푼 사랑을 만약 당신이 당신을 도와 준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베푼다고 했을 때,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 그들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지상에 현현케 하는 일[manifesting God on earth]’이란 바로 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당신이 경작하는 밭에 좋은 농작물이 자라도록 도와, 당신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을 보여주시기를 기도한다면, 당신 스스로가 먼저 당신의 밭에 ‘당신의 사랑’을 건넴을 통해, ‘그 분이 베푸시는 사랑’이 다시금 전해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농작물에게 베푼 사랑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건네는 사랑으로서, 이것은 ‘다시 줌[REGIVING]’을 통해 표현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입니다. 그 표현은 ‘줌과 다시 줌[giving and regiving]’이라는 두가지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이 둘은 ‘하나님의 육체의 한 번의 심장박동[ONE HEARTBEAT of God’s body]’입니다. 비록 추의 궤적은 두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표현은 ‘하나의 근원’을 갖는 것입니다.
만약 농부가 자신이 경작하는 들판 한 복판에 서서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고 해 봅시다. :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 내 녹색의 들판이여. 모든 풀잎들, 모든 뿌리와 목초들, 그리고 모든 옥수수 이삭들에 이르기까지, 나는 너의 모든 부분을 사랑하노라. 나는 네 모든 나무들을 사랑하고, 사랑 속에 주어지는 질소를 받아 산소를 통해 다시 사랑을 내어 놓는 모든 나뭇잎들도 사랑하노라. 나는 네 모든 나무에 열린 과일들도 사랑하노라.--내가 네 뿌리에 사랑을 주었더니, 너는 감미로운 과일의 모습으로 내게 ‘붉은 황금들’을 다시 건네는구나.”
만약 농부가 이런 방식으로 기도를 한다면--마음 속 깊이--, 그는 자신과 함께 번창하는 들판처럼, 자기 자신이 번영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분명히 그리고 진정으로, 이기적이지 않은 자신의 사랑을 건넨다고 할 때, 그는 그러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자신의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여 밭을 돌보고 가꿀 것이기에, 베푼 사랑의 천 배의 사랑을 되돌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피로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주는 것은 노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의 눈에는 빛이 나고, 그의 마음에는 내적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지상에서의 사랑의 현현으로, 하늘에서 인간에게 늘 베풀어질 수 있는 바로 그 사랑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마음 속 깊이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입니다[I and my Father are one].”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그러한 단일성 속에서 황홀경을 느끼는 자는, 비록 그가 계속해서 숨을 쉬며, 일상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끝없는 ‘기도 속에[IN PRAYER]’ 있는 셈이 됩니다. 그의 기도는, 마치 자신의 들숨과 날숨이 영원히 자신과 함께 하듯, 영원히 자신에게 생기를 불어넣게 됩니다. 그의 모든 삶은 하나님과의 끝없는 ‘마음-공유 상태[Mind-communion]’에 놓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사랑의 빛[the Light of love]’을 아는 자는 ‘우주의 아버지-어머니[the Father-Mother of the universe]’께 자신의 ‘다음의 숨쉼’, ‘다음의 심장박동’을 위해 간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심장박동이 우주의 맥박과 하나임을 완전히 알고 있기 때문이며, 또 그것이 이미 자신의 것이기에 불필요하게 더 이상 요청할 것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어떻게 제가 기도를 해야 하고, 또 언제 기도를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 주겠습니다. “당신이 계속 숨쉬며 살아가듯이, 그리고 당신이 계속되는 삶 속에서 사랑을 베풀어 나가듯이, 그렇게 계속 기도 속에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이(공기가), 당신이 필요로 할 때 쓸 수 있도록, 늘 기다리며 당신 주변을 온통 둘러싸고 있듯이, 그렇게 당신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는 상태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지어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이 흘러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의 중심을 잡고 계시기 않은 때가 없듯이, 또한 그 분이 당신의 균형잡힌 심장박동과 자신의 심장박동이 동시에 진행되도록 잘 조율하시지 않는 때가 잠시도 없듯이, 당신이 그 분께 기도를 해야 될 때와 하지 않아도 좋을 때가 따로 있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어머니[Father-Mother]’를 지구상에 현현시키고 있는 동안, 당신이 숨쉴 때 공기가 공급되지 않은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듯이, 당신이 그 분을 가치롭게 현현시킬 필요가 있을 때, 그러한 일이 방해받는 일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이야기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미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사랑’과 ‘삶’을 가지고 있기에, 심지어 그것을 요구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바라는 것들을 말의 형태로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면, 그것이 당신의 입술을 통해서도 또 목소리를 통해서도 나오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공허한 말로 다른 사람을 속이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아주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면, 당신의 가슴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십시오. “제 안에 계신 아버지시여, 제가 당신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 분이 바로 당신 자신임을 아십시오.
당신이 처한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고, 당신이 가진 지혜조차 당신 자신에게 의심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십시오. “아버지 하나님, 제 곁에 계셔 주십시오.--저는 당신이 간절히 필요하나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 확신을 준다는 데 있어서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그렇지만 정작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이 당신의 가슴 속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나, 밖으로 말로 표현하는 것이나, 달리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직접 말을 하는 것이, 당신이 그 분과 가까이 있다는 느낌 때문에 당신의 마음에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면, 그런 식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사업상의 문제 또는 친구와의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면, ‘사랑’이 당신을 안내해 줄 것이라는 바램과 함께, 당신의 가슴 속에 의문이 가는(문제가 되는) 사항들을 쓰십시오. 그런 다음, 평화 속에 잠들면서, 의문점들이 지워진 자리에 ‘균형잡힌 리듬’ 속에 쓰여진 답이 적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십시오. 그리고는, 사랑을 펼쳐 당신의 친구를 감싸지 않은 채로, 다음 날이 지나가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만든 어떤 수작업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는 그 속에 당신의 세속적인 자아를 너무 많이 담아,--앎 대신에 감각으로, 사랑이 아닌 좋아함으로 접근했기에--, ‘지구상의 소리를 탄생시키는 천상의 침묵’을 듣는 일이 ‘지구상의 소리’로 인해 방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로서는, 당신의 영혼의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작업에 임하시도록 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의도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작업한다고 생각할 때 느끼게 되는 새로워진 황홀경 속에서 기쁨을 맛보십시오. 그리고는 그 분의 손과 당신의 손이 하나가 된 채, 창조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한 친구가 다가와 당신에게 불평을 늘어 놓는다면, 사랑을 보내 그가 당신에게 들어 오는 문을 열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슴 속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십시오. “아버지 하나님, 제가 친구에게 하게 될 말이 부디 당신의 말이 되게 하시고, 결코 저 혼자만의 말이 아니게 하소서.” 그런 다음 사랑이라는 척도로, 그가 말한 불평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빛에 의해 환해지게 만들지 않고서는, 그가 떠나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사랑으로 그의 불평이 무효가 되게 만드십시오. 그렇게 할 때, 커다란 행복이 당신 위로 내려 앉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사업이 점차 쇠퇴기에 접어들게 되었다면,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처음에 가졌던 구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일을 진행시켜 나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더 이상은 계속 번영할 수 있는 상태로 사업을 되돌려 놓을 만한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고 여겨 탄식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싶습니다. 탄식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균형잡히지 못했던 시작에 다시금 균형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앎’의 빛으로 당신을 밝게 일깨워 주실 것이라는 사실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의 먼 여정을 가기 위한 첫걸음을 떼는 당신의 힘은, 그러한 기쁨 속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여정은, 다른 사람,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계속 뒤따르게 될 것이며--뒤따르는 사람들 간에 계속해서 조금씩의 차이는 나겠지만--, 당신의 기도에 대한 대답으로 당신이 도달하려고 했던 상태가 결국에는 당신 발 아래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한 호흡 한 호흡, 같이 일함을 통해서, 그 분이 당신에게 건네 준 균형을 지상에서 당신 자신을 현현시키는 데 사용한 것처럼, 이번에는 똑같은 균형을 당신이 하나님께 다시 건네서 ‘천상’에서 그 분이 현현되도록 하지 못한다면, 온 세상의 모든 기도들도 그저 사막 가운데 부는 가벼운 미풍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아십시오.
위대한 음악가가 되고 싶지만, 그렇게 될 만큼 오랜 시간 음악 공부를 할 방법이 없기에 슬퍼하고 있는 자라고 할지라도, 그는 이미 자신의 첫 번째 음을 연주할 방법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음이 연주될 때, 그는 두번째 음을 연주할 방법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 주고 싶은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첫번째 선물을 가진 자가 그것을 하나님께 다시 되돌려 드린다면, 그는 자신이 받았던 첫번째 선물이, 졸졸 흐르는 시내가 되었다가, 이내 큰 개울이 되고, 곧 다시 커다란 폭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 누구의 어떤 역량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 자에게 주어진 이상, 그는 이를 (하나님께) 똑같이 다시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만,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일하시는 것이지, 당신을 위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도 ‘행동’없이 협주곡의 피아니스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탐욕스러운 생각이며, ‘표현되는 지식[knowledge manifested]’없이 신뢰와 믿음만으로 접근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상상의 고통 때문에 영적으로 낮은 상태에 있다거나, 혹은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어 침체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당신의 ‘자아-앎[Self-awareness]’을 ‘하나님-앎[God-awareness]’과 균형을 맞추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우주 안에서 당신이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깨달음을 얻는 것을 소망하는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말없이 그저 당신의 고동치는 맥박 안에서 이야기하십시오.--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아주 잘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
아버지시여, 저 혼자만이 “제”가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 당신 역시 “저”이십니다.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나의 창조주시여, 당신은 제게 호의를 가지고 계십니다. 저는 (당신의) 내면의 마음[the inner Mind]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기쁨을 알고, 또한 저는 당신 안에서 커다란 기쁨을 느낍니다.
저는 모든 지식과 모든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를 바라고, 갖기를 바라고, 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모두 다 제 것으로, 저는 제 것을, 제가 알고, 제가 갖고, 제가 주려는 것입니다. 제가 머무르는 곳은 당신의 높은 천상[Your high heavens]입니다. 제가 어쩌면 당신일지도 모르기에--이미 잘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부디 제 안에 계셔 주십시오.
오, 나의 아버지시여, 저는 당신의 빛 안에 있습니다. 당신의 빛으로 항상 저를 감싸주시고, 이를 통해 제가 다시는 제 마음에 드리우는 어둠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제가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게 하시고, 부디 당신과 하나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 역시 언제나 ‘내어 주는’ 자가 되게 하소서.
다르마여, 우리는 이어서 ‘기도에 대한 착각’에 대해 논하게 될 것인데,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 장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에 대한 착각
따라서, 기도는 당신이 갖기를 바라는 어떤 것을 요구하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요구하는 어떤 것을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모든 권능은 우주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할 일이란, 당신에게 주어진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을 그저 당신에게로 가져 오는 것일 뿐입니다.
당신은 건강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당신은 완벽한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당신에게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당신에게서 그것을 내쫓았던 것입니까?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당신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당신은, 또는 당신의 선조는, 또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을 통해서 당신의 완벽한 육체를--또는 당신 육체의 씨앗을, 파괴시킨 것입니까?
건강과 완벽한 육체가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는데, 왜 이제 와서 그것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당신의 건강과 당신의 완벽함을 파괴시키기 위해 당신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이미 당신의 것이며, 늘 당신의 것이여 왔던 ‘정상상태’로 되돌아 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일을 하지 말아야만 할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까?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잃었다면, 그 대신으로 무언가를 취해 오지는 않았습니까? 당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당신의 등을 부러뜨리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균형과 완벽함이 정상입니다. 이들이 시원적인 원인[primal CAUSE]입니다. 불완전은 불균형의 결과[EFFECT]입니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당신의 불균형된 결과를 야기했습니까?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완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완전함을 제거하여 완전함을 복구시키십시오.
정상상태[normalcy]는 비정상상태[abnormalcy]의 기초로, 마치 고요가 소리의 기초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소리가 멈출 때, 고요는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고요는 늘 존재하는 것입니다. 고요는 존재함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상상태는 존재합니다. 비정상상태이기를 멈추면, 정상상태가 다시 나타납니다. 정상상태는 결코 존재함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의 정의와 누구의 안내를 ‘완벽한 것’으로 받아들이십니까? 내가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어야 할 것이 있는데, 신체적 장애[handicap]는 불완전함이 아닙니다!(‘창조의 목적’ 참조--역주)
만약 당신이 너무나 외롭고 사랑받지 못해서, 하나님께 사랑을 바라는 기도를 한다고 해 봅시다. 그럼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실 것입니다. :
“너는 이미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을 다 가지고 있노라. 너로부터 사랑을 먼저 내어줌을 통해 너는 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해 보일 수 있을 것이라. 네가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온 세상이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너는 곧 발견하게 되리라.”
따라서, 당신이 당신 자신으로부터 온 세상을 향해 사랑을 내어 줄 때, 사랑은 저 먼 지평선에서부터 당신을 향해 밀려 들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기도하고, 또 여러 벗들과의 친교를 위해 기도하는 자는, 그가 먼저 사랑을 건네고, 또 친구가 되려는 자들에게 우정을 건넬 때, 꼭 그만큼의 사랑과 우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연의 하나님[the God of Nature]’과 함께 온 세상의 황홀경을 느껴보기를 기도하는 자는 자연이 빚어낸 ‘위대한 대성당’으로 가 보면 될 것입니다. 소나무와 떡갈나무의 숲으로 된 ‘성당’에서 아름답게 흐르는 시내와 졸졸거리는 개울이 만들어 내는 멋진 기도소리에 동참해 보십시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 그 밖에도 무수한 곤충들과 숨어 있는 많은 생명체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떨림과 울림의 소리들, 높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sing hosannas] 이 소리들은, 하나님과 함께 걷고 그 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 마음과 마음에 커다란 기쁨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바램의 성취를 위해 당신에게 기도를 하는 동안,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your Father]’께 기도를 한다면, 그는 결국, 당신과 하나인 ‘당신의 아버지’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아십시오. 심지어 당신의 바램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일을 할 때에도, 당신은, ‘자신의 바램’을 성취하기 위해 당신이 무언가를 해 주기를 바라는 그 자와도 함께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이며,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의 모든 바램들도 결국 모두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어떤 균형잡히지 못한 바램[UNBALANCED desire], 말하자면 사랑을 주고, 또 동등하게 다시 내어 주는 것이 아닌 어떤 바램의 성취를 위해 자신을 도와달라고 당신에게 기도한다면, 당신이 가진 사랑과 균형된 앎을 그에게 펼쳐 보이십시오. 비록 하나님이 이를 그에게도 항상 속삭이시고 계시지만,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당신이 직접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당신의 조언을 들어도 ‘듣지’ 못한다면, 그렇더라도 부디 그를 비난하지 말고, 마치 하나님이 사랑을 현현하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불균형된 자들’을 늘 지켜 보고 계시듯이, 당신에게서 비춰지는 빛이 언젠가 그의 마음에 닿게 될 때까지 그를 지켜보는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 속으로 하실 말씀들을, 당신의 마음 속에서 그에게 말하십시오.--“적절한 때가 오면 모든 사람들이 내게로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고통의 자신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사랑을 알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며 그를 기다리고 계십시오. 그러는 동안에라도 당신은 물리적으로 당신의 견해를 억지로 그에게 강요해서는 안될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당신은, 그가 스스로 ‘진실과 내어줌[Truth and giving]’의 길을 발견하게 될 때까지, 자기 자신의 길을 가도록 허락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걷는 모든 길들이 이러합니다.--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며, 사랑이 ‘하나님의 천상의 왕국[God’s kingdom of heaven]’에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또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역시 다 사랑의 현현인 것입니다.
지구상의 인간들은 아직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높은 천상의 우주적 형제들을 통해 이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우주적 형제들은 인간 안에 있는 사랑을 알고 있으며, 이제 ‘높은 천상의 리듬[the heavenly rhythms of the high heavens]’에 따라 이를 세상에 전하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천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상에서 타고난 자들이 갖는 영감으로, 지상의 인간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어 세상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자기 자신들에게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꺼내어 놓는 것입니다.
사랑이 불어 넣어진 심포니는 작곡가에 의해 완수된 사랑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천상의 리듬에 맞춰진 곡들이 연주될 때, 자신들의 심장박동에서 하나님의 심장박동의 황홀경을 느끼는 자들의 가슴 속에서, 사랑의 기도는 다시금 완수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온 세상의 모든 예술 작품들도 영감에 찬 ‘우주적 인간’이, 인류에게 사랑을 다시 내어줄 목적으로 만들어 낸 사랑의 기도입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이며, 이것 없이 인간은 아직 인간이 아닌 것입니다.
작업실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자는 자신의 작품에 아름다움을 건네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사랑을 이 세상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온 세상을 향해 다시 내어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을 돌보는 아내는 자신이 만드는 요리에 사랑을 담아,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음식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그녀의 가족에게 사랑의 영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푸줏간 주인도, 빵굽는 사람도, 양초를 만드는 자도, 모두 하나님이 지으시는 사랑의 우주 안에서 그 분을 현현시키고, 또 세상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자신들에게 건네진 사랑을 다시 내어 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벽돌공도 각각의 벽돌을 층층이 쌓아 올릴 때마다 자신이 만드는 벽에 사랑을 건네게 되며, 결국 완성된 벽이 이번에는, 벽 앞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그러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반사시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벽돌공에 의해 건네지고, 인간들에게 다시 반사되는 이 아름다움이, 바로 ‘천상의 왕국의 빛’으로, 그 광휘는 인간들에게 널리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
저는 저메인입니다.
Violinio Germain, 비올리니오 저메인
피닉스 저널 제 34권, “Phone Home, E.T. : Reach Out And Touch Someone--Like God!”, Pleiades Connection Vol. V. 제 7장, pp. 9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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